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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세월의 귀☆]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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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시문학상당선작
[세월의 귀]
석 화 시집 /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1998.08.第1次 印刷) / 元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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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귀.1
석 화
남원
춘향이네 뒤담을 넘는
바람소리가
들린다
낮에 뜨는 별
밤에 피는 꽃
날개 젖은
귀뚜라미 소리가
뚝
뚝
응어리지는 밀어
또 5월이다
곡선의 이미지
석 화
껴안을듯 휘여든 신발과
안길듯 굽이 돈 강줄기
물결이 스쳐가는 언덕 그우에
새파란 금을 그으며
둥그스럼히 열리는 하늘
잘 익은 능금알 같은 해와
해살이 무늬 짓는 무지개빛갈속에
향기처럼 떠오르는 곡선
옥색 한복차림의 저 녀인
손이 둘인 리유와 곰과 그리고 사람
석 화
왼손에 얻은것
바른손으로 벌라고
손은 둘인가
옷숫밭에서
땅곰이 하는 짓 굽어보며
하느님은 그저 빙긋이
웃고
사람은 량손에 떡 쥐고서도
고개 갸웃거리며
자꾸만
하느님 쳐다보고
그 모습 다 벗고 포도들은 포도주가 된다
석 화
벗으라 한다
벗어야 한다
벗어라
벗자
마지막 한 장의 그…
마저도
속살과 속살끼리만 만나
만지고 부비고 삼키고 무너지자
맑은 그 빛깔갈
달콤한 그 맛
감미로운 그 향기
네가 나 되고
나는 너로 된다
그 모습
다 벗고
비로소
포도들은 포도주가
된다
커피와 선화공주
석 화
커피에 설탕을 타면
삼국때 향기가 난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첫키스도
요런 향이였을가
이제 또 무슨 노래를 지어부르며
뉘 집 아가씨 꼬셔볼가
커피는 커피색갈
설탕은 설탕색갈
커피에 설탕을 타아
사랑향기가 난다
그날의 외출
석 화
《종-점-입-니-다-하-암》
차장아재 먼지 낀 목소리 밟고 내려
껌을 씹듯 되씹어본
《시내뻐스안내도》맨 끝의 역이름
도시에서 뱉아버린것 벗겨버린것 던져버린것
그런것들 끼리끼리 모여 산을 이룬 쓰레기장
저만큼 솟아있는 쓰레기장옆에 가서
귀속에 코안에 그리고 허파에 가득찬
말마디들과 쳐다보는 푸르른 하늘
푸른 하늘 저끝까지 새파랗게 펼쳐진
파밭 무밭 배추밭 오이밭…
《빵빵- 어서 오르세요
시발역 떠납니다!》
차장아가씨 목소리에 어느 사이 칠이 올라
알른알른 윤기가 나고
탑에게
석 화
다같이 땅우에 사는 주제에
왜 자꾸만
하늘에 대고 삿대질이냐
버러지들은 버러지만큼의 하늘을
토끼는 그의 모두뜀에 알맞은 하늘을
날개 가진 참새나 제비도
저만큼씩 맞춤한 하늘을 가졌을뿐인데
왜 자꾸만
하늘이 낮다고 또 높다고
삿대질이냐
천년전부터 또 후에까지
목제 석제 철제…
숲처럼 일어선 탑 멍이 든 하늘
퍼렇게 구겨져있는 저 하늘
찢어질 듯 펄럭거릴 저기 저 하늘
길과 사랑학개론
석 화
어디에도 길은 있다
한알의 시과에 이르기 위해
우리는 향기를 따라간다
뱀의 꼬리를 밟듯
시뿐히 즈려밟는 발끝에서부터
한가닥 저림이 찡-
온몸을 관통한다
눈을 뜨면 출구가 보일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가
두눈을 꼭 감고 나온다
길은 한가닥뿐이다
유리컵과 사랑학개론
석 화
포도주
오렌제쥬스
혹은 랭커피
내안의 너
그 이름으로
나는 더시 명명된다
나의 숙명은
언녕 만들어진
이 모양으로
한없이 너를
내가 가득 차기를 기다리는것
너무도 투명하여
거침없이 뛰여든 한줄기 해빛이
밑바닥에 닿아도
언제나
너로 하여 목이 마르고
항상 깨끗이 또 소중히
이 모습 고이 지켜
내가 가득 차기만 기다렸다
다 비워내야만
비로소
나는 너의것이 되였다
세월의 귀 2
석 화
입 닫고
3년에
악이가 나고
눈 감고
3년에
속눈 떠지고
귀 막고
3년에
…?
