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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53(2024.6.1)
Was gross ist am Menschen, das ist, dass er eine Brücke und kein Zweck ist: was geliebt werden kann am Menschen, das ist, dass er ein Übergang und ein Untergang ist.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다리橋라는 데에 있다. 인간에게서 사랑받을 만한 점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자 내려가는 존재라는 데에 있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의 서설 4/백승영 옮김)
책장이 펼쳐진 곳을 살피다 이 문장에 마음이 딱 멈췄다. '목적이 아니라 다리'라는 말에 먼저 멈추고 '건너가는 존재이자 내려가는 존재'라는 말에도 잠시 멈춘다. 평소에 일상적으로 쓰는 말인데 참 쉽고도 어렵다. 가슴으로 건진 단어들을 붙잡고 한참 머리를 굴리다 처음 느낌 그대로 생각하기로 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움직이는 존재라는 말이렷다. 그러니 이쪽으로 저쪽으로도 마음껏 다니고 가끔 실수하고 잘못하더라도 한탄하며 주저앉지 말9라는 말인 것 같다. 애썼으니 되었다, 토닥토닥, 괜찮으니 더 가보렴, 토닥토닥...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것 같다.
2024-154(2024.6.2)
Trunkne Lust ist's dem Leidenden, wegzusehn von seinem Leiden und sich zu verlieren. Trunkne Lust Und Selbst-sich-Verlieren dünkte mich einst die Welt.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자기 자신을 잃는 것은 고통받는 자에게는 도취적 쾌락이다. 도취적 쾌락과 자기상실, 한때 세상은 내게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차라투스트라의 말 3 배후세계론자들에 대하여/백승영 옮김)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들으면 단어가 먼저 날아와 마음에 팍 꽂이고 그 뒤를 다른 말들이 따라온다. 스르륵 읽어가던 이 문장에서도 그랬다. '자기상실'이라는 말에 잠시 멈춤 되돌아가 다시 읽음.
다른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의 고통은 절대 다른 이와 나눌 수 없고 해결해줄 수도 없다. 그것을 알면서도 피하고 외면하고 싶다.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지경까지 몰렸을 때는 그 만큼의 댓가를 치르게 된다. 머리는 그걸 아는데 끊임없는 자기세뇌와 합리화로 외면한다. 누구릴 것도 없이 내 경험이다.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들으며 자기 반성은 커녕 아하, 그렇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원래 그런 거였구나... 어쩐지... 위로를 받는 나를 발견한다. 이렇게 그분의 말씀을 내 마음대로 이용해도 되는 건가? 위로의 책이구나, 차라투스트라는.
2024-155(2024.6.3)
»Ich« sagst du und bist stolz auf diess Wort. Aber das Grössere ist, woran du nicht glauben willst, – dein Leib und seine grosse Vernunft: die sagt nicht Ich, aber thut Ich.
"그대는 '나'라고 말하며, 그 말에 긍지를 느낀다. 하지만 그대가 믿으려 하지 않는 그보다 더 큰 것이 있으니, 그대의 신체이자 신체의 큰 이성이 바로 그것이다. 큰 이성은 나 운운하지 않고, 나를 행한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차라투스트라의 말 4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백승영 옮김)
니체가 쓴 이 책은 참 어렵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뭔가를 더듬거리며 헤매다 보면 아주 가끔 마음을 사로잡는 구절이 있다. '나를 행한다'는 구절이 그것이다.
내 기본 성정 때문인지 어려서부터 받은 교육의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또한 정신을 신체보다 우위에 놓는 것이 체화되어 있다. 은근 하대하던 몸이 없다면 정신 만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다. 건강한 육체에서 건강한 정신이! 맞다.
2024-156(2024.6.4)
Deine Tugend sei zu hoch für die Vertraulichkeit der Namen: und musst du von ihr reden, so schäme dich nicht, von ihr zu stammeln.
"그대의 덕이 친숙한 이름으로 부를 수 없을 만큼 드높기를. 그리고 그대가 그 덕에 관해 말을 해야만 한다면 더듬거리게 되더라도 부끄러워 말기를."(<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차라트스트라의 말 5 환희와 열정에 대하여/백승영 옮김)
내 인생은 환희, 열정, 이런 단어와 무관하게 살아온 것 같다고 정리하려다 다시 생각하니 나는 살면서 내내 환희와 열정의 가호 속에 살아온 것 같다. 역자는 열정을 뜻하는 독일어 단어 Leidenschaft에 담긴 Leiden에 주목하며 '열정'이라 번역한 단어에 대해 이야기한다. "열정이 단순한 느낌도 아니고, 기쁨만을 안겨주는 감정도 아니며, 오히려 무언가에 대한 격렬하고도 열중하는 지향적 움직임이어서 고통을 안"긴다는 그의 설명이 좋다.
