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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부름을 받는 날까지 세례의 의미를 붙들고 겸손하게 사는 신앙생활
아버지: “은성아, 예배를 함께 드리고 식사하며 교제를 나눌 수 있으니 너무 좋지?”
은성: “정말 좋아요. 몇 년 동안 못 보던 얼굴을 볼 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아버지: “그런데 아직도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분들이 많이 있어서 안타깝구나.”
은성: “특히 자녀들이 심각한 것 같아요. 저희 청년들 중에도 몇 명은 교회예배에 나오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신앙마저 잃어버렸어요.”
아버지: “코로나-19 때문이라고들 말하지만 꼭 그것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은성: “또 생각되는 큰 문제 중 하나가 인구감소인데, 학교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가만히 있어도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나요?”
아버지: “맞다. 혼인을 하지 않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2022년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국가의 앞날이 위험하다고들 말한다. 더구나 교회 안의 청년들마저 이러한 흐름을 따라가고 있으니 걱정이다.”
은성: “거기에다가 교육과 방송과 출판과 예술을 동원하여 기독교를 비판하고 나쁜 면만을 강조하다 보니 전도하기가 어려워졌고, 자녀들은 그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고 해요.”
아버지: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들도 문제이지만 사실은 교회 안에서 보이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은성: “그게 무엇인데요?”
아버지: “목회자들이나 부모님들이 믿음을 이야기하지만 인격이나 생활이 그에 미치지 못하고, 믿지 않는 자들보다도 더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복음을 이야기하면서도 복음의 실질대로 가치관이 바뀌고(롬 12:1-2),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증거하지 못하고, 오히려 여러 가지 지탄받을 일들로 비난을 받고 배척당하는 것이 슬픈 일이다. ”
은성: “그것도 제가 자주 생각하는 문제여요. 가끔 전도하고 싶어도 그 사람이 우리 교회에 왔을 때 무엇을 볼까 생각하며 자신이 없게 되거든요. 항상 ‘와 보라’ 하면서 누가 와도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 자랑스런 교인들의 삶을 보여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버지: “우리가 늘 회개하며 주님의 은혜를 구해야 하겠다.”
은성: “그런데 왜 믿는 분들이 생활에서도 그 믿음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아버지: “좋은 질문이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나눠보자.”
은성: “제 생각엔 뭔가 기본이 흔들려서 그러지 않나 싶어요.”
아버지: “좋은 지적이다. 너도 탁구장에 가면 시합부터 하지 않고 먼저 기본적인 랠리를 하는 것을 생각해 보자.”
은성: “맞아요. 상당히 탁구를 잘 치는 분들도 한참 동안 랠리를 하고, 백, 커트, 드라이브를 연습하다가 서브 넣고 공격하는 연습도 하더라고요.”
아버지: “내가 보기엔 신앙생활에서도 늘 기본을 반복하여 다지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은성: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0:1-2)는 말씀을 반복하여 말씀하신 것이 생각나네요(출애굽기 13:3; 레위기 26:1; 레위기 19:36; 레위기 26:13; 신명기 5:6; 신명기 5:15; 신명기 7:8; 신명기 13:10; 신명기 15:15; 시편 81:10; 호세아 13:4). 중요한 말씀을 하시기 전에 먼저 이 말씀을 하신 이유가 있을 것이니 자신들이 종이었고,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 것을 기억하면 우상숭배를 비롯한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순종할 수가 있었을 것이어요.”
아버지: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대해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5)’ 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보듯이 우리는 항상 처음 사랑을 버리고 떨어지기가 쉬우니 늘 회개하고 처음 행위로 돌아가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은성: “그렇군요. 그러면 신앙생활에서 기본은 무엇이 있을까요?”
아버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오늘은 세례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보고 싶구나.”
은성: “교회에 일정 기간 출석하고 필요한 공부를 하면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을 말씀하시나요?”
아버지: “형식상으로는 그것이지만 나는 세례의 형식이 아니라 세례의 의미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은성: “오늘도 좋은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되네요. 자세히 말씀해 보세요.”
아버지: “먼저 세례를 받을 때 사용하는 예식문에서 중요한 부분을 살펴보기로 하자.