말을 말고
그저 들어라
보지 말고
그저 들어라
세월의 귀 9
석 화
우스워죽겠다는듯이
입을 막고
캐드득거리는 소리들
공원뒤산 솔숲에
들면
여기저기서 튕겨나오는
깜직한 소리들
겨긴 종례로
대나무가 없다
당나귀는 있어도
왕은 없다
종래로 여긴
작품 25
- 발음문제
석 화
병아리가 엄마를 찾고있다
삐아- 삐아-
아무리 고쳐들어봐도 그 발음이 들린다
구개음동화 아이 자음탈락이다
그럴수밖에
찬찬히 볼수록 양계장 부화기에서 나온것
알루미늄냄새가 난다
병원의 소독수냄새도 나는 같다
무정란- 체외수정- 인공배태- 실험관아기
엊저녁 TV화면에서 펼쳐지던 새아침이
로봇의 손가락에 배일처럼 벗겨지고
어마- 어마-
자음이 탈락된 발음이
어데선가 들려오는것 같아
섬뜩 몸서리쳐진다
작품 92
- 나무군과 선녀
석 화
백두산 폭포밑에서 선녀를 잃어버린 나무군이 나무지게를 걸머지고 천지의 하늘가에서 반짝이는 별빛보다도 더욱 령롱한 네온등불빛에 명멸하는 용정과 연길의 네거리에 와서 잃어버린 선녀를 찾고있다 레스토랑 나이트클럽 KTV룸살롱 댄스홀 커피점 양고기산적점 당나귀고기집 닭곰집 국수집 개탕집 좌우간 불빛이 번쩍이는 곳은 다 들여다보았지만 잃어버린 선녀는 없다
《선녀를 돌려아주세요》
《선녀를 돌려아주세요》
어림도 없는 말 제 발로 아니 제 날개로 훨훨 날아간 선녀를 누가 돌려준단말인가 《하늘의 뜻이였기에 서로를 리해하면서》이제는 물러갓것 맥주병에 이마가 꽃이 피기전 네 나뭇가지지게를 걷어안고 썩 꺼져버렷!
이 미련한 놈아!
턴넬
- 도문을 가며 1
석 화
이쪽이 이승이라면
저쪽은
도문 갈 때마다
빠져들어보는
어둡고 긴 턴넬
구리거울속에서 번뜩거리는듯한
차창에 비낀 내 얼굴의 두 눈망울
육신을 굽어보는 높이 뜬 령혼이랄가
한숨과도 같은 하얀김에 휩싸여
동굴을 빠져나올 때
쨍 맞혀오는 묘한 느낌
다시 하늘은
더 높고
산은 더욱 푸르다
하늘
- 룡정에 와서 1
석 화
언제
쳐다보아도
동그란 하늘이다
쪽빛으로
또는 오렌지색으로
빛갈은 바뀌여지지만
어데서라도
문득
고개를 들고보면
또다시 떠오르는
동그란 하늘
눈을 떠서 처음 본것이
이 하늘이여서인가
아직 룡으로 둔갑하지 못한
한 마리 개구리여서인가
내 머리우에
동그란 하늘이
그냥 아득하기만 한것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한것인가
다시
우러러 쳐다본다
동그란 하늘
창을 열면 바라보이는 저 산과
석 화
창을 열면 바라보이는
저 산과 마주앉아
인젠 십몇년을 살아왔다
한참 입 다물고있으면
산은 수많은 이야기들로
내 귀를 먹먹하게 하고
내가 지절거리면
산은 도리여
