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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는 여행
드디어 내게 대책 없는 여행을 경험할 순간이 왔다. 예전에 학교에 있을 때, 성인식 과정도 들어가기 전에 이 여행이 마지막 과제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 과정들을 경험하고 오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이 여행을 떠나면 어디로 가고 어떠한 경험을 할지 가끔 상상하고는 했다. 이때는 마냥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먼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런데 그 먼일이 당장 내게 왔다.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싫지는 않은데 막상 출발하려니 가볍지만은 않았다.
출발 전, 현곡께서 잠깐 본인의 경험과 여행 중 경험할 수 있는 일, 들을 수 있는 예시 등을 말씀해 주셨다. 크게 특별한 얘기라기보다는 이전에도 수업하시거나 존재에 대한 물음을 가지고 상담하거나 하면 가끔 해주시던 얘기였다. 이번에는 좀 다르게 느껴졌다. 너무 좋은 얘기고 이전 여행 출발자들과는 다르게 뭔가 정답을 다 알려주신 것 같았다. 그래서 너무 감사한데 또 한편으로는 죄송했다. 이렇게 다 알려주시는데 내가 알아채지 못하면 어떡하지.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지만 이것도 아직 경험하지 못하고 떠드는 하나의 걱정일 뿐 그냥 떨쳐내자 하고 출발했다.
길을 나섰다. 다 떨쳐버리고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였다. 출발하며 다짐했다. “절대, 절대로 꼼수는 없다. 의지 다 빼고, 죽을만큼 걸어보자.” 그리고 걸으며 기도했다. 내게 주시는 도움, 마주한다면 거절하지는 않겠지만 지나가는 차들은 나를 전부 무시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그저 미친 듯이 걸어보자고, 걷고 싶다고. 걷다 보니 산양대교 갈림길까지 와 있었다. 어릴 적부터 가끔, 대책 없는 여행을 가게 되면 나는 과연 어디로 가게 될까에 대한 물음이 있었다. 마주하니 크게 고민은 없었다. 내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갔다. 자연스레 호산 방면으로 발이 갔다. 현재 큰 도로는 공사 중 이어서 천년학타운을 통하는 샛길로 갔다. 반 정도 가니 -공사 중, 관계자 외 출입 금지- 표지판을 보았다. 설마 이 시간에 하고 있지는 않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무시하고 지나갔다. 그런데 이게 웬걸, 다리 공사가 한창 중이었다. 걸음이 멈췄다. 마주하고 한번 뚫어볼지 다시 뒤로 돌아갈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그 순간 느꼈다. 크게 생각지 않고 갔더라도 결국 내 몸이 익숙한 것을 원하여 이쪽으로 발을 내딛였구나. 익숙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감동이 들었다. “뒤로 갈 것.”
뒤를 돌아 다시 걸었다. 가다 보니 쭉 나 있는 시멘트 길에 오직 나무 한 그루의 그림자만 있었다. 그대로 앉아 여공이 출발 전 챙겨주신 2L짜리 얼음물을 꺼내었다. 아직 꽝꽝 얼어있었다. 뚜껑을 열고 입을 대어보았다. 시원한 물 한 방울이 너무 달았다. 그대로 누웠다. 바닥이 너무 시원했다. 눈을 감으니 긴장이 풀리면서 주변 소리가 한 번에 들려오기 시작한다. 코끼리 소리를 내는 새소리, 그 새가 한마디 하면 고라니 소리를 내는 새소리, 이어서 원숭이 소리를 내는 새소리를 들었고 바람이 식물들에 부딪치며 나는 소리가 몸을 편안하게 했다. 누워있는 머리 바로 위에 까마귀가 앉아 울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새똥 맞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아차, 그냥 내 몸을 이 바닥에 맡기자.” 다시 몸을 편안하게 했다. 눈을 감고 있다 보니 정신은 깨어있는데 몸은 자려고 하는, 현실과 잠드는 사이에 있었다. 정신까지 잠에 빠질 찰나, “그도 나에게 나오면 안돼” 라는 음성을 들었다. 진짜 음성이었다. 놀래서 벌떡 일어났다. 나무의 그림자는 사라져 있었고 얼음이 좀 녹아, 물이 생겼다. 달콤하게 쭉 들이키고 가방을 챙겨 다시 길을 나섰다. 그리고 “뒤로 갈 것”이라는 말씀대로 호산이 아닌 태백 방면으로 향하였다.