이 책을 드디어 읽을 수 있게된 것은 드디어 때가 되어 좋은 길잡이를 만난 덕분인 것 같다. 아직 앞부분 밖에 못 읽었지만 차라투스트라의 말은 내게 위로와 격려와 축복의 말이다. 고맙다.
2024-157(2024.6.5)
Früh drei Uhr stahl ich mich aus Karlsbad.
"새벽 3시에 칼스바트를 몰래 빠져 나왔다."(<이탈리아 여행> 1786.9.3/박영구 옮김)
1786년 9월 3일 괴테의 일기이자 <이탈리아 여행>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가 야반도주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를 너무도 사랑하고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러나 떠나야겠다 결심한 그는 새벽 3시에 여행 가방과 오소리 가족 배낭만을 꾸린 채 홀로 역마차를 타고 떠난다. 덕분에 그의 이탈리아 여행기도 대작들도 탄생할 수 있었다. 길 떠난 괴테씨, 짱!
몇백 년 후의 사람인 나는 그런 괴테씨와 동무들의 부름에 따라 로마에 와서 숙소인 '밥앤잠'에서 첫 밤을 지내고 새벽 3시에 일어나 그의 이탈리아 여행기를 읽고 있다. 새벽 3시, 오늘 그 시간에 깨어있을 수 있어 다행이다. "새벽 3시에 나는 괴테가 들려주는 이탈리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2024-158(2024.6.6)
Verzeihung, daß ich so sehr auf Wind und Wetter achthabe: der Reisende zu Lande, fast so sehr als der Schiffer, hängt von beiden ab, und es wäre ein Jammer, wenn mein Herbst in fremden Landen so wenig begünstigt sein sollte als der Sommer zu Hause.
"내가 바람과 날씨에 너무 신경을 쓰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 하지만 육지를 여행하는 사람도 뱃사공과 마찬가지로 그 두 가지 요소에 따라 상황이 좌우된다. 만약 이국땅에서 맞는 이 가을이 내 고향의 여름 날씨처럼 불순하다면 정말 비참한 일일 것이다."(<이탈리아 여행) 1786.9.6.뮌헨/박영구 옮김)
이십여일 동안 이탈리아 여행 일정을 잡으며 언제로 할까 생각했다. 오월은 밤에는 쌀쌀할 것 같고 가을은 점점 쓸쓸해지는 계절이라 통과. 결국 하지를 낀 6월로 정했다. 난생 처음 경험하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긴 낮을 경험하면 좋겠다 싶었다. 오늘은 올들어 처음으로 32도까지 올라갈 예정이고 햇볕은 지글지글 강렬하다.
'이 가을이 내 고향의 여름날씨처럼 불순하다면 정말 비참할 것'이라 썼는데 그럼 괴테의 고향 독일은 언제가 좋은 날이란 말인가. 독일과는 위도가 다른 남쪽나라를 여행하는 괴테씨를 따라가며 내게도 날씨가 더욱 중요해지는 중이다. 이번주는 내내 맑고 뜨겁다. 오, 정열적인 이탈리아! 오늘은 지중해 바다를 만나러 간다.
2024-159(2024.6.7)
Es scheint, mein Schutzgeist sagt Amen zu meinem Kredo, und ich danke ihm, der mich an einem so schönen Tage hierher geführt hat.
"나의 수호신이 내 고백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에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수호신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이탈리아 여행> 1789.9.7.미텐발트/박영구 옮김)
오늘 아침 읽은 괴테의 말은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맑고 강렬해서 썬글라스가 없으면 힘들 것 같은 화창한 여름날 보는 하늘빛 바다빛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베수비오 화산재로 이루어진 토양 때문이라는 나폴리 건물의 잿빛조차 유월의 태양 아래에서는 화사하게 보인다.
유로자전거나라 류재선 가이드가 "무엇을 상상하듯 그 이상일 것"이라 큰소리쳤던 카프리는 내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가족과 친구와 함께 이 아름다운 땅에서 재생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배려한 나의 수호신께 나 또한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 나는 나폴리 항을 떠난 배를 타고 카프리를 향해 가고 있다.
2024-160(2024.6.8)
Das ist das Angenehme auf Reisen, daß auch das Gewöhnliche durch Neuheit und Überraschung das Ansehen eines Abenteuers gewinnt.
