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숙한근에게 드리는 제문祭從叔漢根文
오호라! 하늘이 우리 문중에 재앙을 내림이 한결같이 여기에 이르렀습니까? 아! 옛날 임연재(臨淵齋) 금역당(琴易堂) 두 선조께서 우리 후손들을 인도해 도와주셔서 면면히 이어져 오는 가업이 실오라기처럼 끊이지 않았습니다. 점점 외롭고 위태하여 번성하지 못하고 청빈하고 한미하여 융성하지 못했는데, 세대가 내려갈수록 명성이 더욱 침체되어 오늘에 이르러 극에 달하였습니다. 사가(私家)에서 문호를 세운 지 이미 6백 년이 지나 국가와 시종을 같이하였으니, 기수(氣數)가 오르내리는 징후에 하늘 또한 그 사이에서 어찌할 방법이 없는 것입니까? 이렇게 못이 기울어지고 바다가 거꾸러지는 날을 당하여 비록 큰 역량과 큰 규모가 있는 사람이라도 실로 부지하고 개척하기가 쉽지 않은데 더구나 그러한 사람이 없음에야 어찌하겠습니까? 그러한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이 일이 마음 아프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으니 가문의 근심을 장차 어찌할 것입니까? 오호라! 애통하도다.
공의 일생은 겹겹이 음기가 막힌 시기를 마침 만나 칠순의 이력에 안락한 날은 늘 적고 우환의 날은 많았습니다. 이에 세상 재난과 가정 어려움이 겹쳐 일어나니 선대부터 살던 마을을 버리고 떠나서 외지에 정처 없이 떠돈 것이 또한 수십 년이 되었습니다. 가족이 흩어져 생사를 알 수 없고 고향을 비워두어 적막하고 쓸쓸한 데다 수년의 고질병까지 더한 가운데 간호할 사람도 없어서 끝내는 음습하며 적막한 가운데서 명을 마쳤으니 어찌 다만 공의 운명일 뿐이겠습니까? 바로 우리 문중의 운수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의려(倚閭)의 바람과 수구(首邱)의 희망을 안고 과연 눈을 감고 돌아갈 수 있습니까? 공은 비록 갑자기 세상을 떠나 알지 못하더라도 남은 사람들은 장차 어디에 의지해 살아야 합니까? 온 일족이 뿔뿔이 헤어지기가 마치 패한 진영의 흩어진 대오 같은데, 소자 같은 이는 선대의 유업을 거칠게 실추시키고 이리저리 떠돌며 곤경을 겪은 것이 더욱 심한 사람입니다. 상전벽해에 홀로 남은 고아는 다만 때를 만나지 못한 탄식이 절실한데 문득 늙음이 이르고 병이 찾아왔습니다. 매번 긴긴 밤 타향의 집에서 가문이 기울어 무너지는 상황을 고요히 생각하지만 털끝만큼도 보전할 방책이 없으니, 훗날 지하에서 장차 선부형께 무엇을 가지고 돌아가 알리겠습니까?
공이 돌아가신 후 가문에 크고 작은 참혹한 상화(喪禍)가 한두 번이 아닌데, 취헌(翠軒) 족숙이 또 풍기 우사(寓舍)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이는 마치 열 명의 장님에 한 명 있는 인도하는 사람을 잃은 것 같으니, 하늘이 우리 집안에 있어 끝내 재앙을 뉘우치는 날이 없을 것인지요? 저 도원(桃源)을 바라보건대 철로(鐵爐)는 예전과 다름없는데 금서(琴書)의 고각(古閣)은 세상 풍파 가운데 보전하기 어려우니, 10대의 구업(舊業)으로 하여금 끝내 그림자와 메아리를 찾아 볼 수 없도록 하고 말 뿐입니까? 생각이 여기에 이름에 곧바로 하늘에 호소하고자 하여도 방법이 없습니다. 뒤에 남은 이의 슬픔이 어찌 다함이 있겠습니까? 오호라! 애통하도다.
한근(漢根) : 배한근(裵漢根, 1886∼1960). 자는 원일(源一)이다.
의려(倚閭) : 부모가 마을 문에 나가서 간절하게 자식을 기다림을 말한다.
수구(首邱) :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제가 살던 언덕 쪽으로 향하여 죽는다는 뜻으로, 죽기에 이르러 고향을 생각함을 말한다.
취헌(翠軒) 족숙 : 배하식(裵河植, 1893∼1961)을 말한다.
철로(鐵爐) : 철로보(鐵爐步). 훌륭한 사람이 자취를 남긴 곳을 말한다.
백저문집(白渚文集) 배동환 저 김홍영․박정민 역 학민출판사(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