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은 나답과 아비후 사건을 생각하며
레 10:1-11
아버지: “은성아, 예배를 드리고 난 얼굴이 너무 무거워 보이는구나.”
은성: “아, 죄송해요. 오늘 설교 말씀을 들으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서워졌기 때문이어요.”
아버지: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니?”
은성: “그들만 아니라 웃사도 죽었고,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죽었다고 하셨잖아요?”
아버지: “네가 잘 기억하고 있구나. 하나님이 그렇게 두려우신 분인 줄 알고 있어야 한다.”
은성: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늘 배우지만 오늘 설교 말씀을 들으니 더욱 실감이 나네요.”
아버지: “예배를 드릴 때마다 잘못된 예배를 드리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지금보다 훨씬 단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은성: “맞아요. 예배 시간에 휴대폰을 들여다 보는 사람도 있고, 졸고 있거나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을 볼 때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하거든요.”
아버지: “겉모습은 단정하게 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은 전혀 다른 곳에 가 있는 사람들도 있지.”
은성: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무섭다고 하면 마음 편하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아버지: “그것은 한쪽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아론의 아들은 네 명이었지만, 다른 불을 드린 두 아들만 죽임을 당했다. 다시 말해서 다른 불을 드리지 않은 두 아들은 죽임을 당하지 않았고, 모세와 아론도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르게 예배를 드린다면 괜히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신다고 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드리는 것을 힘써야 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은성: “잘 알겠어요. 그런데 다른 불을 담아 분향하는 것이 그렇게 중대한 것인가요? ”
아버지: “레위기 8장을 보면 제사장의 위임식에 관하여 자세히 말씀하시고 있다. 그리고 9장에서는 그 가르침대로 아론과 그 아들들이 처음으로 제사장 직무를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르침을 받은 대로 제사를 드리고, 아론이 백성을 축복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고,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서 번제물과 기름을 살랐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으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아가고 일하는 것이 우리들의 마땅한 자세요, 특히 직분자들의 자세다. 직분자에게는 영광과 권위가 있기도 하지만, 책임과 위험이 같이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은성: “웃사가 죽은 것을 생각해 보아도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자기들의 생각대로 법궤를 옮기는 과정에서 일어난 비극인 것을 알 수 있겠네요.”
아버지: “맞는 말이다. 법궤는 수레를 사용해 옮기는 것이 아니고 레위지파 중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서 옮겨야 하고, 절대로 만지면 안 되는데 웃사가 만져서 죽은 것이다. (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기를 필하거든 고핫 자손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지니 죽을까 하노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민4:15) 그리고 벧세메스 사람들 또한 성물을 보게 되면 죽게 된다는 말씀을 모르고 많은 사람들이 성물을 보다가 죽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고로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인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삼상 6:19)”
은성: “나답과 아비후는 아버지 아론에게 배운 대로 하지 않은 것이 큰 잘못이었다고 생각되네요.”
아버지: “부모님이나 선생님이나 목회자들를 세워주신 것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다.”
은성: “요즘 가끔 대표기도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데 교인들이 기도를 배울 때 다른 교인들의 기도를 듣고 배울 것이 아니라, 목사님들의 기도를 듣고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아버지: “동감이다. ”
은성: “목사님들은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을 한 번이나 두 번만 부르고 더듬거리지 않고 기도를 하시지만 교인들은 자주 ‘하나님’이나 ‘아버지’를 부르고, 횡설수설할 때도 있는데, 우리가 부모님과 대화할 때를 생각해 보아도 너무 자주 ‘아버지’ 혹은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 같고, 좀 더 논리적으로 정리해서 기도하는 것이 바른 것 같아요.”
아버지: “그렇다. 원래 예배 시간의 기도는 ‘Pastoral prayer’라고 해서 목사님들이 하는 것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장로님들도 하다가 집사님들까지도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면 장로님들과 집사님들은 기도에 대해서 바르게 배우고 준비해서 예배 시간에 참여해야 마땅하다.”