"평범한 일도 새롭고 예기치 않은 것으로 느껴지며 모험처럼 보이는 것이 여행의 기쁨 중 하나일 것이다."(<이탈리아 여행> 1787.3.9.금요일.나폴리/박영구 옮김)
나와 길동무들은 나폴리에 와서 몇백 년 전 이곳을 다녀간 괴테가 쓴 나폴리에 대한 기록을 읽고 있다. <이탈리아 여행>은 여행기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훌륭한 예시이다. 나폴리에 와서 괴테의 이야기를 들으니 요즘처럼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더욱 보석처럼 빛나는 여행기가 아닌가 더욱 감탄하게 된다.
여행을 하는 이유는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도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해서도 그것을 통해 돈벌이를 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렇다면 '여행'이 아니라 각각을 위해 다른 이름을 붙여줘야겠지.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을 새롭고 예기치 않은 것으로 느낄 수 있도록 나를 잘 벼리는 것, 그것 또한 여행의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내가 벽돌 두 개 무게인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을 이곳 나폴리까지 끌고 다니며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2024-161(2024.6.9)
Reisen lern' ich wohl auf dieser Reise, ob ich leben lerne, weiß ich nicht. Die Menschen, die es zu verstehen scheinen, sind in Art und Wesen zu sehr von mir verschieden, als daß ich auf dieses Talent sollte Anspruch machen können.
"이번 여행길에서는 분명히 여행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지만, 인생을 사는 법까지 배울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인생을 이해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기질과 성향 면에서 나와는 아주 다른 사람들이어서, 과연 내가 그 같은 재능을 지니고 있을까 의문이다."(<이탈리아 여행> 1787.3.23.금요일 나폴리/박영구 옮김)
이번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은 내 의지였지만 또한 내 의지가 아니었다. 두려움 때문에 장거리 비행기 여행을 한 번도 못한 친구가 드디어 '떠날 결심'을 했고 함께 갈 것을 청했기 때문이다. 비행기 타기 전에 걱정했던 것과 달리 그는 잘 자고 잘 먹고 잘 보고 잘 웃으며 난생 처음 외국여행 난생 처음 이탈리아를 즐기고 있다. '이번 여행길에서는 분명히 여행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라는 괴테씨의 말을 들으며 나는 이번 여행의 동기가 된 나의 길동무 생각을 했다. 이번 여행은 그의 '첫' 여행이다.
여행하는 법은 배우겠지만 '인생을 사는 법'까지는 배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괴테씨의 말을 들으며 그가 어떤 이유로 팔십몇 살로 죽기 전까지 <파우스트>를 쓰고 또 썼는지를 알 수 있었다. 괴테씨에게 많은 것을 듣고 배우고 있지만 무엇보다 평생 인생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을 그 정신을 간직하고 싶다.
새벽에 일어나 괴테씨가 들려주는 나폴리 이야기를 읽으며 멀리서 들려오는 갈매기의 합창과 다닥다닥 붙은 건물과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제비들의 군무를 즐기는 것도 내가 배운 여행법 중 하나다.
2024-162(2024.6.10)
Einbildung und Gegenwart verhalten sich wie Poesie und Prosa, jene wird die Gegenstände mächtig und steil denken, diese sich immer in die Fläche verbreiten.
"상상과 현실의 관계는 운문과 산문의 관계와 같은 것이어서, 운문이 사물을 강렬하고 급격하게 파악한다면, 산문은 언제나 평면으로 확산될 따름인 것이다."(<이탈리아 여행> 1787.5.13.메시나 부근의 선상에서/박영구 옮김)
괴테는 잘 알려진 어떤 명물이 실제로 보면 보잘것없더라고 사람들이 불평하는 이유에 대해 '상상과 현실' '운문과 산문' '사물을 파악함에 있어서 강렬하고 급격함과 평면으로 확산'으로 비교하며 설명한다. 그러니까 상상의 여지가 있어야 하고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짐작한다.
포지타노, 아말피, 카프리, 나폴리를 둘러본 4박5일 여정을 마치고 이탈리아 북부 지역으로 떠난다. 처음 만난 나폴리는 그저 그랬는데 또한 매일 아침 매일 밤 아름다웠고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은 맛이 있었다. 우리가 경험한 것은 나폴리의 현실이 아니라 나와 길동무들이 만든 우리만의 나폴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폴리를 떠나는 날 들려준 괴테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의 나폴리'가 왜 그렇게 좋았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안녕, 나폴리, 오래 간직할게!
2024-163(2024.6.11)
Ein armer, uns elend scheinender Mensch könne in den dortigen Gegenden die nötigsten und nächsten Bedürfnisse nicht allein befriedigen, sondern die Welt aufs schönste genießen.
