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의 영화 세계를 어떤 테마로 묶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그간 그가 다뤄온 소재를 보면 헐크, 미국의 남북전쟁, 영국의 고전, 중국 문화권에 관한 이야기 등 좀처럼 공통점을 찾기 쉽지가 않다. 그만큼 사고가 자유롭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다루는 능력이 있다고 보이는 반면에, 감독으로서 그려내고자 하는 세계가 어떤 것인지 아리송한 측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의 코스모폴리탄적인 감각의 기원에는 아버지란 존재가 있다. 1954년 대만에서 태어난 그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아들이었다. 유교를 근본으로 하는 가정에서 교직에 몸 담기를 바라는 부모의 바람은 두 번의 대입시험 낙방이라는 결과로 저버리게 되고 예술학교를 입학해 영화에 입문한 그는 뉴욕 대학에서 학업을 마친다. 그의 초기작인 <쿵후 선생>, <결혼 피로연>, <음식남녀>는 아버지라는 주제를 가지고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 그가 겪어온 세월의 무게와 전통이라는 가치관이 현대와 어떻게 격돌하고 맞물려 가는 가를 보여준다.
<쿵후 선생>에서 흔들리는 전통적 가치관을 보여주고, <결혼 피로연>을 통해 그것을 받아들이는 아버지를 비춘다. 근대라는 시대성과 미국이라는 낯서누공간에서 대만인이라는 경계인으로써의 의미를 그려냈다면 <음식남녀>는 대만 안에서 가족의 의무와 자유 의지가 충돌하는 과정을 한 가정의 모습을 통해 이야기한다. 16년 전 아내를 먼저 보내고 세 딸을 홀로 키운 주사부는 이제 지쳤다. 정성한 딸들은 아버지를 모셔야 하지만 1990년대 대만은 전통적 의미에 가족보다 개인의 자유 의지가 중요시되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는 영화 속에서 아버지의 음식과 딸들의 일상을 대비시킴으로써 표현되고 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일요 모임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주사부의 모습은 중국 그 자체를 담는다. 생선을 잡아 기름을 끼얹으며 튀기고, 온도가 오른 화덕에 오리를 매달아 북경오리를 만든다. 굽고 튀기고 다시 찌는 과정을 거치는 동파육은 또 어떤가? 그야말로 중화라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반면에 딸들은 거기서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다. 첫째 가진은 서양 종교인 교회에 다녀며 독실한 신자가 되었고 둘째 가천은 항공사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충실히 쌓아가고 있다. 막내 가령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일요 만찬 식탁에 음식이 차려지고 가족들이 모이면 상에는 각자의 욕망이라는 접시 하나가 더 올라간다. 가령은 사귀는 남자의 아이를 갖게 되어 집을 떠나게 되고, 금욕적이고 누구보다 아버지의 곁을 지킬 것 같았던 가진은 자기 내면에 욕망을 깨닫고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떠난다. 가장 먼저 독립을 선언하고 누구보다 자신에게 충실했던 가천은 사실 가장 아버지를 동경했었고, 오히려 전통적 의미의 가족을 지키는 존재로 남게 된다.
딸들이 떠나고 주사부는 은퇴를 하지만 모든 것이 정해진 수순이었던 양 받아들인다. 두 딸이 출가를 하고 주사부는 할 말이 있다고 하며 딸들과 사위, 식구와 같은 가진의 친구 금영의 가족까지 모두 불러 만찬을 준비한다. 그는 식탁에서 말하길 “인생은 준비가 끝나야 시작되는 요리와 다르다. 한입 먹어봐야 신맛인지, 단맛인지, 매운맛인지 알게 된다 “고 한다. 준비도 못하고 급하게 결혼한 자녀들을 응원하는 말인가 싶을 때쯤 주사부는 자신의 결혼을 발표한다. 사별한 아내와 딸들과의 추억이 깃든 집도 팔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한다. 여기서 반전은 그 상대가 딸의 친구인 금영이라는 것이다. 이혼 후 홀로 딸을 키우던 금영은 주사부의 자상하고 극진한 정성에 반했던 상태였다. 영화는 이 반전을 위해 앞에 치밀한 과정을 깔아 뒀다. 금영의 딸 산산이를 위해 매일 도시락을 만들어 엄마가 만든 맛없는 도시락은 자신이 해결하고 결혼 생활을 위해 건강한 몸을 만들고 금영의 모친과 친하게 지내려던 노력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물을 수동적 위치에 놓기보단 주체적이고 변화하는 시대상에 적응해 가는 새로운 아버지 상을 재시 하는 영화이기도 한 것이다.
