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가 있는 아침(164) 무상(無常)
중앙일보
입력 2023.02.23 00:34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무상(無常)
이기라(1946∼ )
지나고 보면 삶이란
한 개비 마른 장작
축제의 마지막 밤
모닥불로 타고나면
하얗게
남은 재 한 줌
적멸로 드는 것.
-오시는 봄(글나무)
사랑하며 살아야 할 이유
새해 들어 가까이 지내던 분들이 잇달아 세상을 떠나고 있다. 오래 앓다가 떠난 친구. 큰 병임을 알고는 얼마 되지 않아 별세한 선배. 심지어는 매일 피트니스 센터에서 만나던 같은 아파트 주민이 목욕탕에서 본 바로 그 날 아침 귀갓길 지하 주차장에서 숨지는 일도 있었다. 예로부터 고희가 지나면 문상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워낙 친했던 분들이라 며칠씩 상가에서 지내며 애도했다.
그때마다 가슴을 치는 것이 허망함이다. 삶은 ‘축제’였던가. 세상을 어떻게 살았던 간에 결국은 ‘하얗게/ 남은 재 한 줌’으로 ‘적멸’에 드는 것이 우리 모두가 가야 할 길이 아니겠는가.
‘거기서 잠깐만/ 기다리라 해 놓고// 깜박 잊고 지내다가/ 아! 참 하고 생각하니// 잠깐과 아! 참 사이가/ 10년이나 되었다.’(‘깜박 10년’)
그렇다. 이런 것이 인생일진데 사랑하며 살아야겠다.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출처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