"이곳에서는 가난해서 불쌍하게 보이는 사람도 최소한의 기본 욕구는 충족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누구보다도 멋지게 인생을 즐기고 있습니다."(<이탈리아 여행> 1787.5.28.나폴리/박영구 옮김)
이탈리아에 부랑자와 거지가 많다는 얘기를 하도 많이 들은 괴테는 그 말이 정말인가 조사해보기로 한다. 그 결과 북부 사람들에 비해 자연의 혜택을 풍요롭게 받는 남부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다를 뿐이라는 것을 증언한다. 부랑자나 거지는 커녕 어린아이들도 자기 몫의 일을 하면서 잘만 산다고 말이다.
이탈리아 여행 초기에 유로자전거나라 류재선 가이드의 1박2일 지중해투어에 참여했던 것은 우리 일행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행운이었다. 그가 우리에게 준 것은 단지 나폴리 등 이탈리아 남부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우리가 만나게될 그곳들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었다. 그와 괴테의 안내로 만난 나폴리와 피사는 인터넷 세상에서 떠들어대듯 소매치기와 날강도들이 판치는 나라가 아니라 유쾌하고 다정한 곳이었다. 불안과 불신에 불만만 가득할 수도 있었던 우리에게 다른 이탈리아를 보여준 두 분에게 감사한다. 그라치에, 괴테! 그라치에, 류재선!
2024-164(2024.6.12)
"Wir wollen ihn freundlich entlassen, damit er bei seinen Landsleuten Gutes von uns rede und sie aufmuntere, Malcesine zu besuchen, dessen schöne Lage wohl wert ist, von Fremden bewundert zu sein.«
"그러니 이 사람을 호의적으로 떠나보내, 그 지방 사람들에게 우리의 좋은 점을 전하도록 하여 말체시네를 찾아오도록 유도했으며 합니다. 사실 우리 지방의 아름다운 경치는 외국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낼 만합니다."(<이탈리아 여행> 1786.9.14.말체시네/박영구 옮김)
피사를 들러 베로나에서 2박을 하기로 한 것은 루가노 호수 옆에 있는 마을 말체시네 방문을 위해서였다. 1786년 9월 13일 새벽에 뱃사공 두 명과 함께 토르블레를 떠난 괴테가 레몬 나무 과수원이 많은 리모네를 지나다 바람의 방향이 바뀐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항구에 배를 대고 머무를 수 밖에 없었던 그곳이다. 베네치아 지방의 첫 마을인 이곳에서 그는 폐허가 된 성벽을 그리다 정탐꾼으로 오해를 받아 마을 주민과 영주의 문초를 받게 된다. 다행히 프랑크푸르트에서 오래 일한 경험이 있는 그레고리오의 증언 덕분에 그와 함께 그곳과 그 지방을 마음대로 구경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다.
베로나에서 두 시간에 한 번 운행하는 185번 버스를 타고 한 시간쯤 가서 버스를 바꿔 타고 한 시간 이상 가면 말체시나에 이른다. 꼬박 하루를 들여 말체시나와 리모네를 방문한 나는 바람과 말체시네 사람들이 함께 만든 그날의 모험이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2024년 6월 12일 말체시네는 그레고리오의 말대로 '경탄할 만한 아름다운 경치'와 괴테를 찾아온 사람들로 넘쳐났다. 덕분에 나도 버질이 "바다처럼 파도치며 묵직하게 울리는 그대 베나쿠스여." 노래했다는 가르다 호수 풍경과 말체시네와 리모네의 아름다운 경치를 맛볼 수 있었다. 수백 년 전 길잡이 괴테와 그레고리오 그리고 오늘의 길잡이 아리씨에게 감사한 날이다.
2024-165(2024.6.13)
Denn eigentlich ist so ein Amphitheater recht gemacht, dem Volk mit sich selbst zu imponieren, das Volk mit sich selbst zum besten zu haben.
사실 이러한 원형극장은 군중들 자신에게 커다란 감명을 주고 자신들이 최고라고 느끼도록 만들어졌던 것이다.(<이탈리아 여행> 1786.9.16.베로나/박영구 옮김)
베로나에 있는 원형극장은 지금도 훌륭한 오페라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원형극장을 본 괴테는 '웅대한 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가능한 단순하게 만들어 군중 스스로가 그곳의 일부가 되게 만든 마법에 대해서도 말한다.
아침 6시, 아직 문을 안 연 까페 앞 의자에 앉아 비 내리는 베로나 거리와 살아 숨쉬는 원형극장을 바라보며 괴테의 이야기를 들었다. 수천 년 전부터의 기억을 간직한 아레나와 수백 년 전 괴테의 말을 들으며 그가 느꼈던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 것도 같았다. 언젠가 나 또한 원형극장의 일부가 되기 위해 다시 올지도 모르겠다.
