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청년 외 2편 / 장수진 / 제12회 문학과사회 신인상 당선작
이란청년*
장수진
이란 사는 파란 남자는 베이지색 배 안에서 가능성이다
둘 중 한 쪽은 반이 추는 노란 춤일 것이고
자궁이 좁아 옆이 붙어버린 샴의 형일 것이며
엄마는 파라솔의 알록달록 아래 자주 눕고
태양의 정면을 쳐다보는 이란의 유일한 베이지다
파란 것은 배고파 어떡해 자꾸 묻는 아이의 느낌이고
노란 것은 스미고 번져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파란 옆인데
둘이 붙은 것은 파라솔 근처의 태양 때문임을
로션 바른 베이지가 알고 있다
먹힌 것은 그래서 노랑
동생의 배로 잡혀 들어간 트윈의 형
파랑의 움직이는 반
예뻐 죽기 직전인데
왜 청년은 임신인가 노랑을 품었으므로
형은 손톱이 자란 노란 손을 굽힌 채 내내 있었을 것이고
형은 치아가 솟은 노란 입을 모은 채 파란 놈의 내장이 되는데
놀랍지 여기서 노랑을 유지해 이건 형의 고발인가
노랑의 극단적 위장 파랑
사실 살인은 청년 베이지가
파랑노랑 분명하지 못한 놈이
누구에게 배웠나 멋으로 옆을 갈랐나
몸 작은 형은 곱슬거리다 죽지도 못하고 어쩌다 죽지도 못했는데
아니라면 임신이지 그러니까 약간 유머야 배 배 배
내 배 속에 형이 들어 있다
꺼내봐 네 형
죽었나 살았나 몇 살이야
동갑이군 여전히 노래
네놈은 파랑인데 위장이고 형이 노랑이고 아 참
형이 넌가? 너 이란이야 청년이야 이거 알록 아냐?
그러니까 이게 배 안에 두 배가 붙어 한 배가 한 배를
왜 먹었지요?
* 22세 이란 청년의 몸에서 태아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그 시신은 청년이 엄마의 태내에 있을 당시 함께 자라던 쌍둥이 형의 몸으로 밝혀졌다.
아버지 딸뱀
소녀의 이름은 외자, 뱀이다
줄거리는 몸 쓰는 놈으로 섭외하고
누린내가 퍼지면 인물들 움직인다
아버지
그는 앉아 있고 단 한 번, 푸드덕댄다
백발을 감아올려 뱀을 세운 딸은
아비 앞에 선 채로 생리를 쏟아내고
기름이 다 빠진 뱀은 다리가 휘어진다
타닌 타닌 타닌*을 외치는 소녀
불현듯 안구를 꺼내 눈구멍을 비우고
멀미 오른 몸은 뒤를 건드리며 부드러워지는데
아비는 지금 무엇을 하나
나는 시력을 잃었으므로
어제 아비는 울었다 어제의 아비는 이제
아비의 어제
이제 나는 영영 아비를 알 길이 없고
한낮 어둑한 후방의 얼굴
깜깜한 얼굴을 삼키며 몸을 불리던 나는
곁이 없어 마른 접시에 든 낙지처럼
배 붙일 곳이 필요하므로 뒤로
뚱뚱하다
(팽팽하고얇은측백잎날렵한근육한점)
정사도 없이 부푼 몸이 나는 어지러운데
왔다 몸 쓰는 놈 이명을 다스리는
개들의 돌림노래
휘파 피 파 휘 축축한 켄터키 뱃집에 햇빛 비치어
어느 뱀 검둥이 시절 휘파 피 팟 척 척
저 해는 긴 뱀을 감아올릴 때 아버지는 벌써 익었다
아비를 굴리며 노는 어린 뱀 세상을 모르고 감나
분장할 시절이 닥쳐오리니 치장해라 아버지 딸뱀
그리운 아버지 등장하시어 울던 몸 오라며 운 날
척척한 등허리 찢으며 놀자 선지를 튕기며 놀자
* 타닌(tannin) 무두질 : 타닌을 이용하여 짐승의 생가죽에서 털과 기름을 뽑고 가죽을 부드럽게 만드는 과정.
