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내부 발달시키기-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 그리고 자아
유튜브를 가끔 보면서 특히 자주 클릭을 하게 되는 스포츠 선수들이 있다. 지난 번에 보았으면서도 또 보는, '왜 그럴까'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리나라의 스포츠 선수들로 야구, 축구선수들을 필자가 본다. 자세히 관찰해 보니 대부분 코어 근육이 굉장히 발달했는데, 그 근육이 생명의 힘, 에테르체와 연결되어서 우주의 기운-에너지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그 에너지가 필자로 하여금 클릭을 하게 한다-.
코어근육운동(Core muscle training)은 인체의 세로축인 척추와 가로축인 복부, 허리, 골반부, 횡격막근과 관련된 골격 및 근육을 가리키는 코어근육의 안정성 또는 이러한 코어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을 말한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신체의 입체적인 중심에 위치하는 몸통을 고려하고 있다(다음 백과 사전 참조).
코어근육이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하지만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근육이 에테르체가 두루 퍼져있는 우주의 에너지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원래 인간의 몸에 생명을 주는 것은 에테르체이고, 에테르체는 우주에 두루퍼져 있지만, 그 정도가 일반 사람들보다 강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었다
예컨대 야구선수가 공을 던질때 그 속도가 어마어마하다. 축구선수 역시 전후반 전을 100 미터 달리기 수준으로 운동장을 달린다. 인간의 힘이라고 이해하기는 어려울 정도이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우주에 까지 연결된 자신의 에테르체를 강화시켜서 우주의 에너지를 쓰기 때문이다. 우주의 힘은 삼라만상이 자라는 그 힘이므로, 에너지가 상상을 초월한다. 누구라도 -자신의 생명의 힘을 강화시키면- 그렇게 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가 질문이다. 반대의 생각도 가능하다. 현재 자신의 생명의 힘이 약하다면, 에테르체가 위축되어 있어서 그렇다는 사실을 파악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 운동선수들은 자신의 내부-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 그리고 자아, 를 강화시켰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내부를 발달시키는 정도가 곧 자신의 능력이다. 반면 자신의 내부가 빈약하면 삶의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한다. 요즈음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마감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현재의 인류는 대부분 내부를 배제하고 외부로만 시야를 열어서 내부가 위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에테르체를 강화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말하면 열망, 사랑이다. 내가 무엇을 하겠다 하는 생각이 강하면 강한 만큼 에테르체가 강화된다. 에테르체가 삼라만상이 자라는 힘이고, 삼라만상은 사랑으로 자란다. 따라서 사랑, 열망이 강하면 강할 수록 에테르체의 힘이 강해져서 우주에까지 연결된다. 다만 내가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에테르체가 활성화된다는 것 또한 정신의 속성이다. 대부분 세계적인 선수들을 보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열망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반대의 이야기도 가능하다. 내부를 배제하면 그만큼 내부는 잠을 자거나 망가진다. 보이지 않아서 간과하지만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양파 실험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같은 조건으로 양파 두개를 준비한 다음 한 양파에게는 매일 욕을 하고, 다른 양파에게는 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욕을 한 양파는 잘 자라지 못하고, 사랑한다고 말해준 양파는 싱싱하게 자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양파를 자라게 해주는 힘이 에테르체로, 사람도 같은 에너지로 자란다. 그런데 보이지 않으므로 이를 간과하는 것이다.
이렇게 에테르체가 활성화되면, 아스트랄체를 통하여 배우고 익혀야 한다. 아스트랄체는 감정체로 빛을 내면서 스스로 움직이는 존재이다. 아스트랄체는 인간이 잠을 자면 몸 밖으로 나왔다가 잠에서 깨면 다시 몸 안으로 들어간다. 즉 몸 안과 몸 밖을 왔다 갔다하는 존재가 아스트랄체이다. 스스로 왔다 갔다한다는 것은 몸을 관통해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이를 인간이 바이올린을 켜면, 바이올린의 진동을 아스트랄체가 감지한다고 표현할 수가 있다. 슈타이너는 이렇게 감지하는 아스트랄체를 소가 음식을 먹고 되새김을 하는 쾌적함에 비유했다. 즉 아스트랄체가 진동한다고 이해해도 된다. 바이올린의 소리는 아스트랄체의 진동으로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것이다. 사람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소리가 다른 것은 아스트랄체의 진동이 얼마나 아름다우냐에 달린 것이다. 인간에게 있지만 감지하기 어려운 아스트랄체가 아름다운 소리를 내도록 바이올린 연주를 해야 하니 연습을 많이 해야한다는 사실이다. 바이올린 뿐만아니라 모든 배움도 그와 같다. 선수들도 에테르체의 힘이 강화되었더라도 아스트랄체가 그 운동을 익혀서 아스트랄체가 움직여야 하니 어렵기는 같다. 아스트랄체가 익히고 배우므로 수백번 반복하고 또 반복해야 한다.
