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영혼에 투자하라.
주위를 둘러보면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최선을 다해 노력해서 산다. 문제는 그 노력이 상에서 비롯된, 상을 보고 하는 노력이다라는 것이다. 상이란 본질이 아닌 거울에 비친 상이란 의미이다. 따라서 거울이 없으면 상도 없다. 달리 표현하면 오랜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 -통상 보람이 있었다는 의미이지만, 이것이 본질이다. 예컨대 지난 날 부모님께 잘 해드린 경우, 또는 아무런 사심없이 도움을 주었을 경우, 훗날 생각해 보면 기쁘고 가슴이 뛴다. 이것이 상이 아니고 본질이다. 즉 본질은 모든 사람을 나와 같은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다.
얼마 전 길을 가다가 옥수수를 쪄서 파는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만났다. 커다란 통에는 옥수수가 끊고 있었고, 그 옆에는 옥수수 껍질을 까고 남은 옥수수 수염이 마르고 있었다. 옥수수 수염을 살 생각으로 다가가니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목이 마른 듯 보였다. 하루 종일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있었을 것이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마침 돈이 없어서 집에 가서 가지고 와야 했기에 돈을 가지고 오면서 냉장고에 있는 생수 500리터를 같이 가지고 왔다. 생수를 드리니 아저씨께서 맛있게 드신다.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여전히 그때를 생각하면 기쁘고 흐뭇하다. 만약 그때 그 아저씨를 필자가 필자와 다른 존재로 생각했다면, 아저씨가 생수를 마시는 모습이 기쁘고 흐뭇하지 않았을 것이다. 본질은 모든 사람을 나와 같은 존재로 생각했을 때 나오는 행동, 생각, 의지, 느낌이다. 모든 인간의 몸 속에 존재하는 본질 자아가 여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언제 어디서나 -본질- 자아에 기반하면 본질이다. -여기에서 본질은 같은 의미이다. 문제는 인간이 지상의 몸을 입는 순간 상에 매몰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인간이 본질을 보지 못하는 이유, 상에 매몰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몸을 입어야지만 얻을 수 있는 능력을 얻기 위함이다. 인간이 정신세계에서 살다가 몸을 입고 지상의 삶을 사는데에 정신세계에서 얻은 능력을 지상에서 체험을 통해야, 즉 몸을 입고 체험을 해야 그러한 능력을 얻는다. 예를 들면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면, 정신세계에서 그러한 능력이 필요하다면, 지상에서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그러한 능력을 얻는다. 이때 사랑은 정신세계의 사랑으로 보편적인 사랑이다. 우리가 현실의 삶에서 알고 있는 사랑은 아니다.
여담으로 필자는 아이들을 사랑한다. 아이들을 사랑할려고 해서 사랑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필자의 내부에서 나온다. 결과 아이들에 관해서 많은 것을 파악했지만, 이것은 곧 나에 관해서이고, '보편적인 인간에 관한 앎'이다.
짐작하건대 필자가 아이들에 관해서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을 사랑했기 때문인데, 아이들을 사랑한 것은 정신세계에서 가지고 온 것이고, 지상의 몸을 통해서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앎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필자가 정신세계로 다시 간다면 가지고 가는 것은 필자의 정신에 새겨진 것, 정신이 성장한 것, '보편적인 사랑'이다. 보충하면 지상의 삶에서 보편적인 사랑을 이해하는 것은 글자로만 아는 것이고, 자신의 정신이 파악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필자의 정신이 보편적인 사랑을 체험해서 얻었다는 의미이다. 물론 수준은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둘째, 인간이 진화하면 저절로 상이 아닌 본질을 본다고 한다. 현 인류가 진화하기 위해서는 상을 통해서 능력을 얻어야 진화가 이루어 질수 있다. 이쯤에서 인간은 누구라도 진화를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지상의 삶에서 보는 것이 상임을 파악하고 본질을 보고자 노력해야 한다가 결론이다. 정신이 열매를 얻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현실의 삶에서 본질을 파악하므로 지혜로운 삶을 살아 갈 수가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가능한가가 질문이다.
