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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 시몬의 신앙과 교회와 우리의 신앙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행 8:18-24)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마술사 시몬 이야기를 만나니 여러 가지로 생각할 거리가 많습니다.
첫째로 주님을 믿는 척하지만 그 마음은 변하지 않은 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시몬은 세례를 받았지만 여전히 어떻게든 돈만 모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 자였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시몬과 마찬가지로 교회에 등록하고 출석하고 세례를 받을지라도 그 마음이 성령으로 변화되지 않고 거짓된 생활을 계속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아무런 관계가 없고, 분깃을 얻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큰 선생님이신 로이드 존스의 글을 보아도 교회에 출석하면서도 신앙이 없던 시기가 있었다는 고백을 볼 수 있습니다. 천로역정을 기록한 존 번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있는 불신자에게 전도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고 시급합니다. ‘교인은 되어도 기독교인은 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기억하는데, 그리고 『fan인가 제자인가』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리고 교회 안에도 이리가 있고 교회 밖에도 양이 있다는 말을 기억하는데, 이 모든 것은 겉으로는 교회에 다니는 교인이지만 마음은 변화되지 않고 예수님을 주로, 자신은 죄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한국 교회 안에는 현대의 많은 반신적이고 세속적인 사상이 자리잡고 있는 것과 동시에 재래 종교의 흔적 또한 여전히 많이 남아 있습니다. 불교적인 것, 유교적인 것과 함께 샤머니즘(무속) 사상에서 물려받은 것들이 많지만 두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하나는 무엇인가를 바침으로써 액을 면하고 복을 받는다는 생각이 강하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삶의 곳곳에 귀신이나 샤머니즘에 대한 생각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상당수의 교인들이 목회자에게 돈이나 물건을 바치면서 특별한 복을 받기를 희망합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바쳤다고 하면서도 목회자의 축복 기도를 바라며, 다른 교인들이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목회자가 심방을 오면 돈봉투를 마련하여 드리면서 복을 빌어주기를 기대하기도 합니다. 자녀나 손주의 생일이나 백일잔치에, 혹은 사업을 시작하거나 자동차를 사는 날에조차 목회자를 부르고 축복기도를 바라며 봉투를 드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교인들이 그렇다는 말이지 대부분의 교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밝힙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사실은 한국 교회는 아직도 성경을 사랑하고, 그 가르침을 사모하면서 먼 길을 감수하며 교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조상의 영혼이 귀신이 되어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 계속 제사를 지낸다거나 아니면 추도예배라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고를 당하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리면 마귀나 귀신이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는가 하면, 이사하는 날이나 결혼하는 날도 소위 길일(吉日)을 택해야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 어려움을 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크게 화를 내거나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때는 귀신의 유혹에 빠져서 그런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타락한 천사의 우두머리가 마귀요, 그 밑에 있는 악한 천사들이 귀신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붙들고, 선한 천사들은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섬기기 위한 존재라는 가르침(히 1:14)을 마음에 새기고, 우리나라의 잘못된 가르침인 죽은 사람의 영혼이 귀신이 되어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연초에 사주팔자를 보거나 토정비결을 보면서, 심지어 점쟁이의 집을 찾아가서 한 해의 운수를 알아보려는 마음을 가진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천사나 귀신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배우고 정리하여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진리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며(요 8:32; 갈 5:1), 은혜 안에서 의와 생명이 왕 노릇 하는(롬 5:17,21; 6:16, 22) 복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연초에 이런 정리를 잘 하고 연말까지 이렇게 살다보면 올해의 믿음이 많이 성숙되고,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셋째로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롬 2:24)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가끔 교회 생활에서 한숨이 나올 때가 있는데 ‘어떻게 세상의 동호회만도 못할까?’라는 생각이 들 때입니다. 언젠가 ‘제발 상식선에서만 행동해 주어도 고맙겠다’는 생각을 갖기도 했습니다. 만약에 비방을 받으려면 어떤 이유에서 받아야 할까요? 베드로 사도가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벧전 4:1-4)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하던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니까 비방을 받는다면 지극히 성경적이지 않겠습니까? 