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상 / 이 문구
멍석 펴고 차려 낸 저녁상 위에
방망이로 밀고 민 손국수가 올랐다.
엄마는 덥다면서 더운 국물을 마시고
눈 매운 모깃불 연기 함께 마시고,
아기는 젓가락이 너무 길어서
집어도 집어도 반은 흘리고,
강아지는 눈치 보며 침을 삼키고
송아지는 곁눈질로 입맛 다시고.
처마밑의 제비 식구 구경났구나.
둥지 밖을 내다보며 갸웃거리며
누가 먼저 일등 먹고 일어나는지
엄마 제비 아기 제비 내기하는구나.
마당에 멍석 펴고 모깃불도 피워 놓고 식구들이 둘러 앉아 늦은 저녁을 먹는 그림이네요. 이 그림에서는 물론 식구들 등 뒤에 앉아서 침을 삼키는 강아지와 외양간의 송아지, 처마 밑의 제비 식구들도 빼놓을 수가 없지요. 70년대까지는 우리나라 시골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정경이었지요.
밀가루 반죽을 방망이로 얇고 널따랗게 밀어서 칼로 썬 손국수에는 애호박이나 햇감자가 들어가게 마련이지요. 며칠에 한 번씩 먹게 되는 손국수는 맛으로 먹었다기보다는 식량이 모자라던 시절 주식의 하나였지요. 매운 모깃불 연기와 함께 먹던 그 손국수의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제 모두 중년을 넘었겠군요.
박수근 화백의 그림처럼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우리 옛 삶의 모습을 이렇게 한 편의 동시에 담아놓는 것도 소중한 유산이 되겠지요. 이 작품을 쓴 이문구 선생은 텔레비전 드라마로도 방영되었던 ‘관촌수필’ 연작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인데, 걸쭉한 입담으로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해 토속적인 정서와 농민들의 애환을 담아내는 것으로 한국문단에 큰 자취를 남겼지요.
저녁상을 물리고 나면 초가지붕 위에 하얗게 박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반딧불이가 깜박이며 날아다니는 여름밤이 깊어가지요. 부채질을 하며 옛이야기를 들려주시는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별을 헤는 동안 냇가로 목욕을 하러갔던 어머니와 누나들이 돌아와 찐 감자와 옥수수를 내어오고...
머지않아 우리 세대와 함께 이런 것들을 내용으로 하는 추억이니 고향이니 하는 말의 의미도 사라지겠지요. 우리 다음 세대는 무엇을 고향으로 삼고 어떤 것을 추억으로 만들어 갈까요. 무엇이 그들의 정서와 인성의 바탕을 이루고 꿈과 그리움의 날개가 될 수 있을까요.
물질적 풍요가 추억도 그리움도 가난하게만 하는 건 아닌지, 기계와 속도와 사이버세계의 몰두가 더 삭막하고 비정한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지 않는지 이 한편의 동시가 그걸 묻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