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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와 구더기 /카를로 진즈부르그 /김정하 유재분 옮김
21. 피그미와 식인종
* 메노키오의 정신세계 확장
메노키오는 책 <멘더빌의 기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고 한다.
메노키오를 몹시 괴롭힌 것은 거기 인용된 상이한 법과 다양한 신앙 그리고 종교적 관습이 강조되었는데 맨더빌이 묘사한 먼 나라에 대한 대부분이 우화적인 서술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이를 통해 메노키오의 정신세계는 크게 확장되었다.
“이 땅의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법에 따라 살고 있다. 그러나 일부는 태양을, 일부는 불을, 일부는 나무를, 일부는 뱀을, 일부는 아침에 만난 첫 번째 대상을, 일부는 환영을 그리고 일부는 우상들을 숭배한다.”
위의 인용은 제2부에서 멘더빌이 인도 근처의 작은 섬인 카나에 대해서 기술한 것이다.
멘더빌이 기록한 신앙과 관습의 다양성은 메노키오에게 자신의 행위와 신앙의 근본에 대한 자문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대부분이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이러한 섬들은 그가 태어나서 살아온 세상에 대한 아르키메데스적인 관점을 제공하였다(예, 피크미와 식인종)
그는 자신이 읽은 것들에 대해서 수년 동안 되새김하였으며 단어와 구절들은 수년 동안 그의 기억 속에서 숙성되었다.
메노키오는 자신의 생생한 기억을 통해 단어들과 문장들을 섞어 반죽한 후에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예)지나치게 말라서 살이 없는 시신은 (먹기에) 나쁜 것이고 살이 많은 시신은 (먹기에) 좋은 것이 된 것이다. 좋은 그리고 나쁜 이라는 용어가 식도락과 도덕의 개념과 뒤섞이면서 죄의 속성이 살인자에게서 피살자로 옮겨졌다. 그러므로 좋은 사람은 죄가 없고, 나쁜 사람은 죄가 많다는 것이 된다는 이 시점에서 메노키오의 연역이 시작되었다.
즉 내세는 없으며 미래의 속죄와 고통도 존재하지 않는다. 영혼은 불멸의 대상이 아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메노키오는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본문을 도발적인 방식으로 왜곡시켰다. 메노키오가 이 책에 대해서 가지게 된 수많은 의문들은 그 속에 기록된 내용을 훨씬 초과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 본문의 기능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예, 식인종)
22. 자연의 하느님
23. 세 개의 반지
메노키오는 세 개의 반지(금지서적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서) 대한 전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1599년 7월 12일 제2차 심문과정에서) 176쪽
옛날에 한 위대한 군주가 자신의 귀중한 반지를 갖게 되는 사람이 자신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 말했습니다. 임종을 앞둔 왕은 자신의 반지와 똑같은 다른 두 개의 반지를 더 만들어 세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들이 받은 반지들은 너무나 비슷하여 진짜를 구분하기 불가능하였습니다.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아버지 하느님은 기독교인 터키인 그리고 유대인과 같이 당신을 사랑하는 많은 자녀를 가지셨고 그들 각각에게 자신의 계율에 의해 살도록 하셔서 우리는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모릅니다.(신앙의 동등함)
이제까지 우리가 보아온 모든 것은 메노키오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생각을 앵무새처럼 읊조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책에 접근하는 방식과 난해하고 어려운 진술은 독창적인 재구성의 확실한 증거이다. 지식인들의 논점과 민중들의 논점이 그의 독창적인 재구성을 통해서 어떻게 접목되는가를 더욱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멘더빌의 경우 다른 여러 종교의 부분적 진리에 비해 기독교가 우월하다는 주장을 동반하였으나 메노키오는 맨더빌이 구축한 인식의 범위를 끝없이 벗어나고 있었다. 메노키오의 종교적 급진주의는 비록 우연한 기회에 중세적 관용이라는 주제를 계기로 형성되기는 하였지만, 그보다는 당시의 인문주의적 사고를 갖춘 이단자들의 세련된 종교 이론으로 기울고 있었다.
24. 기록 문화와 구전 문화
메노키오는 거의 모든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다듬어 갔다. 그 결과 메노키오의 가장 비상한 주장들은 맨더빌의 여행기나 최후 심판의 역사와 같은 무해한 책들과의 접촉을 통해 형성되었다. 메노키오의 생각은 책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 기록된 내용들과 구전문화가 만난 결과였다.
