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박경리 선생께서 자신의 문학적 기원에 대해 말씀하시는 걸 들은 적이 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한’이라는 정서에서 기인하고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한국에서 한이라는 정서는 일종의 소망이며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도록 비는 마음이었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깃들 린 것이었다. 그러면서 비슷하게 의미를 제시되기도 하지만 전혀 다른 일본의 한은 ’ 우라미(うらみ)‘ 즉, 원한에 가깝다고 하셨다. 일본의 한이 우리와 다른 지점은 어르고 달래는 치성으로 극복하는 것이 아닌 그것이 악신이 되지 않도록 마츠리 같은 축제로 모시거나 인간의 영역이 아닌 어딘가에 봉인을 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일본인들에게 전쟁과 자연재해는 선악으로 구분 지어 발생하는 일이 아니라 천명처럼 마주하게 되는 불가역의 영역이기 때문 일 것이다.
장재현 감독은 이런 양국 사이에 문화적 간극을 차용해 “파묘”의 모티프로 삼았다. 의외로 그의 삶에 종교적 베이스는 기독교라 알려져 있지만 무속과 토착 신앙을 대하는 그의 자세는 언제나 열려있었다. “검은 사제”와 “사바하”를 거치는 필모를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인간이 혹은 사회라는 집단이 기대고 있는 종교를 조심스레 해부해왔다. 무엇을 믿고 어떤 것을 따르느냐가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탐구하는 것이다. 파묘 역시 그의 영화적 주제 의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묘를 파는 행위는 묻어둔 과거에 말을 거는 행위다. 그곳에 묻힌 존재는 인간이었던 육신뿐만이 아니다. 그가 생전에 보고 듣고 느꼈던 감정들과 그를 거쳐간 시간까지 함께 묻는 것이다. 지관은 오행이라는 원리를 적용해 망자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그 흙은 다시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내는 양분이 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모두 같은 줄기에서 파생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문제는 천착하는 주제를 풀어내는 연출에서 발생한다. 무덤을 파내려 가면서 마주하는 진실들과 과거와 현재가 어떤 식으로 이어지는 가를 보여주는 방식이 장재현스럽지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전작들이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근원적 두려움을 탐구하는 것이어서 관객에 다소 불친절하다거나 모호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 속 메커니즘이 어떻게 흘러가는 것인지 내레이션을 동원해 설명하고 악의 실체가 명확한 모습으로 등장해 대치하는 것은 그가 말하려는 주제와 어울리지 못한다. 그것을 아무리 소품과 인물들의 행동 속에 장치로 심는다 한들 보물 찾기에 흥미가 없는 관객에겐 지루한 플롯의 나열들로만 보인다.
아직 끝나지 않는 전쟁과 과거와 현재를 이어내는 무속과 캔버스 신발 극복해야 하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방식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도 보이지 않는 것을 염두하고 살아야 하는 현실에 대한 인물들의 말들은 공허하게 드릴뿐이다. 그러니 열연하는 배우들(특히 대살굿 장면)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여 안타까웠다. 파묘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장치는 오행에 의한 상성이었다. 영화의 주제를 흙으로 치환한다면 배우의 연기는 나무 연출은 물이 되어야 한다. 하나, 파묘의 연출은 흙과 나무의 조화를 어그러지게 하는 쇠가 되었다. 가려야 할 것들은 드러내고, 보여야 할 것들은 흐리게 하는 오행에 역행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아쉬운 결과물을 만들고 말았다. 여백은 생략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상상의 영역에서 건져오는 것이다. 그 여백을 빈 곳이라 여기는 순간 아무리 채워도 충족이 안 되는 갈증에 시달리게 된다.
영화의 초반부 상덕의 내레이션으로 사람들은 빛에 의해 드러나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는다고 한다. 그 말을 그대로 장재현 감독께 돌려 드리고 싶다. 아무리 숨은 상징을 우겨 넣고 그걸 찾는 쾌감을 준다한들 이야기 품고 있는 본질이 빈약하면 공허의 장이 될 뿐이다. 그림자의 영역 감춰진 것들에 시선을 오도록 하는 예술을 보여주길 바라며 다음 작품을 기다리겠다.
첫댓글 일본 한과 우리한의 차이가 생각해보니 한이되는 원인에서 올수 있겠네요. 배경지식이 부족하니 설명에 목말랐는데 잘 읽었습니다
봉인하는 우라미와 순환되어야 할 한의 충돌이라니 탁월한 설명이네요 👍 감사합니다
파묘가 묻힌 진실을 들어내는 행위라는 해석이 좋네요. 후반으로 갈수록 악의 실체를 아주 적나라하고 친절하게 보여줘서 약간 김 빠지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 정도는 대중영화의 친절함이라해도 될거 같아요. 이런 다양한 장르 영화가 만들어지고 흥행에 성공한다는건 영화 시장에 좋은 영향이라고 봅니다.
다들 후반부를 아쉬워하는데, 저도 약간 아쉽긴 했습니다. 곡성급을 기대했지만, 그에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이랄까요.
그래도, 영화는 재미있게 봤고, 글도 잘 읽었습니다~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와 👍 소대가님 철학책 많이 읽으세요?^^ 오행설명도 좋았고 한에 대한 설명도 좋았고^^
또 한번 배워가네요.
영화끝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싶은것만 보고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하잖아요. 보이는게 다가 아닌데^^
전 귀신은 안믿습니다.
다만 한이라는 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무당들이 존재하고
그런맘으로 파묘를 봤는데
후반부부턴 방향성을 잃었던게 많이 아쉽습니다.
감독이 전하고싶었던 메세지가 너무 많았던거 같아요^^
다음 작품 기대됩니다.장재현감독
광해 진짜 울면서 봤는데^^♡
손가락에 살이 쪄서 ㅎㅎ
소대가님에서 소대가리님 수정합니다
멋진리뷰에요
충분히 납득갑니다
동감하고요
김고은배우는 그냥 미스캐스팅이었어요..
첫장면부터 잘못되었어요
흥행이 되고 있으니 감독님은 좋으시겠죠...
담 영화는 고민많이하셔야 됩니다
영화 초반 김고은 배우 대살굿 몸동작에서 저랑 같이 느끼신것 같군요.
헤드뱅잉이라니!
역시 멋진후기 멋진글 입니다!
관심있는 영화인데.... 정독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소대가리님의 세밀한 분석, 촘촘한 감상평이 영화보다 훨씬 감명 깊게 와 닿습니다.
쌩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