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파동이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물결과 소리가 각각 물과 공기라는 매질을 통해 움직이듯 빛은 에테르라는 천상의 물질이 빛을 나른다고, 그것으로 전자기파와 빛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에테르는 허구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물리학적 이론에서 소멸된 에테르는 이제 예술이라는 영역의 매질이 되어 사물의 상태를 드러나게 하는 빛이라는 속성을 만들어 낸다. 영화는 필름에 빛을 봉인하는 방식의 예술이다. 거기에 담긴 것은 시간과 장소, 사물과 사람 그것들을 실체로 만들어 내는 에테르가 있다.
‘너와 나’는 넘치는 광양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마치 누군가의 기억 속을 헤집는 듯한 장면들은 꿈속이거나 상상을 펼쳐 놓은 듯한 이미지로 보인다. 영화 초반을 보는 관객은 이것을 밝기 조절에 실패한 기술적 결함으로 인지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죽음으로 잊히는 존재가 아닌 기억이라는 형태로 여전히 우리 곁에 있는 이들을 위무하기 위한 장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야기는 수학여행이라는 이벤트를 앞둔 세미와 하은이라는 두 소녀를 중심으로 소소한 오해와 갈등이 번졌다가 아물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스토리라인만을 따라가면 일목요연한 구석도 없고 시점 역시 널을 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와 나‘가 관객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내제된 정서적 함의를 끌어낸다는 지점이다. 하나의 관계와 집단의 아픔은 어떻게 연결하는데서 그 요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여리고 작은 상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그 시절의 아이들이 감정을 쌓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은 죽음이라는 망연자실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가를 세밀하게 그려낸다. 이때 화면속에서 희뿌연 이미지들은 상상의 영역에서 현실이 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영화 속에서 진행되는 순간들이 꿈인지 현실인지는 결국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들을 그려내려는 외부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너와 나’가 하고자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 뿐이다. 그 말들은 흘러가는 시곗바늘과 기억의 부스러기같은 거울로 대변되고 진식이자 똘똘이였던 개의 행보는 언젠가 마주할 상실과 이별의 반복을 말한다. 거기에 배우의 쓰임 역시 세심하게 구성했다는 느낌을 주는데, 하은 역에 김시은 배우의 ’다음 소희’에서 소희의 처절하게 무너지는 이미지를 가져와 홀로의 무게를 감내하는 소녀를 표현해낸다. 거기에 카메오로 등장하는 박준 시인의 역할 또한 의미심장하다. 그는 교실에서 물리 수업을 하는 선생님으로 등장해 빛의 성질에 설명한다. 물리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한 빛을 설명하는 사람이 시인이라는 사실은 현실에서 담아내지 못하는 가려진 부분에 대해 귀를 기울이려는 애도의 자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가 잠깐의 대사로 전달하는 파동과 입자라는 빛의 본질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실체하는 것으로 만들어 준다.
‘너와 나’는 결국 나일지도 모를 너를 향한 고백을 담고 있는 영화다. 성장하는 아이들은 나는 ’나‘이고 싶은 동시에 ’너‘에게 기대고 싶다. 그 시절 모두가 잃었던 것은 가족이자, 친구이고 가장 아끼는 이들이었다. 이제는 너무 흔하게 쓰여서 의미가 퇴색된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는 그말을 너무도 당연해서 입으로 발화하는 순간 본래의 색을 잃을 것같은 그 말을 영화는 덤덤하게 전한다. 어떤 비극은 당연한 것을 특별한 것으로 만듦으로써 아픔을 상기하게 한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무뎌짐을 느끼지도 못하고 살아가지만 예술은 빛속에 에테르를 통해 개인의 고통이라는 파동을 공통 분모의 감각으로 만든다. 때로는 넘치는 빛을 직시하는 것으로 위로를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겠다.
첫댓글 너와나 보고싶은 영화입니다
하...너와나 리뷰 너무 잘 읽었습니다.
학창 시절에 친구였던 "너"가 너무나도 소중했는데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은 "나"에게도 신경쓰지 못할때가 많네요
리뷰가 마치 "시" 같이 좋네요 ㅎ
너와나 다들 좋다고 해서 보고 싶은데 시골인 저희 동네는 상영 예정이 없어서 보기가 힘드네요 ㅠ
얼릉 너와나 다시 보고 리뷰도 한번 더 읽어 볼께요 ㅎㅎ
소대님 글을 읽으면서 새로운 단어들을 많이 배워갑니다. '어떤 비극은 당연한 것을 특별한 것으로 만듦으로써 아픔을 상기하게 한다.'이 문장이 크게 와닿아 몇 번을 다시 읽게 되네요. 덕분에 지금의 당연함에 더 감사할 수 있게 되네요. 글 자주 써주세요!
반가운 리뷰네요 아무튼 환영합니다.
물리 시간에 수업은 안 듣고 딴 짓하는 애를 보며 이마를 짚었던 제 자신을 반성합니다 ㅎㅎ
개인의 고통이라는 파동을 공통 분모의 감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예술이라서 그 메시지에 귀 기울이는 것이 힘든 것인가봐요. 😂
넘나 좋은글.
이걸 봤으니 영화다시보면 또 다르게 보일듯
난 그냥 가슴아픈 영화였음 ㅜㅜ
조현철님이 감독이라 해서 보고싶던 영화였는데
내용의 깊이 마저도 울림이 있었나보네요.
영화 못보고 후기만으로도 좋은 작품이라 전해지네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시대 모두의 원죄로 내려앉은 사건..,
이제 그때의 아이들이 자라 20대후반이 되었고
아마도 그 아이들은 어떤 형태든 창작물을 내어놓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깊은 고민이 느껴지고 성급하지않는 만듬새가 고마운 영화였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빛이 파동이라는 말에서 이런 내용을 끌어낼 수 있는 필력. 역시 소대님이십니다.
호평이 많아서 영화관 찾아보니 다 내려간거 같네요. OTT에서 뜨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역시 믿고 보는 소대가리님 리뷰. 글을 보면 참 보드라운 사람이에요.
이제사 영화를 보고 다시 정독해보니
단어 하나하나 꾹꾹 눌러담으신 뜻들이 가슴에 꽂히네요.
진심 존경합니다.
더불어 올해 봤지만 작년 최고의 영화를 만들어준 조현철 감독도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