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유토피아＞ 리뷰

[소대가리]

잘 짜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서사는 그 자체로 보는 이들에게 그 상황을 현재로 인지하게 납득시킨다. 모든 것이 붕괴된 세상에 생존자라는 사실은 어떻게 살아왔느냐 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방점을 두게 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한민국의 아파트라는 건축물의 역사를 훑으면서 시작한다. 도시가 개발되고 사람들이 몰리고 주거에서 재산이 되었다가 계급과 신분을 상징하는 정체성이 되는 과정들을 보여준다. 아파트로 나를 증명하는 시대는 대재앙 앞에서 처참히 무너졌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여전히 아파트냐 아니냐로 서로를 구분한다. 오해와 불신은 절망과증오로 서로를 사람 잡아먹는 괴물로 만들었다. 국가라는 개념은 무너지고 어줍잖은 민의를 구성해서 자치를 이어간다. 영화의 초반부 본격적인 서사가 전개 되기 전에 황궁 아파트 입주민과 드림팰리스로 대변되는 외부인을 밖으로 쫓아내자는 의견으로 인해 마찰이 생긴다. 엄동설한에 갈 곳이 없는 이들은 읍소를 하고 따지거나 하는 중에 한 사내가 거드름을 피우며 등장한다. 지역구에 국회의원이라는 그는 이럴때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는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하며 주도권을 가지려고 한다. 입주민 대표로 추대된 김영탁에게 저지를 당하고 의원의 보좌관은 드잡이를 한다. 결국 그들을 내치고 외부인을 몰아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영탁은 신임과 함께 아파트 내에
권력자가 된다. 스테레오타입의 코미디처럼 모든 것이 무너진 세상에 정치가와 보좌관이 소동을 피우다가 사라지는 장면은 일견 소모적인 상황처럼 보이지만 그 역할은 필수적이었다. 지역의 권력을 폭력을 수반한 이에게 넘겨준 것이니 말이다. 영화는 한 머저리와 주인공의 상황극을 통해 정치적 부재를 필연적으로 그리지만 거기에 골몰하느라 재난 너머의 세계를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지진과 이상 기후라는 알 수 없는 재난 앞에 무너진 인간 군상의 모습을 핍진하게 보여주면서 현대 사회가 앓고 있는 모순의 병폐를 세밀하게 짚어낸다. 저가 아파트라고 무시받던 황궁 아파트는 살아남은 자들에게 유일한 생존의 보루가 된다. 평소 자신들을 무시하던 드림팰리스 주민들의 행태를 언급하며 이제는 명실상부 우리 아파트라 최고라며 브랜드를 통한 계급 나누기를 보여주고, 실거주자들의 대책 회의를 통한 외부인을 대하는 방식으로 난민문제를 상기하게 한다. 거기에 공동체에 기여도를 환산해 배급을 나누는 방식은 능력주의에 의거한 기계적 공정성이 불러오는 사회적 불안정을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 불구덩이에서 사람을 구하고 주민 대표라는 완장을 찬 영탁이 서서히 권력으로 다른 의견을 묵살하는 방식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해가는 방식과 김민성과 같이 보통의 선량함을 지닌 이들이 서서히 집단 적 광기에 자신을 잃어가는 모습은 우리가 투쟁을 통해 극복했던 전체주의의 망령이 도래한 것처럼 보인다. 영화에서 펼쳐지는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내제된 것들이 어떤 악덕과 모순을 만나면 발현될 것인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진짜 그들을 지옥으로 몰아넣는 건 결국 배제된 정치라는 장치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기존에 디스토피아를 다룬 작품들과 결을 달리하는 지점은 인간의 생존본능을 즉물적인 방식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영화 속에서 그들 역시 타인을 배척하고 한정된 자원을 두고 이전투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 그 타락은 영탁이라는 지도자의 지휘 아래서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정치 행위를 버렸을 때부터 가 시작이다. 즉, 다른 디스토피아를 작품들과 비교를 해보면 인간의 추악성을 드러내는 장치로 디스토피아라는 배경을 사용한다면, 황궁 아파트 사람들의 야만 행위는 정치의 부재로 본질인 인간성을 서서히 상실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있을 것이다. 전자와 후자 사이에는 커다라는 간극이 있다. 인간의 조건이 전자에선 필연적으로 무너지는 위한 선행이라면 후자는 스스로의 자각과 정치라는 가치를 통해 회복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한국 재난물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었다. 생존을 위한 여정이나 끝을 알 수 없는 지옥의 나날들이 연속된다는 점에서 기시감이 들긴 하지만, 정치의 부재라는 키워드를 통해 정치는 선악으로 구분되는 종류의 것이 아닌 인간을 증명하는 최후의 보루임을 역설하고 있다. 재난 이후 생존이라는 목표를 두고 황궁 아파트 사람들의 선택이 차곡차곡 쌓여 전체주의사회를 만들어가는지 영화는 그들을 따라가며 보여준다. ‘아파트는 주민의 것‘ 이라는 기치아래 영탁을 위시한 방범대는 외부인을 바퀴벌레로 칭하며 그들을 숨겨주는 가구를 색출하고 엄벌한다. 이때 발각된 집은 징벌과 함께 문에 표식을 칠한다. 과거 독재가 사회를 지배하던 때의 풍경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생존의 경험은 그들을 확신하게 했고 선전과 선동으로 그들은 공고해졌지만 영화적 한계는 여기서부터 드러난다. 전체주의적으로 변해가는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그런 사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함축적이고 효율적으로 보여주지만, 그것을 대체할 정치적 대안을 제시는 소극적이다. 그들의 반대급부로 존재하는 명화와 도균은 인간의 선함을 대변하고 있지만 인간적 호소만이 있을 뿐 어떠한 기획도 제시하지 못한다. 비슷한 장르의 영화인 <더 로드>에서는 타인에 대한 연민이 스스로를 구하게 되고 살아있는 자의 몫은 마음에 불을 옮기는 것이라는 명분을 납득하게 한다. 다시 말해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비판은 있되 그에 대한 일말의 대안에 대해선 침묵하는 영화다. 메를로 퐁티는 말했다. 정치는 새로운 질서를 단어로 제시하고, 스스로 정당성을 구축해야 하며, 현존하는 세력에 틈을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고. 물론 힘든 일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신의 것을 나눈다는 도균과 민성에게 방범대에 참여하지 말라는 명화의 간절함은 방범대가 밖으로 나가 약탈하듯 가져온 물자들 앞에서 허망하기 그지없다.

