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에서 기도한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일상을 살아가며 기도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간단하게 말하면 하느님의 현존 의식 속에서 일상을 살라는 뜻입니다. 사실 하느님의 현존 의식 속에서 하는 모든 일이 기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현존 의식이 빠져 있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말로 기도한다 해도 참된 기도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바쁜 일과 속에서도 하느님 안에서 살아간다면 그것도 기도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인도에서 활동하는 한 의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날마다 환자들을 정성껏 돌보면서도 시간을 정해 놓고 십 분씩 쉰다고 합니다. 그에게 쉰다느 것은 가가이 있는 성체조배실에 가서 앉아 있는 것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성당 안에 머무르는 것 자체가 쉼이자 기도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이 이렇게 성당에나 성체조배실에서 침묵 가운데 앉아 기도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있던 어느 본당에서도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성당에 들러 기도하고 가는 고등학생이 있었습니다. 제가 날마다 무슨 기도를 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 학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하는 것 아녜요, 신부님! 그냥 여기 와 있는 것이 마음 편해서 집에 가는 길에 들른 거예요.”
저는 그에게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하느님 보시기에 참으로 아름다운 기도’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일상에서의 기도는 이처럼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성당에니 특별한 장소에서도 기도할 수 있지만 그 외에도 어디에 있든 하느님 안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친한 신부님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북한산을 올랐습니다. 산꼭대기에 도착한 후 제가 “여기는 확 트였고 막힌 것이 없으니 지금 기도하면 바로 하느님께 도착하겠네요. 기도 좀 할까요?” 하면서 나란히 앉아 눈을 감고 숨 쉬는 것에 집중하며 한참을 있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렇게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다시 내려왔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함께 기도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누구와 함께하고 있는가에 따라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일상의 모든 순간은 하느님의 선물이고 그분을 만날 수 있는 은총의 순간입니다.
제게는 날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 요가를 하는 지인도 있습니다. 그는 요가를 하면서 기도하는 방법에 익숙해진 사람인데 호흡에 집중하면서 깊이 숨을 들이마실 때 하느님의 영을 마음에 모시고, 숨을 내쉴 때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악한 것들과 내면의 좋지 않은 것들을 밖으로 내보낸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요가가 내면을 정화시키는 방법이자 기도하는 시간인 셈이지요.
또한 그는 예수님 앞에서 날마다 마흔 번씩 절하는데 분심이 조금도 없는 유일한 시간이 바로 그때라고 합니다. 그러한 시간을 통해 몸이 건강해지고 마음이 정화되니 그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고 하네요.
살다 보면 우리에게는 기쁜 일과 슬픈 일도 있고, 성공한 일과 실패한 일도 있을 것입니다. 행복도 느끼고 불행도 맛보고, 건강한 날과 좋지 않은 날도 있겠지요. 주님을 믿는 이들은 기쁜 일 앞에서 주님을 의식하며 자신도 모르게 감사기도를 올리게 되고 슬픔과 고통 앞에서는 하느님을 의지하며 이겨낼 수 있는 은총을 청하게 됩니다. 기도하는 순간에 이미 마음의 위안을 받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지내는 사람에게는 일상의 모든 순간이 기도의 순간입니다.
하늘을 보아도, 비 내리는 것을 보아도,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아도, 돌아다니는 짐승들을 보아도 자연스럽게 하느님을 생각하고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
언젠가 연로한 외국인 신부님을 모시고 산책을 한 일이 있었는데 신부님께서 등하굣길의 아이들이나 시장에서 일하시는 자매님들,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젊은이 등 마주치는 모든 이를 축복해 주시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느님의 현존 속에 머무르는 사람에게는 모든 순간이 기도의 순간입니다. 삶이 기도가 된 사람에게는 살아있음 자체가 하느님과의 연결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일하는 시간, 밥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은 물론 숨 쉬는 매 순간이 모두 기도의 순간입니다.
이렇게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그분의 현존을 느끼기 위해서는 짧은 화살기도들이 도움이 됩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죄송합니다.”, “주님, 도와주십시오.” 등. 기도가 몸에 밴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이러한 기도들을 바칩니다. 화살기도는 일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들의 자연스러운 기도입니다.
복음서에서도 치유 받은 나병환자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고(루카 17,16 참조), 눈이 멀어 앞을 못 보던 사람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주님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태 9,27)라고 외쳤습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게 되는 순간 우리도 자신도 모르게 이러한 기도를 바치게 됩니다.
하느님 안에 있는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밥을 먹기 전에, 일하기 전에, 잠자기 전에 다시 말해 매 순간 화살기도를 바치며 주님과 함께합니다.
어린 시절에 저는 밭에서 일하는 할머니가 일을 마친 후 조용히 앉아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곤 했습니다. 일이 끝난 다음에 왜 그렇게 기도를 하시냐고 여쭤보니 할머니는 “우리가 아무리 일을 잘해도 나중에 하느님께서 비를 내려주시지 않으면 모두 다 소용이 없단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햇빛 아래 밭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농부들도 기도 안에서 일하고, 일하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일상에서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기도를 바치는 것은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에게 기도는 자연스러운 행위입니다.
삶에서 마주치는 고독이나 행복과 불행 앞에서 자연스럽게 절대자의 현존을 의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든 것이 자기 손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에만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기도가 다 어려울 것입니다.
당장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을 때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우선 그 일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계획해야 할 것입니다. 계획한 대로 일을 잘 끝마치도록 하느님의 축복을 청하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을 하는 동안 그 일에 집중하는 것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한 것으로 방향 짓는다면, 일은 기도로 변화됩니다.
마찬가지로 일이 끝난 다음에도 “주님, 감사합니다.” 하고 마음속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일상 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참된 신앙인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기도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의 변화는 필요하겠지요. ‘기도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각자 나름대로 생각하는 것이 있겠지만, 참된 기도는 그러한 관념들을 초월하여 순수하게 피조물과 절대자가 맺는 관계입니다. 피조물이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며 행하는 모든 것이 기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성경에도 인간이 모든 피조물에게 기도하도록 초대하는 장면이 있습니다.(다니 3,51-90 참조) 하느님의 현존 의식 속에 있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오로지 하느님을 향해 있을 때만 그런 기도가 가능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