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원 동전 한 닢
김제호
무엇을 모으고 싶을 때가 있다.
그 대상이 귀하거나 드물면 그런 마음이 일지 않는다. 무겁거나 가벼워도 곤란하다. 봉지에 담아 서랍 안에 두어도 괜찮고 베란다에 던져 놓아도 깨지거나 헐지 않으면 더욱 좋다.
나는 카드가 없다. 돈도 아닌 그 얄팍한 것이 튕기면서 지폐와 동전을 밀어내는 그 모양세가 눈에 거슬린다. 그 뿐만이 아니다. 카드로 물건 값을 치루면 내 돈이 소리 소문 없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 것이다. 종이나 쇠돈은 그렇게까지 야박하지는 않다. 나를 나설 때는 적어도 손바닥과 손끝에 기별은 준다.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다. 또한 현금을 사용하면 거스름돈으로, 마음에 두지도 않은 동전 몇 개 정도는 그냥 굴러 들어온다. 해서 애초부터 그 플라스틱을 소지해본 적이 없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맨 먼저 하는 것은 주머니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끄집어내어 각각 제자리로 보내는 일이다. 그것들을 내려다보면서 하루의 흔적을 되씹는다. 슈퍼마켓을 들렸다가 오는 날에는 가끔 10원 동전도 본다. 형만 한 아우 없다고 했던가. 알루미늄이 아닌, 먼저 나온 것을 나는 더 좋아한다. 크기도 적당하고 무게도 그러하다.
동전 두 봉지를 방바닥에 쏟는다. 장판지와 함께 내는 그 소리는 언제 들어도 산뜻하다. 바닥에 돌아눕는 모양도 가지가지다. 좋은 게 좋다는 듯 대부분은 나의 무릎 밑에서 얌전하게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튀는 것 한 둘은 언제 어디에서나 있게 마련. 몇 바퀴를 돌다가 체념한 듯 뒤집어지는 놈, 현관이 있는 곳까지 굴러가는 놈. 하나같이 앙증맞다. 이렇게 많은 동전들 중에서 두 개가 똑같은 것은 없다. 그 낱낱은 자신만 알고 있는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60년대에 나온 동전에는 나의 손때가 진하게 묻어 있기도 하다.
고향 마을에는 날짜의 끝자리가 3과 8일 때 시장이 열렸다. 장터와 가까이에 살고 있는 나는 먼 동네에 사는 아이들이 누릴 수 없는 혜택의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그 일은 장이 서고 난 이튿날 새벽에 생기게 된다. 동전을 줍는다. 고것들은 보통 지푸라기나 신문지 밑에 몸을 잘 숨긴다. 땅거미가 젖어들 무렵이면 시장에 남은 사람들의 마음은 으레 바쁘다. 주머니 속의 종이돈들 사이에 끼어있던 동전들은 급한 손놀림과 어둠을 틈타 주인을 곧잘 벗어난다. 운수가 좋은 날은 다섯이나 여섯도 건진다. 같은 곳에 여러 개가 떨어져 있으면 언제나 가슴이 콩닥거린다. 주운 동전과 나는 처음에는 둘 다 서먹하다. 땅바닥에 동전을 놓고 고무신발의 발뒤꿈치를 축으로 하여 여남은 바퀴를 돌게 되면, 동전은 그제서야 제 색깔을 발하며 소리도 명료하게 내게 된다. 여러 개를 주운 날은 후해 진다. “누부야, 일찍 깨워 주었으니 20환 줄게”.
흙 속에서 찾아낸 그 추억 속의 동전들 중 어느 하나 위에, 집에 손님만 오면 얼른 뒤꼍으로 가서 숨던 나의 얼굴이 오버랩 된다.
오름의 옆을 지나는 건천을 걷다가 우연히 동그란 쇠 하나를 잡아 올린다. 찬찬히 그림의 선을 따라가 보니 10원 짜리 동전이 나타난다. 어디에서 왔을까. 다보탑 기단의 윤곽은 남아 있는데 위에서 아래로 2층까지가 없다. 돌과 모래에 몸을 부딪치며 거역할 수 없는, 흐르는 물과 함께 이곳 바다와 가까운 곳까지 떠내려 왔을 것이다. 글자나 그림이 보이고 안 보이는 것에 무슨 구별이 있겠는가. 우주의 어느 곳에서 내려받은‘구리’라는 그 본바탕만 기억되어진다면…….
이시영님의 ‘여덟살 적’이라는 시가 생각이 난다.
어느 별에서 헤메이다
너는 왜 내게로 왔니?
딸아이가 땀내나는 내손을 꼬옥 잡고
대모산을 오른다
한때는 신들의 영험한 산이었던
주운 그 동전을 꼬옥 잡는다. 차갑다. 60을 넘긴 나를 내려다본다.
첫댓글 그러고 보니 저는 카드만 가지고 다니다 보니 동전을 챙길일이 거의 없네요. 거스름돈을 받을 일이 없다보니
마음에 두지 않은 동전이 굴러들어오는 경우도 없구요...
선생님의 글을 읽다보니 빨간 돼지 저금통이 생각 납니다..어릴때는 돼지의 배가 커져가면 제 마음도 부자가 되었거든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