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하지 않는 죄
미츠파 기도집회 이후로 이십여 년이 흘렀습니다. 어느덧 사무엘도 오십 대가 되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역사에 중요한 사건 하나가 일어납니다. 그것은 백성들이 자기들에게도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한 것이었습니다. 사무엘은 늙었고, 그의 아들들은 부정부패를 많이 저질러서 믿고 따를 수가 없으니 자기들도 왕을 세워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모든 이스라엘 원로들이 모여 라마로 사무엘을 찾아가 청하였다. ‘어르신께서는 이미 나이가 많으시고 아드님들은 당신의 길을 따라 걷지 않고 있으니, 이제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우리에게 세워 주십시오.’ 사무엘은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정해 주십시오.’ 하는 그들의 말을 듣고, 마음이 언짢아 주님께 기도하였다.”(1사무 8,4-6)
사무엘은 이 요구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때까지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판관들을 통해 하느님의 통치를 직접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임금이 세워진다면 그들의 인생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설득하려 했습니다. 그토록 원하는 임금이 일단 들어서게 되면 백성을 억압하고 세금을 매기고 자녀들을 전쟁터로 끌고 나가는 등 힘들게 할 일이 많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소원대로 임금을 세워주라고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벤야민 지파의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첫 임금으로 세웠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임금을 세우는 일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일이지 주도하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워낙 고집을 부리니까 하느님께서 허락하셨을 뿐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왕정 체제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은 두고두고 고생하게 됩니다. 타락한 사울 임금도 폭정을 행했지만, 성군 다윗과 솔로몬 집권을 포함하여 이스라엘 왕조 4백 년 동안 임금들 때문에 이스라엘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하느님의 백성들이 하느님의 통치에 만족하지 않고 세상의 방식을 아무 생각 없이 답습하게 되면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어쨌든 사무엘은 사울 임금에게 모든 정치적 리더십을 인계하고 물러납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영적으로 다시 한 번 세게 다잡는 고별사를 합니다. 사무엘1권 12장 22-24절은 그 고별사의 핵심 결론과도 같은 내용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위대하신 이름 때문에 당신 백성을 물리치지 않으실 것이오.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당신 백성으로 만드시기를 원하셨소. 나 또한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거나 하여 주님께 죄를 짓지는 않을 것이오. 그리고 나는 여러분에게 좋고 바른길을 가르쳐 주겠소. 여러분은 오로지 주님만을 경외하고 마음을 다하여 그분만을 충실하게 섬기시오. 그리고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해 주신 위대한 일을 똑똑히 보시오.”
보통 ‘죄’ 하면 도둑질, 강도, 살인 같은 흉악한 일들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과 거리가 먼 우리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람들이 가져야 할 죄의 기준은 그것보다 더 높습니다. 특히 한 명이라도 다른 사람의 영혼을 책임진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영적 지도자가 기도를 쉬는 것, 특히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하느님 앞에서 죄를 짓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