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 S60 '1000km' 시승기... 작은 고급차
윤지수입력 2022. 12. 26. 16:30
“디젤 엔진 그리운 사람 손 번쩍!” 혹시 손든 사람 있는가? 세상에 나 혼자뿐은 아니리라 믿는다. 디젤이 지금은 환경 문제 때문에 미움받고 있지만, 연료 효율 하나는 언제든 돈 걱정 없이 훌쩍 떠날 수 있을 만큼 빼어났으니 말이다. 이런 아쉬움을 달래고자 요즘 가솔린 엔진에 다양한 기술을 얹는데, 그중 하나가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다. 궁금했다. 과연 마일드 하이브리드가 디젤 엔진 향수를 얼마나 지울 수 있을까? ‘<탑기어> 1000km 시승 시리즈’ 다섯 번째 주인공으로 볼보 S60을 불러내 직접 확인했다.
S60 엔진룸은 안쪽으로 깊숙히 파고든 서스펜션 마운트로 엿볼 수 있는 더블위시본 구조가 특징이다
잠깐, 마일드 하이브리드가 뭔지 짧게 짚고 넘어가자. 이름 그대로 ‘순한 맛’ 하이브리드다. 기존 12V보다 조금 더 강력한 48V 시스템 전기모터가 엔진을 보조해 효율을 높인다. 참고로 보통 하이브리드 전압은 훨씬 매콤한 240~650V 대. 전기모터가 힘을 보태긴 하더라도 홀로 가속할 만큼은 아니어서 연비 개선 효과가 크지 않다. 대신 그만큼 구조가 간단하고 가벼우며, 무엇보다 저렴해서 유럽 내연기관차 사이에서 유행하는 중이다.
눈꺼풀 무거운 얘기는 여기까지. S60 시승차를 받자마자 거두절미하고 시동부터 걸어 봤다. 다른 하이브리드처럼 엔진을 잠재운 채 전원만 들어오는지 궁금해서다. 과한 기대였다. 즉각 엔진이 우렁찬 소리를 퍼뜨리며 깨어난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차 250마력짜리 빠른 차였지?
D세그먼트 세단 가운데 가히 가장 고급스럽다
깜빡할 만도 했다. 단정하기 그지없는 외모는 고성능보다는 고급 세단 분위기를 풍기고 특히 실내는 동급에서 가장 값져 보일 정도다. 대시보드를 가로지르는 질감 좋은 나무 무늬 장식과 그 끝을 하나로 이은 반짝이는 크롬 장식, 영롱하게 투명한 크리스탈 변속 레버까지. 실내에 앉으면 빠르게 질주하고픈 마음은 싹 가시고 우아하게 도로 위를 유영하고픈 마음만 남는다.
크리스탈 변속 레버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S60은 그 바람을 그대로 지켰다. 출발이 전기차 못지않게 매끄럽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놀랍다. 이전에 탔던 (마일드 하이브리드 넣기 전) 볼보는 파워트레인 질감이 부드러운 차는 아니었다. 터보랙도, 변속 충격도 남아 덜 다듬은 느낌이었는데 S60 B5는 전혀 그렇지 않다. 광이 번쩍이는 유리공 구르듯 나아간다. 최고출력 14마력 전기모터가 출발을 보조해 하이브리드 같은 감각을 구현했다.
서스펜션도 한몫한다. 자잘한 노면 충격을 훌륭히 삼켜 주행 감각이 떨림 없이 묵직하다. 물론 유럽 출신답게(생산지는 미국이다) 큰 충격엔 지체 없이 흔들린다. 그러나 바깥 비율로 볼 수 있듯 운전자 엉덩이가 정확히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 중심에 자리 잡아, 마치 시소 한가운데 앉은 듯 안정적이다. 뒷바퀴굴림 닮은 비율은 보기에만 좋은 게 아니다. 1000km 여정의 동반자로 참 든든했다.
이달 1000km 시승 경유지는 광주광역시다. 출발지는 당연히 서울. 언제나 그랬듯 가다 서다 반복하는 정체부터 시작이다. 하이브리드였다면 연비 수치가 25km/L쯤은 가볍게 넘었겠지만, 마일드 하이브리드는 다르다. 연비가 뚝뚝 떨어진다. 두 자릿수를 유지하기도 버거웠다. 그래도 일반 내연기관보단 낫다. 차가 설 때마다 적극적으로 시동을 끄는데, 다시 출발하며 시동 켤 때의 충격이 거의 없다. 물 흐르듯 시동을 켜고 끈다. 만약 다른 차였다면 충격이 거치적거려 당장 ‘스톱앤고 시스템 오프’ 버튼을 눌렀을 상황이었다.