2024-166(2024.6.14)
So ist denn auch, Gott sei Dank, Venedig mir kein bloßes Wort mehr, kein hohler Name, der mich so oft, mich, den Todfeind von Wortschällen, geängstiget hat.
그래서 다행히도 이제 베네치아는 내게 더 이상 단순한 단어가 아니며 - 무의미한 단어를 철천지원수처럼 싫어하는 나를 그토록 불안하게 했던 - 예의 그 공허한 이름이 아니다.(<이탈리아 여행> 1786.9.28.베네치아/박영구 옮김)
괴테는 1786년 9월 28일 독일 시간으로 저녁 5시에 베네치아에 도착한다. <운명의 서> 속 그의 페이지에 그렇게 쓰여 있었단다. 그 땅을 보고 발을 딛은 그 순간부터 베네치아는 그에게 단지 이름인 곳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공간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베네치아를 일군 일족들이 재미삼아 그곳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고난이 가져다 준 교훈에 따라 그들은 가장 불리한 지역에서 자신들의 안전지대를 찾게 된 것'이라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내 <운명의 서>에는 뭐라 쓰여 있을까? 2024년 6월 14일 점심 무렵 나와 길동무 4명은, 어제 인천을 출발 로마에 도착해 오늘 아침 테르미니 역에서 출발한 친구들을 산타루치아역에서 만나 함께 베네치아를 만날 것이라 쓰여 있을지도 모르겠다. 곧 만나자, 나의 베네치아여!
2024-167(2024.6.15)
So unübersetzlich sind die Eigenheiten jeder Sprache; denn vom höchsten bis zum tiefsten Wort bezieht sich alles auf Eigentümlichkeiten der Nation, es sei nun in Charakter, Gesinnungen oder Zuständen.
모든 언어는 이처럼 번역이 완전하게 이루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가장 고상한 낱말에서부터 가장 심오한 낱말에 이르기까지 모든 언어는 그 국민의 특성, 즉 성격이나 기질이나 생활 방식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이탈리아 여행> 1786.10.5.밤.베네치아/박영구 옮김)
베네치아를 생각하면 떠올리는 '곤돌라'는 우리말로 뭐라 번역할 수 있을까? 그 어떤 말로도 곤돌라를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곤돌라를 운행하는 사람을 칭하는 단어인 '곤돌리에'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한글이 빈약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는 '곤돌라' '곤돌리에'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과 시대에 따른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언어는 끊임없이 변한다. '가장 고상한 낱말에서부터 가장 심오한 낱말에 이르기까지 모든 언어'는 변한다. 그것이 언어의 생존 비결이기도 하다. 변하지 않고 기록으로만 남은 언어는 죽는다. 베네치아 태생인 남성들로만 이루어진 곤돌리에 세계에 여성 곤돌리에도 등장했다고 하니 멀지 않아 이탈리아어에 곤돌리에의 여성형 명사도 추가될 지 모르겠다.
2024-168(2024.6.16)
Die Kunst hat sich der höchsten Stellen bemächtigt, und so liegt Venedig, von hundert Inseln zusammengruppiert und von hunderten umgeben.
인간의 기술은 그 땅의 가장 높은 부분을 접수했으며, 그리하여 수백 개의 섬들로 이루어짐과 동시에 수백 개의 섬들로 에워싸인 베네치아가 탄생한 것이다.(<이탈리아 여행> 1786.10.9.베네치아/박영구 옮김)
로마, 나폴리, 포지타노, 아말피, 카프리, 피사, 베로나, 파도바, 그리고 베네치아까지 왔다.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을 읽으며 천천히 보고 듣고 들이마시며 왔다. 괴테가 보고 듣고 느낀 이탈리아 이야기를 들으며 괴테라는 사람의 됨됨이와 생각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게 된다.
괴테는 혼자가 아닌 함께의 힘을 믿는 사람인 것 같다. 베로나에서 그는 '군중 스스로가 경기장의 장식'이 되는 원형극장에 감탄하고 감동한다. '수백 개의 섬들로 이루어짐과 동시에 수백 개의 섬들로 에워싸인 베네치아'라는 표현에서도 부분이자 전체를 이루는 사람에 대한 감동과 찬탄을 느낄 수 있었다. 괴테는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를 아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정치가로 남지 않은 것은 인류를 위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2024-169(2024.6.17)
Meinen Tag habe ich bestmöglichst angewendet, um zu sehen und wiederzusehen, aber es geht mit der Kunst wie mit dem Leben: je weiter man hineinkommt, je breiter wird sie.