거룩한 세례의 교훈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와 우리의 자녀는 죄악 가운데 잉태되고 출생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며,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물로 씻는 의식은 바로 이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이 예식에서 우리의 영혼의 불결함이 드러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우리의 정결함과 구원을 우리 밖에서 구하여야 합니다.
둘째,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심을 우리에게 확증하여 주고 인(印)을 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우리가 성부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부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영원한 은혜의 언약을 맺어 주심을 선언하시고 인을 쳐 주십니다. 성부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자녀와 상속자로 삼아 주시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내려 주시고 모든 악은 피하게 하여 주시거나 합력하여서 선을 이루도록 하여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성자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보혈로써 우리의 죄를 모두 씻어서 정결케 하시고 우리를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시켜 주심을 약속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죄로부터 해방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여김을 받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령 하나님께서는 이 성례로써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지체(肢體)로 만들어 주실 것을 우리에게 확신시켜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소유한 것을 실제로 누리게 하셔서 죄 사함을 얻고 매일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마지막에는 우리가 거룩하고 흠이 없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면서 택함 받은 무리 가운데서 한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모든 언약은 약속과 의무라는 두 부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하므로, 셋째, 하나님께서는 세례를 통해 새롭게 순종하도록 우리를 부르시며, 우리는 순종할 의무를 짊어집니다. 즉 우리는 이 한 분 하나님, 곧 성부・성자・성령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하며, 그분을 신뢰하고, 우리의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을 버리고 우리의 옛 본성을 죽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가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죄에 빠졌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포기하지 않아야 하며, 그냥 죄에 머물러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세례가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으신 영원한 언약의 인이고 온전히 신뢰할 만한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은성: “와, 세례의 의미가 이렇게 깊은 줄을 미처 몰랐네요.”
아버지: “교회에서 세례를 베풀 때에는 이런 것들을 책임 있게 가르치고 배워야 하지만, 요즘엔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으며, 너무 쉽게 세례를 주고받는 것이 안타깝다.”
은성: “그러니까 아버님 말씀은 이런 세례의 의미를 신앙의 기본으로 알고 늘 반복하여 생각하고 기억하며, 생활에서 실천하라는 것이지요?”
아버지: “맞다. 여기에 보면 세례를 받는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고, 세례를 받을 때에 삼위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시며, 세례를 받은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 분명하게 나와 있다.”
은성: “이런 것을 늘 반복하여 생각하고 자신을 살핀다면 목회자나 일반 교인들이나 교회에서 훨씬 인격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네요.”
아버지: “물론이다. 세례와 관련하여 기억할 말씀이 많이 있지만 먼저 살펴볼 말씀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롬 6:3-7)’이다.”
은성: “우리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리스도를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이 너무 놀랍네요. ”
아버지: “세례를 받는 사람은 이렇게 놀라운 진리를 바르게 깨닫고 믿으며, 그렇게 살기를 소원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은성: “그렇게 산다면 어떤 목회자도, 어떤 성도도 교만해질 수가 없겠네요.”
아버지: “당연하지. 성 프란시스는 평생 기도를 할 때마다 ‘이 벌레 같은 죄인’이니 ‘이 티끌 같은 죄인’이니 ‘이 무익한 종’이니 하는 말을 항상 되풀이했다고 한다.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고백하며 평생 참회록을 쓰면서 살아야 할 사람들이다.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들은 천국에 갈 자격이 없다. 사도 바울을 비롯한 모든 순교자들은 ‘주여! 내가 잘한 것이 아무것도 없나이다.’라고 고백한 사람들이다. ‘당신 앞에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나이다. 무익한 종이로소이다. 당신의 은총으로 구원받은 것을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한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은 피조물적인 입장에서 평가해 볼 때는 ‘티끌’이요, 도덕적인 입장에서 평가해 볼 때는 ‘죄인’이요, 구속한 은총의 입장에서 볼 때는 하나님의 왕자다.”
은성: “지난 주일에 배운 에베소서 말씀이 생각나네요.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5-10)”
아버지: “그것은 굉장한 말씀이다. 에베소서 1장에서 창세 전에 우리를 예정하신 말씀을 하신 후에, 2장에서 구체적인 구원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고 본다. 여기에서는 우리를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기까지 했다고 한다.”
