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중의적인 의미로 여전히 웨스 앤더슨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영화다. 이제는 인장처럼 새겨진 파스텔톤 화면에 인물의 정면과 옆만만을 담아내는 방식부터 서사의 진행을 트래킹샷으로 보여주고 고정 화면을 통해 관객과 거리 두기를 한다. 특정한 시대나 현장이 짐작되는 배경을 가져오긴 하지만 그것은 명백히 허구라는 사실을 전제하는 것 역시 웨스 앤더슨 답다. 다만 이번 작품에서 달라진 지점이 있다면 전작들에서 말하던 주제의식인 이제는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 접어두고, 현재와 닮은 어느 시점에 구멍 하나를 파두고 사람들을 모아 연극 한판을 펼친다. 풍요와 무지가 공존하던 시대를 재연하는 연극과 극이 만들어지는 외부의 요소, 또 그 모든 상황을 소개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이라는 액자를 통해 여전히 관객의 자리는 화면 속이 아님을 강조하고 장황하고 어지러운 장면과 대사 보다 판데믹 이후에 당신은 무엇을 잃었고, 어떤 방식으로 기억해야 하며, 누구와 연대해야 하는 가를 돌아보길 주문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웨스 앤더슨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이제껏 하지 않았던 새로운 이야기로 말을 건다.
웨스 앤더슨은 액자의 형태로 구성을 나누되 플롯과 플롯이 병치되는 구조를 가지게 만든다. 흑백인 외부는 연극 밖의 현실처럼 연극에 대해 설명을 하고 컬러인 연극에선 극작가가 머릿속에서 구현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이것은 현실과 가상의 간극은 결국 현실에 색을 더한 결과물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그러니 결국, 영화라는 예술이 가진 상상력은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액자가 지니는 의미>
액자 속 연극에서 인물들은 소행성으로 인해 만들어진 분화구가 있는 애스터로이드 시티로 모인다. 그곳에서 과학에 관심이 많은 우수한 아이들과 그 가족 구성원들이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그중 오기 스틴백은 아내와 사별을 했지만 덤덤하게 큰 아들을 위해 세 딸까지 챙겨 행사장으로 왔다.
또 한가족은 여배우인 멋지다. 그녀는 딸과 함께 참여를 위해 먼 길을 왔다. 밋지는 불화한 가정생활에 안정을 찾지 못했고 그들은 서로가 상처 입은 사람들임을 알아보지만 선뜻 표현을 하지 못한다. 그 와중에 오기의 아들 우드로와 밋지의 딸 다이나는 서로에게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은 연극을 위해 만들어진 무대와 소품 사이에서 연출가가 만든 대본을 연기하는 것뿐이다. 오기를 연기하는 존스 홀은 배역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면서 제4의 벽 너머로 극작가와 대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애스터로이드 시티가 가진 첫 번째 묘미는 여기서 발생한다. 관객은 오기를 연기하는 존스 홀, 그를 연기하는 배우 존스 슈워츠먼을 보는 것이다. 연기하는 배우를 연기하게 만들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현실과 만들어진 가상을 뒤섞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관객은 있었으나 보지 못한 것들, 알고 있었으나 애써 외면한 것들을 한번 더 보게 된다. 애스터로이드 시티라는 가상의 공간을 만들었지만
영화는 1950년대 미국을 가져온 듯한 다양한 상징들을 담아내고 있다. 밋지는 코미디 연기에 자신이 있지만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기 힘든 환경 속에서 있는 여배우로 마릴린 먼로를 떠올리게 되고, 오기 스틴백 역시 당대의 반항아였던 제임스 딘이나 이름에서 느껴지듯 저항적 글쓰기의 상징과 같았던 존스타인벡을 연상하게 한다. 사막에 당장 하는 외계인을 통해 로스웰과 핵실험에도 무감각한 사람들을 보여준다. 가장 풍요러웠고 무엇이든 변혁적으로 받아들이던 어느 때를 빌려와 액자의 한 부분으로 넣는다. 웨스 앤더슨은 콘래드의 말을 빌려 깨어나기 위해선 잠들어야 한다는 말을 한다. 현실과 허구는 영화 초반에 명확하게 구분이 되다가 서서히 그 경계를 허물어간다. 영화와 연극은 허구로 만들어진다. 그 허구는 냉정한 현실 자각이 아닌 우리가 진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한다.
