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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이 어찌하든지 하나님이 반드시 나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확신하며 살아야
은성: “아버지, 무슨 염려되는 일이라도 있어요?”
아버지: “왜?”
은성: “얼굴이 평소처럼 밝지 않아서요.”
아버지: “사실은 친구 한 명이 결국 교회에 나오지 않겠다고 말하고 앞으로는 자기에게 신앙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단다.”
은성: “그래요? 누구에 대한 말씀인지 알 것 같아요. 그래서 아버지 마음이 많이 아프셨군요.”
아버지: “그래서 데살로니가후서 3장 1-2절의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는 말씀이 자꾸 생각나구나. 말씀을 들은 자들 중에는 잘 받아들임으로 말씀이 퍼져 나가면서 영광스럽게 되기도 하지만, 어떤 악한 자들은 그 말씀을 거부하고 말씀 때문에 오히려 핍박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은성: “한참 동안 잘 믿는 것처럼 보이고, 열심히 봉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분들 중에도 어느 순간에 믿음을 저버리는 일이 있는 것 같아요.”
아버지: “그런 일은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고, 군대에서 믿겠다고 하고 세례까지 받았던 사람들 중에서와 학생 선교단체에서 믿음을 고백하고 열심히 봉사하던 사람들 중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지.”
은성: “제 친구 한 명도 그동안 부모님들과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했는데 고등학생이 되면서 집에서만 예배를 드리고, 교회에는 나가지 않겠다고 하더니,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집에서 예배하는 일도 중단해 버렸대요. 기독교 뉴스를 보니 지난 몇 년 동안 코로나-19 때문에 한 교단만 10만 명의 교인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교회도 많이 문을 닫았고요.”
아버지: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주변의 사람들 중에도 코로나 때문에, 혹은 교회에서 일어난 문제 때문에 교회 출석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은성: “아버지, 그러면 누군가가 지금 믿는다고 해도 끝까지 믿는다는 것을 어떻게 보장하지요? 그리고 우리도 나중에 믿음을 떠날지도 모르는 일 아니어요?”
아버지: “중요한 질문이다. 오늘은 그 문제에 대해 정리하기로 하자.”
은성: “솔직히 저는 요즘 전 세계가 거의 반기독교적으로 되고,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교회들이 예배처소의 문을 닫고 이슬람 사원이나 공연 시설 심지어 술집으로 팔린다는 글을 읽고 충격이 컸거든요. 그리고 성경을 읽다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는 말씀을 읽으면서 과연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 궁금하고, 한편으로는 혹시 나도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불안감을 느꼈어요.”
아버지: “네가 그런 진지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 안심해도 좋다는 표시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을 잘 보면 잠깐 믿다가 믿음을 떠나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려주고 있으니까 그런 일에 대하여 놀라거나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은성: “성경 어디에 그런 말씀을 해 놓았어요?”
아버지: “몇 군데 이야기해 볼까? 먼저 씨 뿌리는 비유를 보자.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마 13:18-22)’ 여기에 보면 천국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 기쁨으로 말씀을 받지만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 견디지 못하고 곧 넘어지는 사람, 말씀을 들어도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믿음에서 떠날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할 것이다.”
은성: “잘 알겠어요. 또 무슨 말씀이 있어요?”
아버지: “히브리서 10장과 11장에 보면 초대 교회 성도들이 받은 박해는 정말로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로마 관리들에게 잡혀가면 우선 심한 고문을 받아야 했고, 조롱과 채찍질과 결박을 당하고 옥에 갇히는 시련을 받았으며, 돌에 맞아 심한 상처를 받거나 죽어야 했다. 그리고 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하거나, 칼로 죽임을 당하였고, 도망 다니는 사람들은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며 가난하게 살아야 했다. 차마 감당하기 어려운 수많은 환난과 학대를 받으면서 어떤 사람들은 배교하는 일이 생겼다. 그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히 2:1-4) 그렇게 주의를 주신 다음에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히 3:12-14)고 확실하게 경고하신다. 히브리서 2장과 3장 전체를 읽으면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은성: “아버지 말씀만 들어도 제법 이해가 잘 되는 것 같아요.”
아버지: “히브리서 저자는 나중에 더욱 분명하게 말씀한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히 10:26-31)
은성: “아버지, 그런 말씀은 잘 이해하겠지만 문제는 우리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 확실히 구원을 받은 사람이요, 끝까지 믿을 사람인 것을 어떻게 알아요? 지금 저에게는 그것이 중요한 문제이거든요.”
