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스콜세이지가 그려내는 세계는 진창으로 만들어졌다. 그 속에서 주인공은 밝은 것으로 가지도, 좀 더 좋은 곳으로 손을 뻗지도 못한다. 언제나 악의로 가득 차있고, 딜레마에 봉착하는 순간 최악의 선택을 한다. 다만, 반짝이는 어딘가를 바라보는 시선들을 통해 그들은 태어난 것이 아닌 그 시간과 장소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들임을 말한다. 스콜세이지의 평생에 걸친 테마는 그런 인물들이 과연 이 음습하고 피비린내 나는 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를 묻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의 연장에서 <플라워 킬링 문>이라는 작품 역시 공통된 질문을 품고 있다. 전작인 <아이리시 맨>이나 <갱스 오브 뉴욕>에서 그려졌던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적 이면에 칠해진 어둡고 붉은 피로 칠해진 이야기와 어니스트를 연기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통해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서 보인 조던 벨포트 같은 혐오스러운 인간의 모습까지도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들과 다른 것은 야만으로 규정하며 새로운 규정과 규칙을 들먹이며 기존에 정착민을 갉아먹던 역사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것이기도 하고, 영화라는 시선이 어떤 생각을 불러와야 하는 가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데이비드 그랜의 논픽션 <플라워 문>을 가져와 각색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원작의 전개는 수사국 요원 톰 화이트의 시점으로 오세이지족 학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백인의 탐욕으로 희생된 선주민을 억울함을 해결해주는 백인 수사관의 이야기로 전개된다면 <앵무새 죽이기>에서 비롯된 전형적인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마틴 스콜세이지는 시점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틀어 구원이 아닌 추잡한 욕망과 그로 인해 파멸해 가는 어리석은 이들을 그려낸다.
<플라워 킬링 문> 이 다른 의미를 가진다면 그건 아마 스콜세이지의 오랜 영화 인생에서 처음 그려내는 서부극이라는 점일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그가 그려낸 대부분의 작품들이 수정주의 웨스턴이라는 자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은 있을 것이다. 1920년대를 기점으로 미국의 욕망은 서부를 향해 있었고 그것은 곧, 자신들의 역사가 되었다. <플라워 킬링 문>의 시작이 기차에서 시작된다는 점 역시 그를 방증한다. 어니스트를 태우고 달린 기차는 삼촌이 있는 서부로 그를 데려가고 역에서 처음 마주한 문구는 ‘부자가 될 수 있다.‘ 였다. 그때 카메라는 스콜세이지의 인장과 같은 방식으로 인물을 담아낸다. 빅 클로즈업에 담긴 눈은 어딘가 갇혀버려 길을 잃은 듯한 시선을 만들어 낸다. 이때의 눈은 마치 <택시 드라이버>에서 뉴욕의 밤을 허무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트래비스를 떠올리게 한다. 기차에서 내린 어니스트는 오세이지 족이 사는 지역에서 킹이라는 이름으로 통하는 헤일 삼촌을 만난다. 그는 참전 용사인 조카를 위해 일자리를 알선하며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겠다고 한다.
전쟁 중 부상을 입어 힘쓰는 일이 버거운 어니스트에게 헤일은 택시의 일을 권유한다. 그러면서 그는 단숨에 부자가 될 방법을 조카에게 알려준다. 이제 막 세계에서 가장 부자가 된 오세이지족 여인과 결혼을 하는 것이다. 오세이지족은 자신들의 거주지에서 백인들에 의해 쫓겨나 캔자스에서 오클라호마로 이주당했지만 오세이지군에서 석유가 발견되며 일순 엄청난 부를 얻는다. 킹 헤일은 이중 가장 부유한 상속자가 된 몰리 카일리의 재산을 노리고 조카인 어니스트 버크허트를 맺으려고 한다. 어니스트는 결국 몰리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된다. 헤일은 가스라이팅을 통해 오세이지족에게 신임을 받으며 그들의 안으로 들어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니스트라는 늑대를 키워 오세이지족이라는 우리 안으로 집어넣는다. 부에 대한 집착은 점점 광기로 향해가고 재산을 가진 오세이지족은 하나 둘 죽어간다. 독약과, 총을 이용해 자살로 위장하거나 그들 종족의 고질병인 당뇨를 이용하기도 한다. 어니스트는 헤일의 조력자가 되어 몰리의 가족을 죽이는 일과 그 사건을 파헤치는 이들까지 모두 살해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돈이라는 가져도 가져도 끝을 모르는 욕망은 헤일과 어니스트 모두를 인간이 가진 내면의 밑바닥을 지나 나락까지 끌고 간다. 몰리의 친지들을 살해하고 최종 상속자로 그녀를 만든 그들은 몰리와 아이들 마저 해칠 궁리를 한다. 킹이 구해준 약으로 당뇨에 걸린 몰리를 치유하려 하지만 어니스트는 그 약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자신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더 이상 멈추지 못하다. 마틴 스콜세이지는 인터뷰에서 비슷하게 유전의 문제를 다룬 폴 토마스 앤드슨의 작품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엔딩 장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피로 물든 볼링장을 설명하면서 그 장면이 흥미로운 것은 외부로 폭발하는 것이 아닌 안으로 파열해 간다는 점에서 영화의 주제적인 면을 비주얼로 구현한다고 말한 바가 있다.