역시 인간의 내부가 성장해야 한다. 물질을 보고 설명을 하거나 이해를 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다. 정신은 보이지 않으므로 스스로 노력하고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이것이 과거 스승의 의미이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현재 인류에게는 깨달음을 위한 많은 도움이 도처에 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가능하다.
자신의 영혼에 투자하라. 이것이 답이다. 요즈음 대부분 -개념이- 투자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이렇게 표현해 보았다. 어떻게 투자할 것인가. 먼저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 이해해야 한다. 영혼은 지상의 삶에서 육체와 연결되어 있고, 또 정신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영혼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영혼이 육체와 정신을 연결해 주는 매개체이다. 바로 말하면 영혼은 육체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고, 정신에게도 손을 뻗어서 정신의 열매를 얻어낸다.
우리가 하는 생각, 느낌, 행동은 육체를 통해서 드러낸 영혼의 모습이다. 우리가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영혼이 생각, 느낌, 행동에 매몰되기 때문에 우리가 영혼을 감지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먼약 우리가 생각을 한다면 영혼이 바로 그 생각자체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을 할때 '아, 영혼이 생각하는구나'라고 이해한다면, 이 생각을 파악해서 내가 영혼을 컨트롤 할수가 있다. '이것이 투자이다'. 생각은 오성영혼의 몫인데 의식영혼이 작동을 해서 사고세계의 법칙, 직관을 가지고 와야만 내가 생각의 결과를 얻을 수가 있다. 생각에 매몰되면 의식영혼이 작동하기가 어렵다. 즉 상에 따라서 삶을 사는 것이다.
요컨대 생각은 오성영혼의 역할이고, 오성영혼이 생각을 해서 의식영혼으로 나아가야 한다. 의식영혼은 대상의 진리를 파악한다. 이것이 정신세계의 직관이다. 정신세계의 직관이 없으면 현실의 삶을 살기가 매우 어렵다. 요즈음 흔한 학교폭력을 보면 아이들이 아무 생각이 없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그 이유가 아이들의 영혼, 의식영혼이 직관을 가지고 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직관이 곧 사고법칙이기도 한데. 사고법칙이란 삼라만상이 존재하는 법칙을 의미한다. 예컨대 삼라만상은 일정한 법칙으로 운영된다. 사고의 법칙, 나와 같은 존재를 해치게 할 수가 없음을 아이들의 의식영혼이 직관으로 가지고 와야 한다. 아이들이 가지고 오지 못하기 때문에 학교폭력이 일어나는 것이다.
또 영혼은 육체에 연결되어서 육체의 정보도 가지고 온다. 즉 육체의 정보도 파악할 수가 있다. 영혼이 힘드는 정보를 보내면 '아 육체가 힘들어 하는구나;를 파악해서 정말로 육체가 힘들어하는지 또는 상인지 파악한다면 영혼의 정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육체가 더 힘을 내도록 할 것인지 육체를 쉬게 할 것인지 내가 선택할 수가 있다.
나의 영혼에 투자할려면 영혼의 표현에 매몰되지 말고 영혼이 드러내는 표현을 파악해야 한다. 육체가 드러내는 표현, 오성영혼의 생각이 무엇을 말하는지, 삼라만상의 사고법칙에 맞는지 파악해서 영혼을 컨트롤하면 자신의 삶을 지혜롭게 살아가고, 결과 진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요컨대 모든 드러나는 생각, 행동, 느낌은 상이고, 그 기반은 본질이다. 본질은 삼라만상이 존재하는 사고법칙에 기반하고 있어서 본질을 파악할려면 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즉 드러나는 생각, 행동, 느낌에 매몰되면 우리는 본질을 파악할 수가 없다. 매몰되어 있지만 우리는 나의 영혼의 본질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에 집중, 영혼의 표현을 살펴야한다.
나의 본질과 대상의 본질은 같기 때문에 나의 본질에 기반해서 보면 상대의 생각, 행동, 느낌도 파악할 수가 있다. 상대는 자신의 영혼에 매몰되어서 생각과 느낌과 행동을 그대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나의 본질에 비추어보면 매몰되지 않은 생각과 행동과 느낌을 파악할 수가 있는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꾸준히 자신의 영혼에 투자하면 결과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이 정신세계의 법칙이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자신의 본질이 삼라만상의 사고법칙에 어긋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