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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중남미라고 칭해지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그동안 그리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지리적으로도 그렇고 또한 정치적 상황이나 그밖의 다른 요인으로도, 그 지역은 간간히 언급되는 뉴스를 통해서만 접했을 뿐이다. 물론 이전에 영화 ‘일 포스키노’에 등장하는 파블로 네루다라는 시인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이라는 작품 등을 통해서 어렴풋하게 그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나라가 유럽의 식민지를 경험했기에, 그들의 근현대사는 식민지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연속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내용이다. 네루다를 제외하곤 라틴아메리카 시인들에 대해서 접해볼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네루다에 관해서도 역시 영화나 그밖의 문헌을 통해서 단편적으로 이해했을 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에게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실체에 다가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소외된 영혼을 위한 해방의 노래, 라틴아메리카 문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이 책에서 다룬 시인들은 모두 4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근현대 중남미의 혁명에 대한 역사를 전제하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시인들의 작품들을 ‘해방의 노래’라고 이름 붙이는 것도 다소 과장된 것이라 여겨지기도 했다. 물론 시인들의 삶은 ‘혁명의 시대’를 관통하면서, 그에 대한 감성을 충분히 담아내고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예컨대 영화 ‘일 포스티노’에 등장하는 네루다는 정치적 이유로 망명을 선택했고, 이탈리아의 작은 섬에서 사람들에게 문학적 영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러한 과정은 이 책에서도 네루다의 작품 세계와 그 의미를 다루면서 충분히 언급되고 있다.
모두 4명의 시인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작품 세계와 그 의미를 살피고 있는 이 책은 모두 5개의 항목으로 목차가 구성되어 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노래하다’라는 제목의 1부에서는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문학에 대해서 소개하면서, 특히 시 분야에 대한 문학적 성취를 다루고 있다. 비록 우리에게는 문학적으로 ‘이름 없는 변방’으로 이해될 지는 몰라도, 시를 사랑하는 그들의 정서는 ‘돌멩이마다 시인이 튀어 나오는 곳’이라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하다고 한다. 이어서 2부에서 5부까지는 각각 루벤 다리오, 파블로 네루다, 세사르 바예호, 니카노르 파라 등 4명의 시인들을 소개하고 있다.
2부에서 다뤄지는 니콰라과 출신의 루벤 다리오는 그의 탄생 1백주년을 맞아 칠레에서 기념우표가 발행됐을 정도로, 오히려 칠레에서 더 유명한 시인이라고 한다. 그곳에서는 ‘시인들의 시인’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라틴아메리카의 근대문학을 열었던 인물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당시의 정치 상황에서 문학과 정치를 공유해야만 했던 시인의 삶은 ‘앞 세대와 의미 있는 단절을 가져옴으로써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다리오는 시의 형식에 대해서 의미 있는 변화를 추구한 시인으로 여겨지는데, 번역된 내용을 통해서는 그것을 자세히 음미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물론 나 자신이 스페인어를 못하기 때문에, 그의 시 원문을 보더라도 이해를 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3부에서는 파블로 네루다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그를 소재로 만든 영화 ‘일 포스티노’를 곳곳에서 소개하고 있다. 나 역시 이 영화를 여러 번 관람했으며, 때로는 영화 속에서 소개되는 그의 시를 찾아서 읽었던 기억도 가지고 있다. 영화는 주로 네루다의 망명지 생활만을 소개하고 있지만, 그의 삶은 칠레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에 바쳐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 책에서는 주로 시인의 여성 편력과 그와 연관된 작품 세계들을 소개하고 있어, 조금은 아쉽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4부에서는 페루의 시인 세사르 바예호를 ‘영혼을 위로하는 시인’이라는 관점에서 소개하고 있다. 중남미의 혁명가로 살았던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의 밀림에서 체포되었을 때. 네루다와 바예호를 비롯한 시인들의 시를 필사한 노트를 소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혁명을 꿈꾸던 체 게바라에게 그들의 시는 혁명의 정신을 키우고 때로는 마음의 안식을 안겨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마지막 5부에서는 ‘반시(反詩)’라는 개념으로 라틴아메리카 문학사에 확실한 족적을 남겼다고 평가되는 칠레의 시인 니카노르 파라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그의 시 세계와 유사한 시적 지향을 보이는 한국의 시인으로 황지우와 박남철을 들고 있다. 박남철이 보다 난해한 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면, 개인적으로는 황지우의 작품들에서는 정형적인 시의 형식을 파괴하면서 그 안에 시대 정신을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한 작품들에서도 파라의 ‘반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더 많은 작품을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4명의 중남미 시인들의 작품과 작품 세계를 접했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이 다소 낯설게 느껴지고 있다. 다만 예전에 비해서 그 거리가 조금은 줄어들었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자 한다. 저자는 책의 앞 부분에서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주요 키워드들에 대해서 설명을 덧붙이고 있으며, 각 항목의 뒤편에는 ‘묻고 답하기(Q/A)’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때문에 그들의 역사와 정치 상황, 그리고 우리 문학과의 연관성 등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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