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황금 종려상 수상작이 발표가 되는 순간 장내에선 환호와 야유가 동시에 쏟아졌다. 루스 외스틀룬드 감독의 문제작 “슬픔의 삼각형”은 이 시대를 제대로 관통하는 영화하는 찬사와 동시에 시네마라는 예술이 가진 미학 따윈 풍자를 위해 버린 작품에 상을 주는 게 말이 되냐는 반응으로 갈렸다. 이런 호불호와 논쟁은 오히려 감독이 의중이 제대로 먹혔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이 영화는 명백한 한계와 아쉬움, 빼어난 점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현대 사회가 가진 모든 것을 비틀고 조롱하면서 뒤집혀도 결국 삼각형은 삼각형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말한다. 즉 어떤 누군가가 제시하는 어떤 방식도 대안이 될 수 없고, 두 개의 변이 기대고 서려면 반드시 밑변은 바닥을 받치고 있어야 한다는 자명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는 인플루언서이자 모델인 야야와 비주류인 남성 모델 칼, 이 연인에게 일어나는 일을 따라가는 3부 구성을 취한다. 1부에서 시작을 칼을 통해 패션업계 부조리와 사람의 몸이 자본으로 어떻게 활용되는 가를 그리고 2부로 넘어가면 초호화 크루즈를 배경으로 현대 사회를 만든 두 개의 시스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가진 모순과 실체를 폭로한다. 3부는 크루즈가 전복되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섬에 몰아넣어 새롭게 제시되는 사회상이라는 것 역시 인간의 본성 앞에서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까발린다. 중구난방의 전개에 인물들은 주제를 위한 대상화로 소모되는 듯 보이지만 전체를 꿰는 실과 바늘은 관계다. 감독은 사람 사이, 사람이 만든 시스템과의 충돌을 통해 모순된 현실을 드러낸다. 1부는 사랑싸움으로 2부는 한 편의 부조리극을 3부에선 태초의 인간 사회로 회귀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계급도 성별도 살아온 삶의 궤적마저 다른 이들을 충돌시켜 일어나는 화학적 반응 살피려고 한다.
1부에서 칼은 모델 업계 최약체인 백인 남성이다. 수입은 말도 안 되게 적고, 그의 표정을 결정하는 건 브랜드의 이미지다. 그의 여자친구 야야는 런어웨이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모델이다. 화려한 워킹을 하는 동안 그는 객석에서도 밀리고 밀려 뒷자리 구석에 앉는 신세다. 영화는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계급에 대한 풍자를 압축하여 내내 보여준다. 연극적인 무대와 밀도 높은 이미지들을 이용해 느슨한 서사대신 상황과 상징적인 장면을 주목하라고 한다. 이 모델 커플은 다투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 원인은 역시 돈이다. 데이트 비용 때문인데, 수입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라는 이유로 더 내야 하는 칼은 불만이 많고, 야야는 언제 떠나야 할지 모르는 모델 세계에서 벗어나 트로피 와이프의 삶을 살고 싶다. 둘은 화해를 하는 과정에서 칼이 자신이 성공해서 그렇게 만들어 준다는 말을 하지만 실상 그는 야야의 트로피 허스밴드가 되어 있다.
2부로 넘어가면서 무대는 크루즈로 바뀌고 영화는 또 다른 주제인 마르크시즘을 통해 평등이라는 화두를 들고 온다. 그것도 철저한 자본주의의 장에서 말이다. 인플루언서로 초대된 야야는 칼과 함께 크루즈에서 여러 군상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들은 그곳에서 일종의 관찰자가 된다. 돈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폐쇄된 사회와 비슷한 이 공간은 지위에 따라 입은 옷과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의 넓이에 차이가 생기고 행동의 제약 역시 자유도가 달라진다. 이런 각자의 상징성을 지닌 인물들이 마찰을 일으키면서 서서히 상황에 균열을 만든다. 비료 사업을 하는 드리미트는 아내와 애인을 동시에 데리고 배에 승선을 했다. 그의 등장과 동시에 배 안에 계급은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한다. 드미트리의 아내는 자신의 기분을 풀기 위해 직원들에게 수영복을 착용하고 바다에 뛰어들 것을 주문하고 누군가는 승무원들에게 역할 바꾸기를 제안하며 ‘ 우리는 모두 평등한 존재 ‘라는 말과 동시에 뱉어진 당신들도 즐겼으면 좋겠다는 발언은 노동에 힘을 쏟아내고 있는 승무원에게 가해지는 폭력일 뿐이다.
