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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코람 데오의 신앙
은선: 은성아, 왜 그렇게 심각한 얼굴이니?
은성: 오늘 목사님 말씀이 내 마음을 강하게 때려서 잠깐 눈물을 흘렸어.
은선: 무슨 말이야?
은성: 그동안 부모님과 같은 의자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다가 오늘 묘한 생각이 들어서 나만 뒷자리로 가서 앉았는데 자꾸 마음이 해이해지더니 결국 졸음이 몰려와서 나도 모르게 졸고 말았거든.
은선: 그랬어? 그건 네가 잘못한 것이 분명하구나. 우리 예배당 천정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니? 그리고 4층의 방송실에서 목사님이 우리 예배 모습을 다 보고 계시는 것도 알고 있니?
은성: 다 알고는 있었지만 오늘은 깜빡 잊었어. 그런데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는 말씀이 기가 막힌 말씀이었어. 나는 부모님을 떠나 뒤에 가서 앉아 있으면 비록 부모님은 모르실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다 살펴보시고 계시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
은선: 그럴 수 있지. 가끔 주일학생들 중에 그런 생각을 하는 학생들이 있는 것을 보았어. 부모님이나 선생님 눈만 피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이지. 그래서 뒤쪽으로 가서 앉아서 예배 시간에 스마트폰을 가지고 딴짓을 하거나 서로 장난을 하기도 하지. 어떤 학생은 학교 공부하기에 바쁘기도 하고.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 아니라 죽은 분이 되는 것이지.
은성: 맞는 말이야. 요한계시록 5장에서 많은 천사들이 함께 그리스도를 높이 찬양하는 것을 볼 수 있으니 결국 천사들은 지상에서나 천국에서나, 현재나 영원히 하나님께서 경배를 받으시는 곳에 함께한다는 것을 볼 수 있고, 히브리서 12장 22-24에서도 천사들이 예배의 현장에 함께한다고 했으니 그 천사들이 우리의 예배의 모습을 다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정신을 차리고 바른 예배를 드려야 마땅하겠지.
은선: 그걸 잊어버리니까 지난번 체육대회를 할 때 분명히 반칙인데도 상대팀이 모르게 계속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야. 어르신들도 그렇게 하는 것은 어린이들과 똑같더라고.
은성: 나도 동감이야. 지난번 성경 퀴즈대회 때에도 슬며시 보면서 하거나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정답을 말해 주니까 그 말을 듣고 대답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 하나님은 하갈을 살피시고, 도와주시는 것을 기억하면 우리가 이렇게 저렇게 잘못하고 있는 것들을 고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은선: 맞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은 구약성경의 원어인 히브리어로 ‘엘 로이’인데, 영어로는 ‘God who sees me’라고 하며,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으로, 공동번역 성경은 ‘나를 돌보아 주시는 하느님’으로, 새번역 성경은 ‘나를 보시는 하나님’으로, 그리고 개역개정 성경은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으로 번역했다고 한다. 그리고 ‘보다’(see)라는 말은 ‘지켜보다, 살피다, 낱낱이 세다, 돌보다, 보살피다, 알아주다’ 등의 의미가 있으니 ‘엘 로이’는 ‘나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 나를 살피시고 돌보시는 하나님, 내 형편과 처지를 낱낱이 아시고 다 헤아리시며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이란다. ‘살피다’라는 말은 ‘주의하여 잘 둘러보다’라는 뜻이고, ‘보살피다’라는 말은 ‘마음을 기울여 여러모로 돌보아주다’라는 뜻이니, 하갈의 하나님, 곧 ‘엘 로이’는 ‘나를 살피시고, 돌보시고, 알아주시는 하나님’이요, 하갈이 여호와의 사자를 만났던 그 놀라운 샘물의 이름을 ‘브엘라해로이’라고 불렀을 때 그 뜻은 ‘나를 살피시는, 살아 계신 이의 우물’이라는 말이었다고 하는 설명을 읽었어.
