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 김별
모든 목숨들이 그러하듯
내가 그렇듯 너 또한 없어도 되었으련만
그런 이유로 애써 존재의 이유를 운명이라 한다면
언제나 부드럽고 시원했으면
언제나 고요하고 평안했으면
그랬으면 좋았을 존재도 있었겠지만
세상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원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지만
무슨 이유에서든 세상의 일로 만들어져야 했다면
바람아 너는
엄마 품에 아가를 잠재우는 부채살에서 였으면 좋겠다
뙤약볕에서 허리를 편 농부를 위해
미루나무 우듬지를 흔든 골 깊은 강여울이
송이를 품은 솔숲에서 머문 까닭이었으면 좋겠다
별을 두고 한 언약으로 초례상에 선
꽃버선 치맛자락에서 였으면 좋겠다
하니 오직 향기롭고 아름답게 태어나야 할 너야
천지풍파를 일으켜 세상을 어지럽히지 말고
구만리장천 날아가는 철새들의 순풍이 되거라
그렇게 일어나 바람마저 품어 잠재운
따듯하고 편안한 너의 품아
가슴을 헤집은 불길이 일어도
절대로 일어서지 말아라
남도가락에 애간장 타듯
온 누리를 가득 채운 함성일지언정
대지가 허락하는 한 아무리 많은 손이 손을 잡아도
하나인 원으로 흐트러지지 않고 돌아가는
강강술래의 흥으로 일어나거라
타는 목마름 끝에 적도에서 일어나
거대한 소용돌이가 될지언정
다시는 흙먼지 자욱한 궤도차량에서 일어서지 말고
어린아이 불장난에 부채질하듯
성냥개비 하나로
온 산하를 다 태우게 하지 말고
샛바람 하늬바람 마파람 된바람아
남실바람 건들바람 큰바람 싹쓸바람아
능선으로만 이어진 시대를 넘어온 소망이 되어라
별이 되어라
차라리 흔들리는 여심에서 피어나 꽃이 되어라
행복이 아니라면
사랑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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