영화는 명화라는 캐릭터의 입체성과 능동성을 드러내려 한다. 기존 한국 재난영화에서 보여지던 이타적이고 정의로운 캐릭터가 주던 답답함에서 탈피하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연출적으로 명화는 단순한 선함뿐만이 아닌 자신의 목적을 위해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입체적 캐릭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화가 견지하던 인간에 대한 도리와 믿음은 어떤 비전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가 공고하던 영탁의 체제에 균열을 내는 방식 또한영탁이라는 사람을 죽이고 그 사람의 행세를 한다는 사실을 밝히면서다.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는 기존 규칙에 기대 그를 축출해낸 것이다. 체제는 무너지고 때마침 돌려드는 외부인들의 습격으로 인해 황궁 아파트는 파국을 맞이한다. 영화는 마치 전체주의의 몰락처럼 비치고 있지만 여전히 아파트는 건재하고 새로운 질서가 생길거란 사실을 감추기 위한 가람막에 불과한 설정처럼 보인다. 끝이 끝이 아님을 알기에 명화는 그곳을 탈출한다. 모든 것이 무너진 세상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함께 한 이들을 코뮌을 조직해 삶을 이어가려는 사람들 이었다. 우뚝선 황궁 아파트대신 수평으로 누운 아파트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가려는 이들과 살아도 되겠냐고 묻는 명화의 대화는 최소한의 희망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엔딩을 아름답게 마무리 하려는 장치일뿐 재난 이후 인간에 대한 어떠한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채, 관객의 상상에 맞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현실의 불안을 명징하게 담아낸다. 현대의 정치는 상벌이라는 이분법에 목을 매고 있고, 우리는 불신과 체념 속에서 무기력해지고 있다. 예술은 인간다운 삶이 어떤 것인가를 제시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불안에서 발현된 상상이 무너지는 유토피아를 구축했다. 이제 다음 페이지를 마주할 때다.

[D Kim]

너무나 좋은글 ㅋㅋ

[몽이]

좋은리뷰 감사합니다!!
원래 피디님들 방송듣고 영화보는걸 좋아했어서 리뷰를 보고 영화를 볼걸 그랬네요 ㅎㅎ
개구리님을 찾지 못한게 제일 아쉬웠습니다 ㅋㅋ

[안젤리나 졸려]

지금 눈앞의 내 집들이 무너지진 않았지만
국가가, 정치가, 언론이
나의 일상을 언제 무너뜨릴지 모르는 현실에서
나는 무엇에 신념을 기대고 살것인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영화같은 극단적 설정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이미 참사들 앞에 내 놓여 있네요. ㅜㅜ
대안은..

[족구왕]

진짜 너무 잘읽었습니다
소대장님 식견에 다시한번 놀라고 갑니다

[우리지터]

이병헌 거지 그 잡채!!!였습니다

[안경 선배]

명화가 아파트 주민이 아니란 이유로 영탁을 쫓아낼 때 이미 이 대안세력도 한계를 내재하고 있는 듯해요. 근데 완벽한 대안이 있을 수는 있는 걸까요. 우리나라만 생각해봐도... 늘 제 자리인 기분.

[슈지니]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극장가는건 포기!하고
ott나올때 까지 기다렸다가 소대가리님 리뷰글 읽고 영화보고 다시 한번 읽어봅니다.^^
이런표현이맞는지는 모르겠지만..단순하게
지역이기주의가 역지사지된 격이라고 생각하네요! 다만 박보영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시비는 드림팰리스에서 걸었는데...나쁜놈은 황궁아파트사람 특히 이병헌ㅋㅋ
계속해서 리뷰글남겨주세요^^
천천히 따라가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