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지나간 매트리스에는 흔적이 남는다. 비좁은 방일지라도 연인들은 그곳에서 서로의 반을 풀어놓는다. 시간과 감정과 체액은 매트리스라는 세계에서 곰팡이를 배양하게 된다. 호흡을 가지게 된 곰팡이는 한강에 살던 상괭이의 척추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뼈를 탐하고 연인의 식어버린 애정과 “죽어”라는 저주가 담긴 감정을 먹고 인간의 형태를 갈망한다. 타임랩스 화면과 함께 곰팡이의 로드 무비는 이제 막 시작한다. 매트리스는 서울의 북부를 떠돌며 다양한 군상과 감정을 만난다. 열렬한 애정부터 죽음을 바라는 저주 사이에는 물질적 욕망, 전달하고픈 간절한 말 한마디, 서로를 향한 끈적한 탐닉마저 녹아있었다. 빼앗지 않으면 가지지 못할, 수평이 아닌 수직이 되고 싶은 곰팡이의 여정(旅程)에는 여정(旅情)이 녹아있다. 척추를 가져야만 서있는 존재가 될 거라 믿는 이 괴상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이 <다섯 번째 흉추>다.
<다섯 번째 흉추>를 서사로 이야기하려면 어려운 부분이 있다. 작품의 표현 방식이 기존의 한국독립영화의 문법과 동떨어진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 만연한 작품들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에 관해 재연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면, SF와 크리쳐가 녹아든 여성서사라는 독특한 지점을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장르 영화 문법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가장 인간과 멀어 보이는 존재가 가장 인간스러워지는 과정은 <더 씽>이나 <언더 더 스킨> 같은 문제작들에서 레퍼런스를 차용한 흔적들을 발견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장르적 문법의 현대적 재해석에 불과한 작업이라는 인상 역시 피하긴 힘들어 보인다. 굳이 영화를 예시로 들지 않더라도 다양한 형태로 신체를 강탈하고 인간의 정체성을 취하는 구조의 예시물들은 숱하게 많다. 이 작품 역시 그 중력장 안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이 아닌 형식의 변주를 통해 낯선 시선으로 주제를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특이성을 찾을 수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곰팡이는 개체를 변이하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여성의 감정에 오롯이 공감한다. 자신을 만들어준 창조주와 다름이 없는 ’결‘은 상괭이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오래전 한강을 누비던 상괭이는 오염과 어민들의 어업으로 수없이 많은 죽음들이 인간의 슬픔과 함께 강 바닥을 채우고 있다고 애인인 윤에게 설명하지만 그는 곤이 잠들 뿐이다. 두번째로 조우하는 모텔에서의 연인들중 남자는 자기 연민에 허우적 거리고 있다. 여자는 객관적인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의 감정만 토로하는 남자가 너무나 밉지만 행복했던 추억은 쉽게 그들을 가르지 못하게 한다. 주인공은 그들에게서 흉추를 빼았아간다. 마치 그들의 사이를 만들던 모호한 감정을 먹어 치우는 것이다. 그렇게 배설되지 못하게 응어리진 감정을 삼킨 주인공은 서서히 인간의 형태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주는 시한부 환자에게 부탁을 받게 되고 빚을 진 사람처럼 목적이 생기게 된다.
인간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거의 다 도착하지만 주인공은 결국 다섯 번째 흉추를 얻지 못한다. 심장에 가장 가까운 흉추를 얻지 못했기에 사람이라는 마음은 결국 가닿지 못하는 편지처럼 강물에 흘러 사라진다. 어쩌면 균사체가 되고자 했던 건 인간이 아닌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본다. 희노애락과 회상할 과거와 전해지지 못할 말들과 멀기만한 욕망들은 결국 꼭 전하고 싶지만 전해지지 않을 말처럼 부유하는다. 주인공이 보고 듣고 느꼈던 인간들은 그 이야기들이 뭉쳐진 존재로 인지했던 걸지도 모른다. 어떤 말들은 척추라는 플롯이 되고 단어와 문장이라는 피와 살가죽을 그러모아 씌워진다. 이 기괴한 아름다움이 어디로든 닿기를 바란다. 강바닥의 상괭이 뼈처럼 슬프게
남아있지 않기를 바라며,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
스틸컷들만 봐도
마치 습해지는 기분이드네요.
특이한 주인공을 소개해주셔서 ㅎㅎㅎ 궁금해지는 영화를 선물해주셨네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상괭이,한강고수부지에 살쾡이로 생각하고 쭉 읽다가,검색해보고 다시봤습니다^^
소대님 정말 박학다식하고 필력 좋은시네요~
참붕 처럼 영화리뷰 책 내셔도 최소 18쇄는 찍으실듯요^^
저는 이 영화가 (매우) 맘에 들었어요
맘에 들었다는 것은 영화의 훌륭함과는 조금 다르죠정리되지못한 날것의 치기도 보이고
적은 예산탓이겠지만 아마추어틱한 연출
다듬어 지지않아서 거친 편집들..
하지만
저는
예술가가 처음 가져야할 덕목인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옮기는 일~그림으로 음악으로 몸으로 영상으로~에 주저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일단 그 면에서 감독님이 용기있다고 생각했구요
충분히 표현되었다고 봤어요
보통 이런영화들이 뒷심이 부족한 경우가 많은데
저는 결말 매조지도 좋았습니다
(영상으론 잘 표현되지 못했지만) 점프된 시간과
편지의 행방과 나레이션과 (촌스런) 버섯모듬들...
곰팡이의 기이한 여행이라 제목붙일 이 영화는
매트리스 재사용이 용인초과라던가
조금더 흉추의 탐함을 적극적으로 표현했어야됐었다라던가
화면 색감을 조절했어야됐다라던가
하는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또 한분의 새감독을 만난 영화였습니다~
소대가리님 서사적인 면을 잘 정리해주셨네요
읽으면서 기억을 떠올렸어요
참 신체강탈영화 외계의 침입자랑 그 리메이크작
신체강탈자의 침입
또 이 바닥 명작있는데 생각이...남극기지..가 배경인..
더 씽입니다~~(본문에 있는걸ㅋㅋㅠ)
저는 이영화를 신체강탈로 접근하지 못했는데..
그렇게 보일수도 있겠구나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