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란 죽어가는 자가 죽어가는 자에게 전하는 생명의 말씀이다’
아버지: “은성아, 무슨 책을 그렇게 열심히 읽고 있니?”
은성: “아, 리처드 백스터라는 분의 『참 목자상』인데요, 영어 제목은 『The Reformed Paster』라고 되어 있어요.”
아버지: “그래? 갑자기 그 책을 읽는 이유가 뭐니?”
은성: “지난 주일에 목사님께서 설교하실 때 리처드 백스터라는 목사님께서 ‘복음이란 죽어가는 자가 죽어가는 자에게 전하는 생명의 말씀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마음에 깊이 새겨졌어요.”
아버지: “그랬구나. 나도 목사님께서 목회 초기에 어떤 집사님이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일 때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려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다음 주중에 그가 자살을 한 일을 겪으시고, 다음 주일부터는 항상 교인들 중에 누군가는 이 예배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자세로 최선을 다해 설교하신다는 말씀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는데 너도 비슷한 생각을 했구나.”
은성: “목사님들이 설교를 하실 때에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교인인 우리도 이것이 마지막 예배요, 지금 듣는 설교가 마지막 설교라는 생각을 하며 들어야 마땅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버지: “네 말이 맞다. 사실 우리는 언제 주님의 부름을 받을지 아무도 모르지 않니? 주일마다 드리는 예배라서 습관적으로 드리기 쉽고, 최선을 다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알고 보면 한 번의 예배라도 마지막인 것처럼 죽을 힘을 다하여 드리는 것이 옳은 일이다.”
은성: “아버지 말씀을 잘 기억하겠어요.”
아버지: “그런데 그 책을 다 읽었니?”
은성: “아직 절반 정도 읽었는데 처음에 나오는 목회자가 자신의 어떤 면을 성찰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이 너무 좋았어요. 목회자만 아니라 직분자들, 특히 주일학교 교사들이 함께 공부하고 기억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아가 모든 교인들이 마음에 새기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버지: “그래? 그러면 나도 한번 읽어보고 싶구나.”
은성: “제가 앞부분을 조금만 읽어 드릴 것이니까 들어보세요. 저는 너무나 좋았어요.”
아버지: “그래, 어서 읽어보아라.”
은성: “자아성찰의 내용
구원의 은혜 가운데 있는가?
가장 먼저,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된 구원의 역사가 여러분의 영혼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피십시오.
하나님의 구원 은혜를 전하면서 정작 본인은 그 은혜에서 이탈해버린다면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습니까? 자신이 전하는 복음에 오히려 참여하지 못한다면 어찌하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에게는 구세주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자신은 마음속으로 주님을 거절하고 있지 않습니까? 많은 목회자들이 성도들에게 어리석은 길을 걷지 말라고 경고하지만 자신은 무심하게 그 길을 걷곤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멸망에 빠지지 말라고 수백 번 촉구하면서 자신은 오히려 그 길을 향하고 있지 않은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양식을 미리 준비하라고 경고하면서 자신은 기근을 전혀 대비하지 않고 있는지 주의하십시오.
많은 자들을 의의 길로 이끄는 사람은 별처럼 빛나는 상급을 약속받지만 본인이 먼저 의의 길에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힘써 목회에 전념하는 사람은 큰 영광을 맛보겠지만 마찬가지로 본인이 먼저 믿음 안에서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소개하고도 자신은 오히려 그 길을 거부한다면 하나님이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겠습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진리를 의심하고 거부하면서 이를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는 없습니다. 재단사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값진 의상을 지으면서 자신은 누더기를 입고 지내서야 되겠습니까? 또 요리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산해진미를 마련하면서 자신은 손가락만 빨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안타깝게도 이런 목회자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형제들이여, 제 말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헌신적인 목회자라고 해서, 혹은 유능한 설교자라고 해서 무조건 구원하시지는 않습니다. 사역을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하나님에게서 의롭다 하심과 거룩케 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먼저 돌아보십시오. 성도들에게 어떠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기 전에 자신이 먼저 그런 사람이 되고, 그들에게 믿으라고 권하는 바를 자신이 먼저 믿고, 그들에게 소개하는 구주를 자신이 먼저 진심으로 받아들이십시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은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그만큼 이웃을 사랑하여 함께 멸망에서 벗어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신자가 성화되지 않는 것도 두려운 일이지만 설교자가 성화되지 않는 것은 더욱 두려운 일입니다. 성경을 펼쳐들 때 그 안에서 자신에 대한 정죄의 판결문을 보면 떨리지 않습니까? 설교 원고를 작성하면서 그것이 곧 자기 영혼에 대한 저주의 포고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까? 설교자는 양들에게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부요함과 은혜를 설파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불법에 무디어지거나 영적인 공허감에 빠질 수 있습니다. 양심이 깨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안에서 혼란이 가중됨을 느낄 것입니다.