계속 걸어 마을 몇 개를 넘고 넘었다. “여기”라는 직감이 들었을 때 잠시 멈추어 주변을 살피고 커다란 나무에 기대어 숨을 쉬었다. 그렇게 다시 출발하고 나서, 마을을 지날 때마다 마트(구멍가게)가 보였는데 별생각 안 들고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냥 가정집처럼 여겼다. 그런데 지나가면 지나갈 수로 마트는 계속 보였다. 배고프지는 않았는데 시간은 점심시간을 훌쩍 넘어가 있었고, 미리 사둬야 한다는 것처럼 점점 나를 유혹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떠한 감동이 없었을뿐더러 마트에 대해 간절한 것도 없었다. 신경 쓰이지도 않았고 몸은 가벼워야 하는데 쓸대 없이 비축하게 될까봐 그냥 무시하고 걸었다. 그저 얼음물이 달았을 뿐이다. 걷고 걸어 풍곡 초입에 왔다. 풍곡 넘어와 태백으로 가는 갈림길이었다. 마침 바로 옆에 마을이 있었다. 해는 아주 조금씩 져가고 온도가 조금 떨어졌는지 얼음이 더 이상 잘 녹지 않았다. “이쯤이면” 하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물을 찾고 싶어 마을을 돌아다녔다. 작은 마트도 없었고 조그마한 식당조차 없었다. 나름 첫 번째 위기 아닌 위기가 찾아왔다. 다리 밑으로 가서 물을 조금 떠 마셔 봤다. 물비린내가 나서 순간 역겹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흠칫했다. “아직 나에게는 물 마실 자격이 없구나!” 물은 사라져가고, 아무리 봐도 뭐가 나올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길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저 걸어라, 그저 걷는 수밖에. 태백 방면으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진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지나온 마트들이 생각났다.
“왜, 후회되니?”
“제 선택입니다. 후회는 안 합니다.” 그리고 또 외쳤다. 그저 걸어야 한다.
한참을 걸었다. -1km앞 휴게소- 표지판이 나왔다. 우와 너무 행복했다. 1km면 금방인데? 하고 걸었다. 근데 한참을 가는데도 안 나왔다. 체감상 수키로를 걸어온 것 같은데 그 휴게소는 나오지 않았다. 느껴지지 않던 허기가 점점 강해져 갔고, 내 손에 있는 것은 물뿐이고, 배고픔과 갈증의 구분이 되지 않아 혼동되어 물을 계속 마셨다. 진짜 너무 간절했다. 손으로 물병을 흔들어 가며 녹여 마시던 물도 거의 다 떨어지고 “아, 휴게소는 없나 보다.” 절망감이 생기려는 찰나, “이것도 내 운명이야. 뜻이 있으시겠지” 하고 포기한 듯 정신을 놓고 그저 걸었다. 걷고 걸어 크게 돌아가는 코너가 나왔다. 코너의 반쯤 지나갈 때 전광판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그 휴게소인지는 모르겠지만, 식당 겸 마트를 병행하고 있는 가게였다. “이곳이구나, 내게 나타나 주셨구나” 이끌리듯 들어갔다. 간판에 제일 크게 보여 과감하게 왕갈비탕을 시켰다. 주인분께서 걷는 여행 중이냐면서 고생한다고 밥 1개를 더 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오롯이 밥에 집중했다. 다시는 오지 않을 내게 주시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한입, 한입 먹었다. 모든 그릇을 깔끔하게 비워냈다.
주인분께 여쭙고 물통을 가득 채웠다. 든든했다. 식사를 결재하며 나중에 이만큼 간절한 상황 때 꺼내어 보려고 옆에 보이는 삶은 달걀 하나와 소세지 하나를 집었다. 그런데 결재할 때 부르시는 가격이 조금 이상했다. 소세지와 달걀의 가격이 적혀있지는 않았고, 메뉴판에 적혀있는 갈비탕의 가격은 부르신 가격보다 훨씬 아래였는데 말이 되지 않았다. 순간 의심을 했다. 내 뒤통수를 치시는 건가? 라고 생각이 드는 찰나 내가 내 뒤통수를 치게 되었다. 나는 너무나 간절했던 상황에 그분을 만나게 된 것이고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돈이 아무리 많이 있었더라도 그분이 없었다면 나는 식사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돈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식당에 들어오기 전, 내 간절했던 마음이 떠오르며 의심은 싹 사라지고 그저 감사했다. 그 공간을 만났기에 내 갈증과 허기는 채워졌고, 여행길에 사용할 물까지 제공해 주셨다. 나는 그 순간에 최고의 경험을 했기에 더 높은 가격을 부르셨더라도 그 가치가 맞는 것이라 인정하고 나는 충분히 드릴 것이었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다시 길을 나섰다.
