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홉 명은 어디에???
1860년 9월, 미국의 미시간 호수에서 유람선 한 척이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배에 타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배의 침몰과 함께 호수에 빠져 죽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대학 수영 선수였던 스펜서가 있는 힘을 다해 17명의 생명을 구출해 낸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연일 매스컴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사람들을 구한 그의 영웅적인 행동을 대서특필하였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토레이 박사가 로스앤젤레스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 토레이 박사는 강의 중, 오래 전 미시간 호수에서 있었던 배의 침몰 사고를 이야기하면서 그때 여러 사람을 구출했던 젊은 수영 선수 스펜서의 용기와 희생정신을 크게 칭찬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스펜서가 노인이 되어 토레이 박사의 강의를 듣고 있었다. 토레이 박사는 강의가 끝난 뒤에 스펜서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스펜서를 만난 토레이 박사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질문을 했다. “그 당시 목숨을 구해준 17명 중 몇 명이나 감사를 표시했습니까?” 스펜서는 가볍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꼭 한 사람이요. 그것도 어린 소녀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그 소녀는 지금까지도 크리스마스 때면 어김없이 저에게 감사카드와 선물을 보내 오고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이에게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씁쓸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감사를 까맣게 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이다. 예수님의 시대에도 감사할 줄 모르는 이들이 있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는 길에 나병환자 열 명을 만나셨다. 그 당시 나병환자들은 부정한 자들로 여겨졌기 때문에, 자기 옷을 찢고, 머리카락을 풀고, 사람들이 가까이 오면 손으로 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큰 소리로 외쳐야 했다. 그만큼 일반인들과 완전히 격리되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사는 이들이었다. 그런 나병환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자신들의 병을 고쳐주기를 간절히 소원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바람대로 병을 고쳐주시기 위해 사제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하셨다. 사제에게 가서 보이라고 하신 것은 사제가 나병환자들 진찰한 후 깨끗하면 정결 예식을 거쳐서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그들의 병이 나을 것을 이미 전제하신 행동이었다. 나병환자들은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사제에게 자신의 몸을 보이러 갔다. 그런데 가는 도중 그들은 자신들의 병이 이미 나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기뻐했다.
그런데 그들 중 아홉은 병이 낫자 기뻐서 사제에게 달려갔고, 한 사람만 가던 길을 멈추고 예수님께로 돌아와 감사를 드렸다. 그는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이었는데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루카 17,16). 자신의 몸을 낮추어서, 아니 엎드려서 무릎을 꿇고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다. 예수님은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온 사마리아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 있느냐?” 그리고 주님은 감사를 드리는 사마리아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7,19). 결국 이스라엘 사람 아홉 명은 육신의 질병 치료로 끝났지만 예수님께 감사를 드린 사람은 영혼의 구원까지 선물로 받게 되었다.
똑같은 은총을 받았는데 어떻게 이스라엘 사람과 사마리아 사람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여기에 감사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소외당하던 사람들이었다.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감사할 거리가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병 고침을 받은 사마리아 사람은 한달음에 달려가 예수님께 감사를 드렸다. 우리는 흔히 일에 실패하거나 경제적 형편이 어려울 때, ‘사업에 성공하고, 잘나가는 사람들이나 감사하지, 나같이 안 풀리는 사람이 어떻게 감사할 수 있겠어!’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잘되고 성공한 사람들이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감사하는 것이다. 부자가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겸손한 사람이 감사하는 것이다.
감사는 겸손한 사람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이렇게 진정으로 감사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우리는 늘 어려운 일에 부딪치면 평생 주님만 믿고 따르겠다며 도와달라고 간청하다가 막상 일이 잘 풀리면 그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예전 생활로 돌아가 감사를 잊어버리게 된다. 그런 우리의 모습은 아홉 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10대1의 경쟁을 뚫고 입시나 직장에 합격을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아홉 사람 중에 속하기는 쉬워도, 한 사람에 속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이다. 그것은 신앙 생활을 오래 한 사람도, 교회의 성직자도, 수도자나 선교사도 예외일 수 없다. 감사 생활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기적의 주인공이 아니라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하느님의 은혜와 은혜 사이, 축복과 축복 사이에는 감사의 사다리가 놓여 있다. 하느님의 은혜와 축복을 계속 누리기 위해서는 대나무가 매듭을 지으며 자라가듯 감사의 매듭을 지으며 사는 삶이 필요하다. 그래야 갑절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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