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곡께서 삶을 아무런 의욕 없이 사는 우리들을 위해 청춘의 버킷리스트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셨다. 이 프로그램은 화요일 오전 10시부터 금요일 오전 10시까지 딱 72시간을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무제한의 자유를 주는 거였다. 하지만 막상 무제한의 자유를 허락받으니,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고 싶은 게 없었다. 나는 정해진 게 있으면 그 길로는 끝까지 갔지만, 내가 나를 이끌어간 경험은 얼마 없었다. 게다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이 일을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인가. 라는 물음에 막혀서 그저 학교 마당을 어슬렁거리는 걸로 끝났다. 다른 사람들은 1박 2일로 서울에 다녀오거나 도보여행을 떠나는데 나는 그런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면서 그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만 궁리하다가 본관 안에서 빈둥거리며 기타 몇 번 튕기는 게 다였다. 나는 시키는 것만 하고,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도 모른 채 살았던 거다.
청춘의 버킷리스트 프로그램이 끝나고 현곡께서 우리에게 ‘내가 정말로 다니고 싶은 학교’를 만들라고 하셨다. 우리가 얼마나 일상을 개떡같이 살았으면 현곡께서 일정에도 없던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나 싶었다. 나는 정하 형과 동혁이 형이랑 같이 학교를 만들었다. 다른 교육철학을 가진 선생님들의 철학을 찾아보고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학교의 철학과 커리큘럼을 짰다. 하지만 이렇게 하다 보니 삼무곡의 교육과 굉장히 비슷해졌다. 우리만의 독창적인 상상력이 거의 없어서 만들어진 커리큘럼을 갈아엎고 싶었지만, 그 커리큘럼을 대체할 마땅한 아이디어 역시 나오지 않아 내가 어떻게 손을 댈 수가 없었다. 학교 만들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막막했던 일은 몇 번 더 있었다. 내가 정말로 다니고 싶은 학교를 만드는 것인데,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학교 수업을 만드는데 정말 어려웠다. 정하 형과 동혁이 형은 금방 본인들의 수업을 준비했지만, 나는 수업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계속 궁리하며 쩔쩔매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스스로 답답해하며 짜증을 부리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학교 만들기 프로젝트를 수업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학교를 정리한 노트북을 보기만 해도 답답해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나의 수업은 아무리 생각해도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수업을 무엇을 하면 좋을지 생각하며 답답해하다가 본관 벽난로에 장작을 더 넣기 위해 본관 앞마당에 장작을 가지러 나갔다. 본관 앞마당에선 현곡께서 흥얼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계셨다. 그러곤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시고 학교 잘 만들어져 가냐고 물으셨다. 나는 힘 빠진 목소리로 현곡께 “잘 되고있는 것 같진 않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현곡은 “상상력은 쓰면 늘어. 머리도 똑같이 써야지 늘어. ”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왜 이렇게 생각을 못했을까.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이었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상상력 연습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걸 하기 싫다고 징징대는 어린애였던 거다. ‘해야 한다’라는 의무감으로 하지 않고, 연습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수업으로 무엇을 할지 정했다. 그건 사우나 옆에 어질러져 있는 사우나 장작을 정리하는 거였다. 평소 눈에 거슬렸었는데, 이번 기회에 다 같이 정리를 하자고 생각했다. 사우나 장작을 정리할 생각을 하니, 굉장히 설레었다. 이거라면 내가 다니고 싶은 학교로 딱 맞아떨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사우나 장작을 정리 함으로써 우린 무엇을 배울 건가. 라는 질문에 또다시 막혔다. 나는 또 그것을 한참 생각했다. 나는 사우나 장작 치우기를 ‘재밌겠다. ’‘누군가에겐 의미가 있겠다. ’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사우나 치우기가 왜 재미있고, 왜 의미가 있는지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생각하다가 어찌저찌 내 수업의 의미를 생각해 냈다. 하지만 수업 설명의 분량이 너무 적었다. 한참을 생각했는데 나온 이정도 밖에 나오지 않아 형들 앞에서 말하기가 눈치 보였다. 차라리 혼자 학교를 만드는 게 훨씬 마음 편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형들 앞에서 우물쭈물 말하며 수업 설명 분량을 천천히 늘려갔다. 그리고 이어서 학교를 만드는데 정하 형이 학교 설명을 엄청 세세하게 적고 있었다. 나는 어차피 3일 정도 할 학교를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냐고 정하 형에게 물었다. 나는 학교 만들기 수업의 본질을 잊어버린 것이다.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다. 정하 형은 그런 나에게 우리가 진짜 학교를 만든다고 생각하고 해야 한다고 했다. 앞에서 혼자 학교를 만들었다면 ‘편하겠다. ’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형들이 없었다면 나는 이번 수업을 건성으로 하며 학교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너무 어리석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피했고,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정말 한심하다. 모든 게 귀찮으면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사라진다. 밥만 축내는 좀비와 같아진다. 무슨 일이든 항상 설레는 마음으로 마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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