걷고, 걷고 계속 걸었다. 조금씩 계속 어두워져 갔다. 걷다 보니 완벽히 깜깜해졌다. 태백으로 향하는 길은 거의 수km에 한 번씩 가로등이 있었다. 그 정도로 어두웠다. 하지만 어둠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걷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 주어진 것이었다. 차가 가끔 다니기는 했지만 낮에 걷는 것처럼 차가 무수히 많이 오지는 않았기에 오직 걷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걸으며 하늘을 보았다. 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이 보였다. 그 많은 별 중에 북두칠성이 이상하게 더 밝게 보였다. 사실 나에게는 북두칠성보다는 물음표라는 게 더 익숙하다. 어릴 적 엄마와 매일 새벽기도를 나가면서 하늘을 보면 늘 뒤집어져 물음표로 보였다. 보통 국자를 많이 떠올릴 텐데 나는 물음표부터 보인다. 그렇게 걸으며 때때로 하늘을 보았다. 학생임을 잊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깊은 밤에 이렇게 시골을 혼자 걷는 경험을 가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걷다 보니 가끔 부는 강한 바람의 소리와 물이 강하게 흐르는 소리가, 뒤에서 빠르게 달려와 나를 칠 것 같은 차 소리로 들렸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걷다 보니 문득 허공에서 사람 형체를 보았다. 놀랐다. 혼자라는 게 의식되니까 별 상상이 다 들었다. 어릴 적 듣던 귀신 얘기들은 죄다 강원도 출신이어서 그런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무서웠던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너무 소름 돋아 온몸이 경직된 채로 걸었다. 귀신을 믿는 것도 아니고 귀신 관련된 것으로 즐거워하던 나인데, 너무 이상했다.
“두렵나”
“솔직히 조금 그런 것 같습니다.”
“혼자가 아니다. 함께 한다.”
신과 나눈 이야기에 나오는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었다.- 이 말이 떠올랐다.
마음이 든든해졌다. 몸에 소름이 돋을 때마다 난 혼자가 아니라고 외쳤다.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지나가다 오래된 동상이 보이면 ‘안녕’ 인사를 건내었고, 뒤에서 차 같은 바람 소리가 나도, 진짜 차가 달려와도 나를 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 걸었다.
현곡이 해주신 말씀이 있다. 대책 없는 여행 규칙 같은 것이기도 한데, “먹이시면 먹으면 되고, 쉬게 하시면 쉬고, 자게 하시면 자면 된다.” 내 의지가 있으면 안 되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내게 어떠한 판단이 서거나 의지가 나오려는 상황이 생기면 내게 주문처럼 외쳤다. “그저 걸어라, 그저 걸어라.” 나는 넘어질 때까지, 쓰러질 때까지 이렇게 내 의지대로 어떻게 되지 않을 때까지 쉬지 않고 걸었다. 마냥 쉬고 싶어서 그냥 쉬는 게 아니다.
걷다 보면 문득 어떤 것들이 떠 오르기도 하고, 떨어져 있는 돌이나 낙엽을 보고도 들었다고 해석하게 될 때도 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이건가? 싶기도 하고, 어 들려주셨나? 싶을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들었다는 것에 치중되어 집중할 수가 없다. 들은 말씀과 해석에 대해서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겐 제대로 된 확신이 서지 않았다. 강렬한 한방이 없었다. 나는 진심이었다. 너무 간절했다. 위의 것들을 다 무시할 수는 없지만 듣는다는 것에 내 의지가 들어가 속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을 하나로 아울러주는, 관통해 뚫어주는 말씀을 듣고 싶었다. 나를 감전시켜주는 듯한 짜릿한 자극이 없었다. 그러한 순간이 올 때마다 “그저 걸어라” 외치고 미친 듯이 걸었다. 현곡이 가장 잘 알려주신 듣는 방법이라고 엄청난 믿음과 확신이 섰기에 나는 걷는 것에 목숨을 걸었다. 진짜 제대로 경험하면 뭐 상상하고 할 것도 없이 마법처럼 쫙 나온다고 하는 것을 굳게 믿었다. 그래서 신경 쓰여지던 말씀과 해석 다 잊어버리고 그냥 걸었다. 걷고, 걷고 걷다 보니 태백으로 가는 오르막길이 나왔다. 끝이 없어 보이는 오르막길이었다.
의지 다 빼고 무언가를 한다는 것을 이번에 제대로 경험했다. 그저 보일 뿐이었다. 보이는 것조차 “땅이네, 하늘이네, 산이네” 할 것 없이 그냥 그 자체였다. 하, 이것을 이렇게 말이나 글로 다 담아낼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쉽다. 수행 명상은 같은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비어나가는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마다 다 다르겠지만, 대부분 수행 명상은 시간을 정해두고 할 때가 많고, 행동반경에 제한이 있으며, 주변에 사람이 있어 홀로 즐길 수 없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내게 주어진 기회는 달랐다. 시간제한이 없으며, 행동반경에도 제한이 없으며, 혼자 걸을 뿐이었다. 이렇게 비워진 마음을 가지고 미친 듯이 걷다 보니 구사터널이 나왔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오르막이 끝나고 터널이 나왔다. 맨몸으로 긴 터널을 걸어가는 것도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다. 벽이 새까만데 이게 원래부터 그런 게 아니었다. 발을 살짝 대보니 그 부분이 엄청 하얗게 되었다. 그렇게 이름을 새기고 터널을 통과 하였다. 터널을 지나며 안에서 차 두 대가 지나가는 것을 봤는데 울리는 소리가 장난 아니다. (그동안 소음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집중해서 들어보니 예술 그 자체였다. 오실레이션이라고 음향적 효과로 일부러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 소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특이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내가 가끔 즐겨듣는 소리 중 하나이다.)
