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陳情表〉 李密(令伯)
중국 삼국시대 말, 서진 초의 관료 이밀(李密)이 진나라 태시 3년(268년)에 진무제(晉武帝)의 부름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기 위해 바친 표(表)이다. 표란, 신하가 황제에게 올리는 글을 일컫는다. 관직 제수를 기어코 사양하는 까닭을 표로 밝히고 있는데, 중국사를 통틀어 최고의 효행명문으로 통용된다. 이 표문은 상주문(上奏文)으로 사마염에게 올랐으며, 사마염은 감동하여 이밀에게 노비와 식량을 하사하고 신하들이 돌려 읽도록 했다. 이밀은 조모 사후 비로소 임관하여 상서랑, 현령 등을 차례로 지냈는데 한중태수를 역하던 중 황제의 노여움을 사 파직되었다. 당시 황제 역시 사마염이었다. 진정(陳情)이란 실정이나 사실을 진술한다는 뜻이므로, 진정표란 이름의 표문은 이밀의 전에도, 후에도 있었다. 때문에 본래 이밀진정표, 혹은 진정사표(陳情事表)라고 칭해야 하지만 통상 진정표라 하면 이것을 가리킨다.
∙이밀(李密): 삼국시대 촉나라, 서진의 인물이며 자는 영백(令伯)이다.
∙삼국시대란 중국의 통일 왕조인 후한이 멸망하면서 군벌들의 세력 싸움 끝에 조위(曹魏), 촉한(蜀漢), 손오(孫吳)라는 세 나라로 갈라진 시대를 말한다.
臣以險釁신이험흔으로 夙遭愍凶숙조민흉하여 生孩六月생해육월에 慈父見背자부견배하고
신은 기구한 운명으로 일찍이 부모와 사별하는 불행을 만나서 태어난 지 여섯 달 만에 자애로운 아비를 여의었고,
∙險釁(험흔): 험난한 운명/기구한 운명. 釁(흔): 운명.
∙민흉(愍凶): 딱하고 흉한 일/부모와 사별한 불행.
∙生孩(생해): 아이로 태어나다/태어나다.
∙見背견배: 등짐을 당하다/아비를 여의다. 見는 피동이다
行年四歲행년사세에 舅奪母志구탈모지어늘 祖母劉閔臣孤弱조모유민신고약하여 躬親撫養궁친무양하니
신의 나이 네 살에 외삼촌은 수절하겠다는 어머니의 뜻을 빼앗아 개가를 시켰습니다. 할머니이신 유씨께서 외롭고 유약한 것을 가엾게 여겨 친히 감싸주며 길러주셨습니다.
∙行年(행년): 지나온 나이/먹은 나이/나이.
∙구(舅)는 시아버지, 외할아버지, 외삼촌 이 모두 해당이 되나 여기서는 ‘외삼촌’을 뜻한다.
∙祖母(조모): 할머니.
∙母志(모지)는 어머니의 뜻/수절하겠다는 어머니의 뜻.
∙조모유(祖母劉)는 비칭(卑稱)으로 임금께 올리는 글에 따른 옛 법이다.
臣少多疾病신소다질병하여 九歲不行구세불행하고 零丁孤苦영정고고하여 至于成立지우성립이라
신은 어려서부터 질병이 많아서 아홉 살이 되도록 제대로 걸어 다니지 못하였고, 외롭게 홀로 고생하다가 어렵게 성장하였습니다.
∙臣이라고 한 것은 신하가 황제에게 올리는 글이기 때문이다. 臣 대신 이름을 대기도 한다. 그러나 성과 이름을 함께 대지는 않는다.
∙零丁孤苦(영정고고): 외룁게 홀로 고생하다. 孤苦(영정): 떨어짐을 당하다/의지할 곳이 없다/외롭게. 孤苦(고고): 홀로 고생하다.
∙至于成立(지우성립): 성인이 되는데 이르다/성장하다.
旣無叔伯기무숙백하고 終鮮兄弟종선형제하며 門衰祚薄문쇠조박하여 晩有兒息만유아식하니
이미 신에게는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도 없었고, 마침내 형제도 적은데다 가문이 쇠락하고 복이 없어 뒤늦게 서야 자식도 두었습니다.
∙옛날의 兄弟는 8촌 형제 까지 이다. 상복을 입는 경우도 8촌까지이다.
外無朞功强近之親외무기공강근지친이요 內無應門五尺之童내무응문오척지동이라
밖으로는 상을 당하였을 때 기복(朞服)이나 공복(功服)을 입을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줄 가까운 일가친척도 없었고, 안으로는 문에서 손님을 응대할 어린 아이도 없습니다.
∙朞는 기년복(朞年服)이고 功은 공복(功服)으로 대공복(大功服)·소공복(小功服)을 말한다. 기년복은 1년, 대공복은 9개월, 소공복은 5개월 동안 입는 상복이다. 상복 또한 촌수에 따라 가깝고 먼 차등을 두는 옛 법을 따른 것이다. 이는 사랑에 대해서도 차등을 둔 것으로 儒家에서는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을 人之常情의 가장 큰 사랑으로 여긴다. 이러한 점에서 누구나 똑같이 사랑한다는 墨子의 겸애설을 부정하고 있다.
