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시승] 지프 그랜드 체로키 5인승, 경쟁력은 충분할까?(ft. 4xe)
서동현입력 2022. 12. 24. 09:01
지프 신형 그랜드 체로키. 최근 스텔란티스코리아가 다섯 개 시트를 얹은 기본형 모델을 출시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버전을 추가해 선택의 폭도 늘었다. 환골탈태한 실내외와 다재다능한 에어 서스펜션, 친환경 구동계는 분명한 장점. 그러나 1억 원 내외의 가격을 납득하려면 다양한 조건이 필요했다.
글 서동현 기자
사진 스텔란티스코리아, 서동현
‘지프 최초의 3열 SUV’. 지난해 출시한 그랜드 체로키 L의 타이틀이다. 독특하게도 5세대를 맞이하면서 기본형 대신 롱 휠베이스 모델을 먼저 공개했다. 키 큰 성인도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3열 공간을 확보하며 프리미엄 대형 SUV 시장에 발을 들였다. 이번엔 5인승이다. 약 5.2m의 전장이 부담스러웠던 이들에게 딱이다. 파워트레인과 각종 편의장비를 세분화해 리미티드와 오버랜드, 4xe 리미티드, 4xe 서밋 리저브 네 가지 트림으로 구성했다.
① 익스테리어
신형 그랜드 체로키의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900×1,980×1,790㎜(4xe 서밋 리저브 길이 4,910㎜). 휠베이스는 2,965㎜다. 그랜드 체로키 L은 이보다 길이가 320㎜, 휠베이스는 125㎜ 길쭉해 몸집이 상당했다. 5인승은 확실히 덩치가 주는 압박감이 적다.
생김새도 살짝 다르다. 그랜드 체로키 L은 윈도우 라인 상단을 트렁크까지 길게 늘려 차의 길이감을 강조했다. 3열 창문 테두리는 직사각형에 가깝다. 리어램프 사이엔 ‘JEEP’ 로고만 달았다. 그랜드 체로키 5인승은 창문 라인이 일찍 내려와 이미지가 비교적 부드럽다. 양쪽 리어램프는 피아노 블랙 장식으로 이었다. 각 모델의 성격을 고려해 앞 범퍼 형상도 차별화했다.
개인적으로 5세대 그랜드 체로키의 디자인은 역대 지프 중 가장 마음에 든다. ‘머슬카’ 감성 가득한 4세대의 분위기를 말끔히 씻었다. 1963년 1세대 왜고니어(Wagoneer)로부터 영감을 얻어 그려낸 샤크 노즈(Shark Nose)와 날렵한 눈매, 광활한 보닛에선 아메리칸 SUV의 투박함을 찾아볼 수 없다. 사다리꼴 모양 휠 하우스는 오프로더만의 강인함을 표현한다.
② 인테리어
실내는 세대교체를 두 단계쯤 치른 듯 새롭다. 10.25인치 디지털 계기판과 10.1인치 터치스크린 주변으로 고급 소재를 잔뜩 둘렀다. 가죽과 금속, 나무, 블랙 하이그로시의 배치가 조화롭다. 최상위 트림 4xe 서밋 리저브는 한술 더 뜬다. 시트와 도어 패널 가죽에 프리미엄 모델의 특징인 다이아몬드 패턴 퀼팅 장식을 더했다. 내가 알던 그랜드 체로키가 맞나 싶다.
그랜드 체로키 4xe 서밋 리저브
그랜드 체로키 오버랜드
그랜드 체로키 오버랜드
궁금했던 부분은 2열. 휠베이스가 짧아 그랜드 체로키 L에 비해 다리 공간이 답답하진 않을까 생각했다. 실제로 보니 의미 없는 걱정이었다. 무릎과 앞 좌석 시트 사이에 주먹이 2개쯤 들어갈 만큼 여유롭다. 등받이는 각도를 조절할 수 있다. 미니밴 2열 시트만큼은 아니지만 끝까지 기울이면 적당히 누울 수 있는 자세가 나온다. 지붕이 높아 머리 공간도 넉넉하다.
