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백월산 무등곡 골짜기에 오랜 세월, 고행하며 수도의 길을 걷는 두 스님이 있었다. 그들은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란 이름으로 각자 작은 암자를 짓고 혼자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박박 스님을 찾아왔다. 그녀는 종이쪽지를 내밀었는데 하룻밤 묵고 가게 해달라는 청이 적혀있었다. 박박은 단칼에 청을 거절했다. “수도승이 혼자 사는 곳이라 젊은 여인은 들일 수 없소!” 여인은 애절하게 간청했다. “하룻밤 만이면 됩니다. 스님… 이 어둡고 헙악한 산길에 전 어디로 가란 말씀입니까?“ 박박은 ”어허, 안된다고 하지 않았소!“ 차갑게 외면했지만, 여인은 끈질기게 애원했다. ”제발요, 스님~~“ 아름다운 여인의 애처로운 목소리는 박박의 마음을 욕망으로 요동치게 했고 박박은 아예 귀를 틀어막고 크게 염불을 외웠다. 얼마 후, 젊은 여인은 박박의 암자를 떠나 다시 부득의 암자로 갔다. 다시 하룻밤 묵시를 청하자 부득은 깜짝 놀랏다. ”이렇게 캄캄한 밤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어디에서 나타난 걸까?“ 젊은 여인은 오랜 세월 수도의 길을 걸은 부득의 가슴에도 불을 댕길 만큼 아름다웠다. 부득이 즉각 여인의 청을 거절하려했는데 순간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유혹을 직접 맞서 견뎌내야 해탈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래, 내 오늘밤 이겨보겠어!’ “좋소. 하룻밤 암자에서 묵고 가시오.“ 부득이 허락하자 여인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암자로 들어왔다. 작은 단칸방은 여인의 향내로 가득 찼고 구석에 쭈그리고 누운 부득은 힘든 밤을 보냈다. ‘나무관세음보살… 빨리 이 시련에서 구해주소서…’ 그런데 깊은 밤 갑자기 어인이 배를 움켜쥐고 뒹굴기 시작했다. ”아이고 배야…“ ”무, 무슨 일이오?“ 부득이 벌떡 일어나 묻자, 여인은 다 죽어가는 신음을 하며 말했다. ”너, 너무 아파요, 죽을 것 같아요. 스님, 제 배 좀 살살 문질러 주세요…“ ”네? 배, 배를요?“ 부득은 떨리는 손으로 여인의 배를 살살 어루만졌다. 몽롱해지는 정신을 다잡기 위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고, 고맙습니다. 스님… 제가 자주 배앓이를 해서요. 이럴때 목욕을 하면 큰 도움이 되는데… 목욕 좀 하고 싶어요.” “모, 목욕 이라구요?” 여인은 목욕까지 시켜달라고 했다. 점입가경이었다. 부득은 이를 악물고 결심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어디한번 끝까지 유혹을 견뎌보자!’ 부득이 커다란 목욕통에 물을 끓여 넣어 오자 여인은 순식간에 옷을 벗어버리고 통에 들어갔다. 그리고 부득에게 몸를 씻겨달라고 했다. 부득은 눈을 꼭 감고, 여인을 씻겼다. 마음은 끔찍한 욕망과 번뇌에 시달렸다. 그런데 어느새 그 마음이 점점 평화로워졌다. 모든 번뇌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그윽한 향기가 풍겼다. 부득이 눈을 뜨자, 목욕물은 황금빛으로 변해 있었고 여인의 몸도 황금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스님, 옷을 벗고 물로 들어오세요.” 부득이 선선히 목욕통에 들어가자 그의 몸도 황금빛으로 물들며 눈이 열렸다. 부득이 놀라는 순간, “나는 관음보살의 화신이오. 그대를 시험하기 위해 나타났소.“ 여인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날이 밝자, 박박은 부득의 여인의 유혹을 견뎠을지 궁금했다. ‘아휴, 혹시 넘어간 거 아냐? 그럼 가서 비웃어줘야지!’ 그런데 부득의 암자에 웬 미륵좌상이 앉아있었다. 바로 부득이었다. 박박은 놀라 얼른 절을 하였다. ”어, 어떻게… 되신 겁니까?“ 부득이 사정을 설명하자 박박은 눈물을 흘렸다. ”아이고, 내가 어리석어서 알아보지 못했군요!“ 부득은 목욕통의 금물이 아직 남았으니 박박도 목욕을 하라고 권했다. 박박은 그의 말에 따랐고 그도 아미타불이 되어서 같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두 생불이 탄생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퍼졌고 신라 경덕왕은 오늘날 경남 창원에 있는 백월산에 남사를 세우고 미륵불상과 아미타불상을 모셨다. 그런데 아미타불에는 목욕 금물이 모자라 얼룩진 흔적이 남마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