바다 위 호화 크루즈에 예고된 다음 스테이지는 폭풍우다. 뒤집히는 건 물리적 공간뿐만이 아니라 자연 앞에서 무의미한 그들이 쌓아 올린 허상의 피라미드다. 배가 흔들리고 만찬장에 모인 승객들은 멀리를 시작하고 그럴수록 음식을 욱여넣는 게 좋다며 식사를 권장하는 승무원들 이것은 증식 말고는 어떤 의미도 찾기 힘든 자본주의 속성에 대한 메타포일 것이다. 이윽고 배는 균형을 잃고 계급의 정점에 있던 이들은 가축처럼 기어 다니고 먹은 음식들은 토사물로 다시 배출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거기에 존엄과 명망은 없고 살려고 발버둥 치는 짐승이 있을 뿐이다. 그 와중에도 자본주의와 마르크시즘은 비료 사업가와 선장의 격론으로 벌어지지만 결국 어떤 이론도 현 상황을 타개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킬 뿐이다. 배는 토사물과 넘쳐버린 변기의 내용물들로 인해 엉망이 되었고 폭풍우는 잠잠해졌다. 마치 시그널을 보내듯 선장은 노동 운동가 유진 데브스의 연설을 떠들어대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해적들이 습격을 하고 배는 마침 전복된다.
배에서 살아남아 섬으로 표류한 인원은 8명이다. 영화의 인류학적 실험은 절정에 다다른다. 3부가 시작되고 초라한 몰골로 섬에 살아남은 이들은 기존 사회의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식량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고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배에서 화장실 청소를 담당했던 아비가일이었다. 불피우기와 낚시가 가능한 아비가일의 능력은 권력이 되었고 무리의 중심에서 각자에게 역할 분담까지 하게 된다. 최하위 계급에서 정점까지 올라간 것이다. 이것이 “슬픔의 삼각형”이 보여주려는 사회적 실험이 아닐까 싶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중 어느 것이 옳으냐가 아닌 해방된 인간의 본성이라는 게 얼마나 슬프고 섬뜩하면서 우스운 꼴을 하고 있는 가를 말이다.
시간이 지나며 그들은 아비가일 중심의 모계 사회에 서서히 적응해 간다. 역할이 분명해지고 공고해질수록 그들이 만든 사회 역시 기존에 우리가 알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드러낸다. 칼의 몸 역시 기존에 있던 사회에서나 섬에서나 착취의 대상일 뿐이다. 계급이 해체되고 재정립되는 과정을 거쳐도 누군가는 삼각형의 밑변을 맡아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루스 외스틀룬드는 이른바 부조리 3부작이라 불리는 “포스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 ”더 스퀘어“ , ”슬픔의 삼각형“으로 이어지는 대안 없는 사회 시스템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어 왔다. 그 대미를 블랙 코미디라는 형태를 빌어 마무리하려고 했지만 인류학적 실험을 하기엔 코미디라는 장치는 너무 섬세한 분야가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답이 없다고 해서 그걸로 끝은 아니다. 야야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고 아비가일은 동행한다. 야야가 뭔가를 찾는다면 아비가일 체제는 또 무너질 것이다. 바닥에서 정점을 올라본 사람은 다시 있던 자리로 돌아갈 수가 없다. 야야의 발견은 아비가일에게 위협으로 다가오고 그녀를 해치우고 싶지만 일말의 망설임이 막아선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했던가 함께 한 시간은 미묘한 신뢰를 만들었다. 루스 외스틀룬드는 어쩌면 이 작은 머뭇거림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지 않았을까? 토사물과 오물 같은 세상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가 기댈 곳은 그래도 사람이라는 소립자만 한 믿음이 필요한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첫댓글 좋은 리뷰 읽고 갑니다.
제가 어려워 할거같은 영화인데 리뷰를 보고 시도해볼만 하겠구나 싶네요.
감사합니다.
상영관이 너무 빨리 줄어들어 볼 수없었던 영화였는데
ott라도 올라오면 팔짱끼고 한걸음 뒤에서 넓게 봐봐야 겠네요.
좋은 감상편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소대장님 갓갓갓
역시 고급진 최상의 리뷰를 생산해주신 소대님께 감사 드려요.
권력의 삼각형은 뒤집어지면 역 삼각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권력이 정점을 차지한 삼각형 모양으로 되는거였어요.
ㅎㅎㅎ 이런 아이러니라니.
역시 은유 풀이는 소대가리님이 용해요 😀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한 영화 소개 프로에서 재밌게 봤는데 소대님 리뷰를 읽으니 결말이 궁금해지네요. ^^
지금 막 영화 보고 오는 길입니다 ^^ 나오자마자 소대가리님 리뷰 읽었습니다!! 생생하게 느껴져서 더욱 좋네요 ^^ 멋진 리뷰 감사합니다 😍 (멋진 글에 오타가 두 군데 보이는게 안타까워서 ~~ 수정해주시면 더욱 멋질거 같아요!!)
선리플 후리딩ㅎㅎ
루벤 감독작품 포스마주어 젤로 좋아합니다...
더 스퀘어도 좋았는데
이 영화가 꼴찌ㅋㅋㅋ
영화보고 읽을 꺼라고 아껴놨습니다 ㅎㅎ
영화 재미있게 잘 보고, 잘 읽었습니다^^
‘평등‘하고 싶은 그들의 모습들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마치 흔들리는 배안에서 밥 먹는 그들 마냥 속에서 뭔가가 올라와 멈칫하며 보곤 했네요. ㅎㅎ
대놓고 까니 거북하기도 재미있기도..
그래서 평단의 호불호가 이해가 갑니다 ㅋㅋㅋㅋ
왓챠에 올라와서 영화를 이제야보고 리뷰읽으러 왔어요. 역시 리뷰맛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