이마를 쳐들고 하늘을 본다
이제 또 수십년을 더 살면
내 말을 산이 들어줄가
차라리 창을 닫고 돌아앉으려 해도
산이 먼저 알고
창턱을 넘어와 내 가슴에 든다
산 그리고 나
강물 한줄기 흐르는
저 별을 가로질러가서
산이 앉은 그자리에
다음은 내가 앉을 차례인가
감나무에게
석 화
그대는 전생에
누구시였기에
이처럼
고고연하실수가 있습니까
살랑대는 바람
구름장의 유혹과
비바람의 아픈 매질을
다 몸 밖에 하시고
무르익는 감열매
주런히 거느리며
아무 말 없으시니
나 또한 이다음 무엇이 되여
그대곁에 나란히
어깨를 함께 할수 있을가요
우러러 쳐다보는
감나무 감나무여
이제 남은 일
석 화
섬뜩한 그 눈빛
화살이 되어
내 가슴에 구멍 하나
뚫어놓았다
차곡차곡 쌓여있던
반짝이는 말마디들과
뜨겁게 줄지어 서있던
수많은 글자들이
단꺼번에
쏴르르 쏟아져버려
가슴은 텅텅
비여버렸다
빈 가슴 반공중에
이제는 다만
돌덩이 하나쯤 매달아놓고
어느 새벽
꽃이 피나 꽃이 피려나
한없이 쳐다볼
그 일만 한가지
남았을뿐이다
나의 장례식
석 화
나는 나를 위해 구슬픈 장송곡 목메게 부르며
나는나의 무덤을 판다
나는 나의 흙 묻은 괭이를 던지고
나는 나의 안식차 나의 무덤에 드러눕는다
시커먼 구덩이는 구슬픈 기도 읊조리고
서리찬 기운은 쓰다듬어 안아준다
그러면 내가 무져놓은 흙더미 내 몸을 묻어주고
그러면 무덤은 둥그런 언덕이 된다
그러면 파묻힌 내 몸에서 심장만이 살아
아, 그러면 심장만이 살아서 싹터오른다
심장은 한그루의 나무가 되어 하늘 찌르며 자란다
그 나무에선 주렁주렁 새 심장들이 가득 열린다
- 《아리랑문학상》수상작품(1987년)
도시의 달
- 누나에게 1
석 화
누나!
우리의 달은 마을뒤 재너머 할아버지산소로 가는 휘우듬한 언덕마루애서 고무뽈처럼 튕겨올랐는데 여기 도시에서는 높은 아빠트와 커다란 빌딩 사이를 비집고 간신히 떠오르고 있습니다
누나!
우리의 달은 조잘거리는 도랑물소리와 벌끝 논두렁우에서 은은 하게 울려오는 단소소리에 둥-둥- 떠있었는데 여기 도시에서는 가로등불빛이 희미한 네거리에서 목에게 흐느끼는 색스폰의 부루스와 비발치듯 커피색창유리를 두드리는 나이트클럽의 디스코에 박자를 맞추지 못한채 이리저리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누나!
우리의 달은 고래등같이 덩실한 기와집추녀끝에 만월로 걸터앉아서 토끼와 계수나무의 꿈이 되고 은쟁반에 흘러넘치는 서러움이 되고 하였는데 여기 도시에서는 색바래고 구겨진 광고종이 한쪼각처럼 깜빡거리는 네온등의 오색불빛에 파리해져버린 밤하늘 저켠에 겨우 붙어있습니다
누나!