이상하게 오르막길이 끝나니 발에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앞꿈치에는 물집 생기기 전에 느껴지는 쓰라림이 느껴졌고 오른쪽 발은 디딜 때마다 엄지발가락 힘줄이 점점 아파졌다. 그래도 아직 넘어지지 않았기에 쉬지 않고 걸었다. 정신 빼놓고 걷다 보니 태백으로 진입하였다. 우측에는 도계 방면으로 가는 갈림길이 보였다. 쭈욱 내려가는 길이었는데 가로등 불빛이 예뻤다. “이거 저기로 가야겠는걸.” 감동이 드는 찰나, 나는 발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졌다. “아, 이거 넘어뜨려 주신 거구나” 옆에 있는 태후 공원으로 가서 정자에 자리했다. 어두워서 잘 안보였지만 정자가 얼룩덜룩했다. 하지만 아무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저 공간을 내어줘서 고마웠다. 쉬려 앉았다. 다리를 주무르고, 양말을 갈아신고, 겉옷을 꺼내 껴입었다. 그리고 누웠다. 다시 한번 잠과 현실 사이, 잠에 들기 직전까지 갔다. 바람이 쌩 부는데 너무 추웠다. 벌떡 일어나졌다. 주변을 조금 돌아다니다가 다시 눕고, 다시 벌떡 일어나 돌아다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하고 근처 공중화장실로 갔다. 이번에도 더러운 것은 아무 상관 없이 그냥 대변칸으로 들어가 앉았다. 사방이 막혀있어 바람이 불 일이 없었다. 심지어 아무 난방시설이 없었는데도 따뜻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근데 잠을 자지는 못했다. 앉은 곳 변기의 구멍이 커서 점점 빨려 들어갔다.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다 결국 거기도 나와서 태백 중심으로 가는 길을 또 왔다 갔다 했다. 정신없이 시간이 갔다. 그렇게 날이 조금씩 밝고 다시 제자리로 왔다. 공원 옆에 마트가 있었다. 앞에 누울만한 벤치가 있었다. 해가 잘 드는 자리였다. 그렇게 한참 따뜻한 태양을 즐겼다. 그 자체로 너무 행복했다. 이번에도 잠에 완벽히 들지는 못했다. 트럭 짐칸 열리는 소리에 벌떡 깼다. 어느새 해는 많이 높아져 있었고 주변의 가게들은 다 문을 열었으며 차들이 쌩쌩 다니고 있었다. 일어나니 마트에서 일하시던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졸려?” 느낌상으로는 움직이면서 계속 나를 보셨던 것 같다. 그래서 걸으며 여행 중이라고 말씀드리니 잠시만 기다려 보라고 하시더니 아침에 떠오신 물 한 병을 주셨다. 그거 마시고 힘내라고 하신다. 감사했다. 그 기운 받아 다시 길을 나섰다.
태백에 도착한 새벽, 감동이 들었던 길로 다시 갔다. 도계 방면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계속 내리막길이었다. “와.. 여기 느끼던 것 보다 고지가 높았구나.” 그저 걸어 내려갔다. 내려가던 중, 포장된 넓은 땅에 아주 멋진 정자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우와, 저기서 잠시 쉴까?”라는 마음이 생겼는데, 주변을 살피니 아무리 봐도 주인이 있는 개인 땅 이었다. “역시 내 의지로는 안되겠네.” 쉬자는 마음을 뒤로하고 계속 걸어 나가려는데, 누군가 아스팔트 위에 있는 나를 불러세웠다. “자네 도보여행 중인가?” “안녕하세요, 그렇습니다.” “괜찮으면 정자에 올라가서 한숨 자고가.” “감사합니다.” 주인분이 나를 불러주신 것이었다. 진짜 너무 놀랬고 신기했다. 내 마음을 읽은 건가 싶기도 했다. 위에 한 번 닦고 쉬라고 하셔서 송화가루를 온 마음을 다하여 청소하였다. 그분은 정자 옆에 있던 생선조림 가게를 하시는 분이었다. 약간 이현주 선생님을 닮으셨다. 불러주신 분이 곧 참외와 잘 익은 바나나 하나씩을 커피와 함께 들고 올라오셨다. 그리고 얘기를 나누었다. 선생님은 본인께서도 어렸을 때 도보여행을 다녔다고, 도보여행 다니는 애들을 보면 그때 자신이 경험했던 일들이 떠올라 절대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 하셨다. 처음은 국민학교 시절, 여름방학에 문득 여행이 가고 싶어져 길을 나섰다고 하셨다. 돈이 있는 것도, 큰 목적도 있는 게 아니라 걸음을 선택하셨고, 포항부터 시작해서 지금 있는 도계까지 약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려 좋은 경험들을 하셨다고 하신다.