25. 혼돈
* 메노키오의 우주론
메노키오는 자신의 우주론을 통해 창세기의 내용과 교회의 정통적 해석에서 벗어나 최초이 혼돈이 존재했음을 주장하였다. “흙 공기 물 불 이 모든 것은 혼돈 그 자체입니다” 라고
그는 <성서의 약술기>에서 읽었다고 하였으나 거기에는 혼돈에 대한 언급은 없다. <성서의 약술기> 제4장 어떻게 하느님이 4원소로 인간을 만들었는가에 대하여는 “태초에 하느님은 형태도 방식도 없이 원하는 모든 것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많은 물질을 만드셨다. 그래서 그것을 나누고 분할해서 4원소로 구성된 인간을 만드셨다.” 이 내용은 태초에 원소들이 구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면서 동시에 무에서서의 창조를 배제하고 있다. 그렇지만 혼돈은 언급되지 않았다.
<연대기 보유> 이 책은 아우구스티누스 교단의 은자인 야코포 필립포 포레스티에 의해 씌어졌다. 이 연대기는 15세기에 씌어졌지만 골격은 중세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연대기의 내용은 우주의 창조로 시작된다.
오비디오는 자신의 저술의 시작 부분에서, 다른 철학자들도 구체적인 형상을 갖추지 못한 거대한 물질을 혼돈이라고 불렀다. “세상의 모든 것을 구성하는 땅 바다 하늘이 존재하기 전에 자연은 그 공간 속에 하나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철학자들은 거대한 미완의 형태를 가진 이 물질을 혼돈이라고 불렀다. 그 무게를 알 수 없는 이 물질은 느리게 움직일 뿐이며 내부의 동일한 공간에 모여 있다. 그리고 완벽한 결합을 이루지 못하여 조화를 상실한 씨앗들이다.”
포레스티의 생각은 성서와 오비디오의 이념을 결합시키는 것에서 출발하였지만, 전자보다는 후자의 생각에 근접된 우주론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태초의 혼돈과 거대하고 미완의 형태를 가진 물질에 대한 이념은 메노키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는 오랜 심사숙고 끝에 자신의 머리 속에서 형성된 이 혼돈에 관한 다른 사실들을 유추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려고 하였다.
“내가 듣기로는 –조반니 포볼레도가 말하기를-테초에 이 세계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거품과 같은 것이 바닷물에 부딪혀 마치 치즈처럼 엉켜 있다가 후에 그 속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구더기들이 태어나서 인간이 되었지요. 이 구더기들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현명한 것은 하느님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복종하게 된 것입니다.” 라고
이것은 적어도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걸러진 매우 간접적인 증언이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메노키오가 자신이 생각한 우주 진화론의 주요 부분은 건드리지 않은 채 그 요소들을 다양하게 변화시켰다는 사실이 점차 분명하게 드러났다.
“앞서 성명한 그 혼돈의 영원한 하느님이 치즈를 만드는 가장 완벽한 방식으로, 가장 완벽한 빛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빛으로 우리가 천사라고 부르는 정령들을 만들었으며 그들 가운데 가장 존귀한 자를 선출하여 세상의 모든 지식, 모든 의지와 권력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령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이 성령이 하느님에게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들도록 하였다고 믿습니다.” “이 하느님은 혼돈 속에 있으면서, 물속에서 육신이 팽창하는 것처럼, 혹은 숲속에서 몸이 부풀려지는 사람처럼 계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지성은 지식을 부여받으면서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부풀려지고 싶어 했습니다.”
심문관이 “하느님은 영원했고 늘 혼돈과 같이 계셨는가?” 묻자 메노키오는 “저는 그 둘이 늘 함께 있었고 한 번도 분리된 적이 없으며 하느님이 없는 혼돈, 혼돈이 없는 하느님은 결코 존개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26. 대화
27. 신화적 치즈와 현실의 치즈
다양한 신학적 용어들이 동원된 상황에서도 하나의 일관된 관점이 있었다. 이는 신성이 천지를 창조하였다는 것에 대한 거부였다. 또한 이 점과 더불어 가장 기이한 것은 메노키오가 치즈와 이 식품에서 생겨난 구더기, 즉 천사들을 고집스럽게 되풀이하였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 부분은 단테 아리기리에의 <신곡>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비 천사로 태어난
구더기들
이 구절에 대한 벨루텔로의 주석에 즉“하늘에서 쫓겨난 검은 천사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하느님이 창조하신 천사, 즉 신성”은 문자 그대로 메노키오가 가지고 있는 우주관의 또 다른 여정을 반영하고 있다.(하느님은 하늘에서 추방된 천사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아담과 이브, 그리고 수많은 종족들을 만드셨습니다.)