아버지: “네 말이 맞다. 그러면 지금부터 우리가 어떻게 구원의 확신을 갖는지, 그리고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우병훈 교수님의 글에 보니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사실 구원의 확신은 신앙에서 너무나 중요한 요소이다. 확신 있는 믿음은 회개, 칭의, 성화, 회심, 양자됨, 인침, 견인, 기름부음, 증거, 순종, 은혜, 죄를 극복함, 그리스도와의 연합 등과 연결된다. 구원의 확신은 신자의 믿음의 다양한 순간에 여러 가지 열매를 맺게 하는 귀한 신앙의 요소이다. 무엇보다 구원의 확신이 있으면 복음을 전파하게 된다. 그래서 청교도 토마스 브룩스는 ‘확신 있는 영혼은 천국에 동료 없이 가고자 하지 않는다.’라고 했고, 토마스 굿윈은 ‘확신은 신자로 하여금 10배나 더 하나님을 위해 살게끔 만든다.’라고 했다. 조엘 비키는 구원의 확신 교리가 이토록 중요하기 때문에 목회자는 구원의 확신 교리를 잘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동감이 되는 중요한 말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은성: “제 주변의 어떤 분들은 ‘지금 어떻게 천국에 갈 것을 확신할 수 있느냐? 죽어보아야 알지 않느냐?’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던데요. 교회에 상당히 오래 다니신 분들 중에도 그런 분들이 있어요.”
아버지: “우리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영향을 받는 것은 좋은 일이 못될 때가 많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며, 경험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우리의 판단은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자기의 선입견이나 주관이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객관성이나 공정성이 많이 부족하지. 그것보다도 우리는 먼저 성경을 살펴보고, 종교개혁자들이나 청교도들의 신앙과 삶을 살펴보는 것이 안전하다. 성경에 보면 살아갈 때는 물론 죽을 때에도 확신이 돋보이는 분들이 있지.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을 보면 아직 자식이 하나도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실 때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겨주셨다. 나중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할 때에는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9)는 인정을 받을 정도로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이삭과 야곱과 요셉은 임종시에 확신을 가지고 축복을 하였다.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히 11:20-22) 요셉이 자기 뼈를 가나안에 묻도록 출애굽할 때에 가지고 가라고 한 것(창 50:22-26)은 장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들의 믿음이나 생활이 100% 온전하지 않았고, 부족과 실수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베푸신 은혜와 인도에 대해서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던 것을 보아야 한다.”
은성: “듣고 보니 확신이 분명한 분들이 많았네요. 그러면 모세나 다윗이나 다니엘이나 그의 세 친구도 생각해 볼 수가 있겠는데요.”
아버지: “맞다. 대표적으로 다니엘의 세 친구의 말을 보기로 하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6-18)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그리고 자신들의 신실한 충성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대답하는 것을 배우고 싶구나.”
은성: “사무엘 같은 사사나 엘리야를 비롯한 선지자들이나 여호야다와 같은 제사장들도 그런 확신을 가지고 산 사람들이 맞지요?”
아버지: “그렇지.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인 베드로 사도의 말과 요한 사도의 말을 들어보기로 하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벧후 1:16-18)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요일 1:1-2) 그들은 자기들이 너무나 분명하게 경험한 바를 확신하면서 담대히 전하고 있다. 사도행전에서 그것을 잘 볼 수 있지 않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행 4:19-20) 무서운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이렇게 담대히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은성: “그렇다면 세례자 요한도 마찬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아버지: “그렇지. 그리고 사도행전 7장에 나오는 스데반을 보면 죽어가면서도 얼마나 확신에 차서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니?”
은성: “아, 얼마 전에 왈도파에 대한 동영상 강의를 보았는데 엄청나게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하였더군요. 위그노들 이야기도 함께 하던데 그들이 확신이 없었으면 금방 배교하고 편안한 길을 택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을 보면서 저도 용기가 났어요.”
(https://www.hapdong.ac.kr:446/bbs/board.php?bo_table=e06&wr_id=1279&page=2)
아버지: “그렇지. 종교개혁이 일어나던 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종교재판을 받아 화형을 당하고, 물속에 던져지고, 사지가 찢어져 죽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여러 이슬람 국가들이나 중국과 북한과 같은 공산국가들에서는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은성: “저도 알아요. 얼마 전에 제가 동영상을 하나 받았는데 북한의 기독교인에 관한 것이었어요. 지금도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수용소에 갇혀 무서운 고문을 당하며 혹독한 노동을 하면서도 믿음을 지키는 분들이 살아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아요. 그리 길지 않으니까 아버지도 한 번 보시면 좋겠어요.”
아버지: “알았다. 꼭 보마. 우리가 잘 알고 기도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도저히 하루를 버티기 어려운 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곳곳에 있다는 것을 알면 우리나라의 사회 형편이 너무나 자유롭다 보니 신앙이 나태해지고 세상의 흐름에 함께 떠내려가고 있지 않은지 염려가 많다.
은성: “그러니까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친구분이나 제 친구 같은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교회에는 다니되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분명하지 않아서 조금만 어려움을 당하거나 박해를 받으면 쉽게 떠나가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아버지: “우리는 그런 것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이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요 9:25)라고 고백한 자세를 본받아야 한다. 세상에서는 별 이론과 철학으로 우리의 신앙을 조롱하고 거부하고 파괴하려고 하지만 우리는 분명하게 경험하고 확신한 것이 있으니 조금도 양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은성: “그래요. 동요에 나오는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 기차소리 요란해도 아기 아기 잘도 잔다. 기찻길 옆 옥수수밭 옥수수는 잘도 큰다.’라는 가사처럼 우리는 어떤 외부의 헛소리에도 흔들리지 않고 우리의 할 일을 잘 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바울 사도가 하신 말씀을 많이 생각해요.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1-12)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아버지: “대단한 말씀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부활에 대하여 길게 가르쳐 주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7-58) 확신은 10배나 더 하나님을 위해 살게끔 만든다는 토마스 굿윈의 말씀이 틀림없는 말이라는 것을 증명한 사람이 바울 사도라고 할 거야.
