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성심 신심의 회복
세상의 벳자타란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는 장소를 뜻한다고 했다. 일등만을 인정하는 무한경쟁 시대에는 서로 따스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보다는 불목하고 적대시한다. 사랑과 돌봄이 없는 차가운 세상의 벳자타를 예수님의 벳자타로 바꾸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지극히 자비로운 예수성심을 기리며 살아갈 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예수성심은 인간을 향한 예수님의 무한한 사랑, 자비, 인내 등을 상징한다. 역사적으로 예수성심에 대한 신학적 성찰은 교부시대부터 해왔다. 하지만 일반 신자들의 대중적 신심으로 번지기 시작한 것은 인간에 대해서 아주 잔인하고 살벌했던 프랑스 혁명을 전후해서다. 인간성을 상실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단두대에서 죽이던 시절에 지극한 연민과 헤아림을 담은 예수성심에 대한 신심이 번져나간 것이다. 그런데 이 세대 또한 인간성이 상실되어가는 상태이다. 무한경쟁 사회에서 그리고 생명을 경시하는 물질만능 사회에서 인간은 인간에게 이리가 되고 있다. 서로에게 잔인하고, 냉혹하고, 배신을 일삼는 것이다.
세상의 벳자타에서 우리가 희망을 둘 곳은 예수성심이다.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자비로 가득 차 있다. 애간장이 탄다는 예수님의 성심을 헤아리면서 우리 또한 측은지심의 인간이 되어야 한다. 예수성심게 우리 자신을 봉헌하고, 매순간 그분의 사랑을 되새기며, 그 사랑으로 세상살이에 지쳐 있는 형제자매들을 품어주어야 한다.
우리가 예수성심 신심을 살아갈 때 주님께 많은 위로와 힘 그리고 희망을 얻게 된다. 성 이냐시오를 가장 많이 닮은 분으로 알려진 예수회의 돌아가신 전 총원장 베드로 아루뻬 신부는 한평생을 예수성심께 대한 사랑으로 사신 분이다. 이분이 생애 마지막 9년 동안 병상에 누워 계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여러분이 제게 조언을 해달라고 하는데 저는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예수회에서 54년을 살았고, 총장으로 16년 가까이 살면서 예수성심 신심에는 엄청난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각자는 그 힘을 발견해야 합니다.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면, 예수성심의 사랑 안에 깊이 잠겨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어떤 방법으로든 각자의 삶에서 예수성심 신심을 살아가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그때 우리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