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의 미국은 자유를 갈구하던 청춘들이 목소리를 내고 술이건 음악이건 뭐라도 좋으니 취하던 때였다. 보들레르가 그토록 외치던 삶이라는 권태로부터 저항하기 위해 몸부림쳤고 그토록 찬란한 취기는 70년대로 접어들면서 그 숙취를 고스란히 안고 가게 된다. 마틴 루터 킹이 암살당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류는 달에 도착한다. 수많은 청춘들은 베트남에서 목숨을 잃고 또 누군가는 가족을 잃었다. 또래지만 한쪽에선 명분 없는 전쟁에 차출이 되고 다른 한쪽에선 아이비리그 대학 진학을 위해 학점 고민을 하고 있다. “바튼 아카데미”는 70년대라는 시간과 뉴잉글랜드와 보스턴을 관통하는 공간과 그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보듬고 연대하는 이들을 비춘다.
영화는 1970년을 표현하려, 아니 마치 그때에 만들어진 듯한 영상을 구현하려 노력을 기울인 흔적들이 역력하다. 1.66:1로 나오는 화면 비율에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노이즈가 섞인 사운드, 필름에 새겨진 그레인 자국에 디졸브로 이어지는 장면 전환까지 그때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때 만들어진 영화로 보이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당대를 회상하는 것이 아닌 현재의 감각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영화가 상영되는 시간의 흐름은 ‘과거-현재’가 아닌 ‘지금-현재가 되는 영화적 마법을 경험한다. 이는 폴이 앵거스에게 전하는 가르침과 연결되는데 그는 역시를 배우는 이유에 대해 단순히 과거의 사실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아닌 현재가 만들어진 과정을 배우는 것이다. 거기에 폴과 앵거스, 메리가 디졸브로 연결되는 장면들은 그들의 시간이 아픔을 지닌 과거와 떠안고 살아가는 마음에 짐이 한곳으로 모여드는 과정처럼 비춰진다.
이 영화의 원제는 “holdover”다. 남겨진 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직시하게 된다. 학교에 남아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이해야 하는 이들은 역사 선생인 폴과 학생인 앵거스, 주방 매니저 메리다. 각자의 사정에 의해 이 세 사람은 학교에 있지만 이들의 사정을 보면 폴은 하버드에서 가난을 이유로 버려져 바튼에 남겨졌고, 앵거스는 부모의 외면으로 학교 기숙사에 남겨진다. 메리 역시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로부터 남겨져 학교에 있다. 이들의 단독쇼트를 디졸브로 연결하는 연출은 서로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던 얄짤없는 원칙주의자와 애정결핍 소년, 슬픔에 갇혀사는 여자로 구별되는 이들의 느슨한 연대를 만들어낸다.
상실과 남겨짐이라는 공통분모와 같은 서로의 상처를 발견한 이들은 체리 주빌레라는 장치로 봉합이 된다. 크리스마스를 위해 외식을 하던 그들은 술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식당에서 체리 주빌레의 주문을 거절당하자 아이스크림과 체리, 짐빔이 합치고 불을 붙이는 순간 세 가지 재료는 그들 세 사람이고 그들은 마침내 하나가 되었다. 이해관계가 없을 법한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이겨내야 했던 것은 손을 내미는 것을 방해하는 계급주의와 권위주의였다. 영화의 말미에 폴은 앵거스를 위해 거짓말을 한다. 앵거스는 전학을 가게 된다면 군사학교로 진학을 해야 하고 그것은 곧 베트남으로의 징집으로 연결된다. 이때 위안이 된 것은 메리와 폴의 따뜻한 악수였다.