불신자들은 남을 도와주려고 하고, 자기의 것을 나눠주려고 하고, 양보하려고 하는데 많은 교인들은 이런 모습과 먼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믿고 본받으려고 한다는 분들이 왜 그럴까요? 참으로 이상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 자신도 그런 것을 많이 보인 사람이었으니 할 말이 없기도 합니다. 마술사 시몬의 상황을 본 이방인들 중에는 한창 세워져 나가던 교회에 대하여 큰 공격의 빌미를 찾았다고 기뻐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 마술사 시몬이 교회사에 나타난 최초의 이단으로 시몬파의 창시자요, 영지주의 이단의 대부(代父)로 언급되고 있다고 합니다. 교회 역사상 자신을 메시아라고 칭했던 첫 인물이었으며, 후에는 자신은 신으로부터 유출된 최고의 신적 능력의 소유자요, 신의 능력 자체, 곧 하나님이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이레니우스에 의하면 그는 많은 이들에 의해 신으로 추앙받았고, 그의 제자들은 그 자신으로부터 유출되었다고 주장하였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렇다면 빌립의 전도로 믿는 자들이 늘어나던 좋은 흐름에 아주 나쁜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복잡한 일이 많이 있지만 교인이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과 교회의 이름이 칭찬을 받기도 하고, 모독을 받기도 합니다. 문제는 오늘날은 칭찬보다는 욕을 돌리는 일이 많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바울 사도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는 유대인들(롬 2:17)에게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롬 2:21-22) 당시 유대인들 일부는 우상숭배를 범죄로 알면서도 우상에게 주어지는 신전 물건을 탐내어 도둑질하는 어처구니없는 죄를 범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신전이 아니라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를 드린 후에 교회의 어떤 것을 가져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고상한(?) 형태로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자신이 가로채고,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찬송을 자신이 받으면서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심지어 하나님께 드린 헌금에서 자신의 호주머니를 채우는 소수의 경건한(?)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몸은 교회와 함께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이방 종교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 2:28-29)는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넷째는 교회 소개를 할 때에 “성경 말씀 중심의 올바른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을 이어받고, 경건한 예배를 드리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입니다.”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지를 보면 과연 그러한가 궁금해집니다. 교회 안에는 마술사 시몬과 같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요, 심지어 그런 사람들이 직분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네 경험과 전통에 의하여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시몬이 돈을 주고 하나님의 선물을 사려고 한 데서 시몬이라는 이름을 형용사화한 Simony가 성직매매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오늘날 교회 안에는 다양한 형태의 성직매매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내세우는 구호는 “성경 말씀 중심의 교회”인데 실제로는 성직매매가 넘치는 마술사 시몬이 가득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혈연과 지연, 학연을 이유로 직분자가 되기도 하고, 헌금이나 권력의 사용을 이유로 중요한 위치를 보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는 교회의 담임 목사가 권한과 책임이 있을 것이니 구호만 아니라 삶에서 구체적으로 “성경 말씀 중심의 교회”를 이뤄가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베드로처럼 엄히 책망하고 회개를 촉구하여야 할 것입니다(행 8:20-23). 교회의 세 표지 중의 하나가 ‘권징의 신실한 시행’인데,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엄위보다는 교인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먼저 생각될 때는 권징을 전혀 행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베드로의 엄한 책망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크신 뜻은 마술사 시몬의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고”,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고 하여(행 8:25-26) 그동안 예루살렘과 유대에서만 전도하고, 유대인들에게만 전도하던 것에서 벗어나 사마리아와 가사까지 범위를 넓히고,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어려움을 겪으면 낙심하기 쉽지만 하나님의 뜻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에 문제가 있을 때에 잘 해결해 나감으로 교회는 한 발 더 전진하고 성숙하였음을 기억하며 절대로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참된 하나님의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습니다(마 16:18). 마술사 시몬이 한때는 자칭 ‘큰 자’라 하고,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였지만,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안수할 때에 성령을 받는 것을 볼 때에 완전히 굴복하였고, 책망을 받을 때에는 두려워하였습니다. 가끔 교회 안에서 주인 노릇 하며 큰소리치는 교인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들의 실체가 드러나고, 하나님의 두려움이 그들을 책망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으며 전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