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화면에서 소리만 들리며 영화는 시작한다. 작가인 산드라와 문학 전공 학생인 조에와의 인터뷰다. 밝아지는 장면 전환으로 두 사람의 모습이 드러난다. 산드라와 조에는 서로에게 궁금한 것이 많고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위층에 있는 남편 사뮈엘이 튼 음악 소리에 인터뷰를 이어가기 힘들다. 목소리나 얼굴 대신 음악의 볼륨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남편, 초탈한 듯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아내와 계단으로 떨어지고 있는 공을 주으러 내려오는 스눕(개)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회피하고 싶은 아들 다니엘 <추락의 해부>는 그들이 사는 어설프게 지어진 집처럼 어딘가 결핍된 상태를 전면으로 세운다.
인터뷰가 중단되고 뱅상과 스눕은 산책을 나간다. 그들이 돌아오자마자 발견한 것은 추락한 사뮈엘의 시신 사고인지 타살인지 의심이 되는 정황에서 산드라는 용의자로 기소가 된다. 영화는 이때부터 가족 드라마와 법정 영화를 오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분석과 정황을 두고 살인을 주장하는 검사와 같은 근거로 무죄를 주장하는 변호인의 공방을 이어간다. 추측과 상황에 대한 분석이 난무하지만 결정적인 증거도 없고, 영화 속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끌어 모아도 진실은 알 수 없다. 아니, 애초에 진실 게임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추락의 해부>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누구인지를 인지하면 영화의 깊이는 전혀 새로운 것으로 다가온다. 살해 의혹을 받는 산드라,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다니엘, 카메라는 이들 누구에게도 몰입 하도록 두지 않는다. 마치 자신의 존재감을 과감하게 드러내듯 갑작스러운 줌과 패닝을 하기도 하고 푸티지 화면을 비추다 현장으로 디졸브 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인물과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는 대신지속적인 소격효과를 통해 관객에게 감정의 이입대신 낯선 자의 자리에서 이 상황을 냉정하게 직시하기를 주문하고 있다.
극이 후반으로 향해 갈수록 소재와 정보는 많아지지만 관객은 점점 자신만의 상상으로 이야기의 빈 곳을 채우며 따라가야 한다. 아들을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과 박약한 자신의 재능에 힘들어하던 사뮈엘의 극단적 선택이었을까? 작가임에도 모국어 대신 다른 언어를 강요받고 자신에게 전가된 책임에 환멸을 느끼던 산드라의 끔찍한 결단이었을까? 결국 어떤 진실을 마주하던 결론은 관객의 몫이고 배심원의 자리에서 유명작가의 남편 살해 의혹이라는 자극적인 가십대신 결정이라는 무게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 체험의 결정타는 역시 플래시백이 쓰이는 방식과 타이밍에 있을 것이다.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된 녹음파일로 저장된 사건 전날의 사뮈엘과 산드라의 부부싸움이 기록된 녹음과 글로 작성된 지문이다. 판사와 배심원은 그 자료로 상황을 판단해야 하지만 관객에겐 플래시백으로 구성된 화면이 제공된다. 이는 정보의 격차를 통해 이제 법원의 판단 역시 이 상황을 직시하고 있는 당신 스스로의 판단이 필요함을 말한다.
이 지리멸렬한 법정 싸움은 1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긴 여정 끝에 법은 산드라가 무죄라는 결론을 내렸고 결착 이후 얻은 것은 별거 아니라 생각했던 일상, 다니엘은 선택이라는 경험을 통해 잊고 싶었던 차라리 모르고 살면 좋았을 기억을 떠올렸다. 산 중에 크고 외딴집에서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리는 환자처럼 보인다. 이제는 쉬고 싶은 산드라 옆으로 스눕이 다가온다. 마치 내가 당신들 마음에 빈 구석을 채워줄게라고 하는 듯이 말이다. 어쩌면 스눕은 그 자체로 사뮈엘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초반부 공을 쫓아 내려오는 스눕은 추락한 사뮈엘과 다른 방식의 하강이었다. 부모로서 다니엘을 지켜야 하는 역할 역시 스눕이 수행했다는 사실을 영화 말미에 상기하게 된다. 동시에 그 이름(snoop)처럼 모두를 따라다니며 어느 곳에나 있었던 진실에 가장 가까운 존재인 동시에 인간의 언어가 통하지 않는 또 다른 관점이기도 하다.
