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젠더 갈등과 세대 갈등의 소통을 위하여’라는 거창한 부제를 붙인 저자의 새로운 저작이다. 이른바 ‘이대남’이라고 호칭되는 20대 남성들의 ‘반페미니즘’의 성향을 논하면서, 그 특징들을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서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한 ‘편파적 공감’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그것과 다른 주장들은 외면하는 태도에서 찾고 있다. 일견 저자의 진단에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공감’이 지니는 일부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제발 공감하지 말아 달라.’고 말하는 저자의 진단에는 동의하기 힘들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오히려 현재 그릇된 공감의 태도나 방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타당하지, 일부 문제가 있다고 해서 ‘공감하지 말라’고 단정적으로 토로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분적인 것을 전체인 것처럼 전제하고 논리를 이끌어가는 이른바 ‘일반화의 오류’의 사례는 저자의 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을 정도이다. 끝까지 일독한 결과 이 책에서는 젠더 갈등과 세대 갈등의 ‘현상’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다루고 있지만, 정작 ‘소통’의 문제는 피상적인 의견에 머물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한류의 주역 X세대에 경의를 표한다’라는 제목으로 이른바 ‘X세대’ 예찬론으로 맺는 것도 뜬금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언제부턴가 저자의 글은 냉철한 비판이 무뎌지고, 언론들에서 주로 다루는 ‘사회 현상’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결과 한때 보수언론들과 사회의 그릇된 정치 문화에 냉철하고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했던 저자의 글들은 이제 양시양비론에 그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 원인은 저자의 책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고 하겠는데, 지나친 ‘인용 저널리즘’으로 인해 인용이 저자의 의견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언론과 SNS에서 활발하게 소구되는 주제들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정작 저자의 글에서는 저자의 '의견'으로 자리를 바꾼 각종 '인용'들만이 넘쳐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신문방송학’이라는 저자의 전공 분야의 특성 상 언론과 기타 대중들의 반응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저자의 주장이나 견해마저 인용문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할 수 있다.
더욱이 저자가 인용하는 자료들은 대체로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들에 게재된 기사이기에, 그들의 논조에 동화되는 듯한 양상을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이른바 ‘진보언론’이라고 일컬어지는 언론의 기사도 눈에 띄지만, 개별 기사의 인용의 논조나 빈도는 보수언론에 기울어져 있다고 파악된다. 이러한 인용 자료의 편향은 그대로 저자의 글에 녹아들어, 보수 언론에서 제기되는 사건 혹은 현상에 매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판단될 정도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 제기되고 있는 ‘젠더 갈등’과 ‘세대 갈등’의 문제는 심각하고, 이것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동의한다. 전체적으로 저자가 포착한 주제들이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현상의 진단과 달리 그에 대한 해법은 추상적인 주장에 그치고 있다는 점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사회적 갈등의 ‘상황’만을 강조하면서 모든 책임을 기성세대에게 돌리는 듯한 진단에는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특히 이러한 상황을 만든 것에는 저자가 주로 인용하고 있는 보수 언론들과 SNS에서 넘쳐나는 그릇된 논리들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에, 그 ‘현상’을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주장이 지닌 문제점을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아마도 저자가 평생 해온 글쓰기의 방법이 쉽게 고쳐질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기에, 다만 그러한 방식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강하게 제기하고자 한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