은성: “아, 그러니까 바울 사도도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 3:20)라고 말씀하셨나 보군요.”
아버지: “그렇지. 우리는 이미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4)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며’(히 11:13),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6)는 약속을 함께 나누기를 기뻐한다.”
은성: “그런 믿음이 있는 분들은 당연히 모세처럼 살겠군요.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4-26)”
아버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떤 분들은 처음에 겸손하게 세례의 의미를 붙들고 하나님의 은혜만 의지하는데, 시간이 가면서 성경도 좀 배워 알고, 기도와 예배의 경험이 늘어가면 점점 자신을 의지하고, 나중에는 자기를 높이는 잘못을 즐긴다. 교인으로 시작할 때에 겸손하던 분들이 목회자가 되고 장로가 되고, 그보다 작은 직분이라도 맡게 되면 겸손을 버리고 교만한 자가 되어 있는 것을 볼 때는 마음이 착잡하다. 오리겐이 ‘이단들은 모두 믿는 것으로 시작해서 후에는 신앙의 길과 교회의 가르침의 진리를 벗어났다.’는 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은성: “갈라디아 교회에 대해서 바울 사도가 말한 것이 생각나네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2:20-3:3)”
아버지: “갈라디아 교회의 교인들이 처음에 바울에게 배울 때에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갈 4:14-15)고 할 정도로 좋았건만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설마 그런 잘못된 길로 ‘갈라디야?’라고 하는 분들의 예상과 달리 쉽고 빠르게 변질이 되고 말았다.”
은성: “아버지, 말씀을 들으면서 좀 두려운 마음이 들어요. 우리도 언제 잘못된 길로 가게 될지 모르잖아요. 신약성경에 나오는 교회들마다 믿음을 떠난 사람들이 나오잖아요?”
아버지: “정당한 두려움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바울 사도도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고 말씀하셨다. 이런 두려움을 내던져 버릴 때에 세례의 의미를 잊어버리게 되고, 겸손한 위치에서 떠나 교만한 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세례를 받을 때의 기도를 살펴보는 것이 좋겠구나.
‘주님의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통해 비옵나니, 오늘 세례를 받은 이 사람을 주님의 성령으로 계속 다스려 주셔서 이 사람이 기독교 신앙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서 살아가게 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고 강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사람으로 하여금 주님께서 아버지로서 이 사람과 우리 모두에게 보여주신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깨닫고 고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의 유일한 선생이시요 왕이시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아래에서 순종하며 살게 하여 주시고, 죄와 마귀와 그의 모든 통치에 대항하여서 용감하게 싸우고 승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사람으로 하여금 아버님과 사랑하시는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 곧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만을 영원히 찬양하고 높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은성: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어요. 기도의 내용이 참으로 체계적이고, 세례받은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이렇게 확실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니 놀랍기만 하네요.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요, 우리가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에베소서의 말씀을 다시 생각하면서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며 겸손한 마음을 가지면서 순종하며 살아야 할 것을 마음에 깊이 간직하게 되네요.”
아버지: “잘 생각했다. 이제 생각할 것은 교회의 회원이 되기로 할 때 고백하는 예식문이다. 네가 알다시피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이 정식 교회 회원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회원이 되는 예식문을 살펴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은성: “또 좋은 것을 배우게 되겠네요.”
아버지: “교회의 회원이 되려고 하는 분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이제 다음의 질문들을 잘 듣고 진실되게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그대는 사도신경에 요약되었고 여기에 있는 이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가르치는 구약과 신약의 교훈이 구원을 위한 참되고 완전한 교훈임을 고백하십니까? 그대는 이 교회에서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에 기쁘게 복종(悅服)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여 살아서나 죽어서나 한결같이 이 교훈 가운데 행하기를 서약하십니까?
둘째, 그대는 세례를 받을 때에 그대에게 표(表)하고 인(印)을 쳐 주신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들을 믿습니까? 그대는 자기의 죄 때문에 진정으로 자기를 미워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며, 그대의 생명을 그대 밖에서, 곧 우리의 유일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찾으시겠습니까?
셋째, 그대는 주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말씀을 따라서 전심으로 그분을 섬기고, 세상을 버리며 그대의 옛 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고서 오직 성령을 좇아 살기를 원한다고 고백하십니까?