매일같이 보고 또 보는 일에 시간을 써왔지만, 예술이란 삶과 같은 것이다. 즉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점점 더 넓어지는 것이다.(<이탈리아 여행> 1786.10.19.저녁 볼로냐/박영구 옮김)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을 읽고 있다. 여행을 하면서 새삼 이 책의 중요함과 괴테라는 사람의 위대함에 깊이 공감한다.
이번 여행에 동행한 사람은 나를 포함 7명이다. 한 명 빼고는 이탈리아와 첫 만남이다. 도시를 이동할 때마다 저마다의 새로움에 놀라워하며 찬탄한다. 오늘은 돌로미티에서 순한 소들과 눈을 마주쳤고 호수를 넘어 산까지 날아가는 친구의 노래와 시 읽는 소리를 들었다. 힘 닿는 대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만난 이탈리아는 각자의 몸과 마음에 새겨지고 있다. 본 조르노, 이탈리아!
2024-170(2024.6.18)
Ich habe indes gut aufgeladen und trage das reiche, sonderbare, einzige Bild mit mir fort.
이곳에 머무는 동안에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마음속에 풍요롭고 진기하며 독특한 인상들을 가득히 간직한 채 이곳을 떠난다.(<이탈리아 여행> 1786.10.14.밤 2시 베네치아/박영구 옮김>
자신의 <운명의 서>에 적힌 대로 1786년 9월 28일 베네치아에 도착했던 괴테는 10월 14일 밤 2시 베네치아를 떠나며 위와 같이 기록한다. "마음속에 풍요롭고 진기하며 독특한 인상들을 가득히 간직한 채 이곳을 떠난다"고. 나 또한 4박5일 머문 베네치아를 떠나며 같은 얘기를 해야겠다.
한국에서 온 스팸전화는 알람처럼 나를 깨워 새벽 베네치아를 만나게 해주었다. 날이 밝기도 전에 갈매기들은 각각거리며 부지런을 떠는 소리가 들린다. 이 아침에는 그마저도 더없이 신기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제 나는 베네치아라는 고유명사로 존재하던 어떤 곳을 내 안에 담고 간다. 이제 '베네치아'라는 단어는 내게 많은 것을 불러내는 마법의 주문이 되었다.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담았는지는 집에 돌아간 후에야 천천히 알게되겠지. 자, 이제 베네치아에서의 마지막 아침 산책을 하고 와야겠다.
2024-171(2024.6.19)
Ich habe keinen ganz neuen Gedanken gehabt, nichts ganz fremd gefunden, aber die alten sind so bestimmt, so lebendig, so zusammenhängend geworden, daß sie für neu gelten können.
나는 이곳에 와서 완전히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된 것도 없고 아주 낯선 것을 발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의 기존 관념이 여기서는 아주 명확해지고 생생하고 유기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기 때문에, 바로 이것이 새로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이탈리아 여행> 1786.11.1.로마/박영구 옮김)
괴테의 여행기가 좋은 이유는 어느 곳에 가면 무엇을 볼 수 있고 어떻게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아닌 '왜 여행을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위해 찾다보면 정보는 넘쳐나고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도 넘쳐난다. 그러나 그 많은 정보는 시시각각 변하기 마련이고 백이면 백 원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정답일 수 없다. 그런 것을 원한다면 구글지도 하나면 된다.
편한 집 좋은 밥 쾌적한 휴식을 마다하고 사서 고생을 하며 여행을 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를 것이지만 '나를 벼리는 여행'을 여행을 꿈꾸는 나는 괴테가 말한 새로움에 동의한다.
2024-172(2024.6.20)
Wir gehn fleißig hin und wider, ich mache mir die Plane des alten und neuen Roms bekannt, betrachte die Ruinen, die Gebäude, besuche ein und die andere Villa, die größten Merkwürdigkeiten werden ganz langsam behandelt, ich tue nur die Augen auf und seh' und geh' und komme wieder, denn man kann sich nur in Rom auf Rom vorbereiten.
우리는 부지런히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나는 고대 로마와 현대 로마의 짜임새를 알게 되었고, 폐허와 건축물들을 관찰하고 이런저런 별장들을 방문했다. 가장 중요한 유적은 아주 천천히 대하고 있다. 나는 그저 눈을 크게 뜨고 왔다갔다하면서 관찰할 뿐이다. 로마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로마에 와서만 그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탈리아 여행> 1786.11.7.로마/박영구 옮김)
피사에 가서 사탑을 보면서 깜짝 놀랐듯이 피렌체에 도착해 피렌체 대성당과 조토의 종탑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여행안내서 등에 실린 사진과 영상물에서 생생하게 보고 또 본 모습인데 실제 본 모습은 전혀 달랐다.