도시의 달은 이젠 모두 의미를 잃어버린채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처럼 멀건 흔적 한점을 남길가말가 하며 밤하늘과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스스로 조금씩 지워져가고있습니다. 우리의 꿈과 우리의 그리움과 우리의 서러움도 정말 아무런 흔적도 없이 우리의 가슴 속에서 사라져버릴 수 있을가요
거울을 닦습니다
석 화
당신 닮은 모습으로
저희를 만드셨다 하셨기에
당신을 보고지고
거울을 닦습니다
호오호 입김 불고
빡악빡 소매깃으로 문대며
알른알른 빤들빤들
잘 닦아진 거울 한장
들고 보고 놓고 뵈도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당신같은 모습을
어데도 없습니다
아직도 정성이
모자라서일가요
당신대신나타난
꾀죄죄한 저 모양
거울에 비춰진 볼꼴 없는 저 모양이
거룩하고 성스러운 당신일순 없는데
당신과 닮은 모습
저희들이라 하셨기에
당신을 보고비고
그래도 열심히
거울을 닦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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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시인은 정정한 거송巨松이여도 좋다
그 위에 한 마리 맹금猛禽이여도 좋다
굽어보고 고만高慢하라
이것은 정지용시인의 시론 ≪시의 옹호≫끝구절이다. 지용시인은 또 ≪우의와 리해에서 배양될수 없는 시는 고갈할수밖에 없으니 보아낼만한 이가 없이 높다는 시, 그렇게 불행한 시를 쓰지 말라≫고 했으며 ≪시는 다만 감상에 그치지 않는다. 시는 다시 애착과 우의를 낳게 되고 문화에 대한 치렬한 의무감까지 앙양한다.≫라고 썼다.
말그대로 시인이 도고하고 신선한 거송이 되고 맹금이 되려면 시인의 눈은 현실을 해부하는 칼날이 되고 그림을 그리는 부드러운 붓이 되기도 해야 한다.
시인의 고향 옥천군의 후원으로 지용시문화상이 제정된 이래 많은 시인들이 적극 호응해나섰으며 무게있는 시고들을 보내왔다. 거개가 독창적인 풍격과 개성적인 시정으로 나름대로의 시세계를 펼치였다.
운영위원회와 심사위원회의 반복적인 연구와 토론을 거쳐 올해에는 석화시인의 시집 ≪세월의 귀≫를 선정하였다. 석화시인의 시세계는 인간의 오묘한 정감을 진실하고도 감칠맛이 있게 그려주고 현실생활의 적극적인 소재에서 깊이있게 발굴한 주제를 독특한 기법으로 형상화했으며 민족정신과 민족풍격의 향이 짙게 풍긴다. 이리하여 그의 시는 사상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다 상당히 성숙되고 남다른 개성이 여물어가고있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거송처럼 멀리 내다보고 맹금처럼 깊이 굽어보면서 시의 의경意境을 높이기 위한 석화시인의 끈질긴 노력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수상시집을 내놓게 된 재능있는 석화시인에게 열렬한 축하와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우리의 시단에 시정의 잎새 푸른 거송들이 세월이 갈수록 무성해지리라는것을 거의 믿어의심치 않는다.
지용시문학상운영위원회 회장 시인 리상각
1998년 4월 20일
연길에서
■ 후기
끝없는 거듭나기 아름다움에 가는 외길
석화
세 번째로 묶은 이 시집 ≪세월의 귀≫가 정지용시인의 이름으로 명명된 ≪지용시문학상≫에 선정되여 시인의 고향 대한민국 옥천군문화원의 후원금으로 출판되게 되었습니다.
그저 고맙고 고마울뿐입니다.
우리의 령혼은 세계와의 부단한 마찰과 충돌속에서 항상 새로운 상처를 받게 되며 그 하나하나 깊게 패이는 상처자욱에서 비로소 시는 한송이 꽃으로 피여나는것입니다.
그것은 보다 나은 레일에로 향한 꿈이 늘 가슴에 뜨거운 열망을 가득차게 하고 꿈틀거리는 그 열망은 언제나 화려한 분출을 다시 꿈꾸면서 설레이는 서정으로 굽이치기때문이며 그것이 찬란한 불꽃으로 튕겨오른 뒤에는 또다시 새로운 꿈을 키우며 감동해야 하기때문입니다.
