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는 익스트림 롱 쇼트로 인물을 관조하듯 담아낸다. 광활한 사막과 반짝이는 스파이스, 그 가운데 서있는 폴 아트레이데스는 운명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고독하게 서있는 존재로 보인다. 이제는 삶의 목적이 되어버린 복수와 쟁취는 새로운 딜레마를 가져온다. 각성한 그에게 보이는 미래는 광원이 도달하는 방향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사막의 사구처럼 명과 암이 동시에 제시한다. 가문의 원수에 대한 복수와 프레멘들에 대한 오랜 압제를 해방해 줄 구원자의 길, 610억이라는 인구와 90개의 행성 40개의 종교가 폴의 선택으로 파멸되고 사라지게 되는 운명 앞에 서있다. 사막에서 얻은 이름 ”무앗딥 우슬“과 “리산 알 가입”은 희망을 꿈꾸는 이들의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다. 이제는 자신에 대한 의심이 아닌 고민이 남았다. 과업을 완수하는 메시아가 되느냐 보통의 인간으로 남느냐를 선택해야 한다.
파트 1에서 2로 이어지면서 영화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듄”이라는 세계를 직조하기 위해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듯 배경이 되는 시간과 공간을 보여주고 느슨하게 이어진 인물들의 관계를 점차 세밀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드러내고 2로 넘어오면서 ‘폴’이 점차 사막 그 자체로, 혹은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로 거듭나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것이 대가문과 황제의 정치적 암투의 결과물이자, 베네 게세리트의 종교적 신념에 의한 계획인 그의 숙명과 내면에 갈등에 대해 영화는 관객이 공감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저 한 세계의 흥망성쇠를 오롯하게 바라보듯 카메라의 시선은 무미건조하다. 대신 감정적 정서를 불어넣는 건 폴의 연인이자 정해진 예언에 반기를 든 챠니이다. 북부 출신인 그녀는 남부의 근본주의자들에 동조하지 않고 폴을 선택받은 메시아로 추앙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반문을 던진다. 익스트림 롱 쇼트로 잡은 폴의 모습은 불가역 한 운명 앞에 놓인 작은 인간처럼 보인다면 챠니와 함께 하는 순간은 클로즈업을 통해 사랑 앞에서 번민하는 이들로 비친다.
챠니를 통해 폴은 어느 순간마다 거대한 숙명을 짊어진 존재가 아닌 작고 소중한 것에 마음이 흔들리는 인간임을 확인한다. 사구의 빛이 내리는 밝은 면을 챠니로 인지를 한다면 그 반대면에 하코넨의 미래를 책임질 운명을 부여받은 자이자, 살육에 대한 본능과 일족에 대한 영예만을 생각하는 페이드 로타 하코넨이 있다. 폴이 아라키스 남부 프레멘들의 종교적 신념으로 추앙받는다면 페이드 로타는 자신의 무력과 잔혹함을 과시하며 하코넨의 새로운 영웅으로 등극한다. 영화는 챠나와 페이드 로타의 상반된 방식의 표현을 통해 폴의 양분된 내면처럼 묘사한다. 챠니의 이명은 사막의 샘을 뜻하는 ‘시하야’다. 샘은 물이자 무채색과 옅은 색채들로 가득한 듄의 세계관에서 가장 선명한 색인 파란색으로 표현된다. 그 색은 사막을 바라보는 프레멘의 눈동자이자, 생명의 물이라 불리는 샤이 훌루드(모래 괴물)의 혈액으로 만든 독이기도 하고 그녀가 몸에 항상 지니고 다니는 스카프의 색으로도 나타난다. 폴은 생명의 물을 마시고 아직 각성하지 못했던 잠재력을 깨우고 과거를 인지해 미래를 선명하게 읽어내는 새로운 인간으로 각성한다. 챠니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바람을 무너지게 해야 하는 플롯을 생각하면 파란색은 받아들여만 하는 운명인 동시에 극복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반면 페이드 로타는 흑백에 가까운 톤으로 등장한다. 이름에서도 느껴지듯 음영을 뜻하는 페이드와 돌림노래를 의미하는 로타를 합쳐진 것처럼 보인다. 잔혹하기 그지없고 피와 자극에 목 말라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폴의 어두운 내면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폴은 각성후 자신에게 하코넨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역시 두 사람의 유사성을 드러내기 위한 빌드업일 것이다. 후반 끝부분에 결투를 위해 칼을 맞대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서로가 진짜임을 가리는 결투처럼 보인다. 치열한 공방 끝에 숨을 거두기 전 페이드 로타는 폴에게 잘 싸웠다는 말을 나직히 뱉어낸다. 그 대사의 여운은 마치 너 역시 나와 같은 운명을 이어가게 될거라는 암시로 들린다.