실제로 메노키오는 자신의 우주관을 책에서 취하지 않았다. 그가 치즈와 구더기를 반복적으로 언급한 것은 단지 비유적인 설명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메노키오는 살아 있는 생명체들이-이들 가운데 가장 완전한 존재는 천사들이다-신의 개입에 의존하지 않고 혼돈과 무질서하고 거대한 물질로부터 탄생하였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치즈에서 구더기들이 발생하는 일상의 경험을 인용하였다. 혼돈은 더 이상 이상적으로 정의되지 않는 성스러운 권위에 우선한다. 혼돈으로부터 최초의 생명체들, 즉 천사들과 이들의 위대한 존재인 하느님이 자연에 의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메노키오의 우주관은 근본적으로 유물론적이며 그리고 과학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무생물로부터 생명체가 자연스럽게 발생한다는 학설은 이 시대의 모든 지식인들이 공감하던 이론이었다. 사실 이 이론은 구약의 창세기에 기초한 로마 교회의 창조설에 비해 훨씬 과학적이었다.(193쪽)
치즈의 응고와 지구를 형성시킨 혼돈 상태의 응고가 우리에게는 유사하게 보이지만 메노키오에게는 분명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비유를 제시하면서 메노키오는 자신도 모르게 먼 시대의 신화들을 도입하였다. (인도의 <베다>신화와 그리고 칼무키족(알타이) 사람들의 신화)
특히 칼무티족 사람들에 의하면 “태초에 이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그리고 그것은 바닷물에 의해 거품처럼 휘저어졌고, 치즈처럼 응고되면서 그 속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구더기들이 태어났다. 이 구더기들은 인간이 되었고, 이들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지혜로운 자가 하느님이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단순화되었을 가능성만 제외한다면 이것은 메노키오가 한 말이나 다름없었다.
메노키오는 실제의 치즈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었다. 그는 전혀 신화와는 관계없는 것으로서 만드는 것을 수없이 보았거나 직접 만들어본 바로 그 치즈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반면에 알타이족의 목동들은 동일한 경험을 우주론적인 신화로 해석하였다.(신화적 치즈와 현실의 치즈) 그러나 그것은 언어의 차이를 넘어 과학에 신화를 접목시킨 우주론의 천년 전통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명백한 증거이다.
28. 지식의 독점
29. 『성서의 약술기』의 용어
메노키오는 자신이 일상적인 언어로 진술한 증언에 사용했던 박식한 어휘들 즉 ‘산모의 자궁 속의 유아’ ‘떼거리’ ‘목수’ ‘ 긴 의자’ ‘직공’ ‘치즈’ ‘구더기’ 이외에도 불완전, 완전, 실체, 물질, 의지, 지성 그리고 기억 같은 용어들을 <성서의 약술기>에서 인용했다.
이 책은 메토키오에게 세상에 대한 그의 전망을 형성하고 표현하기 위한 언어적이고 개념적인 수단들을 제공한다. 그 외에도 이 책은 잘못된 결해들에 대한 추후의 반박과 학자적 진술 방식에 기초한 표현 기법으로 메노키오의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이바지 했다.
메노키오는 농민들이 수 세대에 걸쳐 형성한 유치한 유물론과 본능을 기독교와 신플라톤주의 그리고 스콜라 철학이 뒤섞인 용어들을 사용하여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30. 비유의 기능
31. 주인, 관리인, 일꾼
주인- 하느님
관리인- 교황
일꾼- 천사(치즈에서 구더기가 생겨나듯이 자연에 의해서 세상의 가장 완벽한 물질로 만들어졌다고)
재료- 육체노동
* 세상을 창조하는 일에 참여한 것은 조수들과 일꾼들 즉 천사들이었다.
이러한 반복적인 비유들은 기독교의 핵심적인 인물들을 일상의 삶 속에 녹여 이들에게 좀더 친숙하게 다가가고 이해하려는 욕구를 반영하고 있다. 심문관들에게 자신의 직업이 방앗간 주인 이외에 목수, 벌목꾼, 석공이라고 대답하였던 메노키오에게 하느님은 목수나 석공과 유사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풍부한 비유에서는 보다 심오한 의미가 드러난다.
그의 철저한 물질주의적 관점은 창조주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물론 어떤 한 하느님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이때의 하느님은 멀리 떨어져 있는 하느님으로서 마치 대리인들과 일꾼들에게 자신의 밭을 맡긴 토지 주인과 같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혹은(그리고 그것은 동일한 존재였다)-아주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은 재료들과 용해되어 세상과 하나가 되었다. “저는 이 세상 전체, 즉 공기와 흙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이 하느님이라고 믿습니다........인간은 하느님의 이미지와 형상으로 만들어졌고, 인간 내부에는 공기 불 흙 그리고 물이 존재하며 (이러한 사실로부터 공기 불 흙 그리고 물이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위의 글에서처럼 성서나 <성서의 약술기>와 같은 문헌을 자유롭게 해석한 메노키오의 놀라운 추리력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