이안은 인터뷰를 통해 <음식남녀>는 가족의무 대 자유의지라고 정리한 바가 있다. 그 말은 정확하게 이 영화를 관통하고 있지만 그 외에도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다. 세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의 구조를 가져와 현대극으로 만들면서 비극적 요소를 희극적 향태로 바꾼 영리한 선택이나, 음식을 구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비주얼보다 사운드에 오히려 공을 들인다거나, 가족이라는 주제와 더불어 자신이 보여주고픈 대만이 녹아있다는 느낌도 든다. 예를 들어 주사부가 급하게 연락을 받고 호텔 주방으로 들어갈 때 팔로우하는 모습은 이것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재료를 다듬고 불을 다루는 바삐 움직이는 주방과 엉망이 된 요리가 수습되고 음식을 먹는 손님들의 옅은 미소에 안도를 하는 지배인까지 그 짧은 과정 안에 어떤 정서가 녹아있는지 단박에 다가오기도 한다.
<음식남녀>는 근대와 전통, 개인과 공동체, 성별과 세대라는 여러 대립 요소들을 대립시키고 있지만 결국 무너지게 되고 독립적이지만 흩어지진 않는 공존의 방식을 모색한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단순히 말로 설명된다기보단 영화 속에 음식들로 스치고 간다. 처음 일요 만찬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오던 음식은 전통적 권위를 추구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드러낸다면 중반부의 등장하는 훠궈는 하나의 솥에 각자 원하는 재료를 익혀먹는 음식이다. 가족이지만 각자의 삶을 선택하고 존중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고, 아버지와 가장 대립각을 세우던 가천 역시 찻집에서 고산차를 주문하는 장면을 통해 부정하려 해도 아버지를 닮아 있는 자신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마지막 탕 요리는 주사부의 잃어버린 미각을 찾아준다. 오랜 시간 유지하려 노력하던 가족의 형태를 위해 화려한 음식을 했지만 모양뿐인 본질 없는 그들의 관계는 평범한 탕 한 그릇이면 충분했을 것이었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 지 알려준다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고 한 사람은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이라는 저술가였다. 그 말은 무엇을 먹느냐는 당신이 누구인지를 결정한다는 것으로 들린다. <음식남녀>의 영어 제목은 <eat drink man woman>이다. 먹고 마시고 남녀가 서로를 갈구하는 지당한 자연 법칙 아래서 우리는 존재하고 먹어서 태어난 우리는 먹어서 또 만들어낼 것이다. 내일이 그리고 또 다음이 걱정 된다면 일단 먹고 마셔라. 그 다음엔 우리가 누구인지 알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 살아있다면 누구라도 음식남녀다. 그 자명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첫댓글 우와~~~~~
너무 오래되어 내용도 가물한 영화인데 글을 읽고보니 장면들이 하나씩 팡팡 터지며 살아나네요~
이안감독을 처음 알게 되었던 영화였던거 같은데..
시간 날때 다시 꺼내봐야 겠어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무엇을 먹는지는 당신이 어떤사람인지를 알려준다는 말이 콕 찌르네요.
꽤 예전에 봐서 디테일은 기억안났지만 요리영환줄 알고봤다가 가족영화로 기억된영화. 지금 나이에 다시 한번 봐야겠단 생각이드는 리뷰 감사합니다
저도 소대가리님 리뷰 읽으니, 오래 전 보았던 영화 장면들이 떠올라 참 좋네요! ^^ 영화 참 좋았는데, 소대가리님 글 읽고 나니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져요!! 멋진 리뷰 감사합니다. 😍
언급한 세 영화 중 결혼피로연만 봤네요. 다른 두 영화도 찾아봐야 겠네요. 개봉 당시에 봤더라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느낀 것을 비교해 볼텐데.. 아쉽네요
명품 리뷰 잘 읽었습니다
세편 모두 봤습니다
초기작이고 개인사가 포함된 듯 한 영화들이지만
그럼에도 왜 이안 감독인지를 느끼게 해 준 작품들이네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식구’ 의 뜻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영화였어요. 😌
개봉때 봤던ㅎㅎㅎ
다시 보고 싶네요ㅎㅎㅎ
좀 달라지겠죠 감상이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