은성: “그래도 가끔 과연 구원을 확신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아버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의심한다는 것과 불신한다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한두 번 자신의 구원에 대해 의심해 본 경험이 있다. 만일 의심이 있다고 하면 과연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지(고후 13:5) 자신들을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의심하면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염려하거나, 자신의 구원에 대해 거듭해서 관심을 갖거나, 자신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끼일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그리스도인들과 함께하는 것이 보인다면 그것은 불신앙과는 다르다. 물론 계속해서 의심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자신을 드리는 일이 필요하다.”
은성: “제 생각에는 의심이 생길 때에는 확신에 관한 성경 말씀을 많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아버지: “그렇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1장 12-13절, 3장 16절과 36절, 로마서 5장 1-11절, 8장 31-39절, 베드로전서 1장 7-9절, 요한일서 4장 16-17절, 5장 9-13절 등을 자주 읽으면 우리를 확실하게 구원하신 하나님을 든든히 믿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늘 깨어서 기도하고 시험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베드로 사도의 말씀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10-11)
은성: “방금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을 검색해 보니 이것과 관련하여 이렇게 가르치고 있네요.
79문: 참된 신자가 그들의 불완전함과 그들을 덮치는 많은 시험과 죄 때문에 은혜의 상태에서 떨어질 수 있습니까?
답: 참된 신자들은 하나님의 변할 수 없는 사랑과 견인을 주시는 그분의 작정과 언약과 그들이 그리스도와 나뉠 수 없이 연합됨과 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지속적인 간구와 그들 안에 거하는 성령과 하나님의 씨 때문에 은혜의 상태에서 완전히 최종적으로 떨어지는 일이 없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키심을 받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릅니다.
80문: 참된 신자는 자기가 은혜의 상태에 있으며 그 가운데서 견인하여 구원에 이를 것을 틀림없이 확신할 수 있습니까?
답: 그리스도를 참되게 믿고 그분 앞에서 모든 선한 양심으로 행하려고 힘쓰는 사람들은 비상한 계시 없이도 하나님의 약속의 진리 위에 굳게 선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자기들 안에서 생명이 약속되어 있는 은혜들을 확인할 수 있게 하시고 그들의 영과 더불어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은혜의 상태에 있으며 그 가운데서 견인하여 구원에 이를 것을 틀림없이 확신할 수 있습니다.
81문: 참된 신자는 누구나 자기가 지금 은혜의 상태에 있고 장차 구원받을 것을 언제든지 확신합니까?
답: 은혜와 구원에 대한 확신이 믿음의 본질에 속하지 아니하므로, 참된 신자는 그 확신을 얻기까지 오래 기다려야 할 수 있고, 그 확신을 누린 후에도 다양한 언짢음과 죄와 시험과 버림당한 상태로 말미암아 확신이 약하게 되고 중단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성령께서 임재하셔서 도우시는 까닭에 완전한 절망에 빠지는 일은 없습니다.”
아버지: “오늘 우리의 이야기를 잘 정리하여 요약하고 있구나. 네 말을 들으니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36문의 ‘문36. 의롭다 하심과 양자로 삼으심과 거룩하게 하심에 금생에서 따라오거나 거기서 나오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답: 의롭다 하심과 양자로 삼으심과 거룩하게 하심에 금생에서 따라오거나 거기서 나오는 유익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함과 양심의 평안과 성령 안에서 얻는 기쁨과 은혜의 많아짐과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라는 가르침이 생각나구나.”
은성: “결국 우리 신앙의 선생님들은 진작부터 구원의 확신과 끝까지 보존하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하게 가르치셨네요. 이제부터는 주변의 누군가가 신앙을 버리고 배교한다고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네요.”
아버지: “그래. 케빈 밴후저(Kevin J. Vanhoozer)라는 분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은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지, 자신이 얼마나 신실한가를 하나님께 보여드릴 필요는 전혀 없다.’ 내가 비록 형편없는 자일지라도 내게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기어코 나를 구원하실 것이며, 이 사실에 대한 믿음이 우리로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 ‘나는 반드시 구원받는다’는 진술보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 ‘하나님이 반드시 나를 구원하실 것이다’는 진술을 더 좋아해야 한다. 나도 친구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앞으로는 확신을 가지고 살았던 분들의 삶을 본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야 하겠다.”
은성: “그래요. 저도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18-20)라는 말씀을 생각하며 숱하게 쏟아져 나오는 거짓된 말은 거부하고, 오직 영원히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눈을 고정시키고 담담히 살아가겠어요. 오늘도 아버지 덕분에 많은 것을 생각하고 알게 되어서 감사해요.”
아버지: “나도 네 덕분에 마음 정리를 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