사각지대를 줄인 운전석 사이드미러
어떤 정체든 결국 시간이 약이다. 인내하다 보니 도로가 한산하게 바뀌었다. 제 속도를 찾은 S60은 편안하게 항속했다. 주행 감각은 기다란 휠베이스(2872mm)답게 안정적이고 실내 소음은 귀에 거슬리는 소리 없이 쾌적하다. 불러도 대답 없는 옆자리 동승자가 편안함을 몸소 증명했다. 연비도 쭉쭉 오른다. 역시 마일드 하이브리드는 성격이 하이브리드와는 다르다. 고속 연비가 훨씬 좋다.
마치 준대형 세단처럼 설명하고 있지만 이 차는 D세그먼트 스포츠 세단이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감췄던 발톱을 드러낸다. rpm(엔진회전수) 1800부터 4800까지 줄기차게 뿜어내는 최대토크 35.7kg·m 힘으로 경쾌하게 속도를 높인다. 최고출력이 250마력에 달해 시속 100km를 넘는 고속 뒷심도 충분한 편. 이토록 힘을 쏟아내는 와중에도 불안한 기색은 없다. 힘과 하체의 성능 균형이 치밀하다.
계산을 잘못했다. 한참을 달린 끝에 광주광역시에 도착했지만 누적 주행거리가 400km에 불과했다. 이대로 서울로 올라가면 목표한 1000km까지 200km나 부족하다. 어떻게 할까. 묘수를 냈다. 태안까지 올라간 후 군산으로 다시 되돌아갔다가 서울로 올라가는 세로 Z자 코스를 짰다. 언제나 느끼지만 1000km…. 우리 땅에서 채우기란 결코 만만치 않은 거리다.
티맵 내비게이션 안내를 계기판과 헤드업디스플레이로도 볼 수 있다
달리고 달리고 계속해서 달렸다. 오랜 시간 S60을 타면서 느낀 불만은 딱 하나다. 엉덩이가 조금 저릿저릿하다. 장거리를 쉬지 않고 누비기엔 앞서 탄 현대 팰리세이드나 기아 K8처럼 충분히 폭신하진 않았다. 물론 이만큼 달리면 웬만한 차는 저리기 마련이다. 나머지는 모두 만족이었다. 폭 파묻히듯 낮은 시트 높이와 허벅지 끝까지 받쳐주는 쿠션 익스텐션을 갖춘 시트는 편할 뿐 아니라 안정감이 뛰어나고, 앞 차 주변만 빼고 주변을 밝히는 자동 상향등은 잘 보일 뿐 아니라 첨단 차를 탄 기분이 뿌듯하다(오래 쓰면 정신 사납다). 가장 맘에 드는 기능은 새로이 들어간 자체 ‘티맵’이다. 커다란 세로 센터페시아 화면은 물론, 계기판과 헤드업디스플레이까지 길 안내가 뜬다. 눈길을 도로에 고정한 채 내비게이션 안내까지 볼 수 있어 장거리 주행 중 가장 편리했다.
태안과 군산을 한 번 왕복하고 서울까지 달린 끝에 1000km를 가까스로 넘겨 누적 주행가능거리 1002.8km를 채웠다. 주행 시간은 18시간 27분. 대망의 연비는? 1L에 14.7km다. 실제 주유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번 주유로 모두 68.35L를 넣어 1L에 14.67km 결과가 나왔다. 준수하다. 짧지 않은 정체 구간 주행 거리와 여러 차례 급가속했던 상황까지 고려하면 더더욱 만족스럽다. 디젤 엔진이었다면 연비가 더 높긴 했겠지만 이 정도라면 아쉽진 않다.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는 제 역할을 했다. 효율도 효율이지만 전기모터가 힘을 보태는 부드러운 가·감속으로 주행 질감까지 높였다. 덕분에 볼보 S60은 ‘효율 좋은 작은 고급 세단’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차에 대한 총평은 1000km 동안 옆자리를 지켰던 애인의 평가로 대신한다. “작고 고급스럽고 편해! 진짜 갖고 싶은 자동차야!
글·사진 윤지수
자동차 전문 매체 <탑기어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