똥굿
똥이 폭발한다
꿈에서
젖은 하체가 달아난다
고의는 아니었고
하체는 하의 안에 있다
항문들은 줄을 지어 따라가고
사라지고
순식간에 퍼지는 낮잠의 바닐라
똥 싼다
밑이나 열자
항문이 질과 담합하여 새로운 구멍을 내세울 때
머리를 아래로 하고 기름에 튀겨보지
카락 카락 탁탁 튀는 낱개들 몸살들 쏟아지는
내장들 우리도 할 말이 있다
잠 속의 항문 마이크 물면
누구냐 질
너의 스위치를 켜라
띠용띠용
둥둥 떠다니던 잠자던 마초
꿈을 배신하며 기어코 죽어가
마초를 꿈꾸던 대낮의 애인
불 끈 질을 열고 시체를 내보내
항문엔 담배를 물리지
엉덩이를 낮추고 제법 연기도 뿜어
여배우 같아
임신도 했어 영화같이
엄마 이거야 탯줄 대신 숙주나 연결해줘
여자 다산콜센터로 달려가 허벅지를 연다
부탁해요 데친 숙주
120: 어서오십시오미친년 네 똥집이나 한 입 먹어라
여자: 그래요 그래요 정다운 나의 다산콜센타
임신은 아니었고 항문은 돌아왔다
안심할 일은 아니다 어쨌든 나는
잠이 폭발한다
이번 꿈은 액자식 키보드 구성
똥물 쓴 내가 휙 돌아보면
누군가 똥 싸고 있고 그놈 항문 파내면
내 뒤가 쓰라리고 밑을 건드리면 위가 넘어가고
머리칼 튀고 날고 머리통 구르고
엔터엔터 신나게 두드리는데 얼굴에 엔터 똥칠이고
누가 나 좀 말려봐요 쟤 좀 건져줘요
저년 싸겠네 저거 꿈꾸다 구체적으로 웃는 거 봐
굿이라도 해야겠지 똥병이지 저거
거기 똥신이시어
차라리 나 타인 되게 하시오 이 몸 작살에 올릴 테니
제대로 썰어 다시는 붙지 않게 멀리멀리 뿌리시오
워이 똥물 워이 똥 튄다
장수진:
1981년 서울 출생. 2008년 서울예술대학 연극과(연기 전공) 졸업. 2006~2010 극단 〈골목길〉단원.
~~~~~~~~~~~~~~~~~~~~~~~~~~~~~~~~~~~~~~~~~~~~~~~~~~~~~~
<심사평>
총 368명이 응모한 올해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시 부문은 예년에 비해 100여 명 정도 수가 줄어 기대할 만한 작품이 적지 않을까라는 우려 속에 심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우려를 비웃듯 심사위원들을 긴장시키고 설레게 만드는 수작(秀作)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았다. 예심을 통과한 이들의 수가 15명에 이른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들의 이름을 전부 부기해도 좋을 만큼 작품의 수준과 완성도가 모두 당선작으로 뽑아도 무방하다는 이야기가 오갈 정도였다. 구현우, 김복희, 김선미, 박수지, 백지은, 송민규, 안희연, 양안다, 유재숙, 이소연, 이진기, 장수진, 정재우, 주완식, 한그린 등은 곧 다른 지면을 통해서라도 만나볼 이름들이다.
15명의 작품 중 누구를 본심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부터 행복한 고심거리였다. 올해의 경우, 심사를 진행하기 전에 심사위원들이 중요한 규준으로 의견을 모은 것은 기성의 틀을 벗어난, 이해를 거부하는 과감한 ‘파격’으로 보일지라도 자기만의 독창적인 시적 발화를 선보이는 진정한 ‘신인(新人)’의 형상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중략)
논의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백은선과 장수진의 시였다. 그런데 그간의 심사에는 없었던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이 제정된 이후 단 한 차례도 없었던 시 부문의 공동 수상을 진지하게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만큼 백은선과 장수진 중 그 누구의 시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었다.
백은선의 시는 장황한 말의 집적으로 시를 불필요하다 싶을 만큼 길게 만드는 요즘의 경향과 비교할 때, 선명한 이미지의 제시와 긴 호흡을 다채롭게 변화시키는 유려한 리듬을 통해 한국 시에서 장시의 새로운 미학을 일굴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기대하게 만드는 예로 꼽을 수 있다. 그 가운데 드러나는 선연한 상처의 흔적과 세계와 사물을 대하는 부정적 대결의식은 뒷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날카로움 또한 숨기고 있다. 로르카의 민요시를 떠올리게 만드는 감각적 리듬감은 그가 계속 견지해야 할 큰 장점으로 보인다.
장수진의 시는 자신이 창출한 형식을 스스로 그 내부에서 산산조각 내려는 강력한 자기파괴적 힘을 발하는 요설로 시종일관한다. 흡사 접신의 경지에 이른 무당의 굿판을 떠올리게 할 만큼 말의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독백조의 발화는 단정하고 우아한 정제미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의 시에 내재된 요설의 형식과 거친 리듬은 시대를 조롱하며 비극적 웃음과 울음을 동시에 토해내는 자의 목소리를 연상시키며, 그러한 목소리가 갖게 마련인 강한 마력으로 독자를 자기 세계로 이끄는 형용키 어려운 매력을 뿜어내고 있다. 자기 내면에 도사린 퇴폐와 파멸의 징후를 거침없이 발산하는 그의 시는 한국 시에 또 다른 ‘마녀’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듯 기성의 시와 타협하지 않으려는 독자적 개성이 빛을 발하는 이들 중 한 사람만을 당선자로 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심사위원들은 단 한 명을 선택하는 일을 과감히 포기했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두 명의 새로운 시인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배출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쁜 마음으로 축하한다. 수준 높은 기량의 시편들을 함께 투고해준 응모자 분들 모두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한국 시의 미래는 고맙게도, 감히, 여전히, 밝다. _ 이광호, 강계숙(문학평론가)
♦ 1차 심사: 이원, 강정, 강계숙 2차 심사: 이광호, 강계숙
( * 백은선의 '성스러운 피'와 장수진의 '중앙선과 입간판 사이에'는 책에 발표돼 있으나 생략함.)
—<문학과사회> 2012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