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뿐 넘들
고창 선운사의 양탄자 같은 붉은 꽃무릇 잔치도, 광주 홍아네의 녹차물에 말아먹는 보리굴비의 구수함도, 나주 하얀집의그 맛있는 곰탕과 살살 녹는 깍두기의 참맛도,
아, 그리고 양양 오색 송이의 향연!
송이를 싸들고 중국집에 가서 유산슬에 송이를 듬뿍 넣고 한 접시, 송이와 죽순을 함께 볶아서 또 한 접시, 그렇게 즐기는 그 가없는 맛의 향연!
추석 보름쯤 후인 올해 내 생일은 그렇게 3박 4일의 행복한 일정을 보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강릉 신협 사람들 40여명과 함께 풍기에 다녀왔다. 근동이네 과수원에서 사과 따기 체험을 하고 연한 한우 불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혼자 계신 어머니를 모셔 와서 진환이, 성락이 그리고 근동이와 함께 40명이 넘는 사람이 맛있게 먹고 실컷 마시며 돌아왔다.
가을은 이렇게 내 생일이 있어 지인들과 함께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 좋고, 먹을 게 다양하게 많아서 좋다.
참으로 오랜만에 쓰는 글이다.
내가 불경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경전은 금강경이다.
반복되는 지리한 어구에도 불구하고 이 경전을 좋아하는 것은, 그것이 진정으로 버리고 비우고 베풀어야 다시 살 수 있다는 윤회(輪回-samsapara), 열반(涅槃-nirvanna)해탈(解脫-moksa)의 방법론을 실체적으로 가르쳐주는 최고의 경전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저녁, 주막에서 술을 마시는데 땡중 하나가 시주를 하라고 찾아왔다. 내가 땡중이라고 생각한 것은 늦은 저녁시간에 시주를 하라고 찾아온 것도 그러하거니와 하필이면 술집에 왜 찾아오냐는 그런 생각 때문이었다.
‘이리 오시오. 당신이 옳은 중이라면 금강경을 외워보슈.’
내가 이렇게 주문하자 그 중은 거침없이,
‘여시아문 일시불재사위국기수급고독원 여대비구중 천이백오십인구.........’하면서 줄줄 외는 것이었다!
한참을 듣다말고 그래도 땡중은 아닌가 보다하고 술자리 상석에 앉게 하고 술과 안주를 거나하게 대접해서 보낸 적도 있을 만큼 나는 스님들의 실력 테스트용으로도 이 경을 이용한다.
당나라 정관지년(貞觀之年)에 현장법사(玄奘法師)가 인도에 가서 십수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전했다는 이 경은, 현장(玄奘)의 번역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그 용어가 때로는 산스크리트 원어의 발음을 그대로 옮긴 것도 있고, 한자어로 그 뜻을 번역한 것도 있어서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참 알기가 어려웠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보살, 마하살, 사다함, 아나함, 바라밀, 오온 등등, 산스크리트어 원문을 읽지 못하고 불교 교육도 받은 적이 없는 내가 자력으로 이를 깨우쳐가는데는 참 어려움이 많았다.
나 같은 이런 답답함을 해소하고자 신라승 혜초는 16세의 나이에 오직 진리만을 찾아서 걸어서 중국 대륙에서 남중국을 거쳐 인도전역과 아랍 땅 일부를 다니다가 고향으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실크로드의 중국 쪽 기착지인 텐샨산맥을 끝자락 용문 석굴에서 그 생을 마감하였으니, 19세기 초 프랑스 학자(도굴꾼)에 의해 그의 천축국(인도) 다섯나라-당시 인도는 통일 국가가 아니었다.-에 대한 두루마리 기행문(나에게도 영인본이 있음)이 발견되어 그것이 오늘에 이르러 왕(往가다) 오천축국(五天竺國)전(傳)-즉 왕오천축국전이란 이름으로 전한다. -쓰면서도 재밌다.
나를 괴롭히던 그 금강경 자구(字句) 중에 역시 그 경의 앞부분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에 나오는,
‘수보리, 약보살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즉비보살.’이라는
구절이 나를 또 가로막았다.
도올의 해석을 봐도 영 시원치 않았다.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이런 걸 가지면 진정한 보살(菩薩-Bodi-sattva)로 거듭날 수 없다는 얘기다.
얼마전 나는 지인으로부터 그가 낮에 노동 내지(乃至)는
노조 운동가로 잘 알려진 김모란 사람을 만나고 왔는데 아주 감탄할 인물이라고 평하고 있었다. 나는 바로 혀를 끌끌 찼으니 더 이상의 논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민주노총 소속으로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6개월 넘게 농성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얻은거라곤 아무 것도 없지만 -당시 한진은 거지였다.- 그는 전국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크레인에 올라가서 고공농성을 벌이는 동안,
그의 가족들- 결혼했으면 남편과 아이들, 안했으면 부모형제들-의 아픔은 어떠했을까!
아래에서 자꾸 부추기는 세력들 때문에 문재인이 단식 중단하듯, 아니면 삼배 바지에 방구새듯 슬그머니 내려올 수도 없는 당사자는 자신의 만용(蠻勇-오랑캐캍이 용감함)에 얼마나 후회했을까?
술 마시고 동네에 오줌이나 싸대는 그 희망버스를 타고 오는 군상들은 얼마나 야속했을까?
거울을 보면 자기 밖에 보이지 않는다.
테이블에 앉으면 서로 마주 볼 수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가족과 이웃도 보인다.
더 크게 보면 회사가 보이고 나라가 보이고 역사가 보인다. 이것이 크레인 농성을 하면 안되는 이유이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나쁜 사람은 나만 아는 사람, 즉 나 뿐인 사람을 말한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우리가 나뿐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윤회는 인간에게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한다. 윤회는 숙명론(fatalism)이나 종말론(eschatology)이 아니다. 기독교 처럼 복락(福樂)의 천국(Kingdom of Heaven)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무시이래(無始以來)의 이후무종(以後無終)의 영속(永續)일 뿐이다.
마하 풍우 벗들 보살!!
甲午年 하늘이 열리던 날(開天節) 豊江
첫댓글 우리나라에 97년 외환위기때 영문도 모르고 직장을 나와야 되는(저도 해당되었고) 처지에 가장의 힘은 무너졌고
또 그 여파로 평생직장 정년퇴직도 점점 없어지고,그나마 다니는 직장도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다니고.
하여간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다들 슬기롭게 살아가는수 밖에 없어요.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은 羅什의 譯이지요. 玄장은 아상, 보특가라상, 유정상, 명자상이라 譯했지요. 모두 atman,budgala, sativa, jiva의 代譯입니다. 내가 아상을 '나'로 譯한 것은 브라만,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로 나누길 좋아하는 그들의 습성에 맞춘 작위적인 誤譯인 것이지요. 戱言해서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