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여행동호회
피카소가 사랑한 7명의 여인들
피카소의 첫사랑 페르낭드 올리비에
1904년 어느 날 쏟아지는 비를 피해 피카소가 고양이를 안고 뛰어든 낡은 건물의 복도에서 마주친 여자. 그녀가 바로 23살의 이혼녀 페르낭드였습니다. 피카소는 단숨에 그녀에게 빠져 버렸습니다. 그들은 동거를 시작했고 사랑에 빠진 피카소는 우울한 청색 시대(1901-1904)와 작별하고 장밋빛 시대(1904-1906)을 맞이하게 됩니다.
Boy and Pipe 1905 (2004년 그림 최고가 1억 4백만 달러 기록 )
피카소의 두번째 여인 에바
두번째 연인은 1912년 만난 에바입니다. 그들은 남 프랑스로 내려가 은밀한 사랑을 불태웠습니다. 가냘프고 청순한 미모를 지닌 에바 곁에서 피카소는 그림마다 '나는 에바를 사랑한다'는 문구를 서명으로 남깁니다. 그림 속 에바는 맥박과 숨결까지 느껴질 정도로 붓 터치가 강렬합니다.
Femme assise dans un fauteuil (Eva) 1913
하지만 피카소의 자유 분방함과 넘치는 열정을 감당하기에 에바는 너무 허약했습니다.
에바가 아프자 피카소는 다른 여자들을 탐닉했고 결국 1916년 겨울, 결핵으로 앓던 에바는 세상을 떠납니다.
에바와 사랑하던 때가 피카소에게는 분석적 큐비즘(입체주의)를 넘어서 종합적으로 큐비즘으로 나아가던 시절이었습니다.
피카소의 세번째 여인 올가
피카소는 나이 40이 되어서야 첫 아들을 얻었습니다.
피카소의 여인 중 가장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질투도 심했다는 피카소의 세번째 여인은 러시아 여인 올가입니다.
퍼레이드란 공연에서 무대 미술과 의상을 맡은 피카소는 퍼레이드의 희곡을 쓴 장 콕도의 소개로 마리스키의 발레리나였던 올가를 만납니다. 당시 올가는 남편이 있었지만 피카소의 구애를 받아들였고 파리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피카소는 올가와 결혼 후 규칙적이고 바른 생활을 했는데, 이 기간동안 어머니와 자식간의 애정이 담긴 작품을 많이 그렸습니다.
올가가 낳은 아들은 '파울로'였고 피카소는 '파울로'를 모델로 여러 점의 그림을 남겼습니다. 올가는 피카소의 모델을 하면서 자기 얼굴을 알아볼 수 있게 그려 달라고 합니다. 올가로 인해 피카소의 그림은 잠시 고전주의로 회귀했으며, 그는 일부 비평가들로부터 큐비즘을 배반한 기회주의자라는 비난을 들어야했죠. 역시 올가를 버린 피카소, 올가는 그의 애정을 잃은 후, 정신 이상엘 빠졌고 반신불수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여인들의 영혼이 창작의 양식이 되어 예술적 영감을 받는다는 피카소.
그는 1920년을 전후하여 초 현실주의 그림들을 주로 그렸는데 그러한 미술 사조에 함몰되지 않고 여러 이미지가 중첩되는 특징있는 그림들을 그렸습니다. '마리 테레즈 초상'은 그런 그림의 한 예로 볼 수 있습니다.
피카소의 네번째쨰 여인 '마리테레즈'
피카소가 네번째로 만난 여인 마리 테리즈는 여인이라기 보다는 어린 소녀였습니다. 마리 테리즈는 17세의 희랍풍의 금발 미인으로 운동으로 단련된 건강 미인이었죠. 그녀는 피카소의 여인 중 가장 어린 나이였고 그 당시 피카소는 46살이었습니다.
Dream (Marie Therese) 1937
피카소는 마리 테레즈가 18살이 될 떄까지 기다려 올가가 사는 집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마리 테레즈의 집을 마련합니다. 피카소는 그녀에 대한 성적 환상을 주제로 조각, 그림, 판화를 제작했습니ㅏ. 하지만 아직 올가는 피카소의 아내였습니다. 피카소는 낭비벽이 심하다며 올가를 멀리했고 결국 1928년 그녀와 이혼을 합니다. 피카소와 동거하던 마리 테레즈는 피카소를 만난지 8년이 지나 첫 딸을 낳았습니다.
다섯번째 여인 도라 마르
하지만 당시 피카소의 곁에는 여인 도라 마르가 있었습니다. 파시즘의 광기와 싸우던 무렵인 1936년, 피카소는 생애 다섯번째 연인인 도라 마르를 만납니다. 도라는 지적이고 세련된 아름다움을 지닌 여자로 마리 테레즈와는 정 반대였고, 피카소는 그런 그녀에게 빠져들었습니다.
1930년대 후반 피카소가 그린 수많은 초상화들 속에서는 두개의 얼굴, 두개의 존재가 서로 대치되거나 중첩되어 나타납니다. 그것을 마리 테레즈와 도라 마르의 이미지가 겹쳐졌기 때문이었죠. 그런 가운데 피카소는 도라의 보살핌을 받아가면서 20세기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대표작 '게르니카'를 완성합니다.
여섯번째 여인 프랑스와즈 질로
1941년 파리가 독일군에게 점령되었을 때 피카소는 그의 여섯번째 연인 프랑스와즈 질로를 만납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프랑스와즈는 21살의 아가씨였죠. 그녀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피카소와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피카소와의 사이에서 아들 클로드와 딸 팔로마를 낳은 그녀는 피카소의 여자들 중 유일하게 스스로 피카소를 떠났습니다.
일곱번째 이자 마지막 연인 자클린 로크
일곱번째 이자 마지막 연인은 자클린 로크입니다. 프랑스와즈와의 이별 후, 고독에 몸부린 치던 피카소는 1961년 이혼녀 자클린 로크와 결혼합니다. 피카소보다 40살 연하인 그녀는 매우 헌신적인 동반자여서 피카소는 말년에 최고의 명성을 누리며 작품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1973년 피카소는 '진실은 존재 할 수 없는 것이다' 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기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가 죽은 뒤 검은 커튼을 내린 채 한번도 걷지 않았던 자클린은 1985년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마리 테레즈도 피카소가 죽고 나서 3년 후 그의 곁으로 가겠다며 목을 매 자살했고, 도라 마르 역시 정신 착란증을 앓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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