언제나 안정을 모르고 만족을 모르고 항상 거듭나기를 꿈꾸어야 하는것은 시인의 숙명이며 이 숙명이 바로 끝없는 아픔과 상처를 불러오는것입니다. 나무가 옷을 벗고 한 나이테 더 감듯이, 나방이가 탈을 벗고 나비로 화려히 변신하듯이, 뱀이 또 한번의 탈피로 성장해가듯이 끝없는 거듭나기는 아름다움에 가는 외길이며 따라서 시인은 늘 아픔과 상처를 떨쳐버릴수 없는것입니다. 더욱이 시는 령혼의 가장 예민한 촉각이라 할 때 시인은 자신의 아픔속에 당대가 발생시킨 아픔을 먼저 감수하고 아파해야하기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숙명이거늘 찬란한 슬픔이라 할지라도 장미와 가시의 계관을 어찌 이마우에 올려놓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이 시집의 제1부와 제2부는 97년, 98년 즉 최근에 쓴 작품들을 모은것으로서 ≪거듭나기≫의 꿈의 편린들입니다. 제3부는 93년 즉 시집 ≪꽃의 의미≫이후의 작품들을 추려서 묶었으며 제4부는 여러차례의 문학수상작품들을 한데 모았는데 한걸음씩 옴겨디딘 나의 시문학공부의 발자욱들에서 변모되여온 내 모습과 함께 우리 시단의 작은 한 옆모습이라도 보여드릴수 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에서입니다.
영광의 ≪지용시문화상≫을 받고 시집을 펴내는 감사의 이 자리에서 나는 네 가슴에 시의 첫 등잔불을 밝혀주신 시인 김문희선생님께와 그동안 오늘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이끌어주시고 부추켜주신 리상각선생님, 조룡남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스승님, 은사님들께 그리고 늘 한없는 믿음으로 지켜봐주신 어머님과 사랑하는 안해와 내 곁의 가슴 따뜻한 고마운 여러분들게 오늘의 이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지용문학상≫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과 이 시집의 간행을 맡아주신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의 편집원 여러분, 특히 ≪향수≫의 시인 정지용시인의 시정신을 여기 대륙땅에 꽃피우기 위해 수고를 다하신 대한민국 옥천군 문화원 박효근원장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1998년 4월 19일
연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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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화 詩集 [※세월의 귀※]
[ 해설 ] -
《버림》의 시학
연변대학 교수 문학박사 김병민
새로 출간될 시인 석화의 시집원고를 읽으면서 필자는 무욕의 세계에서 삶의 참뜻을 깨우치려는 우리 시대의 한 인간을 발견한 것으로 하여 무한히 기뻤다. 하긴 도시화의 물결이 몰려들면서부터 적지않은 인간들이 물신주의에 패배되고 과다한 욕구가 가치관념을 전도시켜 놓은 현실에서 허위를 버리고 진실을 찾아 고심하는 시인이 있으니말이다. 그것도 젊은 세대의 시인이란 점은 문학을 가르치는 필자로서는 실로 감개무량한 일이라 하겠다.
시집에는 시인에 의해 다양한 주제의식이 표출되고있으나 주되는것은 ≪버림≫ 속에 ≪얻음≫이 있다는 즉 무(无)는 곧 유(有)라는 삶의 철학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이 시집은 시인의 시집 ≪나의 고백≫(1989), ≪꽃의 의미≫(1993)의 출간뒤를 이어 시인자신이 인간존재의 의의를 새롭게 미학적으로 사색한 풍성한 열매라 하겠다.
시인 석화는 생명시학에 대한 진지한 추구로부터 인간을 자연속에 생명체로 관찰하였다. 하기에 그는 자연의 모든 생명에서 인간생명의 련속과 참뜻을 확인하였는바 푸르른 하늘과 출렁이는 바다와 강물, 무성한 숲과 한그루의 꽃과 나무, 해와 달과 별과 산과 들, 나는 새와 바람과 구름 등등 모든 자연의 물상들을 인간과 함께 살아 숨쉬는 존재로 보았고 그속에서 인간생명의 의의를 확인하였다.
≪가을≫, ≪하늘≫은 시인에 의하여 창조된 무욕의 이미지로 되어있다. 시 ≪가을하늘≫, ≪가을빛갈≫, ≪가을길≫, ≪가을숲에 들면≫, ≪가을과 마주서서≫, ≪하늘이 항상 머리우에 펼쳐져≫ 등에서는≪버림≫의 영원성과 아름다움, ≪버리지 못함≫의 자책과 부끄러움이 표현되여있다.