은성: 하갈이 그런 뜻을 바르게 알고 말했다면 그녀의 믿음이 대단하였네?
은선: 여주인 사라에게로 돌아가라는 여호와의 사자의 말에 순종하는 것을 보아도 좋은 자세라고 생각되더라.
은성: 그녀는 주인을 떠나 광야로 도망을 쳤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계속 보고 계시며, 필요할 때에 나타나셔서 도움을 베푸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깨닫지 않았을까?
은선: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노아가 의로운 것을 살펴보신 하나님께서 노아를 구원하셨고,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때도 아브라함과 롯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롯을 구하여 내셨던 것이 생각난다.
은성: 그랬지.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고 자기들 뜻대로 뭔가를 하려고 할 때도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시고 간섭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구나.
은선: 그게 무슨 말이니?
은성: 예를 들어서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을 생각해 봐. 노아가 약 60세가 될 때까지 아브라함이 살아 있었대. 홍수 이후의 하나님의 뜻은 사람들이 온 세계로 편만하게 퍼져나가는 것이었어. 그런데 노아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흩어짐을 면하리라 하면서 높은 탑을 쌓아서 하늘에 닿게 하고 자기들의 이름을 내고 흩어지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지. 그렇지만 너도 알다시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고, 셈과 함과 야벳의 자손들은 천하 만국 백성으로 나누어졌지 않니?
은선: 그렇구나. 시 2편이 그것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는 생각도 드는구나.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시 2:1-4)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에 임신한 것을 들었을 때 우리아에게 하는 모습을 보면 역시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비웃고 계셨을 것이다. 그는 완전범죄를 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선지자 나단을 통해 그것을 알려 주셨지.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삼하 12:9)
은성: 예수님께서는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도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신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가르쳐 주셨지. 그러니까 참새보다 귀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은선: 나는 시편 139편을 가끔 생각하는데 오늘 말씀을 서로 이야기하다 보니 다시 읽고 싶구나. 좀 길지만 함께 읽어보기로 하자.
시 139편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반드시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 그들이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하며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으로 헛되이 맹세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나이까 내가 그들을 심히 미워하니 그들은 나의 원수들이니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 139:1-24)
은성: 어쩌면 이런 기막힌 고백과 기도가 나올 수 있을까? 시인 다윗이 인생의 말년에 자기가 지나온 삶의 여정에 함께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 하나님의 속성을 하나씩 하나씩 체험적인 신앙 언어로 표현하며 찬양하고, 하나님 앞에서 몸부림을 쳤던 자신의 삶의 단면들을 고백하며, 남은 생애도 하나님께 의탁하는 결단을 노래하는데 ‘살피시는 하나님, 보시는 하나님, 그리고 아시는 하나님’을 확신하며 겸손히 기도하고 있구나.
은선: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우리가 어디에 가더라도 거기에 계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면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엄청나게 달라질 수밖에 없겠지.
은성: 맞아. 그래서 우리는 ‘코람 데오’라는 말을 많이 듣지. ‘Coram Deo’는 라틴어로 '하나님 앞에서(in the presence of God; before God)'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한다는 뜻인 임재를 나타내고, 사람에게 보이려고 종교 행위를 한다는 뜻인 외식의 반대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로 성경 곳곳에 나오는 단어이다. 칼빈과 사도 바울이 좌우명으로 삼았고, 종교적 부패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주창되었다. 종교개혁 때 대두된 표어인 다섯 가지 솔라의 토대가 되는 요소였고, 오늘날 개신교인들이 가장 좋아하고 가슴에 새기고 노력하는 대표적인 말씀 중 하나이다.
은선: 그러니까 ‘살피시는 하나님, 보시는 하나님, 그리고 아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자세를 설명하는 말이로구나.