악수뿐 아니라 영화는 손이라는 상징을 영리하게 심어뒀다. 쿤츠가 올러만의 장갑을 한 짝만 빼앗아 버리자 찾지 못하고 남은 한 짝을 강물에 버리는 장면은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를 차별적 행동을 통해 우위를 점하려는 전형적인 상류층의 선민의식을 대변하고, 팔이 다친 앵거스가 식당에서 시비가 붙는데 상대는 손이 잘려서 갈고리를 달고 있는 참전 용사였다. 악수가 불가능한 상태인 이들의 대비를 통해 만일 군사학교로 진학을 한다면(그것은 곧 참전이니). 그가 자신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까지 심어둔다. 손을 내밀고 잡는다는 행위는 위안을 나누고 당신을 믿는다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거기에 포옹은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악수는 시선이 서로에게 가닿아야 한다. 폴은 앵거스에게 오른쪽 눈을 가리키며 이쪽을 보라 말한다. 대사에서 ‘right’라는 단어가 말하는 것은 늘 옳은 방향을 생각하라는 뜻일 것이다. 거기에 술을 대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폴은 샴페인급이라 불리는 밀러 하이라이프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고, 짐빔 역시 즐겨 마시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루이 13세 코냑을 한 모금 마시려다 뱉어낸다. 고급 주종인 코냑은 자신을 옥죄던 바튼이라는 재단이었고 그것을 뱉어내는 행위를 통해 저항하는 샘이 되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갈 준비가 된 인간으로 성장한 것이다.
폴은 앵거스를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하다 해고 통보를 받는다. 앵거스는 보스턴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싶었다. 치매와 같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그는 더 이상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힘들고 아들은 자신이 아버지처럼 될까 두렵다. 폴은 앵거스에게 말한다. “넌 네 아버지가 아니야” 너는 너라는 독립된 계체로 살 것이라고, 과거에 얽혀서 자신을 잃지 말라고 그 말은 어쩌면 폴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가난은 그에게 학자의 꿈을 포기하게 했고 그를 구해준 것은 영화 초반부에 패닝으로 스치던 자신의 스승이었다. 교사를 제안하고 머무를 곳을 마련해 준 그 은혜를 이제는 자신의 제자에게 갚는 것이다. 메리 역시 아들 커티스를 잃은 아픔을 곧 태어날 동생의 아이를 지원하며 극복하려 한다.
플래시백 없는 영화의 시간은 우리에게 현재로 다가왔다. 스크린의 안과 밖이라는 공백은 그들의 1970년이라는 현재를, 지금의 내가 있는 현실을 감각하게 했다. 지금을 온전하게 본다는 건 쌓인 시간의 더께를 마주하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알겠다. 폴은 이제 누군가에게 명상록을 선물하지 않을 것 같다. 대신 메리에게 받은 새 노트에 한 글자씩 자신의 이야기를 채워갈 듯하다. 언젠가 그 글이 책으로 출간된다면 앵거스는 아마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할 것 같다. ’ 우리 모두 성장했네요. ‘
첫댓글 @소대가리 픽이라니 꼭 봐야겠네요^^ 옆 사람과 연대하고 뒷 사람에게 갚고. 이렇게 간단한 연대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보고 나서 다시 또 읽으러 올께요~
보고나니. 아카데미가 이상적으로 여길 주제를 그대로 그린 느낌. 익숙한 이야기라고 느꼈고 스승과 제자 간의 훈훈한 관계에 조금 삐딱한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또 그만큼 그런 프로세스가 아쉽고 필요하죠.지금은 없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아련한 화면 때문인가요. 선생님의 결단에 울림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현재의 자신을 마주한 느낌. 이 배우는 이런 역할엔 찰떡인듯 해요. 보실 분에게. 조금 길답니다~
이 영화 꼭 보고 싶었는데 상영관이 많지 않더란 말이죠..
ㅜㅜ
멋진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영화 보고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생생하게 느끼며 읽었습니다. ^^ 폴과 메리와 앵거스의 성장스토리이기도 하면서, 따뜻한 연대를 이야기하는 영화라고 느꼈어요. 역시 소대가리님의 글을 읽으며 여러 숨겨진 의미들을 찾을 수 있어 더욱 좋네요. ^^ 영화 보면서 감독의 전작 어바웃 슈미트가 내내 떠올랐는데, 확실히 알렉산더 폐인 감독도 성장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 좋은 글 감사합니다. 참 따뜻한 영화였어요. ^^
멋진 감상글입니다! 꼭 보고싶네요.
영화는 못봤지만..소대가리님 글을 읽고 있음
소설책 읽는 기분입니다.
리뷰글 잘보고 갑니다.
인류애 충전!
고만고만한 착한 영화를 많들던 페인감독 최고작이될듯 하죠..
크리스마스가 되면 생각나는 영화가 한편 늘기도 했고요
세사람의 특별한 크리스마스 후 한사람이 떠나지만
그의 손에 들린 작은 노트가 든든해보였어요
트집잡고 싶지않은 영화예요
(저긴 좀 넘어가지 싶은 장면이 있었어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