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동적으로 성장해 가는 왕실 관리의 믿음
왕실 관리는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라는 예수님 말씀에 더 이상 함께 가자고 고집하지 않는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영혼을 이끄시는 주님의 탁월한 능력이다. 주님은 왕실 관리가 바라는 방식대로 해주지는 않으시지만 그가 정말로 바라는 것을 들어주겠다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그의 믿음이 성장하도록 인도하신다.
주님의 탁월한 이끄심에 맞갖게 왕실 관리도 그에 상응한 응답을 한다. 그는 어떤 표징도 보지 못했지만 주님 말씀을 굳게 믿는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자기 아들이 낫게 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왕실 관리는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 행복한 사람이 된다.
우리도 왕실 관리와 같은 믿음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처음엔 우리 방식을 고집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을 때 주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깊이 성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주님의 뜻은 헤아리지 않고 무조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억지를 부리는 것이 될 것이다. 모든 일을 우리가 바라는 방식대로만 이루어지기를 고집한다면 그것은 주님에게 나를 따르라고 막무가내로 요구하는 식이 된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라는 예수님 말씀을 믿고 집으로 돌아가던 왕실 관리는 마중 나온 종들에게 아들의 열이 떨어졌다는 기쁜 소식을 듣는다. 이 소식을 듣고 왕실 관리는 가장 먼저 언제 아들의 열이 떨어졌는지 물어본다. 이 질문은 한 단계 더 깊어진 그의 믿음을 보여준다. 표징을 찾는 믿음에서 예수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믿음으로 성장하고, 그 다음은 주님의 섭리를 인식하고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증언하는 믿음으로 성장한다. 그가 보인 믿음 성장의 3단계를 살펴보자.
첫 단계는 기적에 의지한 믿음, 또는 눈에 보이는 은총만을 추구하는 믿음이다. 왕실 관리는 주님이 자기 아들을 직접 만져 보아야만 낫게 되리라고 믿었다. 믿음이 한 인간의 영혼 안에서 자라기 시작할 때 그 처음은 미미하다. 두 번째 단계는 말씀에 의지한 믿음이다. 왕실 관리는 예수님께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라는 말을 듣고 그대로 믿는다.
세 번째 단계는 하느님의 섭리를 발견하고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증언하는 믿음이다. 왕실 관리는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마중 나온 종들의 보고를 듣고 아들이 살아났음을 알게 된다. 왕실 관리는 종들에게 아들이 낫게 된 시간을 물어보고, 그 시간이 바로 예수님이 그에게 아들의 치유를 약속한 시간임을 확인한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은총의 사건에 주목한다. 이러한 섭리의 발견은 온 가족이 주님을 믿고 구원받는 증언의 자료가 된다.
왕실 관리의 가족은 죽어가던 아이가 갑자기 생기를 찾는 것을 보고 무척 기뻐했지만 자세한 사연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왕실 관리가 사정을 증언함으로써 그들도 신앙을 갖는다. 성서학자 ‘쉬나켄버그’는 왕실 관리가 주님께 받은 섭리를 다른 이들에게 증언함으로써 결국 그의 믿음이 완성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많은 신자가 믿음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한다. 주님을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 그런데 믿음은 정적인 것이 아니다. 믿음이란 계속 성장해 나아가는 동적인 것이다. 요한복음 저자는 ‘믿음’이란 명사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대신 ‘믿는다’란 동사만 무려 98번이나 사용했다. 요한복음 저자가 이렇게 ‘믿는다’란 동사를 100번 가깝게 사용한 것은 믿음의 결단이 한 번의 선택이나 결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선택하는 것은 일생에 단 한 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상황, 새로운 문제 앞에 설 때마다 믿음의 결단을 늘 새롭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믿음이 성장하여 언젠가는 완전한 믿음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세례 받으면서 한 번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 믿음의 체험을 통해 점점 완성되는 것이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겨자씨 보다 작은 믿음의 씨앗이 영적체험을 통해 새로워지고 완성되어감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