∙强近之親(강근지친):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줄 가까운 일가친척.
∙오척지동(五尺之童)은 12~14살 사이의 어린아이를 말한다.
煢煢孑立경경혈립하여 形影相弔형영상조어늘 而劉夙嬰疾病이유숙영질병하여 常在牀褥상재상욕하니 臣侍湯藥신시탕약하여 未嘗廢離미상폐리로소이다
그저 외롭게 홀로 서서 신의 몸과 그림자만이 서로 위로해주는 처지였습니다. 그런데도 할머니께서 일찍이 질병에 걸려 늘 병석에 누워 계셨습니다. 그래서 신이 탕약을 지어드려야 하므로 곁에서 그 일을 중단하고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煢煢(경경): 외롭고 의지할 곳 없는 모양. 외롭게.
∙嬰疾病(영질병): 병에 걸리다.
∙牀褥(상욕): 병석.
逮奉聖朝체봉성조에 沐浴淸化목욕청화하여 前太守臣逵전태수신규 察臣孝廉찰신효렴하고 後刺史臣榮후자사신영이 擧臣秀才거신수재어늘
그나마 성스러운 조정을 받들고 나서야 맑은 교화로 몸을 씻어 일전에 태수였던 규(逵)가 신을 효렴으로 천거하고 그 후엔 자사 영(榮)이 수재로 추천해 주셨습니다.
∙규(逵)와 영(榮)이라고 이름만 말한 것은 제왕에게는 성씨를 붙일 수 없기 때문이다.
∙성조(聖朝)는 삼국을 통일한 진(晉)나라를 말한다.
臣以供養無主신이공양무주로 辭不赴{命}사불부명이러니 會詔書特下회조서특하하사 拜臣郞中배신낭중하시고 尋蒙國恩심몽국은하여 除臣洗馬제신세마하시니
신으로서는 할머니의 공양을 맡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사양하여 그 명(命)을 미처 따르지 못했사온데, 때마침 폐하께오서 조서를 특별히 내리시어 신을 낭중으로 임명하셨고 이어서 나라의 은혜를 입어 신을 태자세마(太子洗馬)의 벼슬로 임명하시니,
∙辭(사): 거절하다/사양하다.
∙조서(詔書)는 조칙(詔勅)이라고도 한다.
∙尋(심): 이윽고/얼마 되지 않아/얼마 후/이어서.
∙拜(배): 벼슬을 주다/임명하다.
∙蒙(몽): 받다/입다.
∙除(제): 벼슬을 주다/임명하다.
∙洗馬(세마): 어린 세자를 가르치는 직책.
猥以微賤외이미천으로 當侍東宮당시동궁이라 非臣隕首所能上報비신운수소능상보니이다
외람되게 이 미천한 몸으로 동궁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신은 남은 평생 목숨 바쳐 일한다 해도 위로 그 은혜를 보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當(당): 맡다/되다.
∙隕首(운수): 머리를 떨어뜨리다/목숨을 바치다.
臣具以表聞신구이표문하여 辭不就職사불취직이러니 詔書切峻조서절준하사 責臣逋慢책신포만하시고 郡縣逼迫군현핍박하여 催臣上道최신상도하니 州司臨門주사임문이 急於星火급어성화라
이에 신은 자세히 표문으로 아뢸 뿐 사양하고 그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대 황제께서 내리신 조서가 간절하고 준엄해서 신의 태만함을 꾸짖으시고, 군현의 관리들이 독촉해서 신에게 길에 오를 것을 재촉하며 주(州)의 관리들이 문 앞에 와서 재촉함이 불빛보다도 급합니다.
∙聞(문): 아뢰다.
∙포만(逋慢)은 도망가고 게으른 것으로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말한다. 태만하다.
∙상(上)은 임금이 계신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니 때문에 상이라고 한 것이다.
臣欲奉詔奔馳신욕봉조분치인댄 則以劉病日篤즉이유병일독이요 欲苟順私情욕구순사정인댄 則告訴不許 즉고소불허하니 臣之進退신지진퇴 實爲狼狽실위낭패로소이다
∙告訴(고소): 하소연하다.
신이 조서를 받들어 서울로 달려가고 싶으나, 이 때문에 할머니의 병세는 날로 위독해 질 것이고 구차하게 사사로운 정을 따르고자 하소연하여도 허락해주시지 않으시니, 신이 벼슬길에 나아가야 할지, 물러나야 할지 몰라 실로 딱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狼狽(낭패): 딱하게 되다/딱한 처지가 되다.
伏惟聖朝以孝治天下복유성조이효치천하하사 凡在故老범재고로에도 猶蒙矜育유몽긍육이어든 況臣孤苦特爲尤甚황신고고특위우심하니이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성스러운 조정에서는 효로써 천하를 다스리시어 모든 늙은이들도 오히려 가엽게 여겨 길러지고 있사온데, 더구나 신은 외롭고 고달픔이 더욱 심합니다.