들려주신 말씀으로는 우리의 대책 없는 여행과 흡사했다. 계획 없이 밤, 낮 상관없이 걷는 것에 집중하였고, 걷다가 요청이 오면 거절하지 않고 일손을 도우며 식사를 받기도, 요청 없이 도움을 받기도 하며 여행이라는 경험 그 자체를 공부로 보았다고 하셨다. 그 후에는 중학교 교육을 마친 후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받지를 않았다고 하셨다. 제도권의 일반적인 교육이 본인께 필요가 없고, 마음에 들지 않았고, 고등 교육받을 그 시간에 이렇게 걸으며 세상과 마주하는 게 엄청 좋은 공부가 되었다고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어릴 때부터 가난했고, 결혼한 후 아이들을 키울 때까지 풍족하지 못했다고 하셨다. 하지만 본인이 배운 방식으로 아이들을 풍요롭게 키우시고 그 아이들이 커서 아버지를 보고 풍요롭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고 하셨다. 둘째 자제분은 본인이 성인이 될 때까지 자기 집이 부유하게 사는 부자급으로 알았다고 한다. 선생님은 매우 대단했다. 사랑이 엄청난 아버지이셨다. 지금은 그 아이들이 전부 잘 커서 본인한테 주고 있다고 하셨다. 선생님께서 내게 해주신 말씀이 있다.
1. 배움에는 끝이 없어. 멈추는 순간 제자리이고, 그게 곧 퇴화야.
2. 자연, 재료 그 자체의 요리가 진짜야. 그리고 진짜 중요한 것은 손맛이 가장 중요해. 손맛!
3. 온몸으로 배워야 해. 책은 거기 안에서만 노는 거야.
내가 이런 분을 만나 뵙게 되다니, 이것이 대책 없는 여행의 참맛 중의 하나이구나! 그저 행복했다. 얘기를 나누며 그분을 따라 같이 바나나를 까먹고, 참외도 맛있게 먹었다. 쉬는 시간 방해해서 미안하다 하시고 잠을 좀 자라고 하셨다. 전혀 방해 아니었고 너무 감사한 시간이었다. 내가 잠을 제대로 못 잔 것은 또 어떻게 아신 건지, 아니면 경험에서 나오는 배려였는지 모르겠지만 내려가시고 시원한 정자에서 누워서 편안히 눈을 붙였다. 달달한 오침을 보내고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다시 길을 나섰다. 선생님께서 꼭 도계 유리마을을 들렀다 가보라 하셔서 그쪽으로 향하였다.
걷고 걷다 보니 발이 미친 듯이 아팠다. 선생님 도보여행 얘기를 들으며 발은 늘 깨끗하게 하라는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마침 도로 밑에 개울로 향하는 비탈길이 보였다. 내려가서 발을 쉬게 하였다. 바위 위에는 흰 자국이 많이 보였다. 아마 새똥의 흔적으로 보여지는데 상관없이 앉았다. 앉아보니 역시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리고 발을 물에 담구었다. 소중하게 대해주었다. 마사지도 좀 해주고 물집이 잡혀가는 자리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다 갑자기 엄청 큰 소리가 들렸다. 내가 경험해본 소리로 추측을 해보면 덤프트럭이 바로 앞에서 사고나는 소리였다. 엄청 컸다. 근데 그 소리가 끊이지 않고 났다. 뭔가 이상했다. 맑았던 하늘이 조금 어두워졌다. 아, 이거 사고 난 게 아니라 천둥소리구나. 허겁지겁 신발을 신고 짐을 챙겼다.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계속 하늘을 보며 걸었다. 비에 대해 생각조차 못 했고, 아무 준비도 안 되어있는데 불현듯 비가 올 모양이었다. 처음 보는 구름이었다. 하얗던 구름은 순식간에 새까맣게 변해갔고, 불이 난 듯 구름이 피어올라 검은 한 덩어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 무거운 쇠가 강하게 부딪치는 듯한 천둥소리는 미친 듯이 울려댔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이게 무서움이었는지 모르겠는데 본능적으로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도망가는 나의 뒤에는 먹구름이 무섭게 쫓아왔다.