듄은 바탕이 되는 1을 그리고 2에서 사막의 사구가 된 폴을, 그 안에 명과 암을 파란색과 무채색으로 담아냈다. 영웅을 부르는 시대는 절망으로 가득하다. 정치는 효율적 배분보다 효율적 말살을 선택했고 종교는 인류를 바른 방향으로 이끈다는 미명 하에 이를 묵과하고 방기 했다. 그래서 듄의 전투 장면들은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 익명성에 가려진 거대한 군무를 보는 느낌을 받는다. 누군가의 거대담론들은 이름 없이 사라져 가는 누군가들에 의해 실현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드늬 빌뇌브는 구원을 갈구하는 시대와 메시아의 탄생이라는 인류의 오래된 딜레마를 또다시 스크린으로 가져와 질문한다. 하나, 그 질문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물음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의 영화보다 상상의 구현을 위한 명분으로 삼기 위한 것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영화가 반드시 어떤 담론을 이야기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한 인간의 고뇌와 그 세계가 안고 있는 딜레마를 하나의 방향으로 몰아가는 만듦새는 훌륭한 연출과 연기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구현이다. 다만, 압도적인 비주얼의 스케일과 웅장한 서사가 공존함에도 거대한 우주의 역사를 한 인간의 생에 함축해서 보여주는 방식과 레퍼런스로 차용되는 근현대의 세계 역사의 조합은 어딘가 느슨해 보인다. 1에서 보여주던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공습은 종으로 진행되는 내리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재앙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하는 서사와 맞물리고 2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를 자신의 무기로 만드는 이야기는 횡으로 진행되며 뻗어간다. 보이는 구조는 탄탄하나 종과 횡이 만나는 지점에서 들려줘야 할 진짜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듄은 아이맥스로 비주얼 이팩트를 주지 않으면 영화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인간과 그를 처연하고 냉혹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계는 드늬 빌뇌브가 연출한 모든 작품에서의 공통점일 것이다. 그는 살아있는 모든 것은 모두 시간 속에서 소멸하고 인간 역시 그 자장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존재임을 카메라로 포착해왔다. 영화를 통해 당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끊임없이 돌아보게 하고 다시 생각하게 하는 그의 통찰은 잠시 길을 벗어난 듯하다. 듄의 다음 이야기가 나올 땐 다음 스텝을 위한 준비 동작이 아니길 바란다. 퍼즐의 피스 하나조차 그 자체로 깊은 의미를 심던 이야기꾼 드늬 빌뇌브를 기대한다.
첫댓글 아쉬움이 좀 있으셨나봅니다.
폴이 챠니를 떠나는 순간(서로 떠난거죠..)
영웅 또는 메시아로서의 승리의 기쁨이나 열광보단 그 쓸쓸하고 암울할 미래에 대한 서사를 잘 깔아놓은 판이 아니였나 생각했습니다.
눈으로 보여주는 것만 보는 사람이라 ㅎㅎ
깊은 통찰의 리뷰덕에 비어있는 구석을 다시 생각하게 된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리뷰 감사해요. 그럼 댓글부대 작전개시.
그의 숙명과 내면의 갈등에 공감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에 공감합니다.
그러다 보니 베네 게세리트고 하코넨이고 모래괴물이고 뭐고 다 머리가 아프더군요. 폴이 그렇게 고뇌하는지 잘 모르겠던걸요. 고뇌하는 척 끌려가는 척 기회 다 잡네. 타고난 애가 교육도 잘 받아 영리하네 싶고.
실은 제가 제일 별로로 생각하는 것은 왜 메시아는 챠니가 아닌 폴이어야 하는가 하는 겁니다. 아바타에서도 똑같이 느꼈어요. 원래 그런 거라면 그냥 무기력해집시다. 낙타이자 末人으로 삽시다.
업무 스트레스로 멀미와 구토에 시달린 사람에겐 공허한 이야기였어요. 감독 잘못이라기 보다 원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런 듯 해요. 판타지가 제 취향이 아닌 것도 한 몫. 하지만 상상의 구현은 뛰어나서 본 게 아깝진 않았어요. 기갑 디자인도 멋지고 모래사막도 장관이고 그 위에 선 여리여리한 폴의 모습도 뭔가 남겼습니다.
만들어진 영웅이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한 스토리라 생각해서 챠니가 아닌 폴이 적절했다 생각합니다.
무기력하게 느끼시지 않아도 될듯 합니다 ㅎㅎ
영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베네 게세리티들이 만들어놓은 판에 올려진 애자나요 ㅎ
폴이라는 메시아의 성취가 쾌감이 느껴지지 않는 씁쓸한 엔딩이 아바타와는 다른 결이 아닐까 싶었네요 ㅎㅎ
@안젤리나 졸려 만들어진 영웅의 위험성이라니 무릎을 탁 치고 갑니다^^
역시 구석구석 영화의 의미를 짚어내는 당신은 리뷰의 달인!
다음 스텝을 위한 준비동작이라는 문장으로 듄2가 어떤 진행이었는지 짐작가능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듄을 보고 싶게 만들어준 후기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