넷째, 그대는 하나님의 교회의 살아 있는 지체(肢體)로서 교회의 거룩함과 화평을 위해 힘쓰며, 교회 전체의 사명을 이루는 데에 개인 생활의 목적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자기의 생애를 다 드려서 주님을 섬기기로 굳게 결심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대를 지켜 주시기를 바라지만, 혹시라도 교훈이나 생활에서 태만하거나 그르치는 일이 있으면, 그대는 교회의 권면과 권징(勸懲)에 기꺼이 순종할 것을 서약하십니까?’”
은성: “들어보니 세례를 받는 사람은 이 교훈을 확실히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버지께서 들려주신 이런 좋은 교훈들을 배우면 교회가 지금의 모습들과는 많이 달라질 것 같아요.”
아버지: “맞다. 교회마다 세례 교인들의 숫자를 보면서 그중에서 이런 교훈을 배우고 알고 믿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한국 교회가 왜 문제가 많은지 알 것 같지 않니?”
은성: “어느 단체나 그 구성원이 어떠하느냐가 중요한데 형식적으로만 회원이고, 회원의 실질이 없을 때는 그 단체의 존재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겠지요.”
아버지: “그렇지. 교회는 얼마나 아름다운 실질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지난 주일에 배운 말씀,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를 생각해 보아도 교회 회원의 신분과 성격은 굉장히 높고 거룩하다.”
은성: “그러니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의 기본을 생각하면 ‘세례와 교회 회원의 의미를 바르게 알고,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여 죽은 자와 살아난 자로 살며,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야 한다’ 라고 말하면 될까요?
아버지: “맞다. 오늘 많이 생각할 것은 겸손, 또 겸손이다. 특히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의 경험이나 업적을 의지하며 점점 교만해지는 것을 주의하고 또 주의해야 한다. ”
은성: “제가 읽은 글 중에 이런 것이 있었어요.
‘새들 가운데 큰 새는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합니다. 부엉이라든가 독수리라든가 솔개라든가 타조라든가 칠면조라든가 공작이라든가 까마귀 등 이런 새들의 노래는 아름답지 못합니다. 그러나 숲속에서 노래하는 작은 새들은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를 잘 부르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자기에 대한 과대망상증에 걸리지 말아야 합니다. 돌이켜 어린아이들처럼 순수하게 낮아지고 겸손해져야 할 것입니다. 성숙한 크리스천들은 주님을 높이고 자기를 낮춥니다. 남을 높이고 나를 낮춥니다.
에프버 마이어가 80세 때 친구에게 말하기를 ‘천국에서 무명의 사람으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뒷문이 있으면 뒷문으로 살짝 들어가서 뒤에 좀 앉아 있고 싶다.’고 했습니다. 유명한 설교자이고 크리스천 시인인 존 뉴턴도 말하기를 ‘나는 죽어서 주님께 갈 때 십자가의 강도의 발밑의 서열에 앉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사람들이 그를 유명하게 보아 주기를 싫어했습니다. 영국에서 네 번이나 재상을 지낸 글래드스턴은 죽을 때 ‘나에게는 인도라든가 파키스탄이라든가 아프리카라든가 캐나다의 영토 문제나 식민지 된 문제보다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 내 아버지 앞에 내가 어떻게 바로 서느냐가 최대의 문제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지동설을 주장한 위대한 수학자요 천문학자이며 과학자였던 코페르니쿠스의 유언을 따라 그가 묻혀있는 묘비명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나는 바울이 가진 특권을 구하지 않는다. 나는 베드로에게 주신 능력도 구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십자가에서 강도에게 주신 용서를 원한다.’ 에든버러 대학의 제임스 심프슨 경은 진통제를 발견해서 고통 없이 수술을 받게 했습니다. 그것은 의학계의 노벨상감이고 대발견이었습니다. 그의 강의 시간에 한 학생이 노교수 심프슨 경에게 ‘선생님의 생애에 가장 뜻깊은 소중한 발견 한 가지를 들라고 하면 무엇을 들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는 한참 동안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발견은 나는 죄인이라는 사실과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아버지: “네가 참 좋은 글을 소개해 주어서 고맙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실을 바르게 알고 믿으며, 그 구원의 은혜만을 붙들고 높이는 사람들인 것을 잘 보여주구나. ”