어찌저찌 유리마을까지 왔다. 도계 외곽부였는데 도착하고 보니 나를 중심으로 하늘 절반은 새파랗게 맑았고 내가 걸어온 길 뒤에는 새까맣게 흐렸다. 마을 정자에 앉아 엄청나게 고민했다. “몇 시간 동안 올 줄도 모르는데 그칠 때까지 기다리면 하루를 날려 버리는 거 아닌가? 이거 지금 내가 가면 다가오는 먹구름을 피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아니면 여기 있어야하나? 지금 간다 하더라도 내가 피하는 방향으로 오지 않을 거라는 법도 없는데.” 출발할거면 고민할 시간에 출발했어야 하는데, 이러한 고민을 한참 하다가 출발하려 마음을 먹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렇게 가려는데 정자 근처에 있던 유리공방 선생님이 나를 붙잡았다. “지금 가려고요? 안될 것 같은데. 그러지 말고 여기에 조금 있다가 가요.” 나는 이 선생님의 말을 듣고 알겠다 하여 정자에 다시 앉았다. 앉는 순간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는 엄청 굵어지고 내리는 속도도 엄청났다. 하늘을 보니 위에있던 맑은 하늘은 온데간데 사라졌다. 그리고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늘을 가르듯 선이 쫙쫙 그어졌다. 후에 들려오는 천둥 소리도 매우 컸다. 선생님이 커피 한잔 하라고 들어오라 하셔서 공방으로 짐을 들고 들어가고 있었다. 순간 번쩍! 하더니 눈앞이 새하얘졌다. 분명 눈은 뜨고 있는데 순간적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엄청난 소리가 귀를 때렸다. 쾅쾅!! 나는 순간 내가 벼락을 맞은 줄 알았다.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내 바로 앞에 떨어진 것 같았다. 너무 놀랬다. 주저앉을 뻔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때까지는 이 의미를 몰랐다. 그저 놀란 몸과 마음을 챙길 뿐이었다. 건물 내부로 들어오고 중간에 한번 더 근처에 벼락이 떨어진 것 같았다. 마음을 바로잡고 주신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공방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이 선생님께서도 몸으로 사는 것을 선택하신 분이었다. 몸 쓰는 것을 매우 좋아하고 마음이 공허하거나 심란할 때 걷는다고 하셨다. 그 후 군대 얘기도 했는데 처음 보는 전경(전투경찰) 출신이셨다. 내용은 자체는 달랐지만 내가 경험했던 군 생활과 흐름이 비슷했다. 얘기가 잘 통하였다. 한참 얘기를 듣다 보니 비는 사그라들었고,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하늘은 다시 새파랬고,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출발 전 선생님은 내게 아낌없이 주셨다. 사용하지 않아 배터리도 많지만 휴대폰 충전도 하게 해주시고, 원두커피도 내려주시고, 혹시 모르니 가져가라며 우비와 방수 신발 덮개도 주셨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다시 걸었다.
도계 중심부를 거쳐 반대편 외곽에 다다랐다. “어, 길은 여기밖에 없어 보이는데 여기 지나가도 되나?” 38국도 입구였다. 연결되는 길을 따라 위를 쳐다보니 차가 쌩쌩 달리는 길이었고 조금 더 앞에는 터널이 보였다. 아무리 봐도 여기는 가면 안될 것 같았다. 제자리에서 한참 고민했다. “가? 말아? 가? 말아?” 30분 넘게 제자리에 있었다. “믿자. 그저 걸어라.” 주문을 걸고 출발하려는데 어머니 세 분께서 옆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어 저기 길이 있네? 따라갔다. 분명 길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맞다. 길은 있었다. 중간중간에 38국도와 잠깐 연결되다가도 옆으로 빠져나가 걸을 수 있는 길이 있었다. 다시 걷고, 걷고 미친 듯이 또 걸었다. 첫날보다 걸음이 3배 이상 느려진 것 같았다. 발이 너무 아팠다. 그러나 나는 간절했고, 넘어뜨려 주시지도 않았고, 멈춰야 할 명분도 없었다.
