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고양시 인문학 모임 "귀가쫑긋"
 
 
 
카페 게시글
서양철학 게시판 4강 강좌대상
일소 추천 0 조회 168 15.02.02 15:19 댓글 13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5.02.02 16:29

    첫댓글 버겁기도 하지만 반가움의 무게가 훨씬 더 나갑니다.
    공부는 열심히 못 하지만 출석은 즐거운 맘으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

  • 15.02.02 16:18

    교수님의 요약을 읽다보니
    화기애매..정말 그런것 같습니다ㅎㅎ
    수호자의 교육방식에 일정부분 공감하며 3부 읽고있는 중입니다..

  • 15.02.02 16:26

    저도 공부는 열심히 못하지만 출석은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 15.02.02 16:37

    반가움으로~~~~

  • 15.02.02 16:55

    19세기 말 데카당스한 분위기에서 매력적인 화가들과 놀라운 작품들이 쏟아졌던 것처럼, 저는 아무래도 원시적이고 과도하며 장식적인 것들에 더 익숙한 모양임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의 대부 플라톤이 보여주는 '세상의 링' 밖을 제대로 경험하기 위해 열씸히 3부 읽고 있슴다.

  • 15.02.02 17:19

    플라톤은 케팔로스, 폴레마르코스, 트라시마코스로 부터 글라우콘과 아이데만으로 이어지는 정의에 대한 여러 제시에서, 이는 전통적(개인적)이고 현실적(nomos적)인 또한 대중적인 정의관이다고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글라우콘이 제시하는 세가지 좋은 것을 출발로 하여 소크라테스가 그의 정의관을 설파하기 위하여 사전 정지작업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됩니다. 기술의 탁월함으로서, 아레테로서, 좋은 것으로서, 혼으로서 정의를 주장하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 15.02.02 17:17

    그렇다면 과연 현세의 삶이 현실의 삶이며, 대중들이 어쨋든 영위되어야 할 삶이라면, 앞에서 제시된 노모스적인 정의관은 전제조건적인 성격만 가져야만 되느냐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즉, 정의는 이상만 가져서는 않되고 실천이 중요하다고 볼때에 실천의 정의는 어디에서 찿을 수 있나요?

  • 15.02.02 18:01

    열성적인 강의에, 또 이렇게 일목요연한 요약정리까지... 감사합니다. 3부도 꼼꼼히 읽도록 하겠습니다.

  • 15.02.02 18:16

    교수님의 열강을 들을때나 글을 읽을때면, 단숨에 다 읽어버릴것 같은데~~
    저 역시도 공부는 열심히 못하지만
    출석은 그누구보다 잘~~!
    목욜에 뵙겠습니다^^

  • 15.02.02 22:06

    일소정에 머물며 가락에 빠질때가 미궁으로 느껴지지 않고, 나날이 편안 해 지네요
    그 편안함이 몹시 그리웠던 지난 주 였습니다.
    교수님의 눈높이 교육에 물이 오를대로 올라 농익어가네요.

  • 15.02.03 11:20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지나온 길이 보입니다.
    앞길도 훤히 보이면 좋으련만.....

  • 15.02.03 15:20

    글라우콘이 제시한 좋음을 부모자식간의 좋은 부모, 좋은자식으로 비유해주시니 훨씬 와 닿지만, 가슴이 좀 아픕니다.^^
    좋음이란 객관적인 기준을 논하는 것이 우선되야겠단 생각이듭니다. 그렇다면, 과연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좋음은 무엇일지요? 자식에게 좋은것들의 원인이 되기를 극도로 갈망하면서 3강을 기다립니다.~

  • 15.02.04 21:11

    개인적으로 2부 후반부를 읽으며 교육제도에 대해 논의하는 것에 관심이 많이 갔었습니다.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서 검열을 했다는 부분이 아이러니하면서도 지금 살아가는 시대와 비슷한 부분이 있어 계속 생각해 보고 싶은 부분입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