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컨택트는 대만계 SF 작가 테드 창이 쓴 단편 모음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 중 ‘네 인생의 이야기’ 편을 극화한 것입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언어학자로서 외계 생명체와 대화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그녀는 헵타포드라고 불리는 외계인의 언어가 시간적인 순서와 무관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그녀는 외계인의 문자와 말이 각각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게다가 외계인의 언어에는 미래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주인공 언어학자는 외계인과 소통하다가 자신의 미래를 알게 됩니다. 자신의 미래는 결혼한 얼마 후에 남편과 이혼하고 딸은 25살까지만 살다 죽는 것이었습니다. 외계인이 떠난 후 그녀는 자신의 미래를 알면서도 같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혼할 남자와 결혼하고 25살 때 죽을 딸을 낳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저는 테드 창의 소설을 이런 식으로 이해했습니다. 주인공 언어학자는 외계 언어를 표어문자, 또는 표의문자와 비슷하면서도 그것과는 조금 다른 어의문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테드 창의 소설 속 외계어는 한자와 비슷한 문자입니다. 중국어는 과거, 현재, 미래 시제가 없습니다. 단지 부사를 붙여 시제를 표현할 뿐입니다. 그리고 한자에는 대개 미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러할 연’(然)에는 저녁(夕)이 되면 사냥개(犬)를 불(火)에 구워 먹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고대 중국인들은 사냥이 끝난 개의 미래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의 한자가 반드시 결정론적인 세계관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이유로 (예컨대, 돌아가신 아버지가 개로 환생했다는 자신의 꿈을 믿고) 개를 잡아먹지 않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즉 미래를 아는 것과 그것을 수행하는 것은 다릅니다. 따라서 외계인들은 미래를 나타내는 문자와 실행(performativity)을 의미하는 말이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다만 오늘날의 윤리적인 시각으로 개를 잡아먹지 않은 것을 칭찬할 필요는 없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고대 중국에서 개를 잡아먹지 않으면 가족이 굶어 죽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구조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렇다는 얘깁니다.
서론이 너무나 길었네요. 제가 명리학과 타로에 대해 잘 몰라서 그랬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명리학은 태어난 순간의 기운이 아이에게 바코드처럼 찍히고 기질이 형성된다는 논리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 4가지 기둥(柱)에 각각 두 글자씩 모두 8개의 글자(字)를 부여받습니다. 그래서 사주팔자라 부릅니다. 네 가지 기둥은 태어난 년(年), 월(月), 일(日), 시(時)이고 각 기둥에는 천간과 지지라고 불리는 두 개의 글자가 배치됩니다. 첫 번째 글자는 10글자(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중 하나이고 두 번째 글자는 12개(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중 하나입니다. 모든 한자는 음양과 오행(목화토금수)의 기운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각 개인이 태어날 때 부여받은 8개의 글자(한자)는 ‘원자’와 ‘원자’가 합쳐져 만들어진 ‘분자’처럼 독특한 기질로 표시됩니다. 명리학은 세상의 반복적인 흐름과 나의 기질을 파악할 수 있는 기본 원리를 한자로 설명합니다.
타로도 비슷합니다. 그림의 형식으로 표현된 타로의 언어도 시간의 순서에 따라 의미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타로 카드의 언어에는 헵타포드의 언어나 중국의 한자와 마찬가지로(혹은 비슷하게)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타로를 연구한 사람들은 타로 카드에 무의식의 에너지가 반영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무작위로 뽑힌 카드는 내담자의 상황과 의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타로 카드를 진화시킨 신비주의 학자들에 의하면 타로는 신과 인간 사이의 연결을 방해하는 종교를 배제하고 인간을 직접 신과 연결하는 수단입니다.
하지만 명리학과 타로는 미래를 예언하는 도구가 아니라 결국 자신을 읽는 언어입니다. 테드 창의 소설에 나온 주인공이 자신의 이혼과 딸의 죽음이라는 미래를 알면서도 그것을 선택했던 것은 자유의지가 없거나 어리석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의 운명을 아는 것(구조)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발화, 수행성)이 다르다는 것을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외계인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명리학과 타로는 “사람들이 무엇을 좋은 삶이라고 부를 것인가”를 알려주는 게 아니라 “나에게 무엇이 좋은 삶인가”를 알려주는 도구입니다. 좋은 삶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행하는 것이고, 자신을 깊이 연구할수록 좀 더 자신감 있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오늘 강의를 들은 후에 갖게 된 제 희망사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