걷다 보니 다시 걷기 좋은 밤이 되었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발은 너무 아팠다. 넘어지면 멈춰서 잠깐 쉬었다.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아무것도 되어지지 않은 것 같음에 마음이 아팠다. 원망은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도 그 단 하나의 감동을 듣고 싶은데, 왜 모르겠지? 분명 수 많은 순간들이 내게 말을 해줬을 텐데, 나는 왜 아직까지 알아채지 못한 것이지?” 물집이 터진 발, 점점 부어가는 오른발은 붙잡으며 통곡했다. 하늘에서 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빗방울이었다. 아픈 발을 뒤로하고 다시 허겁지겁 짐을 챙겼다. 아까 비가 왔던 게 생각나서 갑자기 정신이 없어졌다. 이 밤에 비가 아까처럼 오면 제대로 발이 묶이니 답이 없을 것 같았다. 문득 아까 선물 받은 우비와 덮개가 떠올랐다. 작은 안도감과 감사함이 들었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너무 맑은 하늘에 그 물음표 북두칠성과 주변에 수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절대 비가 올 하늘이 아니었다. 믿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걷다 보니 마차리를 지나 38국도가 끊긴 곳까지 왔다. 마을 몇 개를 더 지나고 다시 38국도가 시작 되어지는 곳까지 왔고 나는 다시 우회해서 길을 가야 했다. 다시 오르막의 시작이었다. 태백처럼 미친 듯한 오르막은 아니었다. 그런데 데미지가 많이 쌓인 발 덕분인지, 태백 갈 때보다 더뎠다. 오르막이 있으면 무조건 내리막은 있다. 내리막은 내려오는 내 무게를 견디기에 오금에 힘이 들어가는 구도였다. 나는 극한의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계속 외쳤다. “그저 걸어라, 그저 걸어라!” 마침내 평지에 왔고 이제는 구불길을 계속 갔다. 길이 구부러질 때마다 점점 어두워졌다. 엄청 어두워졌을 때 뭔가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뭔가 싶었는데 반짝반짝 날아다니는 반딧불이였다. 너무 오랜만에 보니 반가웠다. 그리고 하늘을 보았다. 별들이 무수했다. 북두칠성 옆에 별똥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 순간 도계에서 벼락 맞을 뻔했던 느낌이 몸을 치고 지나갔다. 깜짝 놀래 온몸이 소름 돋았다. 드디어 만났다. 모든 것을 하나로 아울러주는 말씀이구나! 들었던 말씀대로 막힘 없이 해석이 되었다.
번개를 경험하기 전 먹구름에서 도망치던 내 모습이 보였다. 구름은 그저 구름일 뿐인데 도망은 둘째치고 나는 왜 그것을 두려워 했던 것이지? 이어서 “구름과 같이, 구름처럼”이라는 감동이 들었다. 두려워 말고 그것이 되면 되었다. 내가 만난 먹구름은 물을 머금고 있던 것이고, 그것을 견딜 수 없는 무게가 찼을 때 그저 내려놓는 것이었고, 그 안에서 무언가 끊임없이 작용하고 부딪치며 일어난 게 번개와 내지르는 목소리인 천둥이었다. 내가 어떻게 살면 되는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무거우면 좀 내려놔도 괜찮고, 다 내려놓으면 사라져도 괜찮은 것이었다. 구름은 거쳐가는 과정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물을 채우겠다는 의지 없이, 그저 자신에게 올라오는 대로 받아들이면 되고, 자연스레 쏟아내고 나면 그 후에 무슨 일이 벌어지던 그저 따르면 되는 것이었다. 쏟아내고 가벼워져 틈이 생겨버린 구름은 햇빛을 받아 그것을 통과시켜 따스하고 아름다운 햇살을 비춰준다. 완전히 다 쏟아내고 사라지면 공활하고 맑은 하늘을 보여주고, 온 세상에 뿌려준 물이 언젠가 윤회하여 다시 구름으로 돌아온다.
이것을 한방에 경험하고 자연스레 여행 중 내 의지를 완전히 내려놓았던 내가 떠올려졌다. 내가 알고 있던, 나라고 믿었던 나는 없었다. 앞으로에 대한 계산적인 내가 없었고, 잠을 자야 한다는 내가 없었고, 작은 상처에도 기겁을 하던 내가 없었고, 더러움에 몸서리치던 내가 없었다. 이래야 된다는 내가 없었다. 그저 물음을 쫓던 간절한 나밖에 없었다. 정말 이제까지 살며 몇 없는 신비한 경험의 연속이었다. 2박 3일 여행하며 먹은 것이라곤 첫날에 한 끼 배불리 먹은 것이랑 다음날에 바나나와 참외 한 개, 종이컵에 절반 담긴 커피 4잔이었다. 첫날, 극한의 허기를 경험한 후로 이상하게 배고프지 않았다. 갈증이 나지 않았다. 변이 마렵지 않았다. 여러 곳 상처 입은 내 발에 대해 걱정이 아니라 버텨달라고 부탁했다. 햇빛에 살이 타는 게 아무렇지 않았다. 새똥 자국 가득했던 바위에 주저 없이 앉았고, 사람의 발길이 적어 먼지가 쌓인 의자에도 앉기도 하고 눕기도 했다. 깨끗했던 새 신발이 왕창 더러워졌다. 괜찮았다. 누군가 입대고 마셨을지 모르는 물병이 아무렇지 않았다. 좋아하지 않던 참외를 벌레가 파먹은 흔적이 있었는데도 껍질까지 맛있게 먹었다. 그저 내게 주어진 것에 모두 감사히 받고 사용했다. 모든 순간이 정말 마법 같은 경험이었다.