인간이 우주에 연결된 것은 에테르체가 우주에 두루 퍼져있기 때문이다. 에테르체는 인간의 생명체계를 만들고 운영한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체계, 신경도 에테르체에 의해서 운영된다. 요컨대 에테르체가 인간이 하는 사고내용의 핵심이고, 그런 사고내용을 인간이 잠에서 깨면 상으로 제시하는 것도 에테르체이다. 종합하면 에테르체는 사고내용을 상으로 제시하고, 또 상으로 받아들인다. 만약 에테르체에 실재를 제안할려면 상으로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아스트랄체가 물질과 소통하면서 에테르체의 사고내용을 활성화시킨다. 이를 아스트랄체가 직접 빛과 에테르와 화학작용을 한다고 표현한다. 에테르체의 사고내용을 아스트랄체가 받아들여서 배움을 익히게 한다고 할 수가 있다. 즉 우리가 지상에서 배운다는 것은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의 협동 작업이라는 사실이다.
자아는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가 수행한 결과를 받아들여서 표출하고, 결과 점차 성장한다. 물론 자아는 이런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를 자극하고 정화해서 각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독려하는 역할도 한다. 이렇게 성장하는 경우를 영혼이 성장한다고 말한다. 감각체-아스트랄체는 정신자아가 되고, 에테르체는 생명정신으로, 육체는 정신인간으로 성장하게 된다. 정신자아란 문화를 습득해서 발전하는 것이고, 생명정신은 습관, 기질, 성격 등이 변하는 것이다. 정신인간은 호흡 맥박 등이 성장하는 경우이다. 변화의 어려운 정도는 육체, 에테르체 아스트랄체 순서이다.
인간의 내부를 정신으로 파악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현재 과학적으로 말하는 수준은 자동차 부품을 각각 따로 보면 움직이지 않지만 부품을 모두 조립하면 움직이는 것처럼 인간도 그와 같다고 말한다. 인간의 장기를 모두 조립하면 인간이 사고하고 느끼고 움직이는가고 생각해 보면 그 수준이 짐작된다.
인간은 생명체, 에테르체가 몸의 크기만큼 둘러싸고 있고 여기에 아스트랄체가 더 크게 같은 범위로 둘러싸고 있다. 에테르체는 몸을 둘러 싸고 있지만 몸 안에도 같이 존재한다. 이를 자아와 아스트랄체가 직접 만나서 화학작용을 한다. 예컨대 육체가 받는 중력을 자아가 직접 받아서 육체는 자아가 느끼는 만큼만 받는다. 자아는 영혼 안에 존재하지만, 정신은 자아 안에 위치한다. 이러한 인간의 내부는 각각 서로 서로 연결되어서 상호작용을 한다. 상호작용 결과가 정신이다. 인간이 정신을 파악할려면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 그리고 자아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정신은 에테르체, 아스트랄체, 자아의 상호작용이고, 각각의 발달은 인간의 발달단게에 명시되어 있다. 인간의 발달단계를 잘 파악해서 발달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발달단계는 0-7세- 육체가 자라는 시기, 7-14세, 에테르체가 탄생해서 자라는 시기, 14-21세 아스트랄체가 탄생하고 자아체가 성장한다. 지금과 같이 내부를 무시하고 외부로 아이들의 시선을 돌리게 하면 내부가 발달하기 어렵다. 결과 에테르체가 우주의 힘을 받지 못하고, 아스트랄체가 배움을 받아들이지 못하므로 자아가 성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인간의 내부가 역할을 한 결과가 사고내용이다. 자신이 왜 사고를 못하는지, 자신이 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지 그 모든 것이 자신의 내부에 달렸다. 그러면서도 정신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문제인지도 파악하지 못한다. 이는 모두 인류가 인간의 정신을 배제하고 보이는 것만 인정한 결과이다. 현재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을 휴지처럼 버린다. 만약 자신의 문제가 내부가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파악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리고 그렇게 된 까닭이 교육, 현 인류의 사고방식에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억울할 것이다란 생각도 든다.
방법은 스스로 자신의 내부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어쩔 수 없을 것이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