편의장비는 트림에 따라 편차가 크다. 특히 4xe 서밋 리저브에만 들어간 기능이 많다. 큼직한 듀얼 파노라마 선루프는 전 모델 기본. 이외에 뒷좌석 통풍 시트와 수동식 선 블라인드, 4-존 오토 에어컨, 스마트폰 무선 충전 패드, 디지털 룸미러, 1열 12방향 전동 시트, 동승석 메모리 기능은 전부 4xe 서밋 리저브 사양이다. 시트를 뒤덮은 부드럽고 촉촉한 팔레르모(Palermo) 가죽도 마찬가지.
트렁크 용량은 기본 1,068L. 4:6으로 나눈 2열 시트를 접으면 2,005L로 늘어난다. 그랜드 체로키 4xe의 트렁크도 내연기관 버전과 용량이 같다. 하이브리드 배터리를 트렁크 바닥이 아닌 뒷좌석 쿠션 밑에 넣었기 때문이다. 에어 서스펜션을 갖췄음에도 트렁크 높이 조절 기능이 없는 점은 아쉽다.
③ 파워트레인 및 섀시
5인승 그랜드 체로키는 두 가지 심장을 품는다. 하나는 V6 3.6L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 크라이슬러가 2010년부터 생산한 펜타스타(Pentastar) 엔진이다. 8단 자동변속기를 맞물려 최고출력 286마력, 최대토크 35.1㎏·m를 낸다. 복합연비는 1L당 7.4㎞.
그랜드체로키 4xe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직렬 4기통 2.0L 가솔린 터보 엔진과 전기 모터 2개, 15㎾h 리튬이온 배터리, 8단 자동변속기를 조합했다. 엔진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는 각각 272마력 및 40.8㎏·m. 여기에 스타터 제너레이터 역할을 맡은 60마력 전기 모터와 변속기 토크 컨버터를 대체할 145마력 전기 모터를 연결했다. 합산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는 375마력, 65.0㎏·m. 단, 이 숫자는 미국 현지 제원표를 참고한 수치다. 국내에서는 합산 출력을 정식으로 인증 받지 않았다. 복합연비는 1L당 12.0㎞다.
하이브리드 배터리는 랭글러 4xe의 배터리와 셀 개수가 완전히 똑같다. 시트 아래 구조에 따라 모양만 바꿨을 뿐이다. 충격과 외부 기온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알루미늄 케이스로 감싸고 냉난방 회로도 마련했다. 완충 시 배터리만으로 달릴 수 있는 거리는 국내 기준 33㎞. 최대 7.2㎾ 완속 충전기를 통해 2시간 만에 가득 채울 수 있다.
④ 주행성능
이번 시승회에선 PHEV와 내연기관 모델을 번갈아 시승했다. 트림은 각각 서밋 리저브와 오버랜드. 파워트레인에 따른 주행성능 및 편의기능 차이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먼저 그랜드 체로키 4xe의 운전대를 잡았다. 주행 모드는 세 가지. ‘하이브리드’는 엔진과 전기 모터 출력을 적절히 섞어 쓴다. ‘일렉트릭’은 순수 전기 모드다. 이때 최고속도는 시속 130㎞로 제한한다. 배터리가 부족하거나 급가속하지 않는 이상 엔진은 계속 잠재운다. ‘E-세이브’ 모드에선 오직 엔진만 구동해 배터리 전력을 채운다.
출발 전 확인한 전기 주행가능 거리는 40㎞. 실제로는 얼마나 달릴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일렉트릭 모드로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첫인상은 산뜻하다. 고요함 속에서 도로 위를 미끄러져 나가는 느낌이 아주 좋다. 전기 모터의 힘은 적당하다. 공차중량 2,555㎏짜리 차체를 무난하게 이끈다. 다만 몸무게가 210㎏ 더 가벼운 랭글러 4xe보단 약간 굼뜨다.
약 20㎞를 이동했을 무렵 다시 계기판을 살폈다. 이론상 배터리가 50%여야 했지만 약 30%까지 줄었다. 배터리에게 유리한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0㎞ 중 절반 이상은 고속도로였다. 당시 외부 기온은 영하 5℃. 테스트를 위해 급가속도 여러 차례 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도심에서 달리면 훨씬 나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하이브리드 모드로 바꿨다. 4기통 엔진 진동이 간질간질하게 올라온다. 회전 질감이 고급스럽진 않다. 대신 엔진과 전기 모터가 동력을 전환하는 과정이 깔끔해 불쾌한 기분은 들지 않는다. 가장 큰 장점은 두둑한 토크다. 터보차저와 전기 모터가 합세해 가속이 시원시원하다. 3.6L 자연흡기 엔진의 단점으로 지적받았던 저회전 영역에서의 답답함을 해결했다.