그동안 만난 것은 그것들의 사진일 뿐이고 편집된 어떤 장면일 뿐이다. 나의 일부가 될 것들은 내가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본 그것들 뿐이다. '로마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로마에 와서만 준비를 할 수 있'다는 말의 의미를 괴테가 쓴 <이탈리아 여행>을 이탈리아에서 읽으며 새삼 깨닫고 있다.
2024-173(2024.6.21)
Diese Werke nun öfter gegeneinander zu sehen, mit mehr Muße und ohne Vorurteil zu vergleichen, muß eine große Freude gewähren; denn anfangs ist doch alle Teilnahme nur einseitig.
두 사람의 작품을 좀더 자주 보면서 편견 없이 찬찬히 비교해 본다면 무척 재미있을 것이다. 무엇이고 첫인상은 일방적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이탈리아 여행> 1786.12.2.로마/박영구 옮김)
1786년 11월 1일 로마에 도착한 괴테는 이렇게 기록한다. "마침내 나는 이 세계의 수도에 도달했다!" 우리 일행도 일 년 중 낮이 가장 긴 하짓날, 로마로 돌아와 '로마 밥앤잠' 주인장 부부의 환대를 받았다. 이탈리아 곳곳을 다니며 놀라워하는 우리에게 아리씨는 '성 베드로 성당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 말한 바 있다. 로마에 와서 미켄란젤로의 그림을 보고 반한 괴테는 라파엘로의 그림을 보면서 "말하기는 뭐하지만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보지 말았어야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 표현한다.
2024년 이탈리아 여정은 로마로 마무리한다. 누가 짰는지(나다!) 여행 코스를 참 잘 짰다는 생각을 한다. 괴테식 표현대로라면 미켈란젤로에서 라파엘로가 아니라 라파엘로에서 미켈란젤로로 이어진 우리의 여행은 로마에서 정점을 찍을 것 같다. '좀더 자주 편견 없이 찬찬히' 이탈리아를 보고 싶어졌다.
2024-174(2024.6.22)
Am 28. November kehrten wir zur Sixtinischen Kapelle zurück, ließen die Galerie aufschließen, wo man den Plafond näher sehen kann; man drängt sich zwar, da sie sehr eng ist, mit einiger Beschwerlichkeit und mit anscheinender Gefahr an den eisernen Stäbenweg, deswegen auch die Schwindligen zurückbleiben: alles wird aber durch den Anblick des größten Meisterstücks ersetzt.
11월 28일, 우리는 시스티나 예배당을 다시 방문하여 천장을 좀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낭하의 문을 열어주도록 부탁했다. 낭하는 무척 좁았기 때문에 우리는 다소 힘들고 약간 위험한 것 같긴 했지만 철제 난간을 붙잡으면서 비집고 나아갔다. 그래서 현기증이 있는 사람은 뒤쳐져야 했지만, 그 모든 애로 사항은 위대한 걸작을 바라보는 것으로 보상하고도 남았다.(<이탈리아 여행> 1786.12.2.로마/박영구 옮김)
오늘 시스티나 예배당에 방문해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걸작을 보고 괴테처럼 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이곳저곳에서 만날 수 있는 그림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며 인파에 떠밀려 다닌 4시간은 며칠 동안 이탈리아 여행을 하며 간직했던 일종의 경건함을 아쉽지만 깔끔하게 정리하는 자리였다.
식스티나 예배당에서 본 미켈란젤로의 천정화에 대한 괴테의 말과 코로나 전인 5년 전에 봤던 성 바오로 성당에 대한 아리씨의 말에 오늘의 나는 공감할 수 없었다. 발을 딛고 그림을 볼 틈도 없이 떠밀려다니던 그 시간 내내 든 생각은 걸작에 대한 찬탄이 아니라 '이렇게까지 해서 봐야하는 걸까'하는 회의였다. 내년이 25년 만에 로마에 있는 모든 성당의 문이 열린다는 희년이라기에 카톨릭 신자인 엄마와 동생들과 다시 올까 했던 마음은 하룻밤 새에 사라지고 말았다.
2024-175(2024.6.23)
Ich will Rom sehen, das bestehende, nicht das mit jedem Jahrzehnt vorübergehende.
