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목사의 생활신앙이야기: 청도에서의 3박 4일 ◈
가난이 설레임의 추억을 선물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엄마가 설을 맞아 사 준 운동화에 때가 낀 것은 정작 신어서가 아니라 손때 때문임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이 말 뒤에 피식 웃음을 흘릴 것입니다.
난 그 마음으로 11년 만에 백색의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월요일 새벽 2시 30분, 공항버스에 몸을 싣기까지 어릴 적 만지작거리던 운동화처럼 시계를 어지럽게 쳐다보았습니다.
이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청도는 비행기에 오른 순간 내릴 정도로 지척이었습니다. 27살, 길림성 조선족 청년가이드 조광화를 보는 순간 이번 여행이 재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27살이라고 밝히지 않았다면 난 30대 중반의 유부남으로 알았을 것입니다. 자신을 대학 보내기 위해 남한에 건너와 서울 신당동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는 부모를 둔 청년 조광화는 자신의 종교는 불교라고 하면서도 일행들이 식사기도를 할 때마다 테이블 옆에 서서 우리들의 기도를 엿들으며 참 좋은 내용이라고 소년처럼 환하게 웃는 청년입니다.
여행의 첫 방문지는 맥주박물관이었습니다. 1903년 독일이 점령한 후 노산이라는 지역의 최고급 물과 독일의 기술이 합쳐 만들어 낸 ‘칭다오’맥주는 세계 최고급 맥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110년이 되었음에도 그대로 보존된 공장은 독일인들의 건축철학을 그대로 보여 주었고, 꽤 비싼 입장료(18,000원)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관람 중 2번의 맥주 시음을 하게 되는데, 한 번은 모든 여과가 끝나지 않은 천연 생맥주를, 두 번째는 모든 과정을 마친 맥주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이 둘의 맛은 천양지차입니다. 첫째 것을 마시고 다른 것을 마시면 맥주 먹을 생각이 안 난다고 할 정도로 생맥주의 맛은 가히 일품입니다. 아쉬운 점은 이 맥주는 박물관에서만 판매한다는 것이지요.
맛있는 맥주 한 잔 덕분에 발걸음도 가볍게 중국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중국은 세 부류 사람들의 천국이랍니다. 빽 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 돈 많고 빽 있는 사람. 돈과 빽이면 무엇이든 다 되는 나라, 그곳이 중국이랍니다. 아파트 한 평에 보통 우리 돈으로 1,000~1,200만원이나 하고, 3,800만원 하는 곳도 있다는 설명에 놀랐습니다.
길거리에서 만난 중국 사람들은 모두 한 결 같이 행색이 초라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지갑 안에는 100위안(18,000원)고액 화폐가 가득 들어 있다는 겁니다. 물론 소수민족들은 예외이지만 말입니다. 중국 사람들이 한국으로 여행을 가려면 1,200만원을 담보금으로 내고 온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청도에서 내가 제일 놀란 것은 도로와 운전입니다. 신호등도, 중앙선도, 중앙분리대도 거의 없습니다. 자동차의 경적도 없고, 운전으로 인한 다툼도 없습니다. 맘대로 주차하고, 맘대로 회전하고, 맘대로 끼어들어도 누구하나 뭐라는 운전자가 없습니다.
무법천지이지만 나름 그들만의 질서가 있고, 참 신기한 청도였습니다.
또 하나 신기한 것은 내가 청도에서 영어를 가장 잘하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 한 마디의 영어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머무는 호텔로 가려고 택시를 탔는데 말이 통하지 않아 애를 먹었습니다. 나중에야 호텔이 대주점(大酒店) 또는 대반점(大飯店)이라고 불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중국집을 보고 호텔로 착각하겠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습니다. 덕분에 손과 발이 많은 고생을 했답니다.
청도는 해안도시입니다. 그래서 내륙(內陸)의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평생 바다 한 번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기에 바닷가에서 사진을 찍고 조개를 줍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신혼부부들이 사진촬영을 하는 장면이 눈만 돌리면 들어옵니다. 추운데도 많이(?)벗고...
또 청도에는 허가 받은 노점상만 있습니다. 노점상들의 목에는 모두 정부에서 발행한 명표를 걸고 있었으며 호객(豪客)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이따금 장애가 있는 분들이 그저 길에 엎드려 침묵으로 구걸을 할 뿐입니다.
중국 23개의 성중 9번째인 산동성(인구 1억, 우리나라 1.5배)에서 두 번째 대도시이며 제일 번화한 청도는 약 900만 명이 살고, 우리나라 사람도 약 15만 명이나 된답니다. 구(舊)도시와 신(新)도시로 나뉘는데 사람들의 주거지인 구 도시는 독일 사람들이 조성한 도시로 마치 유럽을 옮겨 놓은 듯 아름다웠습니다.
개신교 건물은 돔 위에 첨탑이 있는 형식의 교회 하나와 천주교의 아름다운 성당이 있었고, 기독교 선교가 공식적으로 인정이 되지 않는 탓에 한국선교사들은 대부분 교민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독특한 것은 지방 신문이나 광고지를 통해 교회를 알린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TV나 라디오로 교회를 광고하는 때가 올 것이라고 난 생각합니다. 그러면 더욱더 부익부(富益富)빈익빈(貧益貧) 현상이 가속화 되겠지요.
물이 유명하고 온통 돌로 이루어진 중국의 명산인 노산(魯山)을 올라갔습니다.
중국 무협지에 자주 등장하는 노산은 중국 도교(道敎)의 본산이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2150년이 된 나무를 보았고, 도교의 맥을 잇고 있는 태청궁의 수련자들도 만났습니다. 중국 무술의 대가인 ‘장삼봉’의 후예들로, 무술, 기예, 악기연주, 정신수련의 네 단계로 나뉘어 그 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태청궁 안의 나무들은 대부분 500년이 넘은 것들로 중국이 대국(大國)임을 보여주는 것 같아 경외로웠습니다.
여행을 하면 현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내 고집(?)에 일행은 주로 현지 음식을 먹었는데 잡식가(雜食家)인 나도 먹지 못할 음식이 많았고, 그 외 음식도 마지못해 먹을 정도였습니다.(저렴한 여행인지라...)
두 번 먹은 한식(韓食)도 중국 스타일이었기에 호텔에서 주는 아침밥을 왕창 먹는 방법으로 배를 채웠습니다.
내가 주장해 일정에 넣은 와인박물관은 정부에서 맥주의 거리를 모방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입장료가 18,000원이나 되어 일행들로부터 눈총을 샀는데 나와서는 여행 중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고 말을 해서 마음의 짐이 가벼워졌습니다.
역시 중국이라는 감탄과 함께 와인박물관은 지하 수천 평의 까브(지하동굴)에 세계의 모든 와인을 보관하고 전시하여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지하에 그토록 웅장한 와인 박물관을 만들었는지 놀라웠습니다. 와인을 한 병 사서 가져올까 했더니 값이 너무 비싸서 눈으로만 보았습니다.
청도는 풍광이 멋진 도시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사뭇 다른 문화를 지니고 있는 도시였습니다.
전혀 남을 의식하지 않는 중국 사람들, 법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나름 질서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실속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참 얻을 것도 많은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왔습니다.
오늘 저녁 신도회 연합 월례회 때 그 맛있는 칭다오 생맥주 시음회를 할까합니다.
거금(?)을 들여 사 온 것이니 이것으로 모든 선물을 대신 하겠습니다.
이목사 백(白)