주행 질감 차이는 내연기관 모델로 옮겨 탄 순간 알 수 있다. 엔진의 존재감이 뚜렷하다. 회전수가 오를수록 목청 높이는 4기통 엔진과 달리, 6기통 펜타스타 엔진은 낮은 rpm에서부터 드센 소리를 낸다. 부드러움을 앞세우는 독일 제조사의 최신 6기통 엔진과 결이 다르다. 목소리 자체는 나름 매력적이다. 그랜드 체로키가 지향하는 ‘프리미엄’과 어울리지 않을 뿐이다.
승차감은 훌륭한 편. 시승한 두 트림에는 ‘쿼드라-리프트 에어 서스펜션’이 들어갔다. 둔탁한 충격을 거르면서 좌우 기울임도 잘 잡아낸다. 2열 승차감 역시 1열과 비슷하게 편안하다. 하지만 레인지로버처럼 매 순간 나긋나긋한 성격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견고하다. 100% 승차감 개선을 위해 들어간 에어 서스펜션은 아니기 때문이다.
쿼드라 ‘리프트’라는 이름처럼, 그랜드 체로키의 에어 서스펜션은 차체를 번쩍 들어 올린다. 높이는 주차(Park)와 에어로, 노말, 오프로드Ⅰ, 오프로드 Ⅱ 총 다섯 단계로 나눴다. 그중 오프로드 Ⅱ를 고르면 지상고를 287㎜까지 띄운다. 지면과 하부 사이에 농구공을 굴려도 전혀 걸리지 않는 수준이다. 동급에서 제일 압도적인 오프로드 성능을 지닌 배경이다.
다음은 주행 편의사양. 순정 내비게이션은 T맵이다. 무선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를 연결하지 않아도 익숙한 길 안내를 받을 수 있다. 과거 지프의 내비게이션을 생각하면 감지덕지다. 4xe 서밋 리저브엔 ‘액티브 드라이빙 어시스트’가 들어간다. 차로 중앙 유지 기능을 포함한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이다. 나머지 트림엔 일반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넣었다.
액티브 드라이빙 어시스트의 차선 지키는 능력은 무난한 편. 운전대 3시 방향 버튼으로 간단하게 활성화할 수 있다. 운전대에서 손을 떼었을 때 대처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10초 정도 손을 떼면 초록색이었던 계기판 양쪽 끝이 노란색→빨간색 순서로 바뀐다. 동시에 가볍게 제동을 걸어 운전자를 깨운다. 괜찮은 시스템인데 오직 최상위 트림에만 들어간다는 점이 안타깝다.
⑤ 총평
전동화 파워트레인과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새로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으로 무장한 신형 그랜드 체로키. 걸림돌은 가격이다. 기본형 그랜드 체로키가 8,550만~9,350만 원, 그랜드 체로키 4xe가 1억320만~1억2,120만 원이다. 아무리 상품성이 올랐다지만 지프라는 브랜드에 1억 이상을 지불하려면 큰 결단이 필요하다. 유럽산 SUV들도 충분히 노릴 수 있는 비용이다.
그러나 평소 레저나 오프로드 활동을 즐긴다면 그랜드 체로키의 매력은 급상승한다. 에어 서스펜션과 지프만의 사륜구동 시스템은 도심형 SUV들이 들어서지 못할 길도 개척하니까. 그런 면에서 내연기관 모델 리미티드 트림은 권하지 않는다. 에어 서스펜션이 없을뿐더러 사륜구동 시스템도 옛 버전이 들어간다. 내리막 주행 제어 장치(HDC)도 없다. ‘지프’라는 브랜드의 강점이 상당 부분 줄어든다.
결론적으로 내연기관 오버랜드 또는 4xe 리미티드가 합리적일 듯하다. 내연기관 그랜드 체로키는 연비에 유리한 고속 주행이 잦은 소비자에게 어울린다. 복합연비가 낮은 단점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 집에 완속 충전기가 있고 하루 이동거리가 짧다면 그랜드 체로키 4xe가 어울린다. 에어 서스펜션은 없지만 전기차처럼 운행하면서 유류비의 이점을 누릴 수 있다.
<제원표>
깊이 있는 자동차 뉴스, 로드테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