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1. 김용만
    2. 소정
    3. 은꽃비
    4. 천손강림
    5. 至今
    1. 공실불
    2. 푸른바다
  • 가입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 가입
    1. 치약
    2. 날아리
    3. 민박집주인
    4. 호연
    5. 노산
    1. 칼의노래
    2. 엄길주
    3. 정문수
    4. 여름달
    5. 들꽃언덕
 
 
카페 게시글
백제 토론방 풍납동에 도요지가 있었다는 것을 처음 들었다 하시는 분들께.......
다비도프 추천 0 조회 222 11.04.15 15:16 댓글 15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1.04.16 02:19

    첫댓글 도요지가 풍납토성 내에 많이 있었다는 것이 결국 풍납동 일대에 조선시대나 일제시대때 옹기장이 있었다는 것인가요??? 이것이 풍납토성이 왕성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말한 이전 댓글은 무엇인가요...????

    다비노프님이 이전글댓글에서 도요지가 있어 풍납토성에는 왕성이 없다고 주장하였으면
    조선시대가 아니라 한성백제기에 도요지가 풍납토성내에 있어야 한성백제의 도성 즉 왕궁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였나 보군요.

    고고학공부하는 분들은 요... 옹기장이나 이런것까지 유적으로 판단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물론 조선시대 옹기 요는 유적으로 인정하겠지만.

  • 11.04.16 02:22

    그렇다고 풍납토성의 발굴결과 출토된 원삼국시대의 토기및 주거지유적 토성판축 건물지, 막대한 양의 한성백제기의 토기등의 유물을 다비도프님처럼 옹기장에 같다 붙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석기시대의 토기라 하는 말에 참 그렇다는 판단이 드는군요..

  • 작성자 11.04.16 14:52

    제 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셨네요....제가 언제 도요지가 있어서 왕성이 아니라 했습니까?? 현 발굴 결과로는 왕궁이 있었다고 볼 수 없으며,, 유물이 많다는 것만으로는 왕궁이 있는게 아니라 했지요....오히려 도요지가 많아 유물도 많다고 했었지요.......

  • 11.04.16 02:27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드리겠습니다.
    풍납동민의 재산권의 문제는 70년대 서울시가 자연제방이 아니라 토성이라는유적임을 확인하는 발굴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토성내의 땅을 민간에게 불하한것이 즉 분양한것이 문제의 발단이었습니다.

    좀더 현명하게 풍납동민들이 자기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방향을 잡아 나가길 권합니다.
    즉 재산권 보호는 행정적인 측면에서 찾아야 할것입니다. 어먼 고고학이나 역사학연구자들인 문화재연구소 학예관을 닥달하기 보다, 행정청에 집단적인 재산권침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일것입니다.

  • 작성자 11.04.17 15:52

    천호동 제방처럼 풍납토성이 자연제방에 더하여 인위적으로 쌓아 올린 판축법의 <제방>이라는 것도 무시못할 견해죠..판축법도 동일할테니..의림지에 있는 제방도 판축법으로 쌓은 것은 잘 아실 겁니다..그 전 여러 고고학자는 물론 동양대 김윤회교수님도 풍납토성은 사성으로 개로왕 대에 쌓은 제방이라 하셨죠..따라서, (을축년 대홍수 이전부터 없었던) 풍납토성 서성벽의 존재를 입증해야 하고, 존재하였다면 잔존하는 성벽과 달리 없어진 이유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 그런 이유입니다....<자연>제방은 아니라 할 수 있어도, (방어용으로도 사용가능한) 제방이 아니라고 단정하기에는 입증이 덜 되었기 때문이죠....

  • 11.04.18 13:33

    죄송하지만, 본문 어디에도 풍납토성이 '당대' 에 도요지였다는 내용은 없군요. 윗글로 풍납토성이 '도요지 유적' 이라고 말하는 건 굉장히 부족해 보입니다. 다비도프님 말씀대로 풍납토성지에 조선시대 도요지가 있었다고 해 봅시다. 그렇다 하더라도 조선시대 도요지에서 백제 토기를 구웠다는 이야기가 성립할 수는 없겠지요.
    조선후기에 개성에서 인삼이 재배되었다고 하여 머나먼 고대부터 개성은 인삼 재배지역이라 말할 수는 없고, 고려시대에 강진 등이 도자기로 유명하였다 하여 먼 고대사회부터 그 지역이 도자기 굽는 것을 주된 산업으로 하던 지역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조선시대 도요지였든 다른 용도로 쓰였든 그 이유로

