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에서는 김민석 대표가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당으로 복귀할 때 이미 포스트 이재명으로 대권을 잡기 위해 정치에 달인으로 키우기 위해 당대표를 낙점하고 총리에는 강훈식 비서실장을 내정할 것으로 점쳐졌다.
비서실장을 조선시대 같으면 상선영감 즉 내시 우두머리였다 그런데 그 상선영감이 상감의 지근 거리에서 항시 보필해야 했는데 강훈식 상감은 시대를 잘 만나 이 대통령 가까이서 보좌하며 국정현안 전반에 대해 두루 관여했다. 그래서 이재명 대통령의 분신이라는 소리까지 나오면서 행정부 장관의 역할을 가로채 월권하는 상선이 되었다.
상선 강훈식이 이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알고 방산과 에너지 자원, 공급망 첨단산업 등 경제 외교 안보 분야의 현안들에 대해서 각부장관을 제치고 직접 세계를 주름잡았다, 우리 역사 이래 이런 주요 역할을 한 상선영감은 없었다.
차차기 포스트 이재명으로 키울 것은 짐작은 하였으나 일각에서 너무 지나치게 이재명의 사람들이 나라 전체를 장악하여 대한민국 대통령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나라로 전락하고 있다는 민초들의 소리가 결국 한성숙 벤처기업 장관을 총리에 앉혔다.
이재명 대통령의 야심과 계산대로 김민식 전 총리가 당권을 장악하였으나 전대 과정에 대립과 근소한 표차이, 그리고 이 대통령에 대한 민심이반 등이 김민석 대표 앞에 버티고 있다.
김민석 신임 대표가 18일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나 벽이 없는 원팀이 완성됐다며 당은 민심을 청와대에 전달하고 청와대와 토론도 하면서 국정이 안정적으로 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김대표가 당 대표실에 들어오면서 역시 벽이 없는 원팀 완성과 소통 이라고 했다, 그러나 당대표 취임에 화려한 영광보다는 김민석의 과거의 정치 행보에 김민석에 쒸워진 배신자 프레임이 무겁게 따라다닌다, 아마도 쉽지 않은 프레임이 될 것 같다.
김대표는 86세대 맏형격 인물로 꼽힌다, 서울대학교 총학회장에 당선된 1985년 미문화원 점거 농성에 배후 인물로 지목돼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1989년 영등포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재야 후보 고영구 변호사의 선거운동을 도우며 정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김대중표 개혁공천의 상징으로 불리며 1992년 14대 총선에서 서울 영등포을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첫도전은 259표차로 석패하였다.
김대중 전대통령이 후보로 나선 1992년 대선당시 노무현 전대통령과 함께 당 청년특위를 맡으며 정치적 재기를 노렸다, 대선은 패했으나 15대와 16대 총선에서 영등포을에서 내리 당선된 그는2000년 김 전대통령 당총재 비서실장을 맡으며 범민주진영의 유력한 차기 주자로 성장했다.
그리고 서른두살에 국회의원이 된뒤 서른여덟 살에 집권 여당 서울시장 후보가 됐다, 김대중 전대통령 황태자로 불리며 일찌감치 차세대 대권 주자로 몸집을 키웠다.
2002년은 추락의 해였다. 그해 6월 집권여당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서울시장선거에 출마했으나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패했다. 그래도 서른여덟이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재기하면 된다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정몽준 후보간 후보 단일화를 주장하며 집단 탈당한 후단협 사태로 한순간에 추락했다.
하지만 넉달 뒤 정치적 분기점을 맞는다. 대선을 두달 앞둔 10월 정몽준 지지를 위해 탈당을 선언하자 민주당은 뒤집혔다, 민주당은 이적행위로 규정했다.
단일화 경선에서 패한 정몽준 후보가 대선을 하루 앞두고 단일화 합의를 파기 하면서 김민석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여기에 2004년과 2010년 두차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각각 징역형이 확정되며 피선거권 마저 잃었다. “김민석은 끝났다” 라는 평가가 나온 시점이다.
야인으로 지내는 동안 중국과 미국으로 잇따라 유학길에 올랐다.
배신이 일어나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이기적인 욕심 때문이다. 그래서 돈을 받고 사랑하는 동지들의 목숨을 팔아넘기는 일이 일어나고 모시던 상급자가 몰락하게 되면 자신의 운명도 그와 같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재빨리 몸을 움직이고 변신하게 되면서 배신을 하게 된다.
그래서 닉네임으로 얻어진“철새”란 꼬리표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고 지금까지 김민석 하면 배신의 아이콘으로 기억하고 있다.
김민석은 과거에 노무현을 배신하면서 나름대로 실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선택 때문에 배신자와 철새 이미지가 각인 됐고 지금까지 계속 의심을 받으면서 신뢰를 쌓기 힘든 정치인이 되었다.
그래서 김민석이 당대표가 로망이라던 말을 실현하기까지 24년이 걸려 당대표에 등극 하였지만 김민석의 과거의 행적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고 이번 전대에서 정청래 후보가 노골적으로 공격하면서 과거를 잊어 버렸던 사람들에 다시한번 각인 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여 이미지 쇄신은 버거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