헤일과 어니스트가 구축한 세계 역시 그랬다. 욕망으로 쌓아 올린 탑 아래에는 이유 없는 죽음들이 흘린 피가 흐르고 있다. 그들을 멈춘 것은 이제 끝이라는 자각이 아닌 여기가 끝이라는 자멸이었다. 오세이지족은 친구라는 이름의 폭력 앞에 무참히 죽어 나갔다. 몰리는 달콤한 백인의 유혹에 넘어갔지만 자신은 오세이족이라는 사실을 긍지로 여기던 사람이었다. 스콜세이지가 그려내는 폭력의 무서움은 그 평범성에 있다. 웃고 떠드는 와중에 갑자기 정색을 하며 이게 우습냐는 말을 살벌한 표정으로 전달하다가도 장난이라는 듯 뺨을 툭툭 치거나 전조도 없이 폭행과 살인이 벌어진다. 그가 그리는 폭력 장면에는 도식적인 연출이 없다. 합을 짠 안무 같은 액션 대신 지극히 일상적인 상황에서 느닷없이 날아드는 공포에 가까운 것이다. 현실에서나 영화에서나 오세이지족이 느꼈을 두려움 역시 그랬을 것이다. 폭력과 죽음이 날카로운 무기가 아닌 내 친구와 형제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는 그 사실이 가장 공포스럽지 않았을까? 마틴 스콜세이지는 그렇게 미국의 맨 얼굴을 봤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엔딩은 여러 명의 주자가 북을 치면서 시작된다. 카메라는 하감으로 북을 잡다가 부감으로 멀어지기 시작한다. 화각이 넓어지며 연주되는 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화면에는 마치 꽃이 피는 것 같다. 스탭 스크롤이 올라가는 동안 연주는 이어지고 나중에는 숲에 벌레 울음소리와 천둥과 빗소리도 들린다. 그 순간 영화의 장면들을 복기한다. 오세이지 족이 처음 석유를 발견하고 춤을 장면들은 마치 먼저 떠난 이들을 위한 진혼제처럼 느껴지고 대사로 언급이 되던 문명이라는 말을 곱씹어 보게 되었다. 본질을 파괴하고 그 위에 쌓아 올린 것이 문명인가? 그들(백인)이 그토록 부르짖는 주님은 과연 그것을 원한 것인가? 북은 나무로 된통 에 가죽을 씌워 만든 악기다. 그 울림은 어쩌면 사람의 외침에 가장 가까운 소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멀어진 것인가? 거장은 여전히 하나의 화두를 갖고 영겁에 가까운 질문의 시간을 만든다. 이제 우리의 얼굴이 된 폭력은 다시 사랑을 말할 수 있는 가?
첫댓글 많은 분들이 기다리셨을 이 영화 !
안타깝게도 전 아직 못봤네요.
ㅜㅜ
기회가 되면 소대가리님의 관점을 곱씹으며 감상해보겠습니다~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ㅎㅎ
리뷰 보니 반갑습니다. 거장의 일관성에 동의합니다. 거장은 같은 이야기를 평생 지루하지 않게 변주하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이 영화 혹은 원작이 좋은 점은 일방적 약자나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았다는 것이었어요. 몰리가 단 맛과 미남을 좋아하는 것 같은 것이요. 어니스트도 사연 있다 순정 있다는 식으로 기울지 않는 것도 그렇구요. 오세이지 족에게 다른 미래가 있을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잘 모르겠어요. 감당할 수 없는 행운은 불행을 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소대님 글 소식에 달려왔어요.
3시간이 훌쩍 넘는 영화였지만 시간 가는줄 모르고 스토리에, 화면에 빨려 들어갔었죠.
엔딩으로 가면서 감독이 의도한 "거리 두기" 부분부터 완벽하게 이야기 듣기로 돌아설수 있었어요.
스콜세이지 감독의 천재성이란!
인간 군상의 욕망, 탐욕, 추악함, 그리고 사랑을 제대로 다룬 영화라는 생각이 드네요.
자기 방어 기재가 작동하면 스스로 세뇌하여, 거짓이지만 진실이라 믿는 것도 어쩔수 없는 인간들의 한계 일까요?
원작에 비하면 영화는 해피엔딩인거 같아요
책 에필로그 그들의 근황은 여전히 비참하고 착취당하고 있었던걸로 기억해요
자기나라역사적 치부를 이토록 적나라하면서도
훌륭?하게 까주시니 뭐 감사할 따름이죠.
보통은 나이란걸 드시면 오지랖이나 낙관이즘도 함께 드시던데 스콜세이지옹은 갈수록 냉소적으로 변하시네요
다음 작품도 이기조면 제작자나 구할까 싶은 쓸데없는 걱정도 되지만
끊임없이 이런 영화를 만드는데도 제작하겠다는 영화사(넷플 제외)가 있는거 보면 일견 프론티어 정신인가 싶기도 했어요
릴리 그래드스톤이란 배우가 어디서 나왔나 싶으시겠지만 켈리 라이커트 감독작 어떤여자들(매우 아주 좋아하는 영화임다) 에서 인상깊은 말돌보는 소녀
아마 다음작품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은..
그동안 이리저리 피해갔던 한두시대배경쯤
되지싶으네요
망구 제 뇌피셜...
마틴 스콜세지 할아버님 다음 작품도 데이비드 그웬 원작이라고 들었습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백인들이 참 얼마나 잔인하고 야만적인지 스콜세지가 시원하게 까줘서 좋았습니다. 드니로의 이중인격적인 연기도 좋았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의 멍청한듯 한심한 인간의 연기도 넘 좋았습니다. 3시간 넘는 영화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지루하지 않은 영화를 만들어내는 스콜세지를 정말 대단한 감독이라는 생각을 할수 밖에 없네요
퇴근후 머리말림써 소대가리님리뷰 글 보는재미 은근 꿀맛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