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의 ‘곤이’와 ‘이리’는 순수한 우리말
‘북어국’과 대구탕의 차이
술꾼들이 가장 즐겨 먹게 되는 음식은 아마도 해장국일 것이다. 해장이란 원말인 해정(解酲)이 변한 말로, 술을 마셔서 쓰린 속을 풀기 위해 아침을 먹기 전에 술을 약간 마시는 것을 뜻한다. 원칙대로 하자면 해장을 하려면 술을 마셔야 한다. 해장의 사전적 의미가 그렇다는 얘기다.
그런데 술꾼들은 해장국으로 ‘북어국’을 많이 먹는데, 음식점의 차림표에는 ‘북어국’ 옆에 대구탕이 적혀 있다. 북어는 왜 국이고, 대구는 왜 탕일까. 국어사전에는 탕(湯)이 ‘국의 높임말’로 나와 있다. 탕과 국의 관계가 그렇다면, 왜 대구는 높여서 탕이고, 북어(北魚)는 그냥 국인가. 그리고 대구탕을 ‘대구국’, ‘북어국’을 북어탕으로 바꾸어 부를 수는 없는가의 의문도 생긴다.
여기서 표준말은 ‘북어국’이 아니고 북엇국이라는 점을 기억해두자. 북엇국은 국어사전에 <북어를 잘게 뜯어 파를 넣고 달걀을 풀어 끓인 장국. ≒북어탕>으로 나와 있다.
북어는 마른 명태다. 그 가운데서도 얼부풀어 더덕처럼 마른 북어를 더덕북어, 또는 황태라고 한다. 더덕북어를 두드려서 잘게 찢은 살은 북어보풀음이라 한다. 그러니까 북엇국은 북어보풀음으로 끓인 것이다.
명태, 생태, 노가리
그러면 도대체 명태는 무엇이고 북어는 무엇일까. 북어의 전신은 명태다. 북어는 말린 명태를 말하고, 건명태나 건태라고도 부른다. 얼리거나 말리지 아니한, 잡은 그대로의 명태는 생태이고, 얼리면 동태다. 선태(鮮太)는 갓 잡은 싱싱한 명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명태 새끼는 노가리라 한다.
강원도에서는 명태를 그냥 말리면 북어이고, 얼렸다 녹였다 반복해서 노랗게 말린 것을 황태라고들 말한다. 또 꾸들꾸들하게 반쯤 말린 것을 ‘코다리’라고 한다. 그러나 국어사전에는 ‘코다리’라는 말이 없다. 황태는 국어사전에 ‘더덕북어’로 나와 있고, 더덕북어는 ‘빛깔이 누르고 살이 연하며 맛이 좋은, 얼부풀어 더덕처럼 마른 북어’라고 되어 있다.
명란젓, 아감젓, 창난젓
명태로 만드는 젓갈도 살펴보자. 우선 알로 만든 것이 명란젓이다. 아가미로는 아감젓을 만들 수 있다. ‘아가미젓’이라고 하면 안 된다. 아감젓은 ‘생선의 아가미와 이리로 담은 젓’을 말한다.
또 한 가지의 젓갈을 만드는 재료는 바로 명태의 창자이다. 이 젓갈은 흔히들 ‘창란젓’으로 부르지만, 바른 용어가 아니다. ‘명태의 창자’를 이르는 말은 ‘창란’이 아니라 ‘창난’이 맞다. 젓갈 이름도 당연히 창난젓이다. 명란젓에 이끌려 ‘창란젓’이라 부르기 쉽지만 ‘알[卵]’이 아니므로 ‘창란’이라고 써서는 안 된다.
그러면 명태의 알주머니를 벗겨내고 알로만 담근 젓은 무엇인가. 그건 알밥젓이다. ‘알밥’은 알주머니에서 털어낸 명태 알의 알갱이를 말한다. 또 완전히 여문 명태 알은 ‘고운 알’이라 한다. 흔히 음식점에서 ‘명태알찜’라고 써 붙인 곳도 있는데, ‘명란찜’이 맞는 말이다.
곤이, 이리, 고지, 자래
명태 알인 명란은 익혀 놓으면 퍼석거리고 올강거리는 맛이 있다. 일식집에서 자주 듣는 말이라 그런지 몰라도, ‘곤이’와 ‘이리’를 일본말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 둘 다 순수한 우리말이다.
곤이는 ‘덜 성숙한 알’을 말하고, 이리는 생선의 수컷 뱃속에 있는 ‘흰 정액 덩어리’를 말한다. 이리를 어백(魚白)이라고도 표현한다. 수컷에서만 나오는 이리는 암컷에서 나오는 곤이보다는 물컹하면서 우유 맛이 나는 독특한 맛을 지녔다.
그리고 땅 불쑥하게 ‘고지’라는 말도 있는데, 그것은 ‘명태의 알, 이리, 내장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또 암컷의 한 쌍으로 된 알주머니는 ‘자래’라고 한다.
홀태, 알배기, 이리박이
뱃속에 알이나 이리가 없어서 배가 훌쭉한 생선을 ‘홀태’라고 하는데, 통이 좁은 바지를 뜻하는 ‘홀태바지’가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홀태의 상대 말은 무엇일까. 알이나 이리로 배가 부른 생선은 암컷의 경우 ‘알배기’, 수컷이면 ‘이리박이’라고 한다(여기에 나오는 ‘~배기’와 ‘~박이’도 틀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생선의 경우, 요리를 할 때 복어 말고는 내장을 버리는 것이 별로 없다고 한다. 특히 명태는 콩알만 한 쓸개만 떼어내고 다 먹는다는 것. 그런데도 요즘 젊은 주부들은 그 맛있는, 어쩌면 몸통보다도 더 맛있는 ‘부속품’(?)들을 다 들어내고 ‘빈껍데기’만 들고 간다는 게 생선전 주인의 말이다.♣
TIP -------------------------------------------
음식 이름의 띄어쓰기는?
‘표준국어대사전’ 편찬지침[l]에 있는 띄어쓰기 지침에 “음식 이름은 표제어 등재 여부에 관계없이 붙여 씀을 원칙으로 한다”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몇 가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음식 이름은 합성어로 보아, 감자튀김, 김치찌개, 순두부찌개, 아귀찜, 갈비찜, 티본스테이크, 생선구이, 굴비구이, 치킨버거, 감자샐러드, 마늘빵 등에서처럼 붙여 쓴다. 그러나 ‘저녁 식사, 주 요리, 특별 요리’ 등은 특정한 음식 이름이 아니므로 합성어가 아닌 한 띄어 써야 한다.
그리고 보신탕 집, 설렁탕 집, 보신탕 집, 곱창 집, 스파게티 집 등은 띄어 써야 한다. 자주 쓰는 말이라 한 단어처럼 생각될 수 있으나 아직 이 말들은 합성어로 사전에 등재되고 있지 않다. 명사와 명사가 이어진 구 구성으로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다.
한식집, 일식집, 국숫집 등은 개별의 음식을 파는 곳이라기보다는 음식의 종류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붙여 쓴다.
첫댓글 좋은 자료 잘 보고 갑니다. 특히 홀태는 잘 몰랐던 단어이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