늦은 새벽에 쪽잠을 청하고 다시 걸었다. 어느덧 삼척에 도착했다. 시작을 했으니 끝을 봐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걷고 싶어서, 근덕을 통과하고 여러 해변을 통해 걸어 돌아오고 싶었다. 근데 넘어졌다. 계속 넘어졌다. 걷지 못하게 하셨다. 걷겠다는 그 마음 잠시 내려놓고 버스를 탔다. 나도 모르게 깊이 잠들었다. 순식간에 호산에 도착해 있었고 꽉 차 있던 버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개운했다. 시간은 생각보다 늦지 않았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걷고 싶었다. 사곡에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은 들지도 않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여유를 가지고 걸었다. 앞꿈치는 도저히 안되겠어서 뒤꿈치로 뒤뚱뒤뚱 걸었다. 나중에는 뒤꿈치도 너무 아파서 한번 쉴 때 좀 오래 쉰 것 같다.
덤프트럭이 칼치기를 많이해 위험해서 첫날 돌아갔던 천년학타운을 통하는 샛길로 다시 가보기로 했다. 여전히 같은 공사 중이었다. 그래도 첫날보다 땅이 좀 생겼다. 작업자 분들게 인사를 드리고 이쪽으로 가도 되는지 물었다. 아무렇지 않게 조심해서 지나가라고 하셨다. 별것 아니었다. 모든 게 해결되었는데 한가지 위기가 찾아왔다. 마음이 가벼워져서일까, 갈증이 매우 심하게 찾아왔다. 오면서 마신 물은 전부 비워졌고 갈증에 미칠 지경이었다. 천년학타운까지 겨우 걸어갔다. 갈증에 미치겠을 때 화장실이 보였다. 고민 없이 바로 풀밭을 가로질러 미친 듯이 화장실로 향했다. 손으로 물을 받아 들이켰다. 너무 달콤했다. 행복했다. 갈증을 해결하고 병에 물을 가득 받은 다음에 잠시 앞에 벤치에 앉았다. 그런데 방송이 흘러나왔다. “방문자 분들을 위해 정수기와 각종 편의시설이 비치되어있습니다.” 너무 웃겼다. 그래도 화장실 물은 너무 맛있었다.
호산에서 출발하고 얼마 안되었을 때 사곡을 들러 풍곡까지 갔다 오는 마을버스를 마주치고, 학교에 가까워졌을 때쯤 사곡으로 들어오고 있는 같은 버스를 또 마주쳤다. 늘 운행하시던 기사님과 눈이 마주쳤다. 기사님 표정이 묘했다.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드셨을까? 이것도 재미있었다.
마지막까지 잘 걸었다. 그 걸음 끝에 삼무곡이 있었다. 올라가던 중간에 현곡을 만나 뵙고 포옹했다. 인사드리고 마저 올라갔다. 평지에 다다르니 자동으로 무릎이 꿇어졌다. 이어서 삼배를 했다. 연우가 안아주며 인사를 해주었다. 그리고 여공이 격하게 반겨주셨다. 힘껏 안아주시고 사랑의 말씀을 해주셨다. 끊이지 않고 해주셨다. 다양한 감정에 참으려 했던 눈물이 줄줄 흘렀다. 맘껏 울었다. 여공은 기름과 땀에 절어있는 더러운 나를 그저 안아주시고,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잘했다고 쓰다듬어 주셨다. 너무나도 따듯한 어머니의 품이었다.
마무리 하며
이번 여행을 하며 평생 잊지 못할, 정말 마법 같은 경험을 맛 보았다. 남들은 경험해보지 못할 나만의 특별한 이야기. 이 경험들을 하며 수많은 감정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좋으신 스승들을 만났고 말로는 표현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궁금한 사람들은 내 이야기가 전부라 생각하지 말고 그저 걸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정말 한 개의 내 의지도 없이 그저 걷기만을 했고, 내가 어떻게 해보겠다는 의지가 사라지니 자연스레 판단이 사라졌다. 그 순간은 몰랐는데 내가 남긴 흔적을 돌아보면 판단없는 나였다. 믿기지가 않았다. 내려 놓아보겠다 해도 잘 안되던 것들을 내가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하고 있었고, 그저 그 순간의 나를 만났다. 이번 기회에만 한정하지 않고, 앞으로 내게 막히고 어려운 순간이 찾아오면 또는 내 전부를 완전히 비우고 싶은 마음이 들면 다시 한번 가방 하나 들고 무작정 걸어볼 것이다.
첫댓글
빛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