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몇개 영화를 재밌게 봤지만 아주 기대하는 감독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어느가족'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보여준 가족의 의미를 찾는 이야기들은 좋았지만 아주 개성있는 작품들이라고 느끼지는 못했어요.
이번 영화 '괴물'도 그래서 큰 기대감이 없었는데, 여러 시네타운 회원분들의 추천으로 마침 한가했던 평일 오후 극장에서 보게 되었고, 23년 최고의 영화로 꼽게 되었습니다.
찾아보니 시나리오 작가가 '사카모토 유지'라고 일본에서는 이름만으로도 흥행을 보증하는 굉장한 작가더군요. 훌륭한 시나리오와 감독의 연출이 정말 잘 어우러진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영화가 참 슬펐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원래 불가능한 일입니다.
매일 함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또 좋아하기까지 하는 엄마와 아들도, 친구도, 선생님이라도 그렇습니다.
인간은 나와 그 사람이 함께한 시간 속에 비춰지는 그의 행동과 말, 표정을 보고 그 사람을 해석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그 사람을 알고 있는 정보와 주변 상황, 풍문, 사회적 통념, 나의 세계관 이런걸 종합하여 이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겠구나. 이런 상황이겠구나. 이런 사람이구나를 이해하는 것이죠.
어쩔수 밖에 없는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것에 한계와 그 슬픔에 대해 이토록 깊이있게 다룬 영화가 있었나 싶습니다.
영화의 전반부는 싱글맘인 사오리의 시선을 따라가며 하나 뿐인 아들에게 도대체 무슨일이 생긴건지 이해하기 위해 애씁니다.
사오리의 입장에서 보면 아들은 교사에게 부당하게 폭행을 당했고, 학교는 이를 한심하게 덮으려고만 합니다.
사오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를 아들에게 해줍니다.
하지만 아들, 아들의친구, 선생님, 교장의 시선에서 펼쳐지는 후반부의 내용은 전혀 다른 진실을 담고 있고, 관객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뻗어나갑니다.
건조한 어른들의 일상에서 시작되었던 영화는 후반부에 아들 미나토와 그의 친구 요리의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동화처럼 변합니다.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지만 해야할 일을 빠르게 처리해가야 하는 어른들의 시간은 굉장히 삭막하고 위태롭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 중간에도 바닥에 귀를 대고 고양이 소리를 쫓아가고, 길을 걸으면서도 휘휘 줄을 돌리며 걷는 아이들의 시간은 마냥 한가롭고 아름답습니다.
같은 시간대에 두가지 세상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지만 이 모두에 속하는 사람들은 터널의 이쪽과 저쪽에 있는 것처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해하지 못하는게 사랑과 관심이 없어서도 아니고 바보여서도 아니고, 원래 그런거고 그래서 인간은 외롭고 고달픈 존재인게 아닐까요.
어린 시절 누구나 격을 수 있는 친구에 대한 사랑과 동경을 너무 성적인 관점에서 해석한게 아닌가 하는 부분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걸 빼고는 굉장히 좋았던 영화였습니다.
맑고 따뜻했던 '사카모토 류이치'의 피아노 선율이 영화를 잔잔하게 감싸주는것도 좋아서 극장에서 감상하기 정말 잘했다 생각했습니다.
24년에도 좋은 영화들과 함께 아름다운 한해 되시길!
첫댓글 겦이있는 통찰, 감명깊은 감상 감사합니다!
소대가리님에 비하면 조족지혈입니다
오 소울님도 괴물 재미있게 보셨군요
저도 마지막 엔딩장면에서 일어나지를 못했습니다
좋은 영화 추천 감사해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원래 그런 것이라면 어찌해야 합니까. 슬픔을 공부해야하는 슬픔은 언제 끝납니까.
한계를 인정하고 오만함을 경계하고 겸손해야겠죠.
우와 영화만큼,이쁜 리뷰에요 소울님 글솜씨에 .감동
아이고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게도 오래 기억에 남을 영화였어요.
아이들조차 괴물이였을수도 괴물같은 사회에 피해자였을수도 모를 이 영화를 보며
전 아름다운 새드엔딩으로 이해해서인지 마음이 많이 아팠네요..ㅜㅜ
정성 가득한 멋진 리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별 얘기도 아닌데 한해를 묵혀서 올리네요 ㅎㅎ
엔딩 올라올때 너무 먹먹했습니다..
아이들의 스스로의 힘으로 폭풍우를 이기고 나와 자신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너무 좋았죠.
부국제때부터 평가가 굉장했었어요
저는 오히려 관람객들의 관람평이나 해석들에 놀라고 당황?했었습니다
세부묘사와 전체덩어리가 잘 어울어진
기억에 오래 남을 영화였어요
해석의 여지가 많아서 더 재밌는 작품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