어느 분의 손길이 스쳐갔기에
저처럼 말쑥하게 닦여졌을가
한점 티도 없는 옥색하늘
가진것 모두다
비여내고서
푸르청청 높게도 열린 가을하늘
어느 분의 손길이 스쳐갔을가
- ≪가을 하늘≫
가을하늘은 무르익은 만물로 하여 가장 큰 영예의 소유자로 되어야 할것이 아닌가. 그러나 ≪가진 것 모두다 비여내고≫있다. 그것은 그대로 무욕의 세계요, 버림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하여 영원한 아름다움이 있기도 하다. 무욕의 세계인 가을하늘을 두고 ≪어느 분의 손길이 스쳐갔을가≫라고 하는 화자-시인의 사색적물음은 그대로 인간무욕에 경도된 정신적이미지로서 긴 여운을 남겨주기도 한다.
≪가을≫과 ≪하늘≫을 상징적이미지로 택한것은 얻어야 하는 ≪가을≫계절에 ≪하늘≫처럼 말끔히 ≪버리≫는 삶의 미학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적인 선택일것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인간의 과다한 욕망은 생명의 의의와는 전혀 무관한것으로서 반드시 ≪버림≫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지성적인 추구로부터 시인은 그에 가벼운 풍자와 랭소를 던져주기도한다. 시 ≪손이 둘인 리유와 곰과 그리고 사람≫에서 시인은 하늘을 바라보며 ≪량손에 떡 쥐고 고개 갸웃거리는≫인간상을 가볍게 풍자하였고 시 ≪사슬놀이≫에서는 ≪무서운 모의≫를 꾸미는 인간들에 랭소를 던져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시인은 무(无)만이 선(善)과 이어졌음을 암시해주기도 한다.
≪버림≫의 시학은 비단 인격형성에서뿐만이아니라 사랑실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시인은 참사랑의 실현을 위해서는 모든 허울과 리해타산을 버려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벗어버리는≫데 사랑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고 진실이 있고 영원이 있다고 보았다. 시 ≪사과를 먹자≫, ≪그 모습 다 벗고 포도들은 포도주가 된다≫,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처럼≫, ≪코스모스여-누나에게≫등과 사랑학개론의 계렬시편들은 허울벗은 무공리성만이 참사랑을 실현시키는 조건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있다.
사과를 먹자
해아래서
달아래서
하나의 동산을
다 넘겨줘버리고
한알의 사과를 바꾸어 먹자
- ≪사과를 먹자≫
맑은 그 빛깔
달콤한 그 맛
감미로운 그 향기
네가 나되고
나는 너로 된다
그 모습
다 벗고
비로소
포도들은 포두주가
된다
- ≪그 모습 다 벗고 포도들은 포도주가 된다≫
순결하고 진실하고 달콤하고 영원한 사랑을 위해서는 ≪하나의 동산≫을 선뜻히 버려야 하며 가리워진 모든 것을 벗어야만 한다. 시에서의 사과와 포도는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상징적이미지로 볼수도 있겠지만 무의식이미지로 보는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의식된 사랑세계는 벼슬과 금전과 문호등을 사랑조건으로 하는 ≪얻음≫을 위한 사랑세계와는 성격을 달리한다 하겠다.
인간의 순결한 삶을 위해서는 시인은 자책의 채찍을 휘둘러야 하는바 거울을 마주하고 아름답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닦고 또 닦아야 했으며 ≪거울을 닦습니다≫ 세월의 흐르는 물결에 자신의 오점을 깨끗이 씻어버려야 했다. ≪물결을 본다≫ ≪버림≫의 시학에 의한 시인의 삶의 설계는 너무나 숙명적이다.