  • 11.04.18 13:37

    인해 풍납토성이 한성백제 당대에도 도요지였으리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까지의 발굴결과로 볼 때 풍납토성(은 물론 몽촌토성을 포함하더라도)을 한성백제의 왕성으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결정적이라 할 만한 근거가 나오지 않았지요. 그러나 정확히 풍납토성은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그 인근이 한성백제의 초기 도읍지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봅니다.
    게다가 풍납토성은 현재까지의 발굴 경과만 보더라도, 그것이 왕성인지 아닌지에 관계없이 보존되어야 할 가치가 높은 유적입니다. 주민들의 재산권은 당연히 소중한 것이지만, 가급적이면 '유적' 에 대해서는 개발이 아닌 보존을 중심으로

  • 11.04.18 13:38

    문화재정책이 시행되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유적보호와 보상을 전제로 '얼마나 충실히 보상할 것이냐' 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논하는 게 진짜 해결책이라고 봅니다.

  • 작성자 11.04.18 17:14

    먼저 예리한 식견을 지니신 미주가효님..반갑습니다..물론 본문 중에 백제시대 도요지 자체를 언급하고 있지는 않고 있습니다....하지만, 그 전에는 도요지가 없었다거나, 지금 발굴 층이 조선시대 도요지가 아니라고도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왜냐하면 여러시대의 유물들이 나오고 있고, 옹기들 뿐만 아니라 유약을 바른 청자들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유약이 등장한 시기등에 비추어 시기적으로 애매하다는 것이죠..이 때문에 기존 풍납토성에서 발굴되는 도기들을 전국 각지에서 매납한 도기들이라 했다가 중국에서 수입한 도기들이라 말을 바꿨죠....

  • 작성자 11.04.18 16:59

    중국을 다녀 온 학예관님은 아름다운 도기들이 많은데, 왜 백제왕궁에서 못생긴 도기들만 수입해다 썼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하였죠.. 또한, 시유도기와 같이 큰 유물은 수입하기에 적당하지 않다고 했다가, 모두 수입해 온 것이라고 말을 또 바꿨죠..한마디로 말하자면, 백제가 도기류조차 못 만들어 수입해서만 쓴 꼴인데, 이것에 대해 고민하는 분은 한분도 없으신 것 같네요..이래서야 금동향로, 금동관모, 금동신도 백제가 만든 것이 아니라 수입해 온 것 아니냐 하면 뭐라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린 항상 남의 유물을 받아드린 것으로만 자랑스러워 하는데 그쳐야 하겠는지요..물론 잘 받아드리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다 하겠지만 말입니다

  • 작성자 11.04.18 17:17

    그건 그렇고, 마지막 말씀 참으로 중요하고도 좋은 말씀입니다..풍납동에 풍납토성이 있듯이 삼성동에는 삼성동토성이 있습니다...하지만, 풍납동과 삼성동의 작금의 현실은 엄청난 차이를 갖고 있죠....물론 엄연히 정도의 차이(매장량)가 있는 것은 인정합니다....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풍납동 주민들도 매장물 발굴에 적극 협력하고, 중요지역을 보존하는 것조차 어느 정도 용인하고 있습니다...외국에서는 문화재가 나오면 축복이라고 하던데, 그 정도를 바라진 않아도 우리나라에서 공감대가 형성되어 정책적으로 뒷받침될 수 있는 여건이 잘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 11.04.21 10:35

    결과적으로 보면 발굴집단이나 행정 당국이나 각자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니 불쌍한 것은 당하고 있는 해당주민들입니다.
    행정당국이나 발굴단체는 발굴 전에 기본적인 절차를 수립하고 주민들에게 어떠한 피해도 가지 않도록 조치를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자기들 잇속차리는 행동을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봅니다.

  • 11.04.21 12:15

    조금 딴 이야기입니다만, 과거와는 달리 요즘에는 공공개발사업이 시행되어 토지가 수용당하게 되면 토지소유주들이 좋아한다더군요. 요즘엔 시가를 반영하여 상당히 후한 값으로 토지를 수용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너무 낮은 값으로 후려쳐서 개발하던 것과 비교하면 주민의 재산권 보호라는 측면에서 진일보한 것이라 말할 수 있겠지요. (물론 그 반대급부로 예산이 너무 많이 들게 되었다든가 하는 문제도 있겠습니다만)
    문화재에 있어서도 가능하다면 시가보다 더 후하게 관련 재산권을 보상해 주는 제도가 서게 되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문화재가 소중하다지만, 특정 개인에게 그 문화재 보호의 부담을 떠넘기는 건 온당해 보이

  • 11.04.21 12:16

    지 않습니다. 문화재가 '국민의 것' 이라면 그 보존 비용 역시 온 국민이 나누어 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 하는 생각입니다.

  • 작성자 11.04.22 04:59

    미주가효님의 바른 생각과,, 항상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