은성: “목사님들은 설교 준비를 하실 때에 굉장히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들었고, 성가대가 찬양 준비를 할 때도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생각한다면, 대표기도를 하시는 분들도 많은 시간을 준비해야 마땅하다고 생각되네요. ”
아버지: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에는 이런저런 기도를 할 수도 있고, 횡설수설할 수도 있겠지만, 대표기도를 할 때는 기도의 원칙에 따라서 정제된 기도를 해야 하고, 가능하면 글로 적어서 읽어간다면 중간에 허튼소리를 하지 않고, 더듬거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은성: “지난번에 아버지께서 기도의 원칙으로 ‘ACTS’를 말씀하셨는데 그게 무슨 뜻이었지요?”
아버지: “간단히 말하면 A는 ‘Adoration’의 첫 글자로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뜻이다. 처음에 기도를 시작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권능과 영광을 찬송하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크신 일들을 찬송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기도할 때는 무엇을 달라고 하거나 죄를 고백하는 일에 앞서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높이 찬송하며 감사하는 기도를 많이 드리는 일이 중요하다. C는 ‘Confession’의 첫 글자로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죄를 생각할 때는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잘 알고 그것을 어긴 것(commission)도 고백하고, 행하지 않은 것(omission)도 고백하며, 그러나 죄를 용서해 주시는 은혜를 감사하는 것이다. T는 ‘Thanksgiving’의 첫 글자로 지금까지 지내오며 하나님께서 베푸신 여러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것이다. 감사를 많이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S는 ‘Supplication’의 첫 글자로 우리의 필요를 간구하는 것이다. 주기도문에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가르쳐 주신 것처럼 우리의 영혼과 육신에 필요한 것들을 구하고, 가정과 교회가 필요한 것들을 구하며, 나라를 위해서도 기도한다. 이 네 가지를 잘 생각하면서 구체적인 기도 제목을 적어보고 몇 차례 수정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은성: “아버지 말씀을 듣고 보니 많은 도움이 되네요. 어찌 보면 기도가 굉장히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요.”
아버지: “네 말이 맞다. 기도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면서 동시에 기도의 원칙을 따라서 준비하면 결코 어려운 것도 아니다. 명심할 것은 세상에서 중요한 일은 쉬운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예배에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하니? 그것을 쉽게 준비해서 쉽게 해 버리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스운 이야기가 아니니?”
은성: “듣고 보니 그렇네요. 예배를 잘못 드리면 죽은 사람들을 생각할 때에 결코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아버지 말씀이 정확하네요.”
아버지: “구약 성경을 보면 나답과 아비후 이외엔 그런 잘못으로 죽었다는 기록이 다시 나오지 않고, 신약 성경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외엔 그런 잘못으로 죽었다는 기록이 다시 나오지 않지? 사람들은 저들의 죽음에서 크게 배우고 명심했음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은성: “그렇네요. 우리들도 그것을 심각하게 배우고 깨달아야 하나님의 벌을 받지 않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아버지: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은성: “갑자기 히브리서 말씀이 떠오르네요.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히 12:25-29)”
아버지: “네가 내 마음을 읽었구나. 그 히브리서 10장 31절에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라고 말씀하신다. ”
은성: “그래도 히브리서 10장은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10:38-39)는 말씀으로 끝나니 크게 안심이 되어요.”
아버지: “맞다. 그리고 히브리서 11장을 읽으면 더욱 그렇다. 나답과 아비후가 어찌하든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어찌하든지 상관없이 오직 믿음으로 사신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우리는 그분들을 보고 배우면 될 것이다.”
은성: “맞아요. 히브리서 13장 7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하신 것을 명심하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려고 힘써야 하겠어요.”
아버지: “나도 그런 마음이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지 못하다가 벌받은 사람들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것보다는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신 분들을 더 많이 생각하고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은성: “아버지 말씀을 명심할께요. 그래서 바울 사도도 늘 예수님을 바라보자고 하고(히 12:1), ‘나를 본받으라’(고전 11:1)고 하신 것이 아닐까요?”
아버지: “나 자신이나 내 주변의 사람들, 혹은 환경만 바라보다가는 ‘비참’하게 되거나 ‘교만’하게 되는(‘비교’) 일이 많으니 예수님과 바울 사도를 바라보고, 먼저 믿고 살았던 선배들을 바라보면서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그러나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자.”
은성: “예. 오늘도 너무 감사해요.”
아버지: “나도 너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