말하는 바가 대부분 자신을 거스리는 것이라면 이 얼마나 가련한 인생입니까? 자신과 부합하지 않는 것을 공부하고 설교하면서 평생 자기정죄의 길을 가야 하니 말입니다.
은혜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설교자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불행한 피조물 중 하나입니다. 더군다나 그들 중 대다수는 자신이 처한 불행한 상황을 자각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은혜라는 황금이 저축된 듯 보이는 많은 계좌들을 갖고 있고 그리스도의 보석과 유사한, 빛나는 돌들을 많이 갖고 있기에 자신이 가난하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못합니다. 실상은 헐벗고 굶주리고 비참한 지경에 있는데도 자신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여깁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제단에 서서 거룩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성경을 잘 알아 심각한 죄에 빠지지 않았다고 자신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책망하고 마음과 생활의 성결을 소리높여 설교합니다.
그 풍요함 가운데 멸망해야 하다니, 풍성한 생명의 떡을 손에 쥐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정작 자신은 기근에 허덕이다니, 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죄를 깨닫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규례가 도리어 우리를 속이는 셈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영혼의 실상을 보여주는 복음의 거울을 들고 있으면서 이를 다른 사람에게만 보여줄 뿐 자신은 거울 뒷면이나 옆면에 비스듬히 서서 제대로 자신을 보지 못합니다.
제 충고를 마음으로 받아들인 목회자라면 다른 사람에게 설교하기 전에 우선 자신에게 설교할 것입니다. 자기 입에 담긴 음식이 배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어쩌나, 혹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불법에서 떠나지 못하여 결국 심판의 날이 임할 때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외쳐도 주님이 무서운 음성으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시지 않을까 걱정하게 될 것이며, ‘가룟 유다가 과거에 다른 사도들과 전도하고 그리스도 곁에서 친구라고 불렸던 사실을 기억한다 해도 지옥에 떨어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리처드 백스터 지음, 『참 목자상』, 최치남 옮김, 36-68쪽
아버지: “대단한 말씀이구나. 우리가 주기적으로 전도를 하는데 전도하러 나가기 전에도 이런 말씀을 기억하고 자신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구나.”
은성: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도 참 좋은데 제목만 말씀드려 볼께요. 2. 하나님의 은혜로 일하는가? 3. 가르침과 행동이 일치하는가? 4. 자신의 들보를 보고 있는가? 5. 자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가?”
아버지: “네 말을 듣고 보니 나도 직접 책을 읽어보아야 하겠구나. 되도록 빨리 읽고 나에게 넘겨주거라.”
은성: “알겠어요. 남은 부분은 오늘 다 읽고 내일은 아버지께 드릴께요.”
아버지: “이런 좋은 책은 교회에서 교사들이나 직분자들 교육 시간에 자세히 공부하는 것도 좋을 것 같구나.”
은성: “저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단들이나 세상의 동아리 모임에서는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몰라요. 우리 교회들도 정신을 차리고 열심을 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버지: “네 말이 맞다. 주님이 구원하신 큰 사랑을 바르게 깨달으면 그 은혜에 감사하여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 나라의 일에 열심을 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도 지금보다 더욱 힘써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에 헌신하기로 하자.”
은성: “잘 알겠어요. 오늘도 많이 배우고 즐거웠어요.”
아버지: “내 아들 덕분에 내가 늘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우니 고맙고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