언제면
모든 것 다 털어버리고
훌-훌 네자락에 누울것이냐
저 돌처럼
-하늘아래 고고한
그 모습이여
- ≪모아산을 두고-9.3에 드림≫
물론 이 시에서의 모아산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수 있겠으나 삶과 영혼의 마지막 종착점으로 볼수있지 않겠는가. 아무튼 시인은 풍요롭고 후회없는 삶을 위해서 모아산기슭에 있는 돌처럼 ≪모든것 다 털어버리고/훌-훌 네자락에 누울≫수 있는 깨끗한 결의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시인의 ≪버림≫의 시학실천은 도시화에 따른 피폐된 사회상과 기형화되고 팽창되어가는 인간들의 물욕에 대해서도 의문과 아픔을 던지지 않을수 없었다. 시 ≪도시의 달≫,≪탑에게≫,≪컴퓨터시대란다≫등이 바로 그런 주제의식에 바쳐진 작품이다.
왜 자꾸만
하늘이 낮다고 높다고
삿대질이냐
천년전부터 또 후에까지
목제, 석제, 철제…
숲처럼 일어설 탑 일어선 탑
그 끝에 찔리워 멍이 든 하늘
찢어질듯 펄럭거릴 저기 저 하늘
- ≪탑에게≫
시는 도시문명이 생태환경에 대한 파괴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시인은 ≪멍이 든 하늘≫,≪퍼렇게 구겨져있는 저 하늘≫에 대한 아픔을 통하여 아름다워야만 할 무욕의 세계가 파탄되어감에 하소연을 보내고있다. 시인의 이러한 지향세계는 시 ≪도시의 달≫에서 더욱 재치있게 전달된다. 시인은 도시인들의 피폐된 삶의 양상을 처량하기만 한 달의 상징적영상을 통하여 제시하고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시집의 주된 미학추구인 ≪버림≫의 세계의 시들에 대하여 간추려 살펴보았다. 물론 이외에도 다양한 경향의 시편들도 있으나 지면의 제한으로 분석을 략한다.
훌륭한 시인은 창조된 세계를 쓰는것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 시인 석화는 도도한 시적 선언을 하지 않았지만 분명 하나의 자기만의 시세계를 창조하였다. ≪버림≫의 세계, 그것은 도가(道家)의 ≪자연의 리치≫와 불교, 기독교 등 종교의 상상력을 현대적으로 터득해낸것이며 미학적으로 실천한것으로서 시인 석화에게 속한 미의 세계이다.
시인 석화의 시는 기교면에서도 너무나 성숙된 모습이다. 그의 시는 민족적정서표현과 운률의 전통을 시대감각에 맞게 혁신적으로 계승하였음은 평론계의 정설로 되고있는 형편이다. 그의 시는 일반적으로 밝은 정서를 표현하며 균형과 절제를 훌륭히 실현하고있는데 가변과 안정의 이중적성격을 지닌 층량3보격(昃量3步格)을 많이 채택한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표현하려는 정서와 감각에 따라 층량2보격(昃量2步格), 동량보격(同量步格) 등도 다양하게 사용하므로서 운률의 다양화를 얻어냈다. 이를테면 시행조직에 있어서 시행과 률행의 일치를 추구하면서도 심리와 감각이 다급히 움직일 때는 시행이 률행보다 작게 사색적일 때는 시행이 률행보다 길게 배치하고있다. 또한 시련조직에서는 의미론적층위에 리듬과 시공간의 이동을 잘 실현, 암시시켜준다. 이런 점은 시인이 민족시가의 운률적본질을 훌륭하게 파악하고있음을 시사해주고있다.
석화의 이 시집에서 특히 주목되는것은 이미지창조이다. 화제대상에 대한 정서관념을 감히 배제하고 물질적감각에 초점을 맞춘 즉물형시에서의 감각적이미지와 리성적통제를 맞춘 즉물형시에서의 감각적이미지와 리성적통제를 풀어 의식의 표면으로 무의식적심상을 떠올린 무의식형시에서의 무의식적이미지는 시인의 대담한 시적탐구의 결실이라 하겠다. ≪컴퓨터시대란다≫, ≪탑에게≫ 등 주지주의시들은 전자에 해당되고 ≪사과를 먹자≫,≪그 모습 다 벗고 포도들은 포도주가 된다≫, ≪항아리여≫, ≪가을숲에 들면≫ 등과 ≪누나≫가 등장하는 일련의 시편들은 후자에 속한다. 특히 시인에게 집착되고있는 ≪누나≫는 시인의 콤플렉스의 발로가 아닌가 한다. 무의식의 상징적표현인듯싶다. 가령 필자의 견해가 억측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의 시에서의 ≪누나≫의 상징적이미지는 앞으로 깊이 있는 연구가 기대되는 큰 과제이기도 하다. 물론 시에서의 이런 상징적이미지들은 시상의 깊이와 심미적공간을 훌륭하게 보장시켜준다.