∙伏惟(복유): 엎드려 생각하다. 惟(유): 생각하다.
∙유몽긍육(猶蒙矜育)은 황제의 입장에서 본 표현이다.
且臣少事僞朝차신소사위조하여 歷職郞署역직낭서하니 本圖宦達본도환달이요 不矜名節불긍명절이라
또한, 신이 젊어서 정통성을 이어받지 못한 촉한(蜀漢)을 섬겨 낭서의 직책을 지내사오니, 본래 관리로써 영달을 도모한 것이지 명예나 절의를 숭상하지 않았습니다.
∙위조(僞朝)은 정통성을 이어받지 못한 촉한(蜀漢)을 말한다.
今臣금신은 亡國賤俘망국천부라 至微至陋지미지루어늘 過蒙拔擢과몽발탁하니 豈敢盤桓기감반환하여 有所希冀유소희기릿가
이제 신은 망한 나라의 천한 포로로서 지극히 하찮고 천한데도 지나친 발탁의 은혜를 입어사오니 어찌 감히 주저하며 더 바라는 바가 있겠습니까?
∙盤桓(반환): 우물쭈물하다/주저하다. 盤(반): 원형으로 돌다. 桓(반): 머뭇거리다.
但以劉日薄西山단이유일박서산하여 氣息奄奄기식엄엄하니 人命危淺인명위천하여 朝不慮夕조불여석이라
다만 할머니 유씨의 병이 흡사 해가 서산에 이른듯하여 숨이 거의 끊어질듯 하오니 사람 목숨이 위태롭고 얼마 남지 않아서 아침에 일어나 그날 저녁의 일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입니다.
∙氣息奄奄(기식엄엄): 숨이 거의 끊어질듯하다.
臣無祖母신무조모면 無以至今日무이지금일이요 祖母無臣조모무신이면 無以終餘年무이종여년이니
신에게 할머니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오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며, 할머니께서도 신이 없다면 여생을 마칠 수가 없습니다.
∙餘年(여년): 앞으로 남은 인생/여생.
母孫二人모손이인이 更相爲命경상위명일새 是以區區不能廢遠이시구구불능폐원이로소이다
할머니와 손자 두 사람이 교대로 서로의 목숨을 돌보아 주기 때문에 절박하여 봉양을 그만두고 멀리 떠날 수가 없습니다.
∙區區(구구): 절실하다/절박하다.
臣密신밀은 今年四十有四금년사십유사요 祖母劉조모유는 今年九十有六금년구십유육이니 是臣盡節於陛下之日시신진절어폐하지일은 長장하고 報劉之보유지日일은 短也단야라
신 밀은 올해 마흔넷이고, 할머니 유씨는 올해가 아흔 여섯입니다. 이는 신이 폐하께 충절을 다할 날은 길지만 할머니 유씨의 은혜에 보답할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밀(密)이라고 이름만 말한 것은 제왕에게는 성씨를 붙일 수 없기 때문이다.
烏鳥私情오조사정이 願乞終養원걸종양하오니 臣之辛苦신지신고는 非獨蜀之人士비독촉지인사와 及二州牧伯所見明知급이주목백소견명지라 皇天后土實所共鑑황천후토실소공감이오니
까마귀[烏鳥]에게도 어미에게 보답하려는 사사로운 마음[私情]이 원컨대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봉양하기를 빌어봅니다. 신의 이러한 괴로운 처지는 다만 촉 지방 사람들과 두 고을의 목(牧)과 백(伯)이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실로 천지신명께서도 굽어보고 있사옵니다.
∙오조사정(烏鳥私情) 이 글자는 그대로 고사성어가 되었다. 烏鳥私情(오조사정): ‘까마귀가 새끼 적에 어미가 길러 준 은를 갚는 사사(私事)로운 애정’이라는 뜻으로, 자식이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려는 마음을 이르는 말.
∙皇天后土(황천후토): 천지신명(하늘과 땅의 신).
願陛下원폐하는 矜憫愚誠긍민우성하시고 聽臣微志청신미지하사 庶劉僥倖서유요행하여 卒保餘年졸보여년이시면 臣신은 生當隕首생당운수요 死當結草사당결초리이다
원컨대 폐하께오서는 어리석은 정성을 가엽게 여기시어 신의 하찮은 뜻을 허락해 주셔서. 바라옵건대 할머니 유씨가 요행으로나마 여생을 보전할 수 있게 해주신다면 신이 살아서는 목숨을 바칠 것이며, 죽어서는 마땅히 결초보은(結草報恩)하겠습니다.
∙矜憫(긍민): 가엽게 여기다.
∙結草報恩(결초보은): ‘풀을 묶어서 은혜를 갚는다.’는 뜻으로, ‘죽어 혼이 되더라도 입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다.’는 뜻이다.
臣不勝怖懼之情신불승포구지정하여 謹拜表以聞근배표이문하노이다
신은 두려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절하고, 표문을 지어 아뢰나이다.
∙怖懼(포구): 두려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