은성: “이런 글도 있어요. 오늘 이야기와 통하는 것과 같아서 함께 읽어보고 싶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세례를 받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을 들려주신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유일한 길과 연결하여 생각하고 싶다. 참된 세례를 받을 때, 즉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고, 함께 장사되고, 나아가 함께 살아나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할 때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말은 교회에 오래 다니고, 그러다가 봉사를 많이 하고, 직분자가 되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칭찬을 하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보증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성경을 보아도, 교회 역사를 보아도 처음에는 사랑과 존경을 받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 중에 나중에는 불신자로 드러나고, 심지어 하나님을 반역하고 공격하는 자로 드러나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살아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로마서에서 가르쳤고,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짐과 은혜 언약의 유익에 참여함과 주님의 것이 되기로 약속함을 표시하고 인칩니다’라고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94문에서 가르치며, ‘그리스도께서 물로 씻는 이 외적(外的) 의식을 제정하시고 그의 피와 성령으로 나의 영혼의 더러운 것, 곧 나의 모든 죄가 씻겨짐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물로 씻어 몸의 더러운 것을 없애는 것처럼 확실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씻겨짐은 십자가의 제사에서 우리를 위해 흘린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은혜로 우리가 하나님께 죄 사함 받았음을 뜻합니다. 성령으로 씻겨짐은 우리가 성령으로 새롭게 되고 그리스도의 지체로 거룩하게 되어, 점점 더 죄에 대하여 죽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라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9문과 70문에서 가르친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은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요, 교회의 책임 있는 회원이 되며,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의 삶을 사는 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이거나, 바르게 이해하고 세례를 받았으나 나중에 잊어버린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더럽히며, 자기의 욕심을 따라 옛 사람의 삶을 살아가니 자신과 교회에 여러 가지의 문제를 일으킨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물론 세계 교회의 모든 문제는 바른 세례의 경험이 무시되고, 그 의미가 거부당한 사실에서 생겨난다고 판단된다. 교회에서 세례를 베푸는 목회자들과, 믿고 세례를 받겠다고 나서는 교인들, 그리고 이미 세례를 받고 성찬 회원으로 생활을 하는 교인들 모두가 이 세례의 의미를 바르게 생각하고 주님 앞에서 책임 있게 세례받은 자의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94문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9문과 70문을 반복하여 읽고 가르치고 배우기를 기도한다.”
아버지: “신앙의 출발이 세례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 세례가 왜곡되거나 경시될 때 교회는 그 본질과 정체성이 크게 위협을 받을 것이다. 우리도 오늘 좋은 시간을 갖고 세례와 교회에 대하여 많은 것을 살펴보았으니 우리의 신앙과 생활을 새롭게 해야 하겠다.”
은성: “저도 그것을 기도하겠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세례를 받을 때마다 오늘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저의 세례를 새로운 것으로 업데이트해 가야 하겠어요.”
아버지: “멋진 말이다. 날마다 우리의 세례를 업데이트하면서 교회가 새로워지기를 기도하자.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분들이 이런 가르침을 잘 배우고 그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기를 위해서도 기도하자.”
은성: “아버지 말씀을 들으니 어떤 목사님의 ‘내가 살면 교회가 죽고, 내가 죽으면 교회가 산다’는 말씀이 생각나네요. 모든 목회자들과 직분자들이 이런 마음으로 생활하신다면 교회를 떠나는 자녀들이 훨씬 줄어들 것이 확실해요. 많은 자녀들이 목회자들의 겸손하지 못한 모습에서 상처를 받고 넘어지는 것 같거든요. ”
아버지: “네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나도 더욱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하겠다. 오늘은 이만큼 하자. 항상 그렇지만 너에게서 많이 배우니 고맙다.”
은성: “제가 아버지께 많은 것을 배웠지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버지: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 그 시간까지 이러한 믿음을 굳게 붙들고 서 있을 수 있기를 기도하자.”
은성: “예. 그리고 연약한 우리를 의탁하는 이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을 찬송하기로 해요.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권력이 세세 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벧전 5: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