은성: 그렇지. 그때에 두려움이나 불안을 버리게 되고, 자기 본분에 충실한 생활을 하게 되지. 전도자가 가르친 말씀이 그것 아니니?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3-14)
은선: 요한 사도가 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보아도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 수 있지.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계 2:1-3) 이 말씀을 생각해 보면 교회 안에서 행하는 우리들의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는 예수님이 교회의 필요를 따라 칭찬도 하시고, 책망도 하시고, 약속도 주시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은성: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만이 아니라 ‘우리를 살피시는 하나님’ 그리고 ‘교회를 살피시는 하나님’까지 생각해야 된다는 말이구나.
은선: 그렇지. 신약성경을 보면 교회 안에서 교리적인 문제와 더불어 분열과 외식과 불신앙의 모습도 보이고, 음행이라든지 성직매매라는 것까지 보이는데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늘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들이다.
은성: 그런 문제들이 결국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없어서 일어난다고 볼 수가 있을까?
은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것은 신앙생활을 오래 한 것과 무관하고, 목사나 선교사 혹은 신학교 교수가 되더라도 아니 더 훌륭한 직분이나 감투를 쓴다고 해도 전혀 무관할 수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실제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그런 문제들은 대개 신앙이 좋아야 마땅한 직분자들이나 신앙생활을 오래 한 분들에게서 보이거든.
은성: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예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겠지. 내가 읽은 이야기를 하나 해 줄테니 들어보거라. 나는 참 감동적으로 읽었다.
미국에 한 중년 부부가 있었는데 아내의 시력이 너무 나빠서 눈 수술을 했습니다. 그런데 수술이 잘못되어 실명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남편은 매일같이 아내의 직장까지 아내를 출근시켜주고 하루 일과가 끝난 후에는 집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아내에게 흰 지팡이를 손에 쥐어주면서, 서로 직장이 너무 머니까 혼자 출근하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아내는 남편이 너무나 섭섭했고, 사랑하는 남편이 그런 말을 한 것에 배신감까지 느꼈습니다. 그리고는 이를 악물고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한 후, 다음날부터 혼자 출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버스를 타고 다니는 훈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부딪히고, 저기 부딪히고, 넘어지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혼자 다니는 훈련을 했습니다. 그리고 2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버스 타고 다니는 것이 익숙해졌습니다. 어느 날 버스에 올라탄 부인에게 버스 운전기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줌마는 복도 많습니다.” “왜요?” 무슨 말뜻인지 몰라서 시각장애를 입은 부인이 되물었습니다. 버스 기사는 “매일 남편이 버스에 함께 앉아 있어 주고 부인이 직장 건물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지켜보다가 등 뒤에서 손을 흔들어 주는 그런 남편은 못 봤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은 들은 부인은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남편은 아내가 혼자 할 수 있도록 손잡고 다니던 일을 그만했습니다. 아내 입장에서는 매일 잡고 다니던 손이 없어지니까 남편이 옆에 없는 걸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단 하루도 남편은 아내를 혼자 내보낸 적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아내는 볼 수가 없으니까 남편이 자신을 내팽개쳤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은선: 하나님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사는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이구나. 나도 의미 있게 읽은 이야기를 소개할까?
요즈음은 한국에서 예전보다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쉽게 그리고 빨리 체포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곳곳에 설치된 CCTV 때문에 범죄자들의 동선과 행동이 녹화되기 때문이래. 그리고 자동차에는 블랙박스가 있어서 역시 자동차 옆의 모든 움직임을 녹화를 하고 있지 않니?
은성: 이야기가 여기까지 나아갔는데 하여간 눈앞에서 볼 수 없다고 해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은선: 하나님이 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살피시고 돌보신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더욱 기쁘다.
은성: 그러니 든든한 믿음으로 평안을 누리되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밝히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하기로 하자.
은선: 전적으로 동감한다. 하나님은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 살피시는”(시 138:6) 하나님이시고,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시는”(시 33:12-15) 하나님이시라고 했지. 이제 우리는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시 8:3-4)라는 고백을 함께 드리도록 하자.
은성: 다음 주일에 부모님 곁에서 예배드리는 것부터 시작할께.
(인터넷에서 많이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