나는 영원히 존속하는 로마를 보고자 하는 것이지, 10년마다 변해가는 로마를 보려는 것은 아니다.(<이탈리아 여행> 1786.12.29.로마/박영구 옮김)
나의 첫 이탈리아 여행에 일곱 번째 동행은 괴테이다. 바티칸 방문으로 지쳐 저녁도 못 먹고 잠들었다 깬 새벽, 괴테씨와 함께여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가 보고 싶어하던 '영원히 존속하는 로마'에 대해 들으며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차분히 생각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읽는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은 그가 말한 것처럼 특별하다. "다른 곳에서는 밖에서 안을 향해 읽어 들어가는데 이곳에서는 안으로부터 밖을 향해 읽어나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는 그의 말은 적확한 것 같다. 기어코 이곳에 와서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다음 해 1월 2일의 기록에서 괴테는 "이제 우리는 생각도 하고 판단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며 "나 자신의 발견법을 배우게 될 것"이라 말한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자신만의 발견법을 갖는 게 그리 쉬운 일인가. 이곳에서 보고 듣고 배운 모든 것이 이탈리아 여행 이후의 괴테를 같지만 다른 존재로 변모시켰 듯 나 또한 조금은 달라져 집으로 돌아가 아주 조금씩 조금씩 더 나아질 거다.
2024-176(2024.6.24)
Und, was geschieht, getrost geschehen lassen,
"그러니, 일어나는 일은 그냥 일어나게 내버려둡시다!(<파우스트> 5915행/안삼환 옮김)
'그러니' 앞에 어떤 말이 오느냐에 따라 이 문장의 취지는 달라질 것 같다. 상황을 낙천적으로 받아들이고 희망을 찾는 말이 될 수도 있고 그만 포기하자는 말로 들릴 수도 있겠다.
오늘의 나는 문맥과 상관없이 문장 속 'getrost'에 꽂혀 조금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 일어나는 일은 그냥 일어나게 내버려둬도 괜찮아, 이런 위로!(2024.7.16)
2024-181(2024.6.29)
Wer langsam geht, kommt auch zum Ziel.
늦잠 자고 싶은 월요일 아침에 소년님이 독일어 한 문장을 보내주셨다. '천천히 가는 사람도 목적지에 간다'는. 독일 속담이라는데 마음에 쏙 들었다. 언제나 새로운 것에 대한 탐구열을 간직한 소년 덕분에 나도 드디어 챗지피티를 다운로드 받았다. 이걸로 뭘 한단 말인가.
나에 대해 잠시 생각한다. 나는 느리고 고집불통인 아날로그 인간이다. 나는 책을 읽고 상상하는 인간이다. 나는 만년필로 글을 쓰고 크레파스와 색연필로 그림을 그린다. 이런 나여서 어쩔 수 없지만 이런 내가 좋다. 천천히 가도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잊지 않고 둘레둘레 해찰하며 간다.(2024.7.22)
2024-182(2024.6.30)
Bin die Verschwendung, bin die Poesie;
마부 소년이 부의 신 플루토스의 행차를 알리자 의전관은 "자신에 대해서도 정체가 무엇이고 형편이 어떠한지 말해"(5572행) 달라고 요청한다. 그러자 소년은 대답한다. "나는 낭비입니다, 시(詩)지요."(<파우스트> 5573행, 안삼환 옮김) 그리고 덧붙인다. "자신의 가장 고유한 재화(財貨)를 낭비할 때/스스로 완성되는 시인이랍니다./나 역시 측량할 수 없이 부유해서,/그 점에서 플루토스보다 못하지 않다고 자평하며,/그분의 무도회와 연회를 장식해 주고 거기에 활기를 불어넣어 줍니다,/그분에겐 없는 것, 그것을 내가 나누어 주지요. Bin der Poet, der sich vollendet,/Wenn er sein eigenst Gut verschwendet./Auch ich bin unermeßlich reich/Und schätze mich dem Plutus gleich,/Beleb' und schmück' ihm Tanz und Schmaus,/Das, was ihm fehlt, das teil' ich aus. "(5574-5579행)
인천에서 로마로, 로마에서 나폴리 피사 베로나 파도바 베네치아 피렌체를 지나 다시 로마로, 로마에서 다시 인천으로 오는 여정 내내 곳곳에서 먹고 마시고 걷고 보고 시를 읽고 노래하며 '따로 또 같이' 저마다 보고 느낀 대로 <풀잎 사이의 공간>을 채웠다. 그래서인지 '낭비'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자신의 가장 고유한 재화를 낭비할 때 스스로 완성되는' 존재'라 말하는 시詩의 말에 더욱 공감이 간다. 우리는 그의 말대로 '측량할 수 없이 부유'했고 활기찼다.
마사이니 와이너리의 포도주 '사자의 피'처럼, 피엔차에서 사온 발사믹처럼,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이 지날수록 더 향기롭게 익어갈 그 시간들에게 감사한다. Tutto bene, Graz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