시인 석화는 창작방법에 있어서 전통적인 레알리즘적정서표현에 모더니즘시기법을 수용하는 자세를 보였던바 기호학적상징으로 해체시를, 지성을 감각으로 표현한 주지시를 고심하게 실험하기도 했다. 이는 시대와 함께 도약을 꿈꾸는 시인의 시창작탐구의 결실이라 하겠다.
그러나 시집의 시편들에는 일정한 문제점도 보아진다. 시집을 전부 읽고나면 개개의 시편들이 아름답고 참신하며 주옥같이 다듬어졌다는 느낌과 함께 상황의식과 그에 따른 감각이 어딘가 결핍되어 있다는 유감도 가지게 된다. 특히 번뇌와 고민을 겪으며 삶의 턴넬을 뚫고나아가는 우리의 지역사회저변에서 사는 인간들의 숨결과 감각이 적게 들리며 적지 않은 상징은 고민의 상징이라기보다 여유있는 삶을 엮어가는 인간들의 고르롭지 못한 심리, 정서의 상징으로 된 느낌이다. 승용차에 앉아 아가씨를 끼고 드라이브하는 부유한 인간들보다 엄동설한에 인력거를 끌고 다니는 도시룸펜에게 이 시대의 아프고 저린 감각이 더욱 깊이 있게 숨어있을것이며 대우호텔에서 뷔페를 포식하는 사람들보다도 소매점에서 명태를 씹으며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에게서 이 시대감각이 더욱 절박하게 들리지 않겠는가? 연길의 로무시장에서 면절날마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이른새벽부터 일감을 찾는 도시에 밀려온 농부들속에도 훌륭한 시가 있지 않겠는가? 상황의식과 그에 따른 감각이 결핍된것은 순탄한 인생경력과 그래도 사회저변층 인간들보다는 여유있는 생활을 영위해온 시인의 체험세계와 관련되여있다고 본다. 상징의 깊이와 폭을 넓히려면 그리고 끈에 꿰어놓은 구슬이 쟁반에 떨어지듯이 긴 여운을 남기려면 고민과 고뇌에 사는 이 시대인간들과 늘 숨결을 나눠보는것이 시인에게는 필요이상일것이다.
시를 쓰지 않으면 못견디는 시욕(詩慾)을 가진 시인이 고뇌와 고민을 안고 사는 이 시대 인간들을 위해 더욱 훌륭한 시를 쓰기를 기대해본다.★.
1998년 4월 19일
연변대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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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훌륭한 시인은 창조된 세계를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 시인 석화는 도도한 시작 선언을 하지 않았지만 분명 하나의 자기만의 시세계를 창조하였다.
《버림》의 세계, 그것은 도가의 자연의 리치》와 불교, 기독교 등 종교의 상상력을 현대적으로 터득해낸 것이며 미학적으로 실천한 것으로 시인 석화에게 속한 미의 세계이다.
- 연변대학 교수 문학박사 김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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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 화 시인∥
∙ 1958년 7월 4일 중국 용정 출생
∙ 1982년 연변대학 졸업. 연변작가협회 리사
∙ 월간 《연변문학》편집
∙ <천지문학상> <두만강여울소리 시인상> <진달래문예상> <해란강문학상> <장백산문학상> <아리랑문학상> <압록강문학상> <도라지문학상> 등 자치주, 성, 국가급의 문학상, 문예상을 50여회 수상
∙ 1989년 시집 『나의 고백』1993년 시집『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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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석화시인이 [세월의 귀]시집과 시를 소개하여 주었네요. 머지 않아 새로운 시집이 출판되었다는 소식도 오겠지요.
이젠 청명도 지나고 봄빛이 완연합니다. 늘 고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