< 분화구라는 상처 >
애스터로이드 시티가 보여주고자 했던 건 결국 상실과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파편화된 세상에서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아프고 외로웠다. 그들은 분화구라는 지구의 상처에서 외계 생명이라는 공통의 기억을 갖게 되고 같은 것을 본 이들은 서로의 말을 들어주기 시작한다. 그들은 전혀 이해받지 못하리라 믿었던 자신의 상처를 서로 내보임으로써 옅은 연대 의식을 갖게 된다. 그러는 한편 의외적 상황을 은폐하려는 이들도 있다. 군인들이다. 그들은 애스터로이드 시티에 외계인이 왔었다는 사실을 감추려 애쓴다. 사람들을 격리하고 여론을 조작하고, 질서를 만들고 통제를 통해 사람들을 관리하려 한다. 개인들은 분노하고 연대하여 저항한다. 그렇다고 그들의 연대가 끈끈하거나 강하진 못하다. 감정을 공유하지만 깊어지만 감당하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현실적 고민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웨스 앤더슨이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관계 맺음이 아닌가 싶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각자의 자리에서, 그것이야 말로 시대가 보듬지 못하는 아픔을 위로하는 최선의 방식이 아닌가 묻고 있다.
< 운명의 세 소녀 >
자신들을 마녀이자, 드라큘라라고 하는 스틴백의 딸들은 그리스 신화의 운명의 세 여신을 연상케 한다. 신화 속에서 여신들은 인간의 운명을 관장하며 실타래로 생사를 결정한다. 애스터로이드 시티에서 이 딸들은 엄마의 유골을 어디에 안치해야 하나를 두고 어른들과 대립하다. 이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다. 자라고 살아갈 존재는 떠난 이들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스틴백은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였던 당신의 부고를 처음 전하면서 별로 갔다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고 한다. 망원경으로 보는 별들은 손바닥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수광년의 거리를 두고 있다. 영화 속 인물들과 우리는 스크린만큼 가깝고 딱 그만큼 멀다. 웨스 앤더슨은 동화적인 색채와 상상력으로 세계를 만들고 그 속에 인물들을 넣는다. 그리고 우리에겐 “저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당신 이야기를 빌려다 쓴 배우입니다.”라고 한다.
첫댓글 너무 멋진 당신
좋은글 감사
당신의 2호팬으로 부터 ㅋ
오~ 영화 아직 안봤는데 소대가리님 후기 먼저 읽고 영화보는게 이해하는데 도움되겠네요! 멋진글 감사^^
아직 못봐서 백퍼 이해되지는 않지만 보게되면 다시 찾아보게하는
후기.. 최고입니다
기대하고 있던 작품인데 ㅎㅎ
리뷰 따라 영화에 접근해보고
영화보고 다시 리뷰 읽어본다~!!!
감사합니다~~~~
영화를 다시 봐야 할 것 같네요 쓰읍~
오늘 영화 소개프로그램에서 보고 궁금했는데 마침 올려주셨네요~ㅎ 멋진 후기 감사합니다~^^
지금 막 영화 보고 왔습니다.
소대님 멋진 후기 보다는 조금 약하지만 나름 멋진 영화였습니다.
흑백과 칼라를 넘나들며 현실속 티비극 설명, 연극 무대 위와 무대 뒤편, 그리고 연극속 무대 밖까지 연결시킨 극중 배역과 배우들의 연기, 연출자와 작가에 대한 반항도 표현하니 재밌군요.
외계인에 대한 미국적 국가 대응, 군인스러움, 과학자스러움을 묘하게 풍자하는 빠른 대사도 볼만한 거리였어요.
저는 볼...
3.5보다 조금 더 높은 점입니다. ㅎㅎㅎ 4점 까지는 못가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도, 저는 미장센만 보고 왔는데 영화에 이런 의미가 있었네요..
웨스 앤더슨 제 최애작품은 개들의 섬입니다
외계인 등장씬만으로 반짝반짝하지않습니까?!!
형식이 가끔 영화를 잡아먹기도 하구나 싶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