재판이 진행되는 시간 동안 여론 역시 그들의 사건을 해부한다. 티브이쇼에선 산드라의 소설에서 모티브가 되는 사건이 있다는 것을 언급하며 살인의 가능성을 재시 하기도 하고 기자들은 한 가정이 그 속에 구성원들이 처참한 현실은 보지 않는다. 그렇기에 재판의 결과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추락 사건이 파헤쳐지는 과정을 목도했다. 해부되는 건 한 가정이고 개인이었다. 무엇을 보이고 들리나를 따라가는 줄 알았는데 무엇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거냐는 질문을 도로 받게 되었다. 프랑스 남자가 죽었고 독일 여자는 법정에서 영어로 자신을 변호한다. 아내이자 여자, 엄마 그리고 양성애자인 동시에 독일인이라는 복잡다단한 정체성은 해부 과정에서 조금씩 드러났다. 법이라는 잣대는 사회적 규율이라는 틀에 그 다양한 인간의 본질을 단순 명료하게 재단하려 한다. <추락의 해부>는 묻는다. 당신은 어떤 진실을 원하나요?
첫댓글 리뷰 잘 읽었습니다. 몰입 대신 소격, 이입 대신 직시 👍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같은 진실을 원해요. 그러나 그럴 수 없으므로. 아들과 산드라 본인마저 겪을 의구심이 끝없이 펼쳐질 것 같습니다. 스눕은 죽은 아빠처럼 이들을 감싸주지만 유일한 전지자로서 산드라를 주시할 지도 모릅니다.
영화는 못봤는데도 느껴지는 스눕에 대한 해석만으로도
영화를 다양한 시각으로 안내를 해주시네요.
추락의 해부를 보게 되면
상기하면서 감상해 보겠습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깊이 있는 영화인것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
추락의 해부라는 제목이 이런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군요. 소대가리님의 후기를 읽으면 늘 그 작품을 찾아보고 싶어집니다. 후기 잘 읽었습니다
기혼자 입장에서의 저의 영화 감상.
부부간의 사랑은 얼마나 지속되는가? 나의 입장을 접어두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배우자를 이해 하려고 노력하는, 또는 내가 희생 할 수 있는 기한은 얼마나 될까?
인간의 이기심이 드러나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또다른 측면에서 자녀의 탄생은 본인과 부부에게 진정한 축복이다. 그러나 양육의 과정에서 벼랑 위에 서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서로 버티는 긴장의 연속. 누구라도 삐끗하는 순간 축복은 유리처럼 바스러지고 책임이라는 억압만 남는 것.
결혼제도가 억압기제로 작용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일인
극장을 못가서
영화를 못보네요.
티비에서 소개해준 영화군요.
보고 싶었는데
소대가리님 리뷰글
조이스님 리뷰글 보니
더 궁금해지네요^^
체크해놓겠습니다.
리뷰글잘보고갑니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작을 많이 봤어요
저완 코드가 안맞다고 결론을 내릴판이었죠
(한번 더 기회를 드릴려고요ㅋㅋㅋㅋ)
독일어가 모국어인사람이 영어가 편한데 프랑스어로 자신을 변호해야되는 이 영화의 설정이 우선 맘에 들었어요
산드라의 연기는 이미 맛을 봤기때문에 새삼 놀란건 없었고
해부의 칼날이 향해 있는곳을 감독은 이미 산정에 두고 있었구나~~싶은 연출이 사실은 저의 불만이라면 불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